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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oNews/에이런
3시 50분경 시청역에 도착했습니다.
전철역 출입구부터 경찰이 깔렸습니다.
청계광장은 역시 경찰차로 봉쇄되어있었고 집회참여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강기갑의원 간담회 때 와서 뒷풀이자리까지 같이 했던 민노당원을 만나서 같이 움직였고 시청역으로 이동해서 잠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니었으면 좀 헤맸을 듯...)
약속된대로 4시 30분경 덕수궁 대한문 앞으로 나왔습니다.
취재진들이 있었고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5시경 덕수궁 맞은 편 서울프라자호텔앞으로 모였고 유가족들도 왔습니다. 모인 사람들의 수가 예상보다 적었습니다.
범대위의 김태연 상황실장은 "촛불추모대회 집회신고를 했지만 경찰이 정당한 이유없이 불허해서 합법적인 추모대회를 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살인진압 책임자를 처벌하고 진상규명위한 국민의 요구를 밝히기 위해 청와대로 평화행진을 하기로 했다. 오늘 많은 시민들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물러설 수 없다. 유족들이 한을 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 열사들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이 영정을 앞세우고 청와대로 행진을 시작하겠다." 고 했습니다.
유족들이 앞장 서고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차도로 이동했습니다.
곧 전경들이 몰려 나와서 행렬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전경들이 행렬을 둘러싸고 시민들을 밀어붙이면서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정사진의 액자가 부서지고 사진만 남았습니다.
영정사진을 파손시킨 것에 대해 항의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고 이성수씨의 아들 이상흔씨가 영정사진파손에 대해 항의하다 전경에 폭행을 당했습니다.
흥분된 분위기를 가라앉히려고 했는지 여경들이 투입이 되었고 시민들을 인도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한 개의 영정사진만 온전했고 한 분의 사진은 아예 분실이 되었습니다.
이상흔씨의 어머니 권명숙씨는 "애 내가 매 한 번 안들고 키운 애야. 이렇게 클 때까지 매 한 번 안들었다구." 라면서 경찰에 맞은 아들을 잡고서 통곡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자신의 아버지의 영정사진마저 분실된 고 양회성씨의 아들 양종원씨가 울컥하여 경찰측에 달려들려는 것을 다른 유족들이 말렸습니다.
파손된 영정사진들을 모아놓고 유족들이 망연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유족 한 분이 의식을 잃고 쓰러셔서 구급차를 불러야 했습니다.
한 편에서는 시민들의 자유발언을 들었습니다.
사회자는 "경찰은 또 다시 우리의 평화집회를 원천봉쇄했다.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이명박에게 항의하고 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청와대로 추모행진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폭력경찰은 유족들을 밀치고 영정사진이 땅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오늘 비록 많은 숫자가 모이지는 못했지만 가슴 속의 더 큰 분노, 투쟁의 의지로 28일 범국민대회와 다른 추모대회에 더 많은 동지와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했습니다.
이 시민은 "시민을 죽인 경찰이 유족들에게 무릎 꿇고 빌어도 시원찮을텐데 유족들을 구타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분노가 느껴진다. 김석기 원세훈이 구속되는 그 날까지, 이명박이 퇴진하는 그 날까지 싸워서 우리 국민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우리의 후세는 이런 억울함을 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고대 정태호 총학생회장은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이 2009년의 현실이다. 이렇게 살고자 하는 사람을 죽이는 정권을 가만히 둔다면 앞으로도 수많은 서민들을 죽일 것이다. 등록금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은 비정규직문제, 한미FTA문제를 갖고 있는 노동자 농민들과 연대해서 싸워나갈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경찰 방송차에서는 "집시법 20조에 의해 지금 즉시 해산할 것을 명령합니다"라는 방송이 계속 나왔습니다.
이 학생은 "이명박정권 1년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서민의 주거권, 환경문제, 경제문제 등 제반 문제에 있어서 우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으며 국민의 목소리는 원천봉쇄로 틀어막으려는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비인간적 진압과 탄압을 보면서 더 열심히 투쟁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연행을 각오하는 마음으로 집회에 참여하겠다"라고 했습니다.
