鳴玉軒에서
이 형 권
잊혀진 정원에는 배롱나무꽃이 가득하다.
세상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온 후
마음에 새겨둔 그리움은 없었지만
염천의 더위를 이끌고 여름이 지나가는 길목이면
옛 선비가 머물렀던 뜨락에
열꽃처럼 붉은 자미화가 피어오른다.
花無百日紅이요 人無千日好라
꽃은 피어서 백일 동안 붉은 수 없고
사람은 천 일이 지나도 한결같이 좋을 수 없으니
지나간 무엇이 한스러울 수 있으랴만
뜨거운 태양 아래 구름처럼 일어나는 꽃들은
생의 모진 미련과 애모를 보여 주는 듯하다.
주렴에 머물던 달빛처럼 다정하고
바위 위에 떨어진 씨앗처럼 굳건하였건만
세월이 망각의 선율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이기낀 섬돌에는 폐허의 노래가 머물고
그림자를 잃은 연못의 물빛 위에는
부치치 못한 편지처럼 꽃들이 떨어진다.
보랏빛의 안쓰러운 발자국을 남기며
긴 여름날의 해가 저문다.
_《산사》(학연문화사, 2013)
ᆢ
명옥헌 정보는 모셔옵니다^^
鳴玉軒명옥헌
(명옥헌 원림)
전남 담양 소재.
수령 오래된 백일홍의 군락
정자 주변과 연못 가장자리에는 수령 100년 이상 된 배롱나무 약 20여 그루가 우아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떤 나무는 300년 가까운 고목도 포함되어 있어 깊은 역사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긴 개화 기간
7월 중순부터 9월까지 100일 가까이 꽃이 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에 ‘백일홍’이라 불립니다.
정자·연못·꽃의 조화
정자 주변 연못 위와 가장자리에는 배롱나무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으며, 특히 연못 위의 반영과 섬 위 꽃나무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채색화를 연출합니다.
선비정신이 깃든 공간
명옥헌은 조선 중기 문인 오희도가 자연 속 학문과 사색을 위해 조성한 정원으로, 그의 후손이 배롱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가꾸었습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아담하고 단아한 멋이 돋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