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성, 취미(거창마라톤클럽) 22-9, 일 년 반 만에 화달
“보성 씨, 마라톤 갑시다!”
“어디, 어디, 어디? 가요? 어디 가는데요?”
“마라톤이요, 마라톤. 달리기. 잠바 주세요.”
“옷 입읍시다. 보성 씨 옷장 안에 상자 있죠? 그거 꺼내 주세요.”
“상자? 어디, 어디?”
화달 시간까지 아직 여유로운데 서두르는 이보성 씨 마음이 다급해 보인다.
이보성 씨가 옷장을 열고 상자를 찾는다.
오래전 언젠가, 동호회 운동에 나가려고 산 운동화가 들어있던 상자에 새 신과 옷을 정리해 두었다.
그 자리에 둔 지 오래되었지만, 얼마 전 집 청소하며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로 닦았던 터라 어렵지 않게 찾았다.
“쌤, 이거 해요? 열어요?”
“네! 열어 볼까요? 운동 나가려면 갈아입어야겠죠?”
“읏챠!”
이보성 씨가 힘주는 소리를 내며 자리를 잡고 바닥에 앉는다.
상자를 열고 옷을 고른다.
동호회 나갈 때 입을 거라 운동복을 갖추어 정리해 두었지만,
반팔과 긴팔, 반바지와 긴바지 중에 지금 입을 것을 골라야 한다.
망설이는 이보성 씨에게 날씨를 알려 준다.
“많이 따뜻해져서 춥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녁이니까 긴팔, 긴바지가 낫지 않을까요?
보성 씨는 추위를 많이 타니까 그게 나을 것 같은데요?”
“아니, 뭐요? 뭐라고요? 그러니까 이게, ‘오늘 춥다’ 이 말입니까? 내 말 맞습니까?”
“아니요, 아니요. 오늘 춥다는 게 아니라 보성 씨가 추위를 많이 탄다고요. 조금만 쌀쌀해도 춥다 그러잖아요.”
“아, 그래요? 추워요. 춥다고요.”
여차저차 오늘 입을 운동복을 골랐다.
저녁 날씨를 모르는 게 오랫동안 그 시간에 외출하지 못한 이유도 있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동안 동호회 운동에 꼬박꼬박 나가면서 이보성 씨에게 좋다고 생각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는데…,
저녁 시간 외출!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게 다시 열심히 해 보자는 결심을 한다.
“발 너무 조이지 않아요? 이 정도로 묶으면 될 것 같아요?”
“네, 네. 괜찮아요. 가요, 쌤. 지금 가요? 몇 시 차 타는데요?”
“반대쪽 끈도 묶어야죠. 발 내밀어 보세요.”
이보성 씨 발에 맞게 운동화 끈을 조여 묶는다.
꼭 맞춰 묶으면 신고 벗기는 약간 불편하겠지만,
신을 신고 뛰어야 하니 평소 신는 신발보다는 발에 밀착되게 조인다.
걸어 나가는 이보성 씨를 보니 적절히 잘 맞춘 것 같다.
“보성 씨, 얼마 만이에요, 진짜. 앞으로도 가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이런 날도 다 오네요.”
“네? 그렇죠. ‘마라톤’. 마라톤 맞죠? 해 봐요. ‘마라톤’.”
“마라톤.”
“아니, 아니. 마!”
“마.”
“라!”
“라.”
“톤!”
“톤.”
“마라톤. 맞죠?”
“그러네요. 맞네요.”
오후 일곱 시 반, 화달 시작까지 십 분쯤 남기고 스포츠파크에 도착했다.
집에서부터 오는 동안은 조금도 기다리기 어려운 것처럼 거듭 재촉하고 기다리는 눈치였는데,
어쩐지 도착하고 나니 이보성 씨 얼굴이 굳어있다.
“오랜만에 오니까 긴장돼요? 보성 씨 지금 엄청 조용하네요.”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평소 말투의 장난스러운 리듬에 마음을 놓는다.
