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2023.9.10.) 말씀/신명기 3:24-25
다시 건너가게 하소서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25).
우리는 독서를 하면서 우리 인생은 건너가는 존재라는 것을 수없이 배우고 있습니다. 불교에 바라밀다 (波羅蜜多)라는 말에 ‘바라’는 ‘저 언덕’ ‘밀다’는 ‘건너다’는 뜻으로 풀이 하면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사는 더러운 땅 사바세계에 머물지 않고 저 부처님의 세계로 건너간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거짓된 나의 삶에서 참 나를 깨쳐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는 인간은 머물지 않고 계속 앞으로 발전해 나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 역시 우리는 거류자 나그네라고 정의하는 것은 이 땅에 영원히 머물지 않고 떠나고 건너고, 또 건너고 마침내 근본 주님 나라에 들어가 살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대로 지금 여기에 계속 머무른다는 것은 쇠태와 죽음을 뜻합니다. 우리가 정말 살기를 원한다면 이 땅에서는 최대한 간편하게, 쉽게, 움직이고 이동할 수 있도록 그런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 썩고 쇠하고 무너질 틈이 없이 새로운 세계, 궁극적으로는 영원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계속 떠나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소돔 고모라 비옥한 땅에 머물며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롯에게 멸망의 성 소돔 고모라를 떠나라고 하십니다. 마마보이로 엄마 곁에서 팥죽을 쑤는 야곱으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 밧단아름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또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재물도 얻고 살만할 때 이곳을 떠나 벧엘로 올라 가라 하십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삼대를 장막 생활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떠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뿐 아니라 요셉도 하나님은 떠나게 하셨습니다. 그는 형들의 미움을 사서 노예로 팔려 애굽 땅까지 갔습니다. 떠나는 것은 다음 세계로 건너가는 것을 말합니다. 왜 우리는 이렇게 한 곳에 있으면 안되고 계속 떠나야 하고 건너가야 합니까? 모든 삶의 원리, 자연의 원리가 그렇습니다. 가만이 있으면 무너지고 썩고 부패합니다. 집도 새 집이라도 아쓰고 놔두면 무너집니다. 사람이 살아야 하고 사용해야 든든히 섭니다. 물은 고이면 썩고 흘러야 깨끗합니다. 생각도 흘러야 합니다. 끊임없이 숙고하며 더 높은 수준으로 더 넓은 수준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꽉막힌 사람이 됩니다. 굳어진 생각에 의해서 삶이 갇히고 진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 하고, 책 읽고 건너가기를 계속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3:24-25절을 보면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모압 평지에 이르렀을 때에 모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신 3:25).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요단을 건너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 이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그들이 궁극적으로 들어가 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었습니다. 그곳은 택한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아름다운 땅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광야 길을 지나면서 이스라엘이 현실의 고난과 어려움을 불평하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지 않고 거역한 사건 때문입니다. 그들은 출애굽을 하여 믿음으로 검푸른 홍해를 건넜으면서도 잠시 광야 길의 어려움을 참지 못했습니다. 끊임없이 불평하며 배역하였습니다. 한 달이면 지날 수 있는 광야를 훈련을 받으며 40년 동안 뱅뱅 돌았습니다. 길에서 물이 없다고 불평하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하고, 불 뱀에 물려 징징거렸습니다. 심지어 부추 수박 야채가 먹고 싶다고 애굽 종 되었던 곳으로 돌아가려고도 했습니다. 모세는 무리바에서 물이 없어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분노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결국 약속 받은 백성들 다 죽고 요단을 건너갈 자는 오직 여호수아와 과거 시대를 모르는 다음 세대뿐 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일 이었습니다. 여러분, 모세의 기도는 사실 우리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참고 인내하며 위기의 시대 상황을 건너가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힘들다고 불평해서도 안 되고, 좋다고 광야에 뿌리를 내려서도 안 됩니다. 날마가 기도하며 희망의 나라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면서 하루하루를 건너가야 합니다. 한 달 두 달 건너가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한 해 두 해가 아닙니다. 계속 날마다 건너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건너가라는 메시지를 잘 들어야 합니다. 이 땅은 불 뱀과 전갈이 우굴거리는 광야입니다. 지체하지 않고 건너가는 사람만이 삽니다. 속 좁은 나에게서 비젼의 새 사람에게로 건너가야 하고, 사랑을 들고 이웃으로 건너가야 하고, 본토친척 아비집에 머물지 말고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고, 내 나라에 국한 하지 말고 이웃 나라로 건너가서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건너가라는 메시지는 끝이 없습니다. 