효창공원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애국지사들의 유해
가 모셔져 있는 묘원이다.
원래는 효창원으로, 정조의 큰 아들인 문효세자
등의 무덤이 있었으며, 일제시대 문효세자의 묘
를 경기도 고양에 있는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기
면서 효창원은 효창공원이 되었다.

백범 김구 동상 앞에서 손자.
손자와 백범 김구 기념관을 둘러보고 ‘삼의사 묘’
로 향했다.
‘삼의사 묘’는 조국 광복을 위해 몸 바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를 모신 묘역인데, 광복 후
1946년 김구 선생의 주선으로 이곳에 봉환 안장
되었다.
삼의사 묘 왼편에는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의
유해를 찾으면 안장하고자 마련한 빈 무덤이 있다.

백정기. 윤봉길. 이봉창 삼의사 묘 맨좌측이 안중근 가묘.
백정기(白貞基 1896~1934) 의사는,
1933년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 참가한 일본 주중 공
사를 습격하려다 잡혀 일본 법원에서 무기형을 선
고받고 복역하다가 이듬해 6월 5일 순국하였다.
윤봉길(尹奉吉 1908~ 1932) 의사는,
1930년 망명길에 상하이에 도착하여, 김구 선생을
만나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
왕 생일 겸 상하이 사변 전승 축하 기념식에 참석
한 시라카와 대장과 일본 침략 군관 수뇌들을 폭
살, 중상을 입힌 뒤 현장에서 체포되어 12월 19일
일본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이봉창(李奉昌 1901~1932) 의사는,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
구 선생과 함께 일왕 폭살 계획을 세워, 1932년 1
월 8일 동경 사쿠라다문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
아오는 일본 천황 히로히토에게 수류탄을 던졌으
나 불행히도 명중시키지 못하고 현장에서 체포되
어 그해 10월 10일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순국하였
다.

이봉창 의사 동상.
이봉창 동상을 왼편으로 끼고 오르면 조국 독립
을 위해 일생을 바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백
범 김구 선생(1876~1949)의 묘역이다.

백범 김구 선생 묘.
김구 선생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하이
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경무국장과
내무총장, 국무령 등 주요 요직을 거쳐 주석에 이
르렀다.
남북에서 분단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민족통일.
자주독립 운동을 전개하던 중,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흉한에 의해 쓰러지니, 7월 5일 온 민
족의 존경과 애도를 담아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봉안(奉安)하였다.
할아버지 : 손자야, 나라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하다 돌아가
신 김구 선생님께 인사하고 가야지. 같이 묵념.
손자 : 나중에 자식하고 또 오겠습니다.
할아버지 : 나중에 자식하고 오면 너무 머니까 엄마, 아빠
하고 먼저 와야지.
어린 손자와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발
걸음이 무척이나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