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1심 판결에 대한 항소이유 ➀
유죄 판결항목 < ➀구조지연 > 부분에 대하여
지난 1월 25일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 34건 중 32건에 대하여는 무죄판결을 하였으나, <구조지연> 항목과 <증거인멸> 부분에 대하여는 유죄 판결을 하여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제가 고등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를 요약하여 두 편으로 나누어 게재코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편으로 <구조지연> 부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천안함, '못'찾은 것일까 '안'찾은 것일까?
천안함이 반파되어 48명의 승조원들과 함께 물 속으로 가라앉은 후 이틀동안 정부와 군 당국은 천안함 함수, 함미를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기자회견을 통해 <수색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는 발표만을 거듭하였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시각은 2010년 3월 26일 밤 9시22분경입니다. 그리고 함미를 처음 발견한 시각이 3월 28일 저녁 8시경, 함수는 3월 28일 밤 10시경입니다. 무려 이틀(약 48시간)동안 함수, 함미를 찾지 못하였던 것인데, 그에 대하여 저는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찾지 않았던 것> 즉, <고의적 수색지연이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천안함 사고 직후 최초 이틀동안 정부와 군 당국이 반파되어 가라앉은 천안함 함수 및 함미를 <찾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찾지 않았던 것>인지 여부를 밝히는 것은 천안함 사고의 진실에 접근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운항중이던 군함이 사고로 반파되어 승조원들과 함께 물 속으로 가라앉았는데 <정부 당국이 이틀동안 의도적으로 찾지 않았다>는 것이 과연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얘기냐고 사람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또한 이 부분이 저에 대한 <과격한 이미지> 혹은 <황당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으로 인식되게 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간의 인식과 저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러한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진실을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선행되어야 할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왜 제가 정부당국이 이틀동안 <천안함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찾지 않았다>, 즉 <의도적인 지연이 있었다>고 주장하는지 그 판단의 근거를 지금부터 하나씩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선체는 대형 구조물 - 함수는 47m, 함미는 37m
길이 88m, 폭 10m, 높이 23m의 1,200톤급 천안함이 백령도 인근 연안 바다에 빠졌습니다. 이것은 광활한 태평양을 항해하던 보트 한 척이 수백미터 수심의 해저에 가라앉은 경우와는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천안함 함수는 길이 47m x 높이 23m x 폭 10m이며, 함미는 길이 37m x 높이 17m x 폭 10m인 <대형 구조물>입니다.
육상의 건축물로 비교하면 <함수는 15층 높이의 빌딩>을 옆으로 뉘어 놓은 모습이고, <함미는 10층 높이의 건물>을 옆으로 뉘어 놓은 것과 같은 규모입니다. 그런 대형 구조물이 각각 함미는 해저 47m, 함수는 해저 20m(국방부 발표)에 가라앉았는데 그것을 찾지 못한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함미 침몰 지점의 경우, 사고원점으로부터 불과 180m 떨어진 지점입니다. 사고원점의 좌표는 사고 순간부터 국당국은 파악하고 있었으며 KNTDS상에서도 파악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고원점으로부터 불과 천안함 길이(88m)의 두 배에 해당하는 가까운 곳(180m)에 가라앉은 함미를 이틀동안이나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삼척동자도 웃을 얘기입니다.
그리고 함수 침몰 지점의 경우, 국방부 백서 <그림 2-6>으로 함수의 이동경로를 포함 최종 침몰 지점이 빨간색으로 마킹되어 있습니다.
최종적인 <함수함체 침몰위치>를 보면 함수가 등심선 5m와 10m사이 지점에 침몰한 것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단③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함수함체 침몰 위치 37-54-20N, 124-40-59E, 수심 20m>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침몰지점은 한 곳인데 수심 데이터는 확연히 다릅니다.
● 국방부 천안함 백서 <그림 2-6>의 정확성 여부에 대하여 천안함 함수가 침몰한 지점의 수심이 얼마인지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입니다. 만약 수심이 10m 전후에 불과하다면, 함수가 옆으로 누웠을 때 높이가 10m(폭)이므로 사고 다음날 상공을 정찰하는 헬기나 항공기에서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이 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방부백서에 표기된 침몰위치의 붉은색 마킹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하단에 기록된 <수심20m>가 잘못된 오류인지 그리고 실제 정확한 데이터(위치 및 수심)는 무엇인지 국방부에 자료제출을 명령하여 진위여부를 가려야 할 것입니다. |
대한민국 수로국이 작성한 해도는 비교적 정확하며 터무니 없이 틀리지 않습니다. 그래야 항해사들이 그 해도를 보며 안전하게 항해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 <그림 2-6>의 바탕지도가 바로 <해도>입니다. 대한민국 수로국이 해도에 거짓정보를 기록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국방부의 마킹 위치가 정확하다면 천안함이 가라앉은 곳의 수심은 7~8m에 불과하며, 백령도 인근해역 조석간만의 차가 5m인 점을 고려하여도 12~13m 정도에 불과합니다.