범대위 김태연 상황실장은 "오늘 우리는 청계광장 집회가 봉쇄되면 청와대로 행진하려했지만 행진을 시작하자마자 유족들은 경찰에 둘러싸이고 영정은 찢어지고 박살이 났고 유족 한 분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다. 용산참사가 터지고나서 연쇄 살인 사건마저 이용하여 여론을 호도하고 우리의 추모와 투쟁의 목소리를 여론으로부터 가둬놓고 뭉게버리려 해왔다. 오늘 행진도 겹겹이 병력으로 막고 있다. 그래서 이 경찰의 장벽에 갇혀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가서 어떻게 할지 우리의 지혜를 모으자" 라고 했습니다.
이상흔씨가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성한 액자에 함께 넣으려 하고 있습니다.
대화내용은 모르지만 농담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풀어드리려는 듯한 아들의 모습입니다.
시민들이 나가려하자 경찰은 조금씩 사람들을 내보내는 식으로 최대한 시민들의 행동을 방해하려고 했습니다.
시청스케이트장 앞에서도 추모대회 참가시민들이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분산되어 명동성당으로 간 시민들고 있었고 일부시민들은 종각역 근처로 갔습니다.
이 곳에서 분산됐던 다른 시민들이 모이기를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시민들이 모이자 도로로 진출했습니다.
종로2가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사자후TV와 615TV 취재차량이 시민들을 뒤따랐습니다.
종로3가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갔습니다.
종로2가에서 경찰들이 몰려왔고 시민들은 인도로 들어갔습니다.
경찰이 앞을 막아서자 잠시 대치하다 인도로해서 출발지점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곳도 경찰이 막아섰습니다.
시민들은 다시 분산하여 대한극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시민들은 대한극장 옆 웨딩홀에 모여들었습니다.
경찰병력도 몰려와 도로 쪽과 인도를 차단했습니다.
시민들이 도로로 진출하려고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대한극장 앞에서 잠시 경찰과 대치했습니다.
이번에는 전철을 타고 동대문운동장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전철역 내에서 구호를 외치자 한 시민이 응원을 했습니다.
동대문역 근처의 쇼핑몰 앞에 시민들이 모여서 도로로 진출했습니다.
쇼핑몰 맞은 편 도로로 해서 동대문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쇼핑몰들이 있는 구간을 이동하다가 인도로 돌아갔습니다.
경찰병력이 곧 나타났습니다.
채증을 하던 사복경찰이 시민에게 붙잡혔고 그 과정에서 부상을 당해 시민 의료진이 돌봤고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경찰병력이 눈에 안보이자 시민들이 도로 진출을 다시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일부러 숨어있었던 듯 체포조들이 나타났고 17세의 '십대연합' 회원이 붙잡혔습니다.
경찰이 취재진들의 촬영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리고 전경들이 등장해서 시민들을 차단했습니다.
10시 30분경 시민들이 해산을 하기 시작했고 저도 촬영을 마쳤습니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평상시와 다름 없는 쇼핑몰 앞 모습입니다.
시민들이 경찰들과 대치하는 상황에서도 한 쪽에서는 쇼핑몰측에서 주최하는 시민장기공연이 계속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수의 '민주주의는 어디에'라는 노래의 시작부분에 작년 촛불시위 때 신촌에서 한 청년이 라디오21에 전화를 걸어 숨을 헐떡이며 다 흩어지고 끌려가고 자신만 도망나왔다며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다 어디갔냐고 절규하는 통화내용이 나옵니다. 이 분은 살 곳을 잃고 남편을 잃고 남편의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폭력범, 떼잡이의 누명을 벗고자 했지만 남편 영정사진은 파손되고 아들의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통곡하고 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이 분을 도와줄, 이 분에게 힘이 되줄 대한민국의 국민은 다 어디가 있습니까? 28일 범국민추모대회에서 꼭 확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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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솔직이 힘든 것은 가서 촬영하는 것보다는 정리해서 올리는 것입니다. 뭘 빨리빨리 하지 못해서 시간이 엄청걸리거든요. 아무튼 제 건강까지 신경써주시고 감사합니다.
고생하고 계시네요. 저분들의 눈물이나 님의 수고가 잊혀지지 않을겁니다.
유족분들의 눈물과 저의 수고를 같이 표현하시면 제가 유족분들에게 죄송하고요... 지금으로서는 유족분들 생각하면 좀 마니 답답하네요.
그 열정에 다시 한 번 경의를...
무슨 열정에 경의씩이나요? 님의 마음은 감사하지만 다 같은 마음 아닌가요? 다만 제가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니 정말 힘드신분 수고하시는 분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