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구의 음식장인 '옥미아구찜'
백년가게 선정....전국 30곳 중 부산 유일 음식점
" 1984년 문을 연 옥미아구찜(망미2동)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추진한 '백년가게'로 선정되었다.
백년가게 육성사업은 30년 이상 사업을 운영해 온 소상인 및 소기업을 대상으로 지속성장의 가치를
실현하는 성공모델을 발굴하고자 올해 처음 시작된 사업으로 전국에서 30개 업소가 선정되었다.
그 중 음식점은 단 18곳. 부산 유일한 식당으로 옥미아구찜이 지정된 것이다....."
수영구보인 11월 1일 발행 [새수영]에 난 기사를 보고 옛날 생각이 나서 이글을 쓴다.
구보에 난 사장님 사진은 개업 초창기에 우리 동기들이 자주 갈 때의 여사장님이 아니고 남자 사장님이었다.
옥미 아구찜은 초창기에 망미동 국화아파트 조금 건너 한길 가에서 작은 가게로 시작햇는데 영업이 잘 돼
몇 년 안 가서 안쪽 골목의 가정주택을 개조하여 '옥미아구찜'을 확장했다.
우리 동기들이 자주 갔을 때는 한갈 가에서 작은 가게를 할 때였다. 가정 주택으로 옮긴 뒤에도
소문이 많이 나서 가족들과 몇 번 가기도 했다. 그러면 여 사장님이 무척 반가워햇다.
초창기 길가에서 할 때 손님은 국군통합병원 군의관들과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많앗다.
그 중에 한 명이 여경주다. 그때 여경주 직장에 망미동에 있었다. 그래서 나도 경주따라 자주 갔다.
처음에는 아구찜보다 동동주 때문에 소문이 났다. 옥미집 동동주는 아무리 마셔도 이튿날 골치가 안 아프다고...
우리 동기들도 많이 갔는데 조용태도 자주 갔고 강총도 아마 자주 갔지 싶다. 그 무렵 김창하가
그 근처에서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가면 밤 늦게까지 가지 않고 있어도 여사장이
홀대를 하지 않앗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남편한테서 빨리 안 마친다고 전화가 오곤 했다. 그때 방안에는
남편이 모은 수석이 진열장에 많이 있었다. 우리는 여사장 이름이 "옥미"냐고 "옥미아구찜"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고 트집을 잡곤 햇는데, 여사장의 이름은 '김윤자'씨였다.
나중에 부산일보에 기사가 났기 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때 여사장님은 우리 마고 출신들을 반겨 했는데, 고향은 어딘지 몰라도 아구찜을 배우려 마산에
여러번 걸음 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찾았다는 '초가집'에도 가서 먹어보고, 미더덕찜을 배우기 위해
여러 집을 다녀봤다고 했다. 그래서 개발한 게 "물텀벙"이라고 했다. 아구수육을 콩나물국처럼 익힌 것이다.
고춧가루 안 넣고 끓인 '물텀벙 탕'은 술국으로는 최고였다.
그후 골목 주택으로 옮긴 뒤부터 그 집에 가려면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었다.
가게가 너무 붐벼 우리가 애 먹였던(?) 남편이 직장을 그만 두고 카운터를 보고 잇엇다.
그때부터 옥미아구찜은 번창하기 시작해 지점을 여러 곳에 열고 표창장을 수도 없이 받았다.
그리고 연말이면 빠짐없이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내 신문, 방송에 났다. 김윤자 여사는 일본까지 초청되어 가서
활동한 사진을 여러 장 걸어놓았다. 옥미아구찜 집이 잘되니 근처에 아구찜 집이 늘어나 아구찜 골목이 되었다.
그 후에는 가 본 적이 없는데 별로 안 좋은 소문이 들렷다. 김윤자 여사가 이민을 갔느니 어쩌니 하는 소문이었다.
영업이 잘 되는데 왜 이민을 갔을까? 그 후 그 집에 가 보지 않았으니 정말 이민을 갓는지는 모르겠다.
개업 초창기에 한길 가에서 작은 가게를 할 때 우리 동기들한테는 아주 친절하게 잘 대해 주었는데....
김윤자 씨도 나이가 우리 또래나 되지 싶다.
[새수영] 기사를 보고 옛날 생각이 나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