수심 12~13m 해역에 함수가 우현으로 90도 기울어 누워있을 때 높이가 10m입니다. 그러면 상공을 비행하는 헬기나 정찰기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함수의 형체가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수준이라는 결론입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 함수 침몰 지점의 수심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유효한 방법 중 하나는 천안함 함수를 인양할 때의 영상으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함수는 해저에 우현쪽으로 90도 누운채로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위 영상은 함수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크레인의 케이블을 함수의 좌.우현에 걸고 우현쪽 케이블을 감아올리면서 함수를 세우고 있는 과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입니다.
함수의 폭이 10미터이고 함수가 우현으로 대략 45°가량 기울어져 있는 상황이고 아직 함수의 일부분은 해저에 닿아있어 완전히 해저바닥에서 이탈하지 않은 상태가 저 모습이므로 길이가 88.3m인 천안함 전장을 대비하여 계산하였을 때 그 지역 수심은 대략 13~15m 정도일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 말은 사고 다음날 아침 백령도 사고 해역 상공을 정찰하는 항공기가 있었다면 육안으로도 식별가능할만큼 얕은 곳에 천안함 함수가 가라앉아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이틀동안 천안함 함수를 찾지 못하였다고 발표합니다.
2. 16시간이상 떠 있었던 함수, 군은 왜 방치했나?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천안함 함수가 무려 16시간 22분동안 가라앉지 않고 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군은 함수를 확보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결과 함수는 16시간22분만에 조용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버렸습니다.
이 황당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위 사진은 사고 다음 날인 3월 27일 아침 7시30분경 백령도 면사무소 직원인 최모씨가 해안가 언덕에서 촬영한 것으로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채 함수 끝부분이 수면 위에 드러나 있고, 해경253호정이 그 주변을 선회하면서 함수를 지키고 있는 모습입니다.
저는 언론에 보도된 이 사진의 출처를 추적하여 백령도 면사무소 최모씨와 직접 통화하여 협조를 구한 후 사진 일체를 메일로 전송받아 그 내용을 분석하였으며, 그 결과 천안함 함수가 사고 직후 가라앉지 않고 다음 날 아침까지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글을 게재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더욱이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저렇게 함수가 떠 있고, 해경정이 그 주변을 돌면서 함수를 지키고 있었던 바로 그 시각 국방부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아직까지 함수.함미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수색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3. 해경은 함수를 계속 지키고 있었으나 군에서 철수 명령 ?
천안함 함수에서 생존자들을 구조하였던 해경 501호의 유종철 부함장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천안함 함수 구조를 위해 출동할 당시 <천안함이 ‘좌초’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증언과 함께 <천안함 함수가 다음날 아침까지도 떠 있었다>는 증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 부함장은 아침 7시경까지 천안함 함수를 지키고 있다가 본부의 이동명령을 받고 천안함 함수를 지키는 업무를 해경 253호정에 인계하고 현장을 떠났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재판과정에서도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항소심에서는 해경 253호의 정장을 증인으로 불러 함수를 지키고 있다가 갑자기 왜 이탈했는지, 누구로부터 어떤 명령을 받고 현장을 떠나 결국 함수가 가라앉도록 방치했는지, 그것이 잘못된 판단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상부의 명령에 의한 것인지 반드시 그 이유를 밝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정황들 역시 제가 주장하는 바, 군은 <의도적으로 함수.함미 수색을 지연시켰다>고 주장하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해경은 천안함 함수를 선회하며 지키고 있었음에도 함수가 침몰하였을 경우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부표를 설치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바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라면 상식이고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조치조차 하지 않고 해경253호정이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함수 곁을 떠난 것은 해경 253호의 독자적힌 행동이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해경은 해경본청의 지시없이 침몰선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해경본청 역시 군 당국과의 협의없이 독자적으로 그러한 명령을 내렸을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따라서 무려 16시간22분간 함수가 떠 있었음에도 그 사실을 언론과 국민들에게 알리지도 않았고, 천안함을 지키던 해경을 어떤 후속 조치도 없이 현장에서 떠나도록 명령하였으며, 그 결과 천안함 함수가 물 속으로 사라지도록 방치한 정부와 군 당국은 그에 대한 이유를 분명히 밝혀야 하며 이러한 사실에 대한 확인이 이번 항소심에서 반드시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4. 해군 작전사령부는 천안함 함수가 사라질 때까지 추적했다
이것이야말로 군당국이 첫 이틀동안 고의적으로 수색을 지연하고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일 것입니다. 천안함 침몰사고와 관련 사고현장 및 2함대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아 취합하여 상부인 국방부 및 합참에 보고하고 명령을 전달하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 해군작전사령부의 심승섭 준장(당시 해작사 작전처장)은 법정 증인으로 출석하여 “천안함이 완전히 가라앉은 시간은 27일 13:37분이며 그때까지 천안함 함수의 위치를 실시간 모니터링하였고 백령도 현장의 탐색구조단에게 위치를 통보해 주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
이 이상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해군작전사령부에서 함수 위치를 계속 추적하고 있었고 실시간 현장에 통보해 주었는데도 그것을 비밀에 붙이고 있었다면 그것은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찾지 않았던 것이며, 당국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또한 심승섭 준장은 법정에서“최초보고내용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천안함 사고원인에 대해 최초로 받은 보고는 ‘좌초’>라는 사실과 함께 <상부에도 ‘천안함 사고원인은 좌초’라고 보고했다>는 증언을 함으로써 최초사고 원인에 대하여 분명한 진술을 한 바 있습니다.
