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 제: 아버지로서 야이로
소 주 제: 어버이주일. 아버지의 심정.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날자 및 분류: 210509낮 설교 창 조 의 말 씀
성 구: 막5:22-24. 36-43
전 하 는 자: 정 헌 정 목사 http://cafe.daum.net/changcho
[휴대폰010-3728-5889 교회033-244-5891]
[본문]막 5:22-24,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막5:36-43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1905년 미국의 교회학교교사인 안나 자비스의 어머니는 전쟁으로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을 위로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안나는 어머니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추모모임을 가졌고 이 모임에서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던 카네이션을 교인들에게 나눠주다. 이때부터 카네이션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상징하는 꽃으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어머니를 기리는 모임은 이후 미국전역으로 퍼져나갔으며 토머스 우드로 윌슨 (Thomas Woodrow Wilson, 1856년 12월 28일 ~ 1924년 2월 3일)은 미국의 28대 대통령 (1913년 ~ 1921년)이었다. 독실한 장로교 교인, 그는 저명한 역사가이며 정치학자이다. 1914년 윌슨미국대통령이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하면서 기념일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대 이승만대통령 때에 1955년 매년 5월8일을 ‘어머니’날로 제정했으며 1973년 ‘어버이날’ 지정되었다, 카네이션을 어머니날의 상징으로 한 것은 안나의 어머니가 카네이션을 좋아하였기 때문이다,
전례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어버이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음성을 듣기를 원한다, 오늘의 이야기는 회당장의 12살 된 딸에 대한 사건보다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고생하며 여러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으며 고생도 많이 하고 재산도 다 잃었지만 병이 낫기는커녕 악화된 한 여인의 아픈 사연이다 모든 희망이 절망으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한 여인의 기구한 인생의 삶을 먼저 조명해야 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오늘은 그 여인의 기구한 인생의 여정보다는 회당장의 12살 된 딸의 죽음이 예수님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알고 은혜를 나누려고 한다,
야이로는 회당장이었다. 회당은 그리스어로 ‘시나고가’로 기도와 집회의 장소였다. 그래서 보통 회당이라 하면 이스라엘사람들이 기도하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넓은 의미로 기도하는 모든 장소를 가리키기도 한다. 즉 해변, 강가, 옥외 등에서도 기도하면 여기도 역시 회당이라는 의미에 포함되었다.
예수님 시대에는 예루살렘에 회당이 480여 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바빌론, 시리아, 소아시아, 마케도니아, 그리스, 이탈리아, 아프리카 등지에도 이스라엘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회당이 세워진다.
회당을 건설할 때 예루살렘 쪽을 향하도록 하고, 회당 안에는 모세의 율법을 넣어두는 상자가 놓여있었다. 회당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을 대신하는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그러므로 회당장은 원로(관위(官位)ㆍ연령ㆍ덕망이 높고 국가 사회에 공로가 큰 사람에 대한 존칭. 어떤 일에 오래 종사하여 공로가 많은 연로자. 들 가운데서 뽑힌 행정관이 맡았다.
회당장은 회당의 최고 책임자로 유대인 사회에서는 존경받는 위치에 있던 지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예수님의 발애래 엎드려거 딸을 위해서 간청했다 아마도 그런 모습을 예수님은 그의 겸손한 자세로 어여삐 보았을 것이다.
