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7번째 편지 - 반복되는 생활습관병
제가 몸의 이상을 느낀 것은 올여름 스페인 여행을 했을 때였습니다. 여행 내내 차량으로 이동하는 중에 늘 누워 있었습니다. 피곤이 엄습하여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8월 30일 귀국한 다음날 동네 병원을 찾았습니다. 간 수치가 정상치의 3배 이상 올라가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일시적인 현상일 테니 쉬면 나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걱정이 되어 다음날 평소 다니던 대학병원 간 전문 교수님의 진료를 받았습니다. 간 검사 결과를 보여 드렸더니 지방간 때문일 거라고 하면서 6개월간 운동해서 살을 빼고 다시 보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걱정이 태산 같은데 너무 쉽게 말씀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조급증이 발동하여 여기저기 문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후배 대학병원장에게 전화하여 상황을 설명하였더니 “형님, 걱정하지 마시고 살 좀 빼시면 좋아지십니다.” 똑같은 이야기에 힘이 빠졌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증세는 있었고 간 수치는 꽤 높았습니다. 일주일 후인 9월 8일 동네 병원에서 피검사를 하였습니다. 간 수치는 더 나빠져 있었습니다. 후배 원장은 수치 하나하나에 신경 쓰지 말라고 하였지만 한 주 후인 9월 14일, 수치가 더 올라가 있었습니다.
예전 일이 데자뷔처럼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2014년 3월 13일 삼성서울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당시 일이 월요편지에 상세하게 적혀 있습니다.
“건강검진 결과는 수치상 여러 가지 부문에서 위험 수위에 육박하고 있었습니다. 체중이 전년에 비해 5kg 늘어 복부비만이 더 늘었습니다. 위에는 위염과 역류성 식도염 증상이 다시 나타났고 간 수치는 지방간 때문에 약간 올라가 있었습니다. 혈당 수치는 당뇨는 아니지만 점점 높아지고 있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거의 한계치에 육박하고 있었습니다. 경동맥도 일정 부분 협착이 시작되고 있었고 코골이 때문에 수면의 질도 나쁜 상태였습니다.”
삼성서울병원의 6개 분과 선생님으로부터 추가 진료를 받았습니다. 그중 한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상태로 몇 년을 사시면 중풍이 올 수도 있습니다. 남성은 50세가 되면 신체 지수들이 현격하게 나빠집니다. 50대를 잘 지내야만 60대 70대에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습니다.”
당시 55세였습니다. 충격을 받고 그날부터 운동을 하였습니다. 운동선수처럼 운동하라는 충고를 받아들여 30일간 매일 1시간씩 걸었습니다. 그 결과 4월 29일 피검사에서 모두 정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후 자전거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4박 5일에 가는 열정을 보이기도 하고, 60세에는 프로필 사진을 찍는 호기를 부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항상 운동선수처럼 운동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프로필 사진을 찍은 후에는 몸과 마음이 모두 해이해졌습니다.
과하게 운동을 하면 오히려 몸에 해롭다는 이론을 핑계 삼아 운동 횟수를 줄이더니 급기야 운동을 손 놓기에 이르렀습니다. 운동으로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워도 반대로 몸을 망치는 것은 순간이었습니다. 과식과 게으름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기 마련입니다.
과거 자료를 보니 2021년 1월 16일 건강검진과 2022년 1월 26일 건강검진에서 간 수치가 정상보다 두 배가량 높았지만 그저 지방간 때문이려니 하는 안이한 생각에 삶의 패턴은 바뀌지 않고 2022년 여름까지 이어진 것이었습니다.
서서히 변화를 가져오는 연착륙을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서서히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계기를 갖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경착륙을 해야 정신이 번쩍 들고 삶의 패턴을 변화시킵니다.
2014년 3월 13일 건강검진 이후 ‘이 상태로 몇 년을 사시면 중풍이 올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 선생님의 충격요법은 옳았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참 재수 없이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21년, 2022년 건강검진 때도 선생님께서 간 수치를 보고 운동을 하라고 권고하였지만 그 권고는 그저 권고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여름에 간 수치가 생애 최고로 올라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생활 습관 때문에 생긴 병이니 생활 습관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자가 진단하고 운동과 식생활을 바꾸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였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헬스클럽에 가서 선생님의 지도하에 운동을 하고 나머지 날은 집에서 실내 자전거를 1시간씩 탔습니다. 그리고 점심 먹고 30분 이상 걸었습니다.
문제는 식생활이었습니다. 외식을 줄이기 위해 가급적 약속을 피하고 일찍 귀가하였습니다. 간도 나빴지만 위도 역류성 식도염이 심해 통증 때문에 쩔쩔매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먹을 수 있는 것이 제한적이었습니다. 간에 좋은 식재료와 위에 좋은 식재료의 교집합에 해당하는 식재료를 먹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조리법이었습니다.
아내와 상의 끝에 식재료를 프라이팬에 넣고 찌기로 했습니다. 대부분 야채라 자체 수분이 생겨 찌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궁여지책으로 고안한 음식이 맛이 있어 이렇게 식사를 계속하였습니다.
그런데 간 수치는 빨리 정상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걱정이 걱정을 낳았습니다. 그때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병이 난 모든 사람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 질병으로 의사에게 간다. 하나는 진단이 내려진 질병이고, 또 하나는 공포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강력한 질병이다.”
제가 딱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운동만 하면 6개월 후에 간 수치가 정상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공포가 또 다른 병이 되어 저를 목 조여 왔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어 운동과 식생활의 개선을 꾸준히 하였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되자 마음에도 병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간, 위에 우울 증세까지 더해진 것입니다.
그 와중에 2023년 1월 4일 정기 건강검진일이 되었습니다. 수도승처럼 4개월을 지냈는데 변화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1월 11일 결과 상담에서 간 수치를 포함한 모든 수치가 정상이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생활 습관을 재정비할 기회를 다행히 잘 활용하였습니다. 이젠 이 운동 습관과 식생활 습관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도중에 또 삐걱댈 것입니다. 그때마다 2022년 하반기를 꼭 기억해 낼 것입니다. 공포스러웠던 그 시기를…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3.1.26. 조근호 드림
(구정 때문에 월요편지가 좀 늦어졌습니다.)
<출처 : 조근호의 월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