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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공사현장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 현장에서 집이 지어져 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큰 집을 짓든지 작은 집을 짓든지 먼저 하는 일이 있고 또 나중에 할 일이 있는 것을 전문가가 아니라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공사현장 펜스가 쳐지면 ‘이제 곧 기초공사를 하겠구나’ 생각합니다. 공사에서 가장 기본적인 작업, 가강 초반에 진행하는 작업은 기초공사입니다. 지반공사를 진행합니다. 왜냐면 지반이 튼튼해야 그 위에 집을 지을 때 튼튼해서 무너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경기연구원이라는 곳에서 경기지역 건축물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연구물에 의하면 전체 건축물 116만 3625건 중 내진 설계가 된 곳은 12.34%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공동주택은 46.77%, 단독주택은 6.79%가 내진 설계가 돼 있으며 학교는 29.59%가 내진 설계가 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지역별로는 안산시, 오산시, 군포시 등이 신도시 개발 및 택지 개발 등 영향으로 내진설계 비율이 20%를 넘었으나 연천군은 2.67%, 양평군 3.1%, 여주시는 3.64%에 불과해 내진설계 비율이 취약한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합니다. 이중 공공건축물은 1756개소 중 48.9%인 897개소, 도로시설물은 2609개소 중 43.8%인 1143개소가 각각 내진설계가 적용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나머지인 건축물 859개소와 도로시설물 1466개소는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않아 지진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통계를 보면서 지진에 취약한 경기도 건축물과 도로가 강진이 발생하면 어떤 피해를 보게 될 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오래 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버린 사건도 있었고, 2022년 광주광역시에서는 공사중이던 아파트 고층부에서 붕괴사고가 일어나 주변에 지나가던 차를 덮쳐 큰 인명 피해를 입힌 적이 있습니다. 어디 뉴스를 보니까 공사현장 옆에 있던 아파트 주차장이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갈라진 것을 보았습니다. 건물을 지으면서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건물짓는 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께서 인생과 신앙을 건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며 저는 ‘나의 인생은 과연 튼튼한가?’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의 인생은 어떤 힘든 일이 닥쳐와도 버텨낼 굳건한 신앙으로 세워져 있는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튼튼한 신앙의 집이 어떻게 세워져야 하는 지 알아보고 저와 여러분이 튼튼한 신앙의 집을 지어 인생 모든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튼튼한 신앙의 집을 지은 사람들은 첫째로 항상 주님을 찾습니다.
누가복음 6장 46절입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본문에서 ‘주여’ ‘주여’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주님을 부르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것이지 결코 주님을 찾는 것 ‘주님을 부르짖는’ 삶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생기든 먼저 주님을 찾고 주님을 부르짖어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어떤 일을 하든지 먼저 주님을 찾고 주님의 이름을 앞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을 부르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져주시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길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4장 29절입니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세계 2차 대전 때에 프랑스가 독일 나치 군대에게 패해 영국에서 프랑스를 도와주기 위해 유럽대륙으로 건너갔던 영국 군인이 다시 영국으로 후퇴해야 할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 때 히틀러는 베를린에서 명령을 내려 “도망하는 영국 군인들을 아주 전멸시켜 버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때 영국왕 죠지 6세는 온 국민에게 “어떻게 하든지 영국 군대를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선포하고 기도의 날을 지정했습니다. 방송에 따라 전 국민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말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 날 독일지역에서는 큰 폭풍우가 일어서 비행기가 한 대도 뜰 수가 없었고 너무 비가 많이 와서 탱크 한 대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국 편에는 그 도버해협이 얼마나 잔잔한 지 수 많은 배가 영국 군대를 무사히 영국까지 옮기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영국군이 무사히 돌아온 이후 영국 군과 온 영국 국민이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역대하 15장 4절입니다.
“그들이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찾으매 그가 그들과 만나게 되셨나니”
우리는 간절히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이 세상을 살면서 실제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매일 이른 아침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로 아침을 여는 한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꾸준하게 기도하고 항상 습관적으로 예배와 기도를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한결같이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아버지의 그 따스한 음성으로 나를 불러주소서!”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 기도처에 올라와 여느 때처럼 깊은 묵상을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들아∼!” 수도사는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수도사는 한 번 두리번거린 후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아들아∼∼!”하는 소리가 또 들렸습니다. 더욱 놀란 수도사는 두리번거리며 외쳤습니다. “누구세요?” “네가 찾는 하나님이다.” “정말이세요?” “그렇단다. 아들아!” 수도사는 “정말 하나님이 계셨군요”라는 말을 하고는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한 초등학교 어린이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영호는 주일 아침 눈을 떴습니다. 눈을 비비며 시계를 보니 예배시간 10분 전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급하게 일어나서 세수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옷을 입고 성경과 헌금을 챙겨 사력을 다해 교회로 뛰었습니다. ‘늦으면 안 되는데... 하나님 제발 늦지 않게 해주세요!’ 집에서부터 교회 도착하는 순간까지 계속 기도하면서 뛰었습니다. 드디어 교회 도착했고 유년부 예배실 계단을 뛰어올라 가면서도 기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제발 늦지 않게 해주세요!” 그런데 그만 계단에 발이 걸려 넘어졌습니다. “쿠당탕탕” 영호는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일어나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 그렇다고 미실 필요까지 없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누가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고 확신하며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일까요? 극단적인 비교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생활 가운데 항상 모든 일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호세아 6장 1절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시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실 분이라는 것을 믿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주여’ ‘주여’하며 주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우리 신앙의 기본입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 함께 하심을 믿고 주님을 찾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튼튼한 신앙의 집을 지은 사람들은 둘째로 주님 말씀대로 행합니다.