천안함 함수가 다음날 오후 1:37분까지 침몰하지 않고 떠 있었다는 사실을 해군작전사령부가 계속 추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정부당국과 군은 그러한 사실을 숨기고 있었는지 이해불가한 일입니다.
앞에서도 인용한 위의 사진은 국방부백서 <그림 2-6>입니다. 시간대별로 함수의 이동경로와 시간을 추적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3. 27일 13:37분 최종 침몰하였다는 것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3월28일 어선이 발견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천안함을 수색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는 국방부의 발표는 거짓이었던 것입니다.
5. 구조 실무 책임 김진황 소령, “천안함 함수 보았다”
천안함 구조 실무 책임자인 김진황 소령은 제4차 공판 법정 증인으로 출석하여 <3월 27일 오전 백령도에 들어와 현장 해안가로 가던 중 천안함 함수가 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하였으며 “그래서 어떻게 조치했느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김진황 소령은 <점심 시간이 다 되어서 점심을 먹고 갔더니 함수가 가라앉고 없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국에서는 수색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찾지 못하고 있다는 발표만 거듭하고, 현장에서는 눈으로 보면서도 방치하고, 해군작전사령부에서 계속 위치를 통보해 주고 있었음에도 하루를 더 넘겨 28일이 되어서야 어선들을 보내어 찾게 한 것입니다.
더욱이 정말 기가막힌 것은 정부와 군당국 그리고 해경과 현장 구조대원들이 알면서도 16시간22분동안 방치된 끝에 침몰한 바로 그 함수를 인양하여 살펴보니 그 안에서 한 명의 희생자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6. 당국과 군이 16시간 이상 방치한 함수에서 시신 발견
2010. 4. 24 함수를 인양하던 중, 자이로(Gyro실)에서 실종자 시신 1구가 발견됩니다. 그 대원은 박성균 하사로 기관부소속(보수하사)입니다. 당일 순찰당직근무를 맡아 선내를 순찰하던 중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당국과 군이 천안함 함수가 가라앉지 않았다는 사실과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구조를 위한 수색을 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했던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한 데에는 <더 이상 남아있는 대원이 없다>는 천안함 함장의 보고가 결정적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만약 함장이 <혹시라도 잔류 대원이 있을지도 모르니 수색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더라면 어땠을까요? 즉각 잠수부를 투입하여 수색에 나섰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함수 갑판 위에 모여있던 생존자들이 모두 구조되어 해경정으로 옮겨탄 시각 이후에도 무려 열 시간 이상 함수는 가라앉지 않고 수면 위에 떠 있었으므로 잠수부가 충분히 접근하여 들어가 선체를 샅샅이 수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함수가 가라앉지 않고 떠 있다는 의미는 아직 함수 안에 여분의 공기가 남아 있어 부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생존자가 있다면 호흡을 위해 당연히 공기가 있는 곳을 찾아 이동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함수가 떠있는 16시간 22분동안 어느 누구도 함수에 대해 수색을 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결국 가라앉도록 방치한 결과 혹시라도 생존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고귀한 생명을 잃게 내버려두었던 것입니다.
함장이 최종적으로 함수를 떠나면서 <내가 마지막이다. 더 이상 생존자가 없다>라고 상부에 보고한 이유는, 함장이 포술장에게 인원점검을 명령하였고 점검결과 함수 쪽에 거주하는 갑판, 전탐, 조타, 포술등 대원들이 모두 생존한 것으로 파악되었으므로 그렇게 판단했을 것으로 저는 추정합니다.