말은 그렇게 해도 어딘지 모르게 긴장되어 보이지만, 일부러 모른 척한다.
“어? 아무도 없네요?”
“어디, 어디? 없네? 안 보이네.”
화달이나 목달을 스포츠파크에서 시작할 때면 동호회원들이 모이던 벤치가 있다.
이보성 씨를 따라 거기로 갔더니 기대와 달리 아무도 없다.
아직 시작할 때는 아니지만, 이쯤 되면 몇 명은 와 있어야 하는데….
약간 다급한 마음이 되어 휴대전화를 찾는다.
“어, 진호 쌤!”
“네, 회장님. 아, 다름이 아니라 보성 씨 화달 나왔거든요.
그런데 원래 계시던 곳에 아무도 없어서 전화드렸습니다. 혹시 오늘 운동 나오시나 해서요.”
“아, 그래요? 이걸 어쩌지. 내가 오늘은 급하게 일이 있어서 지금 대구에 왔는데….
오랜만에 나왔는데 어떡하지.”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보성 씨 앞으로 계속 나올 거라 다음 화달에서 뵙겠습니다.”
“그래요. 회원들은 아마 곧 올 거라. 조금만 기다려 봐요. 벤치 주변에 옆쪽으로도 한번 봐요.”
박종성 전 회장님과 통화하는 사이 이보성 씨는 두리번두리번 운동하는 사람들을 살핀다.
아는 얼굴이 있나 찾는 걸까?
“안녕하세요!”
“오! 왔어요?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요?”
“네, 저희는 잘 있었습니다. 잘 지내셨죠?”
“그럼, 잘 있었지. 이쪽으로 와요. 다들 곧 올 텐데. 보성이 오랜만이네?”
이보성 씨가 쭈뼛쭈뼛 작은 목소리로 인사한다.
트랙을 돌던 유선호 회원님을 따라 운동장 오른쪽 벤치로 간다.
그사이 모이는 곳이 달라진 모양이다.
벤치에 놓인 몇 사람 짐을 보니 조급했던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 같다.
유선호 회원님과 그동안 안부를 주고받다 보니, 다른 분들이 속속 도착한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에 나왔습니다.” “앞으로 보성 씨 계속 나오려고요.”
이보성 씨를 대신해 열심히 인사한다.
이보성 씨는 아는 얼굴을 발견할 때마다 알아채는 것 같은데, 여전히 얼어있다.
오랜만이라 좀 경황이 없어 보인다.
“보성이 왔어? 이야, 오랜만이다. 여전히 날씬하네? 잘 지냈나?”
박은애 전 총무님이 살갑게 알은 체할 때도 조심스레 인사만 한다.
동그랗게 모여 가운데 선 박은애 전 총무님을 따라 함께 준비운동을 한다.
힘든 동작은 쉬운 동작으로, 어려운 건 과감히 건너뛰는 이보성 씨를 보며
삼촌, 큰 아버지뻘 되는 회원들이 키득키득 웃는다.
아주 오랜만인데 이 풍경, 전혀 낯설지 않다.
그 기시감이 마음을 놓이게 한다.
준비운동을 마치고 이보성 씨가 회원들 틈에 껴서 스포츠파크 밖으로 나간다.
전 총무님이 달라진 코스를 설명한다.
“보성 씨랑 진호 쌤, 이쪽으로는 한 번도 안 가 봤죠? 예전에는 나가서 오른쪽으로 뛰었잖아요.
그런데 그쪽에 술 먹고 다니는 사람도 많고, 길도 어둡고 그래서 왼쪽으로 바꿨어요.
가로등이 많아서 밝고 좋더라고요. 오는 만큼 따라서 와 봐요.”
‘갈 수 있는 데까지 따라가다가 멀어지면 스포츠파크로 돌아와 걷고 있겠다’고 대답했는데,
이보성 씨 기세가 심상치 않다.
완주라도 할 모양인지 초반부터 아주 열심히 달린다.