건너가는 자만이 성장하고 건너가는 자만이 세상을 선도 할 수 있고 새로운 길의 안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생각 하면 건너가기 선구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땅으로 건너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시기 위해서 종의 형체를 띠시고 사람의 모양이 되셨습니다. 광야같은 세상에서 온갖 조롱 멸시를 다 받으셨습니다. 그러면서 끝까지 죽기까지 죄인들을 사랑으로 섬기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이 땅에 코를 박고 죽어가는 인생이 하나님께로 건너올 수 있는 길을 내시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27: 51을 보면 얘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영혼이 떠나시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성소의 휘장은 내 성소와 하나님의 임재 처소인 지성소를 가로막는 장막입니다. 그 안에는 어떤 사람도 들어 갈 수 없고, 오직 대제사장만이 피 뿌림과 정결 의식을 거쳐 1년 단 한 차례 들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이제는 누구나 언제든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십자가가 하나님께 나가는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이 길은 생명의 길.이 길은 사는 길입니다. 우리가 휘장 넘어 하나님께로 건너가 사는 자가 되도록 주님이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제 누구나 십자가 피 흘리신 은혜를 의지하면 각자가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히브리서 10장 19절과 20절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산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이 예수님 피를 의지하여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를 듬뿍 누리고 또한 이 생명의 길(예수) 안내 자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 입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나그네로 사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 하나님 나라로 건너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길 아니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이 길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못 믿어서 못 가고, 두려워서 못 가고, 안 가봐서 못 가고, 불안해서 못갑니다. 어릴 때부터 묶여서 자란 코끼리는 다 자란 후에 밧줄을 풀어줘도 그 로프의 만경을 못 벗어난다고 합니다. 상자 속에 갇혀있던 벼룩은 뚜껑을 열어 두면 그 이상 높이 뛰지 않는다고 합니다. 너무 오래 그 자리에 너물게 되면 생각에 갇혀서 건너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고 도전하고 건너가 본 사람이 또 도전합니다. 여행도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본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길을 실제로 걸어본 사람이 길 안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의 피로 찢어 길을 내신 저 휘장 넘어도 건너가서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풍성한 사죄함과 생명과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길의 안내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이번 15박 16일 세계 최초 독서트래킹을 하면서 건너가는 것이 무엇인가 그 의미를 실제로 체험하고 경험하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행되었지만 이번에 다녀오신 분들은 아마 어떻게 하면 다음에는 더 완벽한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저는 처음 돌로미티 트래킹을 계획할 때 우선 선교사님 목사님들 중심으로 몇 분과 먼저 시도해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선수교체를 하는 바람에 명단에 없던 명남 지홍 집사님이 참여하게 되어 총 6명이 확정되었습니다. 원대식 선교사님이 염려 말고 오시기만 하면 안내해주시겠다고 하여 경비 산출 결과 일인 항공료, 안내하시고 드라이브 해 주시는 두 분 체류 경비포함 550만이 산출되어 교회에서 100만원식 지원하기로 하고 구체적 준비를 시작하였습니다. 사실은 이 경비도 여행사로 하면 돌로미티만으로도 부족한 경비입니다. 우주교회 식구 원 선교사님이 직접 섬겨주시고 드리이브해주시고 오요한 선교사님이 차량을 제공해주시고 함께 섬겨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음식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여러 가지 준비해간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로마에 들어오는 길에는 두 분 선교사님 300유로씩 드리고 우리 팀원들도 100유로씩 보더스 드릴 수 있었고, 자동차 수리비도 460유로 제공해드리고, 예배 후에는 여선교사님들 세 분게도 200유로씩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도 계산해보니 잔액기 144만원 남았습니다. 그래서 교회 지원금 150(본래 600) 더해서 50만원씩 추가로 나눠드릴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풍족하게 먹고 마시고 누리고도 남는 역사였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아미 이런 트래킹은 우리가 처음 일 것입니다. 어떤 분은 트래킹하면서 독서하는 모습이 경이롭다고까지 하였습니다. 매일 어김없이 큐티르 하고, 간간히 독서를 하며 15일 동안 베네치아 물의 도시, 북 이태리 돌로미티, 피렌체. 피사. 아시시. 나폴리. 소렌토, 폼페이 로마에 이르기가지 건너가고 또 건너가면서 배우고 느낀 것이 아마 어쩌면 평생 평생 체험한 것보다 더 알차고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모두들 꿈이냐 생시냐 하며 즐거워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진이나 그림에서 보던 것, 교과서에서 보기만 하던 명소들에서 직접 와서 인증샸을 찍었으니 정말 잘 왔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 모습들을 보니 저도 행복하였습니다.