그러나 기관부 소속 보수하사인 박성균 하사가 그 시각 함수쪽에서 순찰을 돌고 있었다는 사실을 함장은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누구나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개방된 공간에서 기관부 대원이 볼 일을 위해서라도 함수쪽으로 와 있었을 가능성 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함장의 잘못된 판단은 ‘실수’를 넘어 함의 안전과 대원의 생명을 지켜야 할 함장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저버린 치명적인 과실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결국 함수가 물 속으로 가라앉은 것은 해수가 여분의 공기마저 밀어내고 들어가 부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함수가 물 속으로 들어갔다고 하여 공기가 제로(0)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력을 상실했을 뿐 해수가 완전히 모든 곳을 채울 때까지 여전히 에어포켓(Air Pocket)은 존재할 수 있고 상당시간 호흡이 가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산소입니다. 아무리 에어포켓이 온전히 존재한다고 해도 그 안의 산소가 고갈되고 이산화탄소로 가득차버리면 결국 질식사하게 됩니다.
박성균 하사의 시신이 발견된 자이로실은 지하2층에 있습니다. 선체가 바로 서 있을 때는 지하2층이지만, 선체가 뒤집어지고 난 후에는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자이로실은 다른 곳과 달리 밀폐도가 높은 구획이므로 에어포켓(Air Pocket)이 빠져나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공간이므로 박 하사가 호흡을 위해 그곳으로 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박성균 하사가 얼마나 생존해 있다가 사망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배를 타고 항해를 했던 뱃사람으로서, 해군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진 해군장교 출신으로서, 그리고 생명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제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갇혀진 함수 안에서 박 하사가 생존을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하며 밀폐된 공간에서 혼자 처절하게 싸웠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정부와 당국 그리고 해군과 해경이 떠 있는 함수를 빤히 내려다 보면서 부표설치는 물론, 함수 확보는 물론, 수색구조를 위한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고 방치해 둔 바로 그 16시간22분 동안 말입니다.
책임을 다해야 할 사람들이 그 책임을 방기했을 때 어떠한 결과로 귀결되는지 우리는 정부와 군과 관련당국의 잘못된 판단과 부실한 조치와 직무유기로 인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2010년부터 2014년에 이르기까지 대형 해난사로를 통해 고귀한 생명들이 속절없이 스러져 가는 모습을 언제까지 보아야 하는지 통탄할 노릇입니다.
천안함 기관부소속 보수하사인 박성균 하사는 천안함 사고 당일 저녁 자신의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후타실, 기관실 등 복원된 CCTV 영상 속에서 그의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박 하사는 갑판부로 건너와 순찰당직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안함이 반파되자 선체는 기울어졌고 외부로 통하는 갑판부 통로를 찾지 못하고 혼자 유일하게 함수에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자이로실은 함수에서 기름탱크 및 해수탱크를 제외하고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을 제외하고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사고 직후 함수는 47m 수심에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고 이후 완전히 뒤집어 졌습니다. 따라서 함수가 뒤집어진 이후 자이로실은 침몰한 함수에서 가장 높은 위치이기에 그곳으로 이동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박성균 하사는 2010. 4. 24 함수 인양시 그곳에서 결국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7. 해저수색 및 탐색 - 사이드스캔소나 (Side Scan Sonar)
해군과 해경에는 사이드스캔소나(Side Scan Sonar)라는 장비가 있고, 모든 어선에는 <어군탐지기>가 있어 해저에 가라앉은 물체의 존재여부와 영상을 색상별로 뚜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마치 손바닥 보듯 바다 밑을 훑어볼 수 있습니다.
사이드스캔소나 (Side Scan Sonar) 사이드스캔소나는 주로 해저 지형의 음파 이미지를 고해상도로 제공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이는 해양지구과학에서 지질층을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Lurton, 2002). 사이드스캔소나는 목표물을 발견하는데 매우 유용한 장비로 쓰이고 있는데 예를 들어 선박의 잔해, 파이프, 케이블을 발견하기도 한다. (네이버지식검색) |
사이드스캔소나 장비의 성능이 얼마나 뛰어난가하면 해저에 가라앉은 물체의 모습을 거의 실물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심지어 해저에 파묻혀 있는 오래된 침선 조차도 그 형태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영상을 제공합니다. (자료: 인터넷 검색)