누가복음 6장 47절입니다.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주여’ ‘주여’하며 주님만 부르는 정도의 신앙이 튼튼한 신앙이 아니라 주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한 신앙의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된 신앙인은 우리 주님이 무슨 뜻으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지를 알고 주님 말씀에 합당하게 행하는 사람이 참된 신앙인입니다.
그냥 전해져 오는 웃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이곳 저곳 전도를 하러 다니시다가 제자들에게 “얘들아 오늘은 소풍가자.”라고 말씀시고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산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께서 “얘들아! 너희들이 가져올 수 있을 만한 최대로 큰 돌을 하나씩 골라서 가져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각자 묵직묵직한 돌을 하나씩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평소 불만이 많고 삐딱했던 가룟 유다는 바둑알만한 돌맹이 두 개를 가져왔습니다. 마음속에는 ‘예수님께서 소풍가자하시더니 또 일을 시키려고 그러시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에게 돌아오니 예수님께서는 “들고 온 돌을 모두 내려 놓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손을 들고 축사하셨습니다. 그러자 가지고 온 돌멩이들이 몽땅 다 빵과 고기, 먹을 것으로 돌의 크기만한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식사를 하거라. 오늘은 자기가 가지고 온 양만큼 먹는 거야. 다른 제자들에게 나눠주지 말고 너희들이 수고한 만큼 먹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배 부르게 먹었는데 가룟 유다는 카스테라 부스러기같은 조그마한 빵 두 개를 들고 점심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를 먹는 사이 바람이 불어 하나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만큼 조그마한 양식에 정말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후회했습니다. 얼마 뒤 가룟유다는 예수님에게 “소풍 안 갑니까? 예수님 소풍갑시다” 노래 불렀고 또 소풍을 가게 되었습니다. 소풍장소인 감람산에 도착하더니 예수님께서 “얘들아, 오늘은 주먹만한 돌멩이 서 너 개씩 호주머니에 집어넣어야 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주먹만한 돌멩이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지난 번 못 먹은 것에 대한 본전 생각이 나서 혼자 들기도 힘든 엄청나게 큰 돌을 어깨에 둘러매고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언덕 위에 오르자 예수님께서 축사를 하셨는데 이번에는 돌이 양식을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얘들아 위를 쳐다 보아라” 말씀하십니다. 위를 쳐다보니 쭉 뻗은 나뭇가지에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가지고 온 돌멩이로 따먹어라. 돌멩이를 던져 열매를 따라. 돌멩이를 빌려 주지말고 자기 돌멩이로 열매를 따라. 자기가 딴 것을 자기가 먹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돌멩이를 던져 과일열매를 왕창 따먹었지만 가롯 유다는 바윗덩어리만 들었다 놨다 반복하며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처럼 자기 멋대로 살았던 제자를 빗대어 순종과 불순종에 대해 이야기하는 의미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 편의, 내 이익만 생각하며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내 느낌, 내 지식, 내 이성적 판단을 위주로 주님 말씀보다는 내가 하고싶은대로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살아가면 결국 힘들고 고달픈 인생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라갈 때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은혜와 평안이 넘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받는 길입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성 프란시스가 수도원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수도사가 되겠다는 수 많은 사람들이 수도원을 찾아왔습니다. 그 때 프란시스가 마침 배추 모종을 심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배추를 거꾸로 심어라”라고 명령했습니다. 줄기를 땅에 묻고 뿌리를 공기중에 내어 놓는 이상한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수 많은 사람은 “말도 안 된다”라며 선생님께서 잘못 말씀하신 것이라고 확신하며 원래 심어야하는 상식대로 심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성 프란시스가 시키는대로 거꾸로 배추를 심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거꾸로 심은 사람은 수도사로 입문하게 되었고 제대로 심은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내쳐졌습니다. 무엇 때문에 프란시스는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지금 프란시스는 이 시험을 통해 제대로 농사를 짓는 수도사를 뽑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도사는 농사를 잘 짓는 사람이 아니라 순종하고 조직의 계율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프란시스는 ‘합리적이냐, 불합리적이냐?’를 시험한 것도 아니고 농사에 대해 아느냐를 물어본 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순종하는지’ ‘순종하지 않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한 관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신앙생활에 적용한다면 그것은 바로 불순종입니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으로 살아가면 앞으로의 미래,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만 믿고 살아간다면 우리 미래, 우리 삶에 대해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열왕기상 2장 3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튼튼한 신앙은 순종에서 나옵니다. 신앙의 열매는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맺혀집니다. 우리 모두 튼튼한 신앙의 집을 지으려고 할 때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튼튼한 신앙의 집을 지은 사람들은 마지막 셋째로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6장 48절입니다.