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밭 이야기 주인
보름 전, 거금도 바다의 부름으로 집들이 초대를 받았다.
성냥 하나면 족하다기에 상큼한 봄나들이 일정을 잡았다.
‘어릴 때 불장난한 성냥 들고 찾아뵐게요.
앵간이 준비하세요. 기둥 뽑히면 채금? 못 지니까요.’
손꼽아 기다리는데
‘바다 건너올 때 빈 배로 오세요. 꽉 채워 갈 수 있게요.’
빨리 가보고 싶어 사족을 달았다.
‘활어 센터 생선회 뜨지 마시고 앞바다에서 직접 건진 생선으로..
아니면 금산 된장 풀어 멸치 넣어 끓인 국으로 배불리 먹을게요.’
‘녹동 활어 생선회 대령하라’는 뜻으로 알고 섬길게요.
받아 놓은 날이 쉬 지났다.
지난밤 꿈속에 그린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월요일 아침, 그 꿈 이룬 목사님을 떠 올렸다.
김동국 시인의 ‘달팽이’를 초청받은 분들에게 보냈다.
‘달팽이는 달팽이는/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는//
집 볼 사람 필요 없네./ 자물쇠도 필요 없네.//
달팽이는 달팽이는/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는//
비가 와도 걱정 없네./ 저물어도 걱정 없네.’
내 느낌도 첨삭시켰다.
‘달팽이 보금자리는 푸른 풀밭이요,
서식지는 이슬 머금은 수풀 속의 마르지 않은 곳이네요.
그 모습 그대로 개울물 소리 들으며 꽃들과 어우러져 살지요.
우리도 그렇게 살면 어떨까요?’
남해 파랑새가 날아들었다.
‘멋진 목사님! 청년 시절 같았으면 쫓아다닐 뻔했겠네요?
우리 출발했어요. 곧 뵐게요.’
정한 시간, 고흥 금산면 석정리 해변에서 영접을 받았다.
2008년 발간한 목사님의 ‘빈밭 이야기’ 목양 수필이 생각났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예비하신 일이 놀라웠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셨다.
그간 헌신과 희생은 낭비가 아니었다.
계산하지 않고 내준 사랑의 열매요,
성냥 한 개비의 불씨가 큰불을 일으킨 증거였다.
익금, 옥룡, 연소 화평교회 세운 목사님께 거저 주신 땅(188평) 이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집이었다.
내진에 버금가는 기반 공사부터 땀 흘린 흔적이 보였다.
축대 쌓고 펜스치고 전주 세우고 태양광 설치와 세간살이를 둘러봤다.
커튼 열었더니 특급 카페보다 나은 뷰였다.
여느 사모님의 일성이 터졌다. ‘와~ 멋지다!’
한 번도 같은 소리 아닐 파도가 칠 거리였다.
코앞의 녹동항! 새벽녘 낚시 뱃고동 소리 들릴 침실,
제주로 출항한 여객선에 마음 실어 보내고 쉬며 차 마실 공간이었다.
거금대교 야경은 덤으로 얻은 선물 같았다.
빈 밭에 애써 숨긴 감자 두 이랑의 검정 비늘이 눈에 닿았다.
소문낸 잔치라 풍성한 차림 상을 냈다.
싱싱한 광어를 비롯한 모둠회의 식감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난 분주한 아침 맞이하느라 거기서 공복을 깼다.
묵은지, 향긋한 취나물, 간장 게장이 밥도둑으로 몰아갔다.
한 그릇씩 뜬 지리 탕 맛에 ‘누가 사모님을 경상도 여인이라 했는가?’
화창한 날씨를 기도로 배달시킨 그 손길에 감동 먹었다.
열세 명이 한 지붕 아래에서 화기애애한 가족애로 묶였다.
바닷바람과 적대봉 꼭대기에서 내려온 해맑은 공기를 섞어 마셨다.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 만점인 매력의 보금자리였다.
토방에서 청정해역을 체험해 그 속에 살고 싶었다.
부서진 가슴에 행복 나무를 묻었다.
유자와 감귤로 빈터에 기념 식수 후 헤어졌다.
금산 해안 일주 도로는 섬들의 향연으로 풍광이 기가 막혔다.
그간 보고 싶었던 지교회를 찾았다.
차 대접에 담소하며 섬 사역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김, 모과 차, 쪽파, 봄동, 미역, 매생이.. 신토불이에 속정을 담았다.
녹동항에서 건어물 사고 늦었는데 카톡이 울렸다.
‘목사님, 오늘 저희 집 방문해 주셔서 기뻤네요.
가슴 울컥하게 한 감동의 축복기도 감사한데 거금까지 주셨네요.
백골난망이네요.
저도 꼭 갚고 싶으니 얼른 주택 한 채 건축하세요.
암튼 감사하며 평안한 밤 보내세요.’
‘목사님! 사촌이 값진 논을 사도 배가 부르네요.
아침에 차 닦고 샤워할 때 목사님의 지난(至難) 한 세월에 흐느꼈네요.
심는 대로 거둔 현장 보며 하나님의 일하신 손길에 놀랐고요.
거금도에 거금? 그간 받은 사랑에 비하면 앙끄또 아니네요.
장례 집례 후 받은 사례 돌려드리려는데 성의라는 의도에 들고 갔어요.
작지만 네 분 목사님들 섬기고 남았어요.
난 아파트 전세금 갚고 입주하려면 요원하여 꿈도 못 꾸네요.
퇴근 시간 시내가 막혀 셋이 무등산자락에서 저녁 먹었어요.
목사님 사모님, 너무 수고하셨어요.
조금 쉬세요. 보기만 해도 좋았고 큰 힘이 되었네요.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한 날 보내세요.’
‘목사님! 회수분 같은 섬기심 귀감이네요.
이 시대 목사님 같은 분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희는 남은 지리 탕에 저녁 먹고 왔네요.
뵐 때까지 평안하세요.’
함께 모신 목사님께 문자를 드렸다.
‘목사님! 과분한 호의에 함께 못 다니겠네요.
반건조 생선, 밥값 중 하나라도 기회 주셔야지요.
늘 독점해 버려 말이 안 나오네요.
거기다 송금은 또 뭐다요? 진짜..
아무튼 즐거운 여행에 재미난 이야기 양념으로 멋진 나들이였네요.
편히 쉬세요.’
‘쬐금 성의만 드린 거네요. 덕분에 즐거운 하루였어요.’
자리에 누워도 말똥말똥 해졌다.
빈 밭에서 30년간 동행한 풍상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목사님 아이들 방에서 독거노인 섬기고,
중학생 아들을 지구 반대편에 맡기고 빈 밭으로 올 때,
또 번 아웃 되어 아팠던 동병상련의 추억에 잠을 못 이뤘다.
2025. 3. 22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