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밝게 더 기쁘게
오늘도 요한 묵시록의 독서말씀으로 강론합니다. “하늘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나 요한에게 말하였습니다.”이 목소리는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입니다. “가서 바다와 땅을 디디고 서 있는 그 천사의 손에 펼쳐진 두루마리를 받아라.” 그래서 요한이 그 두루마리를 받아 오니 하느님께서는 황당하게도 그것을 받아 삼키라 하십니다. “이것이 네 배를 쓰리게 하겠지만 입에는 꿀같이 달 것이다.”
보통 입에는 달고 좋은 것이 몸에는 안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입에는 쓴 약이 몸에 좋지요. 그렇다고 주님 말씀이 입에는 달고 몸에는 안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들을 때는 감동적이고 좋고 훌륭한 말씀이고 교훈적이지요. 그런데 이 말씀을 내 몸으로 실천하려면... 다소 쓰릴 수 있습니다. 아니, 힘듭니다. 괴롭습니다.
말씀대로 하자면 오른뺨 맞으면 왼뺨을 대고, 친구가 오십보 가자 하면 백보 가주고... 용서하고 화해를 청하고... 빚 탕감해주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안 힘듭니까? 속이 쓰리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의 계시를 받을 때는 기쁨으로 받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그 계시의 내용이 종말의 날, 참혹한 대환난과 심판입니다. 마음에 근심이 안생길 수 없지요.
그래도 예언자는 다시 예언해야 합니다. “너는 많은 백성과 민족과 언어와 임금들에 관하여 다시 예언해야 한다.” 저나 여러분이나 특수 예언직, 보편 예언직이 있으니 당연히 예언해야 합니다. 예언이라고 해서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짐을 선포하는 것이 예언이지요.
그 대상은 많은 백성, 민족, 언어, 임금들이니... 모든 국민, 위정자, 대통령에게라도 선포되어야 하는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심판이어야 합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이런 것에 너무 보수적이어서, 그저 주님 말씀을 듣는데에 그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보수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 성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그저 듣기만 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데에는 보수적이고 너무 옛것만 찾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수적이어야 할 부분은 생명에 대해서입니다. 생명과 관련된 사형법 폐지, 안락사, 낙태, 생태계, 환경 등등 생명과 관련된 것에는 보수적으로 우리 가톨릭이 무너지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데에 있어서는 진보적이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우리 실생활에 적용하고 적응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종교 따로, 사회 따로, 정치 따로, 경제 따로가 아니라... 모든 것에 교회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실천하자면 손해인 부분이 많습니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관계면에서 손해일 것 같지요. 하지만 교회의 사람이 교회적으로 행동하지 어떻게 정치적으로 행동합니까, 우리가 경제인이 먼저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인으로서가 먼저입니까... 현실에서 손해 좀 보더라도 하늘에서 이득보는 것이 더 낫습니다. 속은 좀 쓰릴 수 있지만 구원에 큰 보탬이 됩니다.
그저 듣기만 하여 만족하는 욕심보 신앙이 되지 않도록, 절반만 발 담그고 있는 반쪼가리 신앙이 되지 않도록, 주님 말씀에 대한 실천으로 우리의 시간, 공간, 삶의 자리 모두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서 좋은 봉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주님의 뜻에 이루어져서 좋은 봉헌이 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서 좋은봉헌이 될수있도록...
주님의 뜻이 이루어져서 좋은 봉헌이 될 수 있도록...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