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집을 지었는데 어떤 집은 홍수가 날 때 금방 무너지는 집이 있고 어떤 집은 태풍이 불고 지진이 일어나고 홍수가 들어닥쳐도 그대로 있는 집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신앙, 우리 삶의 가치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힘든 일이 닥치면 금방 인생을 포기하고 좌절하고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힘든 일이 닥칠 때 오히려 그것을 전화위복삼아 이겨내고 더 튼튼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신앙이 큰 변화를 겪을 시기를 만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습니다. 주로 결혼할 때, 아이 낳았을 때, 그리고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의 학업과 신앙교육이 충돌될 때, 군대갈 때, 직장생활하면서 돈문제와 승진문제등을 고려할 때... 이런 경우 세상적 가치관과 신앙가치관이 충돌하면서 신앙이 완전히 큰 요동을 칠 때를 경험합니다. 인생에서 우리 신앙을 흔들어놓을 만한 이러한 시기를 접하고 여러 사건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오히려 신앙이 튼튼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앙이 완전히 무너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6장 49절에서는 신앙이 무너지는 사람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49절입니다.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한 시골 청년이 미국 캔사스시티에 이사왔습니다. 집을 구한 상태는 아니었고 단지 일자리를 찾아 이 곳에 온 것입니다. 그는 그 곳에서 자신이 그간 해왔던 만화를 그리던 일을 계속하기 위해 출판사와 신문사를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그의 만화를 상대해 주는 어느 신문사, 어느 출판사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주일날 아침 이사온 이후 예배는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근처에 보이는 교회에 들어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내용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눈물만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그 청년의 모습을 보고 예배 이후에 청년과 상담했고 사정을 들은 다음 그 청년에게 “교회 창고에서라도 지낼 수 있다면 일을 구할 때까지 창고에서 지내면서 잡다한 일을 도와주며 지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용기를 잃지 말게. 하나님이 자네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게”하고 말하며 격려했습니다. 교회 창고는 주야로 쥐가 많이 돌아다니는 허름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먹을 것을 조금씩 나눠주니까 쥐들은 도망가지 않고 청년 주위에 맴도는 것이었습니다. 쥐를 관찰하면서 만화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탄생된 쥐 캐릭터가 바로 미키 마우스였습니다. 먹을 것도 없이 잘 곳도 없이 교회창고를 빌려 살았던 청년이 바로 월터 디즈니였습니다. 우리의 고난이 훗날 귀한 영광으로 변화될 수도 있음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55편 22절입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성 프란시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희 마음이 세상의 이런저런 일로 너의 마음이 흔들리려고 하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너의 마음에 띄워라, 그리하면 그대의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삶에 고통이 찾아올 때 십자가를 붙들면 감사가 나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에베소서 4장 13, 14절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 신앙이 튼튼해지고 완성된 분량에 이르면 세상 어떤 속임수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 수준에 이르면 세상에서 진리인 양 우리를 유혹하며 그게 참된 가치관과 삶의 지혜라고 말하는 것들이 우리를 흔들려고 할 때 요동하지 않는 신앙이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 신앙이 튼튼해질 때 신앙의 힘으로 세상 어떤 가치관, 세상 어떤 풍파도 이겨내며 신앙적 가치관이 우리 삶의 기준이 되어 세상을 이기는 놀라운 믿음의 삶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음이 굳건하여 져셔 어떤 풍파도 우리를 요동치 않는 믿음의 인생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어떤 일이 생기고 힘든 상황이 생길 때 다른 것을 찾기보다 하나님을 먼저 찾고 주님을 먼저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우리 주 예수님을 찾으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평안과 기쁨이 우리에게 넘치도록 하실 줄 믿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살아가는 인생 속에서 삶의 기준을 하나님 말씀에 두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할 줄 믿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알고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 복받고 잘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말씀과 함께 살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국 주님을 찾고 말씀대로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되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세상 환란과 풍파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뿌리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같은 신앙으로 열매가 풍성하고 은혜가 넘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 저와 여러분의 신앙, 이제 우리의 모든 삶이 튼튼한 신앙건축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튼튼한 신앙으로 세워져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2025년도가 이런 믿음을 세우는 중요한 한 해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