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서 낱낱이 밝혀진 추가 입시비리
장애유형과 정도 등이 적힌 문서 만들어 장애학생 평가
블라인드 면접 잘했다고 지원금에 표창까지 받아
장애계 “유길한 총장 사퇴하고 특별 종합감사 실시하라”
경상남도 진주교육대학교의 장애학생 관련 입시비리가 끝없이 밝혀지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진주교대는 ‘블라인드 평가’ 원칙을 깨고, 장애유형과 정도를 가지고 서류전형부터 면접까지 전 과정에서 장애학생을 평가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경남장애인인권연대 등 장애인운동단체는 8일 오후 2시, 진주교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길한 총장 사퇴와 특별 종합감사를 요구했다.
- 블라인드 면접한다고 지원금 17억 꿀꺽, 정작 장애학생 성적조작 시나리오 만들어
지난 4월, 진주교대에서 시각장애 1급 학생의 성적을 조작해 탈락시켰다는 경향신문 보도 이후, 교육부 조사 결과 장애학생 성적조작 사례 8건이 추가로 적발됐다. 이에 교육부는 진주교대에 2022학년도 총 입학정원의 10% 모집정지 징계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 징계는 유예됐다. 진주교대가 징계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행정처분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지난 8월 30일 인용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주교대는 정원 감축 없이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게 됐다. 법원은 교육부 징계 조치로 인해 수험생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 봐 가처분신청을 인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동용 의원이 공개한 자료. 진주교대는 블라인드 면접을 한다면서 장애학생의 출신학교와 장애유형, 정도, 심지어 수술에 관한 개인정보까지 활용해 평가했다. 사진 서동용 의원실
이 같은 상황에서 진주교대의 추가 입시비리가 밝혀졌다. 지난 10월 1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진주교대가 장애학생을 평가할 때 장애유형과 정도가 구체적으로 기록된 문서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서동용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진주교대가 만든 자료에는 장애학생의 이름, 나이, 출신고교, 장애유형, 장애정도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그런데 진주교대는 출신고교 블라인드 면접을 도입해, 2013년부터 지금까지 약 17억 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2015년에는 진주교대가 입학관리를 잘한다며 교육부로부터 장관 명의의 표창장까지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장애학생을 평가할 때는 출신학교부터 장애 관련 증명서나 진단서까지 활용해 평가한 것이 드러났다.
심지어 이는 현행법을 위반한 것이기도 하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서는 입학전형에서 별도의 면접이나 신체검사를 요구하는 등의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진주교대는 이를 어기고 장애학생을 탈락시키기 위한 평가를 진행하며 장애인 차별을 자행했다.
이에 서동용 의원은 “특별 종합감사를 실시해야 할 사안”이라며 “교육부가 진주교대의 1차 자체 조사결과만 믿고 아무 조사도 하지 않아 대학의 입시비리가 확대되는 것 같다. 진주교대 특별 종합감사뿐 아니라 특수교육대상자 전형을 실시하는 모든 학교에 대한 전수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길한 총장(왼쪽)과 강득구 의원(오른쪽). 강 의원은 유 총장에게 조직적 책임을 인정하라고 거듭 질의했지만 유 총장은 끝내 부인했다. 사진 국회의사중계 영상자료 캡처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이 같은 장애학생 차별이 진주교대 직원의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조직적 차별의 결과이며 따라서 유길한 총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감사에서 유길한 총장을 증인으로 소환한 강득구 의원은 유 총장이 장애학생 입시성적 조작에 가담했다는 녹음본을 틀었다. 녹음본에서 입학관리팀 직원들은 장애학생 성적조작에 관해 “시나리오대로 했다”라는 표현을 쓰며 유길한 총장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강 의원은 이 녹음본이, 유 총장이 조직적 비리에 가담한 증거라고 말했다.
강 의원은 “이 대화를 듣고서도 개인의 일탈이고 조직의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인가”라며 유 총장에게 거듭 물었지만 유 총장은 자신은 성적조작에 가담한 적이 없고 직원의 잘못일 뿐이라며 거듭 부인했다.
진주교대 정문 앞 기자회견 현장. 현수막에 ‘차별대학 진주교대 유길한 총장 사퇴 및 교육부 종합감사 촉구 기자회견’이라 적혀 있다. 활동가들은 유 총장과 진주교대를 규탄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경남장애인인권연대
- “나는 과연 정당하게 들어온 게 맞나?” 재학생들도 성토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자 장애계는 유 총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진주교대의 장애학생 성적조작 사건이 알려진 후 진주교대를 상대로 투쟁해 온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박 이사장은 “진주교대 측과 면담할 때 학교 직원들은 표까지 그려가며 개인의 일탈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전부 사기꾼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고 분노했다. 또한 “끈질기게 투쟁해서 유길한 총장을 반드시 사퇴시키고 교육부에도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주교대 재학생 이세영 씨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며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경남장애인인권연대
진주교대 재학생인 이세영 씨 또한 학교를 향해 강하게 성토했다. 이 씨는 “소속감을 가진 공동체가 소수자를 차별하는 집단이란 걸 알게 돼 굉장히 부끄럽다. 나를 포함한 모든 학생이 시험장에 있었을 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나는 이 학교에 정당하게 들어온 것인가 의심하며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잃었다”고 탄식했다.
더불어 “국정감사 영상 속에서 자신은 다 모르는 일이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유 총장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그런 미온적 태도로는 불공정을 뿌리 뽑을 수 없다. 유 총장은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인정하며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진주교대 입시 전반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지만 총 책임자인 유길한 총장은 모른다고 부정만 한다. 유 총장은 장애학생 입시차별 사건을 책임지고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교육부의 부실한 조사를 지적하며 “교육부는 이 사건이 개인의 일탈인지 조직적 차원의 부정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개인의 일탈로 결론 내렸다. 교육부의 부실한 조사가 이 사건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다”며 “교육부는 진주교대에 대한 특별종합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