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채 교회장님의 사돈이 되시는 1800가정 선배님 내외분이 강화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성일예배도 함께 참석하시고 강화교회의 초창기 상황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 선배님은 약 50년전 강화교회에 소속하시며 교회 건물을 창건할 때 주도主導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랜만에 오시면서 많이 바꿨다 하셨습니다. 내가 놀랬던 것은 처음은 현관이 반대적으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어서 머리속에서 안개가 개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전에 풍수에 관한 강의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집은 산에 등을 돌리고 짓입니다. 그런데 강화교회는 현관이 남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럽지 않다고 늘 생각하였습니다. 왠지 남산인 큰 산에 작은 언덕위에 있는 교회가 대립하는 것 같이 보였던 것입니다. (남산에서 내려온 파람의 직격탄을 맞으니 교회건물이 힘들어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장현선 원로목사님께서 생전에 “강화교회는 터가 세다. 그래서 정말 정성을 드려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남산의 능선상 중턱에 땅을 사 평지를 만들어 교회건물을 짓게 되었다 합니다. 당연히 건물은 남산에 등을 돌리며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세월이 지나, 앞에 길이 생기면서 길을 향해서 현관이 바꿨던 것 같습니다. 선배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교회건축을 위해 얼마나 힘을 쓰셨던지 알 수가 있었습니다. 50M나 땅을 파도 우물이 나오지 않아 산에서 내려온 시냇물을 사용하였다 합니다.
예배 때 교회장님이 강화에 대한 참부모님의 애착愛着도 알려주셨습니다. 원래 강화에 큰 성지를 만든 계획도 있었지만 지역주민의 반대로 수포로 되었다 합니다. 지금은 청평에 큰 성지가 있지만, 강화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셨습니다. 참부모님께서 “강화江華가 빛난 곳이 아니라 강방도가 되었다”고 하신 말씀도 하늘의 사랑을 받아주지 못한 강화도에 대한 아쉬운 심정이신 지 모른다 하셨습니다.
선배님이나 교회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늘의 심정을 엿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강화교회의 역사를 잘 아시는 그 선배님께 더욱 자세한 초창기 교회역사를 듣고 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