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 아저씨가 되고 싶다 / 조연동
나는 포장마차 체질이다 쉰 살이 넘으면서 더 확실해 졌다 근사한 식당이나 카페보다도 곧 없어질 것 같은 포장마차가 좋다 장사를 하더라도 수퍼마켓 사장님보다 포장마차 아저씨가 되고 싶다 진열된 상품보다는 따뜻하게 데운 오뎅 국물을 속터지게 느릿느릿 팔고 싶다 눈 내리는 겨울밤 인적 끊긴 가로등 아래 커다란 등불 같은 포장마차 하나 매달아 놓고 아내의 지퍼를 처음 내릴 때 그 설렘과 그 서투름으로 포장마차 아저씨가 되고 싶다
- 조연동 시집 포장마차 아저씨가 되고 싶다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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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시인으로 산다는 것! / 조연동 시인으로 등단을 하면 동네 어귀에 큼지막한 축하 현수막 하나 걸어주는 줄 알 았습니다. 집 앞 도로 전봇대에는 뉘 집 몇째 아들 누구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는 현수막이 몇 달째 걸려 있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누구 이름 석자도 자랑스럽게 걸려있기에 우리 집 담벼락 에도 ‘조연동 시인님의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이런 현수막 하나는 걸려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시인으로 등단하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사인 좀 해달라고 그럴 줄 알았습니다. 교양 있게 차려입은 우아한 여인들이 햇살 좋은 찻집 창가로 멋진 시인님을 초대해 주리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돌아올 때는 장미꽃 몇 다발 안겨 주리라고 기대했었습니다. 시집이 출간되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 주머니도 두둑해 지는 줄 알았습니다. 화가처럼 빵떡모자 뒤집어쓰고 담배 파이프 하나 물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몰려든 잡지사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에 어안이 벙벙할 줄 알았습니다. 이런 멋진 꿈을 꾸면서 지난겨울에 시인이랍시고 등단하고, 여기저기 흩어진 잡동사니를 주워 모아 첫 시집도 출간하였습니다. 참 기뻤습니다. 시인이 된다는 것이, 이 땅에서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시인이라고 나를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책이라면서 건넬게 있다는 것이. 시인이 되어, 시인으로 산 것이 1년이 되어 갑니다. 내가 꿈꾸었던 꿈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현수막은커녕, 바로 옆 집 이웃도 내가 시인이 된 것을 모르는 눈치입니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내 스스로 먼저 말하지도 못합니다. 시집 속표지에 멋진 사인을 해서 지인들께 보냈지만 축하한다는 문자 메시지 밖에는 다른 이벤트가 없습니다. 시인이 되고 싶어 시인이 되었지만 내 혼자 발광이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가봅니다. 출판사에서 받아온 산더미 같은 시집을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서점에 맡겼더니 시큰둥한 반응입니다. ‘요즘에 누가 이름도 없는 사람의 시를 읽나요?’ 뭐 이런 표정입니다. 서점 한쪽 귀퉁이에 마련된 향토작가 코너에 내 시집을 몇 권 두기는 했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먼지만 뽀얗게 앉아있습니다. 가끔씩 죄 지은 사람처럼 몰래 가서 혹시 시집이 좀 팔렸나 확인해 보지만 별로 변화가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얼굴이 후끈거려 요즘엔 그 서점에는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전에는 그 서점에 가서 책도 사고, 이책 저책 구경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인터넷 서점 으로 책을 주문합니다. 햇살 좋은 창가에 우아한 여인? 웃음만 나옵니다. 우아한 여인은 고사하고 요즘은 아내의 잔소리만 부쩍 늘었습니다. 처음 시집이 나왔을 때는 전과 다른 존경의 눈빛을 보이던 아내가 1년이 지난 요즘은 예전의 그 교양없음으로 되돌아가서 시를 쓰는 고상한 남편을 함부로 대하곤 합니다. 가정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사회에서 인정받겠습니까? 내 시를 실어주겠다는 잡지사는 한 곳도 없습니다. 하는 수 없이 동창회 카페나 블로그에 시를 올리지만 고정 독자라고는 고작 5명 안팎. 그것도 마지못해 인사치레로 읽고 댓글을 단다는 것을 잘 압니다. 시인으로 1년을 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는 시인,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허구적 유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시는 신앙처럼 또는 혁명처럼 뜨거워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진정한 시인은 누구일까요? 나는 체 게바라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시는 15편 정도밖에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혁명가로서 그의 삶은 가장 시적이었고, 그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완성된 시였기 때문입니다. 체 게바라가 혁명가로 불꽃처럼 살다가 처형되었을 때 그가 메고 다닌 홀쭉한 배낭 속에는 시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녹색의 스프링 노트가 한 권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노트 속에는 69편의 시가 쓰여 있었는데 이를 보더라도 그는 시와 시인들을 사랑한 진정한 시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체 게바라는 독서광이었으며, 그 어떤 예술, 문학장르보다 시를 사랑하였다고 합니다. 체 게바라가 남긴 녹색의 공책에는 그가 좋아했던 네 명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에호, 니콜라스 기옌, 레온 펠리뻬의 시들이 들어있는데 아래의 시는 체 게바라가 사망한지 9일째 되던 날, 아바나 ‘호세 마르티 광장’에서 백만 인파속에 니콜라스 기옌이 직접 낭송한 것으로, 체 게바라의 죽음을 애도한 수많은 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시의 한 부분입니다. (중략)
내 친구, 사령관 체, 모두 네 값진 죽음처럼 살기 위해 죽어서도 살고 있는 너처럼 살기 위해 우린 죽길 원한다네
- 니콜라스 기엔의 시 <사령관, 체> 부분
(조연동 시인의 블로그에서 옮김)
개인적으로 사람냄새가 폴폴나는 시를 좋아하고 나는 또 그 시인을 믿는다.
평소 꼭 소장하고 싶었던 조연동 시인의 시집을 시인께서 서명을 하여 보내주셨다. 오늘 오후에 시집을 받고, 퇴근 길에 통화가 이루어졌다.
나에게 시집은 참 귀한 선물이다. 눈내리는 겨울밤, 쇠냇골에서 시인이 낸 길을 따라가야겠다.
조 시인님, 좋은 시를 기다립니다. 강릉에도 오늘밤 폭설이 내리겠습니다...
/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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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