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의 '입'으로 불렸던 알렉세이 아레스토비치 전 고문의 발언 색깔이 달라진 느낌이다. 닥치고 '러시아는 나쁜 X'에서 최근 우크라이나 지도부를 비판하는 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다. 본인의 입지와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의외의 '폭탄 발언'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아레스토비치/사진출처:페이스북
러시아보다 우크라이나가 더 '압제(壓制) 체제'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아레스토비치는 12일 소셜 미디어(SNS)에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3개 국가를 비교했더니, 러시아와 이스라엘 국민들이 우크라이나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전쟁으로 정당화하는 '내부 압제'(внутренняя тирания)가 우크라이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의) '압제'에 맞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국가(우크라이나)가 해외 여행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그같은 '압제 체제'를 허용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러시아와 (팔레스타인 하마스 무장세력의 침공을 받은) 이스라엘도 국경을 폐쇄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2월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 개시 직후, 총동원령을 발령하고 18~60세 남성의 출국을 금지한 상태다.
아레스토비치 전 고문은 "러시아에선 '병무 등록 및 입대 사무소'(우리의 병무청 격)로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나가려는) 지원자들의 발길이 꾸준하게 이어지지만, '자유 국가'(우크라이나)에서는 시민들을 길거리에서 붙잡아 강제로 군대로 밀어넣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는 최전선에서의 병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한 '강제 동원'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길거리에서 동원 대상자를 강제로 끌고 가는 모습/영상 캡처
서방 외신들은 "전쟁 초기에 러시아의 침공에 분노한 우크라이나 남성들은 스스로 전선으로 달려가 대부분 전사하거나 부상했다"며 "스스로 갈 사람은 벌써 다 갔고, 이제는 강제로 끌고가는(?) 것도 어려울 지경"이라고 '강제 동원'의 이유를 분석한다.
아레스토비치 전 고문은 "이스라엘의 예비군들은 집결지에서 개머리판으로 맞지도, (최전선으로) 가지 않으면 총살당할 것이라는 협박도 받지 않는다"며 "'자유'와 '압제' 간의 차이는, 놀랍게도 2021년 통계기준으로 우크라이나의 경제 자유지수는 127위, 러시아는 92위라는 데서 나온다"고 지적했다. 그의 결론은 우크라이나인은 지금 안팎으로(안으로는 우크라 전시체제, 밖으로는 러시아 공격/편집자) '압제 체제'와 싸우는 중이다.
이보다 며칠 전인 8일과 9일, 그는 우크라이나 지도부를 향해 '방어적 군사작전으로의 전환'을 거듭 촉구했다. 그는 8일 '방어 작전'론을 제기한 뒤 비판적인 반응이 쏟아지자, 이튿날 "사람들은 나에게서 긍정적인 발언을 기대하지만, 이제는 국민을 '안심시키는 말이 아닌, 진실을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레스토비치 전 고문은 "러시아군이 수도 키예프(키이우) 외곽에서 2~3주 이상 버틸 수 없었고, 우리가 적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제 다시 생각하고 직면한 현실에 맞춰 군사작전을 조정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또 우크라이나가 전략적 차원에서 이미 '러시아에 졌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그는 지난 6일 "러시아는 전 산업을 동원하고, 서방의 제재를 우회해 필요한 주요 (군사) 부품들을 수입하기 위해 '비밀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으나, 우크라이나에서는 아예 산업 동원 자체가 없었다"며 "전략적으로 이미 러시아에 패했다"고 주장했다.
방산업체를 방문해 미사일 생산 문제를 점검하는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그는 또 “러시아는 비록 (주요 부품의) 80%를 사실상 훔치고 있지만, 정교한 계획을 갖고 있고, 석유 수입도 아주 크다"면서 "그러나 우리는 극도의 불화와 혼란, 부패에 직면해 있고, 그것을 한 숟가락 거리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바판했다. 그러면서 '지금 그것(혼란과 부패 구조)을 서방의 지원 중단과 연계시켜 보면, 앞으로 우리의 겨울이 얼마나 우스울지 상상할 수 있다"고 비꼬았다.
물론, 그의 이같은 발언에는 신분의 변화에 따른 불이익, 당국의 형사 기소 가능성에 대한 불만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레스토비치 전 고문은 지난 1월 대통령실 고문에서 해임된 뒤 러시아 변호사 출신으로 친우크라 유튜브를 운영하는 인플루언스 마크 페이긴과 유튜브 '페이긴 라이브'에사 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협업은 얼마 가지 못했고, 지난 8월 두 사람은 헤어졌다.
지난 8월 23일 마크 페이긴이 느닷없이 안식년에 들어간다며 유튜브 방송을 중단했다. 주변에서는 그가 아레스토비치 전고문과 유튜브의 수익 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후 아레스토비치 전고문은 유튜브 채널 '전쟁 일기'(военный дневник)에 다른 사람들과 출연해 '전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마크 페이긴과 다정했던 아레스토비치(위)와 새로운 유튜브 채널에 등장한 '전쟁일기'. 596일째라는 문구와 아레스토비치의 얼굴이 가운데에 나와 있다/텔레그램, 유튜브 캡처
결정적인 계기는 그의 여성 비하 발언에 대한 우크라이나 경찰의 조사가 아닐까 싶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경찰은 12일 아레스토비치 전 고문을 형법 300조(폭력 및 차별, 선전) 위반에 따른 기소 의견으로 키예프시 검찰청으로 넘겼다고 고발자인 인나 소브순 최고라다(의회) 의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알렸다. 유죄로 인정될 경우 최대 징역 3년 형에 처해진다.
문제의 발언은 그가 비공개 세미나에서 "여성을 목졸라 죽이고 싶은 존재"(существa, которых хочется душить)라고 여성을 비하한 대목이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발언이 의도적으로 왜곡 편집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이 그를 기소한다고 했으니, 자칫하면 한동안 그의 얼굴을 유튜브에서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