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짜이 한 잔과 물고기 열세마리
육순종(비전아시아 이사장, 한국기독교장로회 증경총회장)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하지 않는다. 이 책이 주는 부담을 떨쳐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은 블랙홀과 같은 낯선 땅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십자가 앞에 우리를 마주 세운다. 인도의 달릿과 빈민, 에이즈 고아들도 낯설었거니와 미얀마 난민의 현장, 동북 인도 마니푸르의 폭동의 현장은 더욱 낯설다. 이 지구촌에 끝도 없이 펼쳐지는 고난의 현장 앞에 처절한 가슴으로 응답하는 저자의 상황은 낯설기도 하고 무겁기까지 하다. 그가 가는 길에 평탄한 길이 없고, 그가 하는 사역 중에 말랑말랑한 것이 없다. 고통의 현장을 마주하며 쥐어짜는 듯한 심장의 고통을 느끼는 그에게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한 예수의 심장의 고통을 느낀다. 해서 외면할 수도 피할 수도 없다. 이 책은 선뜻 펼 수도, 덮을 수도 없는 그런 책이다.
이 책은 고통 하는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결코 낭만이 아니고 처절한 전투임을 알려준다. 내가 이옥희를 전사(戰士)라 부르는 이유다. 사랑에는 품어주고 아우르는 곡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굴의 용기로 나아가는 직선이 존재한다. 그에게는 이 곡선과 직선이 공존한다. 그에게는 한없이 품는 어미의 품이 있지만,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나아가는 막무가내의 자세가 있다. 그의 기도는 깊은 우물 같지만, 때로 날아가는 화살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헌신과 사랑의 기록을 보며 숱한 질문을 마주한다. 언제까지 사랑하고, 어디까지 사랑해야 하는지, 얼마만큼 품어야 하는지 등 숱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해서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의 의미를 헤집어 놓는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를 의도하지 않는 곳으로 이끌고, 사랑은 언제나 자신을 해체(解體)해야 하는 현장으로 우리를 이끈다고 증언한다. 나아가 사랑은 그 현장을 쉽게 떠날 수 없게 한다고 증언한다. 당황스럽다. 미조람의 미얀마 난민을 향한 5년간 120여 차례의 구호 활동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한번 사로잡히면 답이 없어도 가야만 하는 길이 사랑의 길임을 목격하는 우리는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이옥희 선교사는 이 책이 마지막 책이 될 것이라 했다. 선교사로서 70이 다 된 나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액을 쏟아내는 듯한 이런 형태의 증언을 또다시 하게 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렇다고 그의 삶과 사역이 달라질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 고통하는 현장에 계시는 한,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함석헌 선생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하나님의 발길에 채였다.“ 평탄한 길을 걷는 것은 그에게 허락되지 않았고, 허락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책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자신의 사역과 삶의 뿌리인 아련한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그는 어린 시절, 심한 고열에 시달리며 간절히 하늘의 도움을 구함으로 그 고통에서 해방되는 경험을 한다. 이를 통하여 구원이 하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늘의 뜻을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 다짐은 그를 교회로 인도했고, 예수의 희생적인 삶에서 영감을 얻고, 웨슬리, 프란치스코, 슈바이쳐, 나이팅게일 등 성자들의 삶을 동경하게 된다. 거룩한 삶을 꿈꾼 것이다. 그 거룩한 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통해 그 꿈은 바로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간다. 그렇다. 고통하는 이웃들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하고, 그들 곁에 서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곧 선교이고, 거룩한 삶이다. 리처드 마우는 그의 책, ”무례한 기독교“(Uncommon Decency)에서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현존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이루어가시는 것이고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증언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옥희 선교사의 사역은 그리스도 현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의 오랜 꿈은 그렇게 그 모습과 실체를 드러낸다.
책의 4부, ”선교, 선교사 그리고 선교의 열매들“은 호남 기독교사와 일본 기독교사에 대한 저자의 깊은 통찰이며, 성육신적 삶을 살다간 선교사들에 대한 헌사이다. 이 땅에 복음이 뿌리내린 것은 선교사들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육화한 ‘성육신적 영성’에 기인한다. 이보한을 변화시킨 테이트 선교사도(336p), 오홍종을 변화시킨 포사이드 선교사도(347p) 모두 자신을 한없이 낮춘 ‘성육신적 영성’의 소유자였고, 그들의 이러한 모습이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영적인 천지개벽을 일으켰다. 조선은 선교사들의 모습에서 예수의 영을 보았고, 그 예수의 영, 사랑의 영에 불들려 산 이들이 ‘거두리 이보환’이고 ‘나환자의 아버지 최홍종’이다. 이옥희는 이 기록들을 통해서 자신의 사역의 뿌리가 이 땅에 십자가의 사랑을 심고 간 선교사들에게 빚진 것임을 밝히며, 자신의 영성이 ‘성육신적 영성’에 맞닿아 있음을 고백한다. 마지막 5부는 앞서 말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내밀한 가족의 이야기다. 오늘의 그의 모습, 그의 영성의 뿌리를 엿보게 되는 기록이어서 흥미롭다. 육신의 아버지의 따뜻하고 큰 품은 그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기 위한 토양이었으며, 그의 꿈 이야기는 그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막내 동생 이원택 전북도지사를 향한 애정과 기도는 각별하다. 현실 한복판에서 거룩한 씨앗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누이의 간절한 기도에 마음을 보탠다.
이 책의 핵심 줄거리는 ”선교사 이옥희“가 전하고 싶은 다급하고 절절한 선교 보고다. 미얀마 난민과 고통하는 이웃을 먹이시는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 받는 자신의 형편을 가감없이 전달한다. 이런 선교 보고는 앞선 그의 책들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장면들이지만, 이번엔 그 간절함이 남다르다. ”돌로 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정도로 그의 마음은 절박하다. 5년째 매번 구호를 기다리는 난민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은 한 선교사가 감당하기는 벅찬 일이다. 모금하는 과정에서 절망과 희망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다. 그의 모금이야기를 들으며, 해방신학자 돔 헬더 까마라 (Dom Hélder Câmara)대주교의 말이 떠올랐다. “인류의 미래는 우리의 부를 나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난을 나누는 데 있다." 특별히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글, ”짜이 한 잔과 물고기 열 세 마리“와 ”하필이면 가난한 그입니까?“란 글에서 세상은 희망은 우리의 가난을 나누는 데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은 우리가 기대하는 방식과 어떻게 다른지도 깨닫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는, 한 선교사의 탄식과 기도와 눈물과 호소에서 시편의 탄식시를 떠올리게 된다. 시편의 탄식시는 언제나 눈물과 탄식으로 시작하여 점점 고조되다가 시의 뒷부분에서 급격히 분위기를 바꿔(Rapid change of mood) 찬송과 감사로 시를 마무리한다. 시편의 탄식시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부르짖음으로 시작하다가, 느닷없이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며 찬양으로 돌변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옥희선교사의 증언이 그렇다. 현대판 탄식시이다. 고통의 현장에서 내뱉는 그의 탄식과 눈물과 호소는 응답의 확신을 향한 변주곡이다. 해서 우리는 그의 마지막(?) 책이 될지 모르는 증언과 고백을 읽으며, 그의 선교사역과 우리의 삶 가운데 행하실 하나님의 위대한 반전의 역사를 꿈꾸게 된다. 결국 감사하고 찬양하며 함께 춤추게 될 ‘새 하늘 새 땅’의 영광을 꿈꾸는 것이다.
2026년 10월 12일 월요일 인시
우담초라하니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