Side Scan Sonar Image
그러면 우리 해군 당국이 이러한 장비가 없거나 쓸 줄 몰라서 그렇게 손 놓고 있었던 것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국방부가 최근 북한의 미사일 추진체 파편을 찾아 인양하는 과정을 보면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北미사일 추진체 파편, 어떻게 찾았나 (헤럴드경제| 2016-02-11) 군이 북한 미사일 추진체 잔해물을 수거하면서 그 넓은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잔해물 수거가 가능했는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 7일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추진체에 자폭장치를 달아 추진체가 연료를 다 쓰고 분리돼 떨어지는 시점에 스스로 폭발해 산산조각이 났다. 우리 군 당국은 지난 2012년 북한 미사일 발사 당시 해상에 떨어진 추진체를 수거해 북한의 미사일 능력을 파악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북한은 이번에는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자폭장치를 달아 아예 우리 손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군이 지난 7일 수거해 9일 공개한 북한 미사일 페어링 추정물체 그러나 산산조각난 파편들이 해상에 부유하거나 수중으로 가라앉았고, 우리 군은 이를 집중 추적해 잔해물 상당수를 수거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군은 북한 미사일 발사 당일인 지난 7일 링스 해상작전헬기가 제주 서남방 90마일 해상에서 페어링으로 추정되는 물체 1개를 탐색해 이지스구축함 서애류성룡함이 이를 수거했다. 이 잔해물은 국방과학연구소로 이송됐다. 해군은 지난 8일 전북 군산 어청도 서남방 75마일 지점에서 수심 약 80m 해저에 있는 북한 미사일 1, 2단 추진체 연결부 추정 잔해물을 식별하고 수거했다. 구조함 통영함이 사이드스캔소나(수중물체탐지장치)로 잔해물 위치를 식별하고, 통영함에 탑재된 수중무인탐사기(ROV)를 이용해 잔해물을 인양했다. 우리 군이 ROV를 이용해 미사일 추진체 잔해물을 인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9일에는 기뢰탐색함인 김포함이 사이드스캔소나로 역서 전북 군산 어청도 서남방 65마일 수심 약 80m 해저에서 잔해물을 식별했다. 이후 해군은 기상 악화를 고려해 지난 10일부터 통영함에서 심해잠수사와 수중무인탐사기를 투입해 11일 새벽까지 밤샘 작업 끝에 추진체 연소가스 분사구 추정 잔해물 3개를 인양했다. 미사일 잔해물 탐색은 이지스구축함의 레이더가 1차로 미사일 궤적과 낙하 위치를 파악했다. ‘신의 방패’로 불리는 이지스구축함은 SPY-1D 다기능 위상배열 레이더가 함정 4면에 장착돼 있어 1000㎞ 밖의 탄도탄을 탐지할 수 있다. 또 500㎞의 먼 거리에서 접근해오는 1000여 개의 표적을 동시에 탐지, 추적이 가능하다. 두 번째로는 레이더가 파악한 낙하위치에 배치된 함정의 활약이 주효했다. 통영함과 소해함 등은 보유하고 있는 사이드스캔소나로 해저 수십미터 아래의 잔해물을 탐지했다. 이어 세 번째로, 위치가 파악된 잔해물 수거에는 우리 군이 활용 중인 무인잠수정(수중무인탐사기ㆍROV)이 투입됐다. 무인잠수정은 전세계 해군이 차세대 주력 전력으로 꼽는 신무기로 꼽힌다. 인원이 탑승할 필요가 없어 보다 안전하게 기존의 잠수함이 수행해 온 각종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네 번째로 해군의 심해잠수사가 투입돼 아직까지 무인잠수정으로 해결되지 않는 다양한 수거 작업 지원에 나섰다. 또한 해군의 각종 장비 운용 기술과 숙련된 경험도 더해졌다. 즉, 고도의 첨단장비와 이를 운용하는 인간의 기술력, 경륜이 더해져 잔해물을 성공적으로 수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탐색에는 해군 통영함과 소해함 등 함정 15척과 P-3 해상초계기, 링스 해상작전헬기 등 항공기 6대, 해난구조도(SSU) 43명 등이 참여했다. 김호진 통영함장(해군중령)은 “이지스 구축함과 추진체 예상 낙하지점에 사전 배치된 함정들이 레이더로 낙하위치를 정확히 추적함으로써 그 정보를 바탕으로 탐색이 용이했다”며 “먼저 통영함과 소해함이 해저 잔해물의 정확한 위치를 찾은 후 ROV로 물체 특성을 확인하고 심해잠수사까지 투입해 잔해물을 인양했다”고 설명했다. 출처 :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60211000904 |
북한의 미사일 추진체는 천안함 선체에 비하면 비교도 안될만큼 작은 물체에 불과합니다. 위 사진 추진체 페어링의 경우 불과 1~2m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 부품들이 가라앉은 곳은 수심이 80미터에 달하는 깊은 바다입니다.
또한 날아가던 물체가 폭발하여 산산조각나 떨어졌으므로 낙하 위치가 특정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군은 기사에서 보듯,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당일 망망대해에서 사이드스캔소나를 활용하여 소형 부품들을 모두 찾아서 인양했다>며 탐색 및 수색능력을 한껏 자랑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군은 2010년에도 그 이전 부터도 그런 장비와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우리 해군만의 능력이 아니라 현대 해상기술이 그것을 가능케 한지 오래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해양기술입니다.
그래서입니다. 백령도 서안 어느 지점에서 15층, 10층 빌딩규모의 대형 구조물이 각각 가라앉았는데, 그것을 이틀동안 찾지도 못하였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막상 찾고 보니 사고지점에서 불과 180미터 떨어진 지점에 있더라는 것은 아예 코메디에 가까운 얘기입니다.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이유에서든 이틀동안 찾지 않았던 것입니다.
