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가 만든 날렵한 스포츠카는 언제나 월등했고, 심지어 SUV와 세단조차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섰다. 포르쉐가 만들면, 영락없는 포르쉐였다. 잘 팔리는 카이엔과 마칸, 파나메라 덕분에, 포르쉐는 더 높은 경지를 향해 오르길 멈추지 않았다. 특히, 2009년에 나온 파나메라는 4인승 스포츠카 혹은 스포츠 세단으로 불러야 할지, 아니면 그란 투리스모로 봐야 할지 애매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15만 대 넘게 팔리는 등 인기는 좋았다. 하지만 1세대 파나메라의 외모는 보고 또 봐도 너무 못났다. 최악의 포르쉐 중 디자인 부문이 있었다면, 아마 파나메라의 외관 디자인이 포디움에 올랐을 게 분명하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의도는 있었을 것이다. 포르쉐의 아이콘인 911을 토대 삼아 포르쉐답게 세단처럼 만드는 것. 하지만 너무 강력한 자기암시에 빠졌던 걸까. 어쨌든 파나메라는 911과 비슷해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나왔지만, 온갖 악평을 받아들여야 했다. 파나메라에서 날렵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몸집은 비대했고, 펑퍼짐한 엉덩이까지 애매하게 떨어지는 루프 라인은 나쁘게 말해 꼽등이 같았다. 포르쉐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911과 파나메라는 분명히 달랐다.
그에 반해, 2016년 6월 등장한 2세대 파나메라는 훨씬 매끈해졌다. 마이클 마우어 수석 디자이너는 신형 파나메라 출시 행사에서 “더 날렵하고 역동적인 쿠페 스타일의 루프 라인을 강조했다. 구형의 단점은 없애고 장점은 강화한 디자인이다”라고 밝혔다. 길이와 너비, 높이 모두 늘어나며 차체가 한층 커졌지만, 전보다 더 날렵하고 멋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얼굴 높이를 낮추고 뒷좌석 머리 위의 루프 라인을 20mm 낮춘 덕분이다. 이제야 비로소 그토록 추구했던 4도어 911에 가까워졌달까. 무엇보다 뒷모습의 변화가 가장 극적이다. 이전 모델의 테일램프가 다소 엉성하게 붙어 있었다면, 좌우로 가로지르는 신형의 입체적인 테일램프 덕분에 차체가 한결 낮게 내려앉은 인상을 만드는 동시에 911의 그것과 흡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구형 파나메라의 외모를 두고 말이 많았지만, 정교한 인테리어는 한결 깔끔하고 기능적이다. 편안하고 넉넉한 뒷좌석에 어르신이나 귀빈 2명을 모시기에도 좋지만, 운전자를 위한 배려가 가장 돋보였다. 높이 솟아오른 센터 콘솔이 낮게 내려앉은 운전석을 안정적으로 감쌌고, 자동차를 제어하는 각종 기능 버튼을 기어 레버 주변에 가지런히 배열해 손을 사방팔방 번잡하게 놀릴 필요가 없이 조금만 주의하면 됐다. 두툼한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을 움켜쥔 채 이따금 패들 시프트를 철컥거리며 당기거나, 기어 레버 왼쪽 주행 모드 스위치만 가볍게 눌러주면 그만이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영어로 가득한 데다, 운전자가 건드릴 기능이 거의 없기에 차라리 다행이었다.
신형과의 비교를 위해 우리가 불러들인 구형 파나메라는 GTS 버전. 그란 투리스모 성향이 강한 파나메라에 스포츠 감성을 더한 모델로, 지금은 사라진 4.8ℓ V8 자연흡기 엔진을 품고 있다. GTS 버전은 실내 천장과 시트에 알칸타라를 두르고, 카본으로 잔뜩 치장해 멋을 부렸다. 버킷 시트를 감싸는 안전벨트는 실내 재봉선 색과 같은 붉은색. 시트까지 붉게 치장했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그건 오너의 취향 문제다.