반면에 예수님은 관직에 있는 사람도 종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닌 분이 예수님이셨다, 그런 예수님의 그 발아래 엎드려 간절히 애원하는 모습은 아버지로서 자식을 살려보려는 애타는 심정이 거기에 담겨져 있다, 회당장인 야이로의 심정은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이 지푸라기라고 잡는 심정으로 예수님 발아래 엎드린 것이다, 사회적인 지위로 보거나 세상 사람들의 인정하는 지지도를 보더라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강행하고 있다, 유대사회에서 높은 지식과 지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다 실행해 봤지만 모든 것은 허사였다, 많은 돈이나 의사들을 불러왔으나 그들은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앓은 여인을 치료는 했지만 허공을 가르고 돈만 날렸을 뿐이다 병은 더 악화되었고 거의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아버지가 돈이나 권력이나 유대사회에서 힘이 있었지만 결과는 12년 동안 혈루병으로 앓은 여인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런 회당장 야이로는 아버지로서 12살 된 딸을 살리려는데 무엇을 못하며 두려워하겠는가, 아버지로서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려놓을 수 있는 판국에서 자신의 위신이나 세력이 무엇이며 지위나 지식이 무엇인가 오직 딸자식 하나만 살릴 수 있다면 어떤 것도 불가능한 일은 없었다, 이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어버이의 마음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시고 있다, 회당장 야이로는 딸을 위해서 예수님께 엎드렸고 간청하기에 이른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 보았지만 더 이상 힘쓸 수 있는 길은 없어 소문을 듣던 예수님께 와 엎드린 것이다, 자신의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활용해 보았지만 시간만 허비하고 돈도 사라질 뿐 딸은 점점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 회당장 야이로는 자신의 시간이나 계획이나 권력이나 물질이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은 의식이 바로 예수님 발아래 엎드린 모습이다,
여기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가장 먼저 말씀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통해서 우리들을 만들어 간다는 사실이다, 회당장 야이로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은 12년 된 딸의 아픔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부르시지만 듣지 아니할 겨우에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통해서 부르시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1. 항복하는 부모
아무리 모질고 못된 부모라 할지라도 두 손을 들고 엎드리며 항복하는 것은 자녀의 아픔과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부모는 자신의 생명보다 자녀의 생명을 더 중요시하고 더 아낀다, 회당장 야이로처럼 소문으로만 들어온 실상은 노숙자인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릴 수 있는 것은 딸을 사랑하는 아빠의 마음이다, 자신에게 있는 세상적 지위나 권력이나 물질보다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의 생명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에게 닥치는 모든 어려움과 시험은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된다, 내가 지금 활용하고 있고 재금 나의 유익을 위해서 쓰는 시간은 나를 빛나게 하고 나를 세우기에 급급한 시간이라면 그 시간은 회당장 야이로처럼 예수님의 발아래 내려놓아야 된다, 그것이 지금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며 비법이다, 자신이 자신을 위해서 하려고 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시간 안에서 자신을 왕으로 추대되어 왕으로서 모든 일을 결정하며 행하고자 하는 시간이다, 여기에서 회당장 야이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권세도 능력도 물질도내려놓고 행정관이라는 관직이나 물질이나 계획까지도 내려놓음으로서 내 시간은 포기되고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선택하는 태도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린 모습이다,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 발아래 엎드리는 것이 쉬운 일이었을까. 그렇게 자신을 깨뜨려서 자신의 계획을 깨뜨려서 자신의 손에 있는 모든 소유를 놓는 것이 만만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계획과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럼으로 서 하나님의 시간은 카운트다운이 되었다, 하나님의 시간이 카운트다운이 되는 것은 내가 쥐고 있는 세상의 시간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기마음대로 쓰는 시간을 내려놓으면 생명의 길이며 소망의 길이 열린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서 구원의 길이 활짝 열리ᅟᅳᆫ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 온 것이다, 이 말을 다른 말로 성경적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 말씀이다,
벧전 5:6-7. 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 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2. 기다림
우리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급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나 외의 어떤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급하면 긴장하게 되고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에 내 방법과 내 뜻 더 굳어지게 된다, 그래서 일을 그르칠 때가 많다, 사기꾼들도 조급하게 일을 그렇게 유도함으로서 사람들을 함정으로 밀어 넣는다, 신앙행활도 마찬가지다 급하면 급할수록 기도할 수 있는 여유가 없게 된다, 어느 분이 책의 제목을 시간이 없어서 기도한다고 했다, 그 말은 어떻게 보면 가장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당시에 회당장 야이로의 12살 된 딸을 살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런 급한 마음으로 죽어가는 딸을 향해 가는데 복병이 하나 생긴다, 회당장 야이로서는 아픈 딸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일분일초가 급한 아쉬운 시간이며 최대한 아껴야 하고 그 시간을 앞당겨야 하는 그 판국에 이름 없은 한 여인의 혈루병으로 예수님께서 가시는 걸음을 멈추고 계시는 것이다, 회당장 야이로의 심정은 이미 새카맣게 타들어가 더 이상 타내려갈 것이 없는 심정일 텐데 주위 상황은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고 있다, 한 시가 급한 심정을 예수님은 모르고 계시는 듯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나사로가 몹시 아프다는 기별이 왔다,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아프다는 아니 그의 병의 상태가 중하다는 소식을 듣고도 오히려 그곳에서 이틀을 더 계시다가 나사로를 향하여 가신 것은 기억하시는가,
요 11:6-7, 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여기에서 예수님은 나사로의 집으로 속히 가시지 않고 이틀을 더 계시므로 해서 무덤에서 나사로의 시신이 썩는 냄새가 진동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왜 더 이틀을 유하시다가 나사로의 향하여 가셨을까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에 대해서 말씀으로 기록하시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그 답을 유출하도록 함구하고 계신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밝혀주신다, 예수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을 보여주신다,