8. 이틀동안 백령도 어선의 출입항을 금지시킨 군 당국
천안함 사고가 발생하자 즉각 군당국은 백령도 어선에 대하여 일체의 출입을 금지시켰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천안함이 어떠한 원인으로 침몰하였는지에 대해 특정되기 이전의 시점이므로 그 사고는 <선체가 반파된 해난사고>였으며 <수십명의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선박침몰사고>였던 것입니다.
백령도에는 사고지점 인근 장촌리에만 12척의 어선이 있으며 모두 어군탐지기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어군탐지기 역시 사이드스캔소나와 같이 소나를 이용하여 수중이나 해저의 물체를 식별하여 그 물체의 형태를 화면상에 보여주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선박사고가 발생하여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면 그 수색을 위해 가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박을 동원하여 수색에 협조를 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특히 평생을 백령도 인근 바다에서 어업을 생계의 수단으로 살아온 백령도 어민들에게 협조를 구했다면 불과 한두시간만에 찾을 수 있었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군 당국은 이틀이 지나서야 백령도 어선 선장들에게 협조를 구하였고 그 결과 해덕호 선장이 함미를 발견하였다고 언론에 보도됩니다.
그러면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우리 군은 천안함 선체의 수색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수색 이틀째인 28일 오후 군은 백령도 어선 선장들에게 협조를 구하고 어선 선장이 배를 몰고 나가서 선체를 발견하였으니 말입니다.
우리 군이 수색을 할 능력이 없어서 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군은 이틀이 지난 시점에서야 어선 선장들에게 협조를 구하였던 것일까요? 그러면서 군은 <진작에 어선 선장들에게 협조를 구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다>라는 말을 한 사실도 없습니다.
그저 우리 군은 이틀동안 수색을 했지만 찾지 못했다고만 발표하다가 이틀이 지나 어선 선장들에게 협조를 구했고 어선선장들이 나가서 수색한 끝에 천안함 함미와 함수를 찾습니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군은 반드시 분명한 답변을 해야만 하며 항소심을 통해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9. 함미를 뱔견한 해덕호 선장 장세광씨
천안함 사고후 출항이 금지되어 있다가 이틀 뒤인 28일 군은 백령도 어선 선장들을 모아놓고 협조를 구합니다. 천안함을 찾아 달라고.
그리고 바다로 나간 해덕호 선장 장세광씨는 천안함 함미를 발견하여 군에 통보합니다. 관련 기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해군보다 앞서 함미 위치 발견 ‘해덕호’ 선장 장세광씨>입니다.
해군보다 앞서 함미 위치 발견 ‘해덕호’ 선장 장세광씨 중앙일보 | 2010. 3. 30 | 정기환. 강기헌 기자 “제가 무슨 큰일을 했다고…. 더 중요한 것은 빨리 구출해 내는 일이겠지요.” 백령도 특산물인 까나리를 잡는 배가 해군 초계함 천안함의 함미 위치를 찾아냈다. 백령도 장촌리 어촌계 소속 까나리 배 6.5t짜리 해덕호다. 장세광(35·옹진군 백령면 장촌리·사진) 선장은 29일 오전에도 포구 한쪽에서 노란색 까나리 그물을 깁느라 바빴다. 천안함 함미가 가라앉은 곳이 드러나면서 수색구조활동은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장 선장은 28일 아침 옹진군 수산과로부터 천안함 수색활동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같은 마을의 어선 2척과 함께 오후 4시까지 작업해 달라는 것이었다. 바다로 나가니 유난히 추운 날씨였다. 장촌리 어선 3척은 해군 함정과 함께 천안함이 폭발한 연화리 앞바다로 이동했다. 어군탐지기를 켠 채 구역을 나누어 바다를 샅샅이 뒤져 나가기 시작했다. 날씨도 날씨지만 하루 종일 어군탐지기를 지켜보느라 눈이 빠질 것 같았다. 그는 “영화나 TV를 보면 어군탐지기에 물체가 포착될 때 ‘삐-’ 하는 소리가 나지만 우리 배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정된 작업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소득이 없었다. 해군의 요청도 있고 이왕 시작한 김에 해질 때까지 계속하기로 했다. 오후 5시쯤 해덕호 어군탐지기의 녹색 화면에 이상 물체를 표시하는 점이 잡혔다. 장 선장은 삼마니들이 ‘심 봤다’고 외칠 때의 심정을 느끼면서 해군에 “천안함을 찾았다”고 연락했다. 해덕호의 연락을 받은 해군은 이날 오후 사고 해역에 도착한 기뢰 제거함인 옹진함에 포착된 물체의 탐지를 의뢰했다. 오후 10시쯤 옹진함의 음파탐지기는 해덕호가 포착한 것이 30m 크기의 천안함 함미인 것으로 최종 확인했다. 침몰 위치는 백령도 서남방 2.7㎞에, 수심 45m 해역이었다. 천안함 사고 해역은 백령도 까나리 잡이 배들에는 익숙한 물길이다. 백령도는 요즘 포구마다 까나리 출어 준비가 한창이다. 어민들은 천안함 사고로 제철을 놓칠까 내심 걱정이다. 그러나 장 선장은 포구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해병들을 가리키며 “젊은이들이 저렇게 고생하는데 까나리가 대수겠느냐”고 했다. 백령도 주민의 주소득원인 까나리는 4월 초부터 5월 말까지가 제철이다. 장촌리에만 12척의 까나리 배가 있으며 장 선장은 한해 평균 150통의 까나리젓을 생산한다. 천안함 함미 확인 작업에 수훈을 세운 해덕호의 어군탐지기는 정작 까나리 잡이에는 별 쓸모가 없다고 한다. 까나리가 회유성 어류이기 때문이다. 대신 6월부터의 어초 낚시철이 되면 우럭·놀래기 등이 많이 서식하는 암초를 찾는 데 큰 활약을 한다. 백령도=정기환·강기헌 기자 |