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를 타고, 돌로미티에서 첫 등정을 한 로카텔리 산정으로 가는 길에 펼쳐진 광경에서부터 감탄하기 시작하여 순간 순간이 감사고 은혜 였습니다. 지홍집사님은 비행기 타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거의 다 생전 처음 이었습니다. 그래도 사전 준비 누구보다 철저히 필요를 검색하여 공유해주신 덕에 유심칩도 잘 쓰고, trable 카드는 정말 요긴하게 썼습니다. 처음에 명단에 없을 때는 자신은 돌로미티 그런데 별 관심이 없다고 했는데 선수 교체 명단에 들어오자 자세가 180도 완전히 바뀌어서 적극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며 무엇이든지 구경꾼이 되면 안 되고 직접 참가자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막상 이태리에 와보니 낯설지 않고 내 집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 인생 국제면허를 다게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언제든지 주님 부르시면 달려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명남 집사님이나 경숙 집사님 효주 선교사님도 세계의 중심이 로마는 처음이기에 한 단게 더욱 생각과 스케일이 커졌으리라 믿습니다.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들을 던지고 3년내에 다시 로마에 온다고 하는 것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두 번째로 10년이 넘어 15년 되었습니다. 13녀 단축입니다. 배우는 사람이 개척자보다 빠른 것같습니다. 천 권사님은 경제적으로 여려운 상황이셨지만 믿음으로 도전하여 이번에 오드리 천 번으로 로마를 빛내고 오셨습니다. 매 순간 적극 밝는 모습으로 분위기 메커가 되셔서 다들 너무 좋았습니다. 아침마다 큐티 말씀을 나누고 독서를 하며 함게 음식을 나누는 하루하루가 천국 이었습니다. 특히 로마에서는 예배를 드릴 때는 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토록 가보기를 웠했고, 편지를 쓰며 사랑의 고백을 했던 로마 성도들, 마침내 죄수의 몸으로 가이사에게 상소를 하여 스스로 사슬에 묶여 도착한 로마, 말씀을 가르쳤던 로마의 셋집과 순교의 피를 흘리 역사의 현장,,,그런 그 로마에서 로마 성도들에게 설교를 하려하니 목이 메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홍 집사님 학생 시절 보고 처음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빈첸쵸, 풀비오, 안나, 리타 기도했던 이들과 사진을 찍고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형장에서 직접 만나보니 유숙영 선교사님, 남사라 선교사님, 프리실라 선교사님 모두가 너무 반가웠습니다. 로마가 과거의 역사처럼 같지는 않지만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나라이며, 하나님이 여전히 사랑하는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돌로 세워진 건물과 도로를 쓰는 것을 보면 로마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 지금도 세계 각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면 모든 길은 로마로 였습니다. 우리 선교사님들이 믿음의 등불을 지키며 한 영혼을 사랑하며 섬기는 모습을 보니 감격스러웠습니다. 한분 한분들이 뜨겁게 찬양을 하고 기도하는 것을 보며 다시 금 일어날 복음의 부흥의 불길을 기대하며 비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로마교회가 작지만 아름답고 말씀과 기도가 뜨거운 주님의 우주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로마에 3일을 머물면서 미켈렌젤로라 라파엘 등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바티칸 박물관에서 천지 창조 천장 벽화를 보고, 수 많은 검투사들이 피를 흘리고 기독교인들이 순교의 피를 흘린 콜로세움과 사도 바울의 마지막 갇혔던 감옥과 순교터 위에 세워진 교회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박해를 피해 도망을 가다가 주님을 만나 쿠오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물었던 로마 구도로를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일인 쿠르트 파이페씨가 대장암 수술을 받고 6개월 사형 선교를 받은 후에 3325km를 걸어서 도착한 목적지 성스란체스코 동상에 와서 인증샷을 하였습니다. 그는 침대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대신 삶을 꿈꾸었습니다. 여행을 떠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그의 말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듯하였습니다. ”로마는 나에게 실제 목표가 아니었다.k 중요한 것은 떠난다는 자체였다. 내가 첫 걸음을 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걸음, 그리고 다음 한 걸음“ 그리고 마침내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성프란체스카 동상 앞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 여성 저널니스트가 말했습니다. “ 당신은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이요” 죽음을 건너감으로서 삶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책 두권을 들고 시골 무안 청계에서 에태리로 건거나서 청동상 앞에 섰습니다.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돌아왔습니다. 인간은 건너가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제 다음으로 또 건너가야 합니다. 멈추면 죽고, 건너가면 산다. 건너가는 자만이 세상에 희망을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건너가는 자가 되어 삶의 희망 메시지를 전하는 전령사가 되기를 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