이와 같은 사건이 바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사건과 유사하다, 회당장 야이로의 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이 가시던 길의 한 복판에서 혈루병으로 앓고 있는 한 여인을 치료하고 계신다, 여인에게는 예수님께서 한 의사로서 사역을 감당하고 계신다, 이때에도 회당장 야이로를 잊어버리거나 무시해서는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소외되고 외면되어 있는 불쌍한 한 여인을 찾아 위로와 격려로 새로운 세계를 펼쳐주시며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불러주시면서 구원을 얻었다는 말씀으로 선포해 주신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야이로는 더욱 속이 타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아뿔싸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막 5: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이제 모든 것이 끝난 상황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히 딸이 병에 아픈 으로 것에서 죽음으로 과정에서 결과로 끝났다고 바뀌고 말았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12년 된 혈루병여인을 고치느라고 시간이 흘러가 버린 것이다, 한시가 급한 회당장 야이로의 딸에게 손 한 번 써 보지도 못하고 12살 된 딸이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가장 먼저 하시는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 믿기만 하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두려움은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 사고를 먼저 막으시는 것이다, 그리고는 너와 함께 하는 이가 누구인가를 알고 믿으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에게 하신 말씀은 이미 하나님께서 지도자로서 경험이 전혀 없는 초보자인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다,
수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 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화 함께 하느니라. 이 말씀을 다르게 표현하면 회당장 야이로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으라. 다시 말씀하시면 나와 함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는 것이다. 라는 말씀인 것이다,
3. 믿기만 하라
예수님 발아래 엎드려 항복하고 환경이 변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 복병을 만나 시간이 지체되고 과정이 변하여 결과가 변한다고 하더라도 주께서 가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과정의 모든 결과는 이미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대로 결과 되어지고 결론은 이미 나와있다,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우리에게는 과정과 결과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정이 바로 결과이며 결론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결과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 집에 가시겠다고 나서실 때 이미 가시는 과정이 우리에게 보여 지는 것은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한 영혼을 살리시기 위한 길이 보여 질 뿐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12년을 죽음보다 못한 시간을 보낸 한 여인에게 새로운 인생에 삶의 여정을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인도하시는 사역이 죽음을 향하여 달리는 12살 된 소녀를 살리는 것과 사역과 전혀 다르지 않는 은혜를 베푸시는 일이 메시야의 일이다,
딸의 고통과 아픔보다 더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아버지 야이로는 다른 어떤 방법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야이로는 믿기만 할 뿐인데 그 안에 자꾸 두려움이 엄습해 오고 있다. 그걸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너와 함께하고 있는 분이 누구인지 믿고 기다려라 야이로는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는 분이라는 것만을 알았을 것이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듣지 못하는 이가 듣고 맹인이 보는 것까지는 소문에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치유하시는 분이라는 말은 들었다 그런데 자신의 상황은 전혀 다른 상황으로 바뀐 것은 없다, 딸이 아파 누워있을 때는 예수님께서 오시면 가능한 일이었으나 그러나 이제는 12살의 사랑하는 딸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 안에서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말씀을 하신다 한 번도 경험해 보니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회당장 야이로는 딸을 위해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별 별생각이 다 들겠지만 딸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가장 어쩔 수 없는 난간에 서 있는 아버지 야이로 그는 자신의 모든 계획과 능력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가는 일을 단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말씀만을 안고 순종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 그에게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는 삶은 회개에서 시작하여 인내하며 견디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왕좌왕하지 않고 인내하고 견디면서 기다리는 마음이 변하지 않아야 된다. 마음의 변함이 없으려면 예수님에 대해 나의 시선이 집중되어야 된다,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시선이 집중되면 순종의 역사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내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아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서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내가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 고 하신 것이다,
아버지의 애끓는 심정으로 나의 모든 시간과 계획과 힘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왔을 때 비로소 회당장 야이로는 아버지로서 하나밖에 없는 12살 된 딸을 살려내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더 이상 물러서지 못하는 환경에 처하시면 먼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괴롭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자. 회당장 야이로처럼 마지막의 기회를 가졌다면 예수님께 나의 모든 시간을 던저버리고 하나님의 시간 안으로 들어오는 하나의 방법은 먼저 회개하고 인내하며 기다리고 믿으면서 순종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시는 성도가 되어가자. 우리들의 삶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경험하고 체험하여 매일 승리하시는 삶을 살아가자, 내가 주님의 일을 한다고 열심을 내고 고민하며 괴로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순간순간마다 주시는 은혜를 감당하기도 벅차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내가 무엇을 할까 어떤 일이 더 주께서 원하시는 가를 고민하지 말고 주시는 은혜대로 감당하며 하루 하루를 기쁨마음으로 넘기는 것이 바로성동들이 넘겨야 하는 하루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승리의 하루가 아닐까. 이런 모습을 예수님께서 바라고 계시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