한 번 뛸 때 10km를 어렵지 않게 달리는 회원들이 몸을 풀며 달리는 초반과
이보성 씨가 열심히 뛰는 속도가 얼추 비슷하다.
이윽고 발이 멈추고 이보성 씨가 숨을 고를 때가 되어 거리를 재는 스마트워치를 보니 1km쯤 달렸다.
애초에 기록을 기대할 마음은 없었지만 다른 회원들처럼 열심히 달리려는 이보성 씨를 보니 기쁘다.
“우리 이제 걸어서 갈까요? 천천히 걸어서 스포츠파크로 돌아가요. 밤 산책한다 생각하고요.”
“네, 네!”
이보성 씨와 나란히 걷는다.
선선한 공기가 기분 좋은 저녁,
해는 완전히 진 지 오래지만 강 건너 대단지 아파트 불빛과 가로등 덕에 길이 환하다.
잠깐 멈추어 야경도 구경하고,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도 나누고,
‘드럼학원 선생님에게 연락’과 같은 해야 할 일도 떠올리며 걷는다.
스포츠파크에 도착해 운동하는 사람들을 따라 걷는다.
두세 바퀴쯤 돌았더니 하나둘 돌아오는 회원들이 보인다.
코스를 왕복하고도 뛸 수 있으면 트랙을 한두 바퀴 더 돌곤 하는데,
이보성 씨가 다시 회원들을 따라 뛴다.
“쌤, 뭐 해요. 빨리 와요, 빨리!”
얼른 오라는 재촉도 잊지 않는다.
다시 모여 전 총무님이 준비한 음료수를 나누어 마신다.
이보성 씨는 세 컵 마셨다.
“보성이, 진호 쌤, 조심해서 가요. 오랜만에 함께해서 즐거웠어요! 자주 봐요.”
늦은 저녁, 동호회 운동을 마치고 이보성 씨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화달 풍경을 담아 동료에게 자랑한다.
‘또 가야지! 자주 가야지!’
돌아올 때쯤 되어 말문이 트인 이보성 씨도 같은 마음일 거라 믿는다.
2020년 10월 13일 이후로 처음, 일 년 반 만에 화달에 다녀왔다.
2022년 5월 3일 화요일, 정진호
마라톤동호회 풍경을 보니 아주 오랫동안 쉰 느낌이 아니네요. 지난주, 지지난주에 참석하지 못했던 느낌이랄까. 동호회 활동은 참석하지 못해도 회원들과 꾸준히 연락하고 만난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박현진
보성 씨 실력도 여전한 것 같아요. 보성 씨 오랜만에 뛴다고 고생했어요. 신아름
변한 게 없네요. 일 년 반 동안의 필름을 끊고, 이전과 지금을 붙여 연결해도 티가 안 날 듯. 거창마라톤클럽 회원분들, 고맙습니다.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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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성, 취미(거창마라톤클럽) 22-8, 희망 북콘서트
첫댓글 기대하며 기다렸던 이야기, 반갑습니다.
이보성 씨, 오랜만에 동호회 가는 길이 참 설렜죠?
사람을 만나러 가기 전, 그 설렘을 저도 참 좋아해요.
'나는 살아 있구나.' 하고 느끼는 지점 중 하나고요.
회원분들 만나기 전에 마음속에 슬며시 자리잡은 긴장감도,
쭈뼛한 인사 뒤에 머지않아 찾아온 익숙함도,
참 반가웠겠어요.
기록을 읽으며 이보성 씨와 한마음이 된 것 같았습니다.
동화같은 이야기.
달리는 이보성 씨는 언제 봐도 참 근사해요.
"힘든 동작은 쉬운 동작으로, 어려운 건 과감히 건너뛰는 이보성 씨"
하하하하, 유쾌합니다. 웃겨요. 귀여운 막내 노릇 톡톡히 하네요. 이보성 씨의 이런 모습을 이미 알고 있고, 좋아하고, 기다리는 동호회 회원 분들이 계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