반면에 럭셔리 스포츠 세단을 지향하는 신형 파나메라는 고급 소재와 함께 최첨단 기술을 잔뜩 두르고 등장했다. 화사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는 이전에 볼 수 없던 미래지향적인 포르쉐를 겨냥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대시보드 가운데를 장식한 12.3″ 블랙 패널 터치스크린. 화면을 터치하는 동작을 정확히 인식하고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왼쪽에 상세 메뉴가 떠오른다. 안에 담은 내용도 한글을 지원하며 기능에 따라 잘 분류해놓은 데다, 터치 반응성이 뛰어나고 화질도 선명해 불편함을 느낄 일이 거의 없다. 각종 기능 버튼이 달려 있던 기어 레버 주변 역시 터치 방식 패널로 바뀌었다. 화면과는 다르게 이곳의 버튼은 약간 힘주어 눌러야 반응하는 감압식. 그래서 반응이 더 또렷하다. 공조 장치와 시트 조작 버튼으로 빼곡했던 뒷좌석 센터 콘솔도 터치식으로 싹 바뀌었다.
패들 시프트 말고는 다른 조작 기능이 없던 스티어링 휠에도 수많은 버튼이 들어섰다. 포르쉐의 오랜 전통이었던 5개 원형 계기반 중 가운데 태코미터만 아날로그 방식으로 남겨둔 채, 좌우 계기반을 디지털로 전환한 데 따른 변화다. 요즘 포르쉐가 그렇듯 주행 모드 다이얼을 스티어링 휠 4시 방향에 따로 둔 것도 큰 변화. 물론 그 한가운데에는 20초간 터보 융단폭격을 시작하는 스포츠 리스폰스 버튼이 도사리고 있다.
먼저 구형 GTS의 버킷 시트에 몸을 맡겼다. 전통적인 스티어링 휠 바깥쪽 시동 버튼을 돌려 엔진을 일깨운다. 그래, 이거야! 다운사이징 시대에 자취를 감춘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목소리로 운전자를 맞이한다. 격정적인 숨소리를 여과 없이 실내로 들려주는 사운드 심포저를 A필러 안에 설치한 덕분이다. GTS는 스포츠 배기 시스템까지 품고 있어 엔진을 들볶을수록 매혹적인 연주로 화답한다.
같은 엔진을 나눠 쓴 구형 S와 4S 모델보다 스포츠 성능을 강조하기 위해, 성능을 30마력, 2.1kg·m 높이는 동시에 rpm이 붉게 달아오르는 영역은 400rpm 더 높은 7100rpm까지 높게 다듬었다. 한계까지 치닫는 과정에 이질감이라고는 없다. 빨아들인 공기를 온전히 사용해 크랭크샤프트를 더욱 빠르고 힘차게 돌리기까지 지나는 과정이 매끄럽고, 엔진은 자연스럽게 고른 힘을 뿜어낸다. 함께 어울린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는 부드럽고 빠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차는 순수한 스포츠카가 아니라 그란 투리스모 성향 짙은 고성능 투어러다. 기본형보다 차체를 10mm 낮춰 하체를 팽팽하게 조인 GTS라고 한들, 주행 모드에 따라 댐퍼와 차고를 조절하는 에어 서스펜션은 언제나 진득하고 편안한 승차감을 선사한다. 그러다 접어든 굽잇길. 거친 노면을 잘 움켜쥐고 매끄럽게 달리던 GTS의 덩치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5m 넘는 길이와 2t이 넘는 무게를 생각하면 비슷한 사이즈의 다른 세단보다 훨씬 잘 달리는 건 분명하지만, 평탄한 길에서 포효하며 질주하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이제 뼈대부터 파워트레인까지 완전히 새롭게 바뀐 신형 파나메라를 경험할 차례다. 시승차는 4S 모델로, 알루미늄을 폭넓게 쓴 차체에 440마력을 내는 신형 2.9ℓ V6 트윈 터보 엔진과 8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곁들였다. 페이스리프트 이전의 구형 파나메라 4S는 GTS와 같은 4.8ℓ 자연흡기 엔진을 사용했지만, 페이스리프트 이후에는 GTS와 거의 같은 성능을 내는 3.0ℓ 터보 엔진으로 심장을 바꿨다. 그리고 세대교체에 이르러, 다시 한번 심장을 바꾼 것.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진 파나메라 터보 모델은 실린더 보어와 스트로크가 같은 스퀘어 타입 4.0ℓ V8 트윈 터보 엔진으로 550마력과 78.5kg·m의 성능을 내며, 0→100km/h를 3.8초 만에 끊는다.
