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연애란 가벼운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은 죽음보다 더 무거울 수도 있다. 하지만, 주간지 1단 기사도 안되는 통속적 소재를, 통속적으로 연출한 김해곤 감독의 데뷔작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정말 참을 수 없을만큼 가볍다. 이 영화에서 그럴듯한 인생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머니(선우용녀 분)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서 파 까고 배달 다녀 오는 것이 생업인 영운(김승우 분)은, 정확하게 표현하면 독립적으로 경제적 능력을 갖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기생해서 사는 존재다. 시간 나면 친구들과 만나 술집 가고 노래방 가고 도우미들 불러 신나게 노는 게 인생 사는 맛의 전부다.
어느날 술 한 잔 걸치고 그를 찾아온 여자 연이(장진영 분). 그 집의 단골 손님이기도 한 룸살롱 아까시인 그녀는 [나, 아저씨 꼬시러 왔어]라고 말한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연애 이야기가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술집 여자와의 연애. 보통의 남자들은 그런 만남에 의미 부여하지 않는다. 그냥 놀다 때 되면 헤어지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연애를 시작한다.
영운은 일이 끝나면 어머니 눈을 슬쩍 피해, 집으로 가는 대신 연이가 방을 얻어 사는 집으로 간다. 그렇게 그들은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같이 사는 것이다. 연이와 갈등관계에 있는 룸싸롱 전상무가 이 사실을 알고, 영운의 어머니에게 귀뜸해서 영운을 초고속으로 결혼시킨다. 결혼하기 직전까지도 영운은 괴로워 하지만 그렇다고 연이와 결혼할 마음은 없다. 그녀를 버리자니 안타깝고 그렇다고 평생 책임질 수는 없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주위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는 통속적 소재를, 특별하지 않게 통속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유일한 재미가 있다면, 배우들 때문이다. 아직 그 능력만큼 제대로 된 작품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장진영은 ㅓ칠지만 순정 있는 룸살롱 연이를 똑 소리나게 표현하고 있고, 연기 잘 한다는 생각이 한 번도 들지 않은 김승우는 적역을 맡아 펄철 날고 있다. 배우들의 화음이 이 영화의 유일한 장점이다. 연출은 산만하고 집중력이 없으며 창조력이 약하다.
특히 영운과 그의 친구들은, 중구난방 천방지축으로 움직이면서 작품의 기본 뼈대를 흔들 정도로 제어되지 못하고 있다. 감정은 섬세하게 다듬어지지 않았고, 인물들간의 역학관계는 명확하게 저울질되지 않은채 배우들의 즉흥적 기에만 의존하고 있는 연출은, 작품을 산만하게 만든다. 배우들은 전체적으로 통제되지 못한 감정이 흘러 넘치고 있고, 연출은 제대로 고삐를 쥐지 못하고 우왕좌왕 당황하고 있다.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는 준용(탁재훈 분)이나,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사는 홀아비 학이(오달수 분) 등은, 각각 따로 따로 논다. 도대체 왜 이 작품에 오달수가 캐스팅되었는지 자다가 벌떡 깨어나서 생각해 봐도 나는 모르겠다. 좋은 배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감독의 어리석음과, 자신의 장점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작품을 선택한 배우의 미숙함이 빚어낸 비극이다.
연극 배우와 연출가로 시작해서 [달콤한 인생][B형 남자친구] 등의 조연급 배우로, [파이란][블루]의 각본으로 영화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해곤의 감독 데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