위 기사에서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마지막 부분 <해덕호의 어군탐지기는 정작 까나리 잡이에는 별 쓸모가 없다고 한다. 까나리가 회유성 어류이기 때문이다. 대신 6월부터의 어초 낚시철이 되면 우럭·놀래기 등이 많이 서식하는 암초를 찾는 데 큰 활약을 한다.>라는 부분입니다.
이 기사는 어군탐지기의 성능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데, <우럭·놀래기 등이 많이 서식하는 암초를 찾는 데 큰 활약을 한다>고 하니 암초에 비해 수 십배 혹은 수 백배나 더 큰 규모의 물체인 천안함 선체를 어군탐지기가 얼마나 쉽게 찾을 수 있을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10. 함미 뱔견 해덕호 장세광 선장의 진술
2011년 가을 저는 변호사님들과 함께 백령도를 방문하여 천안함 사고 지역을 둘러본 적이 있는데 그때 저희는 장세광 선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세광씨에게 직접 들은 얘기는 위의 기사의 내용과 사뭇 달랐습니다.
장세광 씨는 함미를 찾던 당일, <바다로 나가기 전 군에서 좌표를 주었고, 그 좌표를 보고 나갔더니 거기에 천안함이 있더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1심에서는 전혀 다루지를 않았고 증인신청도 하지 않았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확인이 필요하다면 항소심에서 증인으로 요청할 생각입니다.
이러한 진술에 대한 확인이 필요한 이유는, 군이 수색하고 찾을 수 있는 장비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작사거 함수위치를 추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찾지 않고 있다가 왜 3일째 되어서야 어선 선장들에게 좌표를 손에 쥐어주며 찾게 하였는지 그 배경과 진의를 반드시 밝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11. 해경은 27일 함미 발견하여 군에 통보했으나 군은 묵살
군이 어선에 협조를 구하여 함미를 찾게 하였던 날이 3월 28일, 그 하루 전인 3월 27일 이미 해경은 함미를 발견하였고 그 사실을 군에 통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심지어 해경은 위치(좌표)는 물론 수심측정기를 통해 나타난 그래프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군은 그 사실을 비밀에 붙이고 묵살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28일 어선들을 내보내 찾게 합니다.
KBS 보도에 따르면 해경이 군에 통보한 내용과 다음날 어선이 함미를 발견하여 신고한 내용이 수심과 모양까지 똑같았다고 합니다 .
KBS 정윤섭 기자는 “해군이 해경의 통보에 따라 함미의 위치를 확인했다면 수색작업은 최소한 하루를 더 벌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해군이 해경의 통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해군은 해경이 함미 추정위치를 통보해 왔는지 여부조차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라고 보도합니다.
해군은 해경이 함미추정위치를 통보해 왔는지 여부조차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하니, 국가기관이라고 보기엔 참으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습니다. 48명의 인명이 선체와 함께 물 속으로 가라앉았음에도 해군은 적극적인 수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망망대해 수심 80미터에 가라앉은 미사일 파편조각은 당일로 즉각 찾아서 인양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해군은 사고 다음 날 해경이 함미를 찾아 통보해 주었는데도 묵살합니다.
사고 다음날 오후까지 16시간22분 동안 떠 있었던 함수도 가라앉도록 방치한 것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해경이 함미를 찾아서 통보해 주었는데도 묵살하는 군의 처신과 태도가 과연 <적극적으로 수색을 하였으며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던 것인지, 무엇을 감추기 위해 그랬던 것인지, 무엇이 더 시급해서 그랬던 것인지 항소심에서 반드시 밝혀야 할 사안입니다.