새로운 터보 엔진은 V형 실린더 뱅크 안쪽에 터보차저 2개를 배치한 구조. 이로써 엔진을 더 작게 만들어 차체 무게중심을 낮출 수 있고, 터보차저와 실린더 사이의 거리가 짧아져 한결 빠른 스로틀 반응을 얻을 수 있다. 확실히 이전의 자연흡기 엔진만큼 강렬하고 묵직한 사운드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보다 선이 얇고 맥 빠지는 연주이긴 하나, 동급에서 이처럼 훌륭한 소리를 내는 엔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배기량이 2.0ℓ 가까이 차이 나는 구형 파나메라 GTS의 성능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공적인 다운사이징을 거쳤다. 아니, 포르쉐의 말대로라면 라이트사이징이다.
신형 파나메라 4S는 1750~5500rpm까지 이르는 폭넓은 영역에서 최대 56.1kg·m의 토크를 뿜어내고, 뒤이은 5650~6600rpm 구간에서 최고 440마력의 힘을 쏟아낸다. 1ℓ당 151.7마력의 힘을 내는 엔진은 정말 물건이다. 8단 PDK는 넓은 토크 밴드를 이용해 언제든 빠르고 강력하게 네 바퀴로 힘을 똑똑히 보낸다. 스로틀과 변속기 반응을 가장 날카롭게 바꾸고 에어 서스펜션까지 탄탄하게 조인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다다르는 데 필요한 시간은 불과 4.4초(스포츠 크로노 패키지를 넣은 시승차는 4.2초). 200km/h까지도 16초 언저리에 끊을 만큼 힘이 여전히 넘쳐난다. 상황만 괜찮다면, 터보 부스트를 20초간 발휘하는 스포츠 리스폰스 버튼을 눌러 질주를 마음껏 즐겨도 좋다.
신형에 이르러서 기본으로 품고 나오는 4륜구동 시스템의 효과가 제법 크지만, 고속 안정성의 수준을 한 번 더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최신 기술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전자제어 댐퍼를 품은 3개 체임버 에어 서스펜션, 전기모터로 작동하는 액티브 롤 스태빌라이저 그리고 리어 액슬 스티어링이 대표적이다. 안정성과 더불어 승차감 역시 한 번 더 진화를 거듭했고, 코너를 대할 때의 운동 능력 역시 업그레이드했다.
파나메라는 2세대에 이르러, 포르쉐가 추구해온 4도어 911에 한층 더 가까워졌고, 럭셔리와 스포츠라는 반대 선상의 가치를 세단이라는 차체에 함께 아우르는 데 성공했다. 터보 엔진이 따라올 수 없는 박력 넘치는 사운드처럼 구형 파나메라의 능력도 출중하지만, 신형 앞에서는 부족한 점이 보일 수밖에 없다. 신형에서 그저 외모만 가꾼 게 아니라 능력도 크게 올랐다는 게 대번에 드러난다. 소비자들도 이 사실을 빨리 알아차린 것 같다. 신형 파나메라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2만8000대나 팔리며 포르쉐의 성장을 이끌었다. 난 성공적인 진화의 현장을 목격했다.
Welcome New Turbo!
신형 파나메라의 엔진은 V6와 V8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부터 V8 트윈 터보 디젤 엔진, 마지막으로 가솔린 터보 엔진과 전기모터를 결합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으로 나뉜다. 그리고 모든 엔진 라인업은 포르쉐 최초로 들어간 8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와 짝을 이룬다. 이제 자연흡기 엔진은 없다!
Lighter, Sturdy, Waxy Chassis
신형 파나메라는 아우디폭스바겐 그룹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대형 후륜구동 & 4륜구동 모델이 사용하는 MSB 플랫폼의 첫 주인공. 포르쉐뿐 아니라 아우디, 벤틀리 등 여러 브랜드가 나눠 쓰며 효율을 높인다. MSB 위에서 태어난 파나메라는 알루미늄과 합금강 등으로 만든 차체를 사용해 빼어난 강성을 확보했다.
차체 강성은 혹독한 주행 환경에서 운전자를 든든하게 뒷받침한다. 이와 함께 어울리는 신기술은 3체임버 에어 서스펜션과 리어 액슬 스티어링, 액티브 롤 스태빌라이저 등. 이런 기술이 어우러진 파나메라의 주행 감각은, 매끈하고 날렵하면서도 묵직하다. 그래서 운전자는 저도 모르게 속도를 올리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