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몸이 달구어 지도록 매화향이 그립고,
짙은 유록색과 빨강 하양의 남도 봄빛이 그립다.
미당 서정주님처럼 동백꽃을 보러 선운사 골째기로
갔다가, 동백꽃은 때가 일러 보지 못하고 여염집 아낙의
상기된 육자배기만 듣고 올 지언 정 나도 그렇게 봄 마중을
나가고 싶다.
허퉁한 들녁 너머, 나목의 산등성 너머, 하얀 잔설 덮힌
강얼음 너머 봄님이 오시는 걸 시샘하는, 밧데리 방전
직전의 추위가 마지막 용을 쓰던 날,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선
이색 공연이 있었다.
한국영남춤문화예술연구소가 주최하고 박경랑무 영남교방청춤
연구보존계승회가 주관한 공연이었는 데
주요 출연진은 살아있는 이시대의 마지막 권번출신 소리꾼 유금선,
13대째 세습무의 삶을 살아오면서 전통예악을 이어가는 남해안
별신굿 대사산이 정영만, 고성오광대춤 지도자 이윤석, 밀양백중놀이
북춤의 달인 하용부, 상주아리랑 대가 박수관 그리고 국방방송 최종민
교수가 해설한 명품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은 몇가지 면에서 다른 공연과 큰 차별을 보여줬다.
우선 자연스러움이 돋보였다. 대개의 공연이 사전에 분단위 초단위
까지 계산하여 무대에 올렸다면, 박경랑의 춤 공연은 시나위 처럼
물흐르는 듯 흥과 신명에 올라타 그 때 그때의 상황에 맞게 즉흥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살아서 꿈틀대는 공연, 야생을 회복한 공연, 시장경제 논리를 구현한
공연이었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겠다.
다음은 유금선 소리꾼이 세월의 무게를, 한의 무게를 누에가 실을 뽑듯
구음을 토해낼 때 무대는 태초의 무극상태를 보여줬다.
8살에 엄마를 잃고 12살에 아버지를 잃은 천애고아 유금선이 12살의
나이에 고모의 손에 이끌려 동래권번에 들어가 기생의 삶을 살면서
겪었던 그 질곡의 삶이 무대위에 쏟아지고 깔릴 때 관객들은 침을 꼴깍
꼴깍 삼키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치원이 금강산을 유람하고 '아름답다.'는 말 외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외쳤던 것 처럼, 유금선의 구음은 문자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삼먁삼보리였다.
또다른 특색은 출연진 모두가 마이너리그라는 점이다.
학교에서 강단에서 칠판글씨를 보며 배운 예술가가 아니라, 농부로서
농삿일을 하면서 배운 덧배기 춤이라서 소(逍 : 거닐소)요, 택시운전을
하면서 배운 바라시(굿)라서 요(遙 : 노닐요)요, 할아버지 등에 엎히고
무릎팍과 무릎팍 사이에서 배운 북춤이라서 유(遊 : 놀유)인 생생한
삶속의 공연이라는 점에서 그 어떤 메이저급 공연보다도 명품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뜻 통하고 맘 통하는 분과 인사동 민속주점에서 뒷풀이
막걸리를 마시면서 여진의 흥과 삶에 대한 이야기로 밤을 새다 보니
어느 덧 내 맘엔 매화향이 가득차 올랐다.
참 행복한 날이었다.
더질더질 돌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