12. 군 당국이 첫 이틀동안 다른 구조업무에 몰입해야만 했던 이유
위에 언급한 (1)부터 (11)항까지의 내용과 같이 군당국은 첫 이틀동안 천안함 수색에 몰입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저는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이 추정해 봅니다.
저는 천안함 사고 원인과 관련하여 <좌초 후 충돌>로 결론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는 지난 5년여의 재판과정을 통하여 흔들림 없이 주장하였으며 관련 자료와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였습니다.
천안함은 최초로 <좌초사고>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좌초사고에서는 선체하부에 손상이 발생하여 침수가 되는 정도의 손상을 입었을 뿐 반파에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평택2함대에서 해군작전상황도에 기록된 별표와 함께 ‘최초좌초’ 표기가 선명한 지점의 해저지반 상태는 S(Sand)와 Sh(Shell입니다. 그것은 '모래와 조개껍데기가 쌓인 저수심지역'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에서 좌초한 천안함은 선저바닥이 찢어지면서 침수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로인해 기동력에 문제가 발생한 천안함은 이후 인근 해역을 항행하던 잠수함과 충돌하여 반파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천안함과 충돌한 잠수함 역시 침몰하여 가라앉았으며 그 지점이 바로 소위 <제3의 부표>로 알려진 용트림바위 앞 해상입니다.
<제3의 부표>와 관련된 논란 역시 1심에서 상당부분 다루어졌으며 저는 그와 관련 집중취재를 하고 <한 준위 다른 곳에서 숨졌다>는 취재를 하였던 KBS 세 기자(황현택, 이병도, 최영윤 기자)의 취재내용과 녹취록을 오랜 설득 끝에 제출받아 공증을 거친 후 재판부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천안함이 혼자 스스로 항해하다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는 좌초하는 사고를 겪고 이후 다른 함선과 충돌하는 두 번째 사고까지 겹쳤다는 것이 참으로 황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지 않은 정부와 군 당국의 잘못입니다.
운전자가 차를 몰아 골목길을 들어서다 담벼락을 긁은(좌초) 후 당황하여 후진해 골목을 빠져나가다가 달려오는 트럭과 부딪치는(충돌) 사고는 육상에서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사고이듯, 해상에서도 좌초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사고이며 좌초 후 기동력에 문제가 생긴 선박이 인근을 항행하는 다른 선박과 충돌하는 것 또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모두 <교통사고>일 뿐입니다.
캄캄한 야간에, 길이 88미터에 이르는 물체가 표류하거나 기동력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 자체로 거대한 해상교통 장애물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안함과 충돌한 잠수함의 국적은 미국과 매우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제3국으로 추정되며, 그 함선 역시 코닝타워 부분의 파손으로 인해 상당한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좌측의 사진은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질의에 대한 답변을 하던 중 참모가 전해준 VIP메모를 기자가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입니다.
그 속에는 ‘잠수함’이라는 표기를 지운 것과 ‘보이지 않는 2척’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수함’이라는 단어가 다행히 희미하게라도 인식됩니다만, 그것을 지운 것은 천안함과 함께 사고를 당한 잠수함에 대해서는 관련성을 언급을 하지 않는 쪽으로 당국의 방침이 정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분석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천안함 사고에서 ‘잠수함과의 충돌’을 배제해 버리고, 그 부분을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사고의 전반적인 내용을 변질시키다 보니 무수히 많은 의혹과 오류 그리고 이해불가능한 행위들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 판단합니다.
용트림바위 앞 해상, 제3의 부표가 있는 수심 25미터 지점에 가라앉은 잠수함에서 구조와 인양업무를 수행하던 한주호 준위 역시 그곳에서 사고로 순직하였으며 이에 미 대사와 한미연합사령관은 백령도로 날아 와 유가족을 위로하였습니다. 참으로 이례적인 일입니다.
한국군 내부에서 발생한 사고에 미 대사와 한미연합사령관이 헬기타고 백령도로 날아간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고 봉투를 전달하는 것 역시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분명 납득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이 사건이 어떤 형태로든 미국 또는 미국과 매우 우호적인 제3국과의 관련성이 있음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 저는 판단합니다.
미 해군(태평양 7함대)은 천안함 사고 초기부터 백령도 인근에 집결하여 매우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으나 천안함 구조업무와 관련 어떠한 역할도 한 사실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주호 준위가 사고를 당하였을 때 살보함 산소탱크를 이용하였던 것이 유일한 협조관계인 것으로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고 직후 미국 군당국과 한국의 군당국 모두에게 가장 중요하고 당면한 관심사가 바로 천안함과 충돌하여 침몰한 제3국의 잠수함에 대한 구조업무였던 것으로 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천안함 보다도 제3국 잠수함에 대한 구조업무를 우선시 하였을까에 대해 분석하고 추정해 봅니다.
13. 우리 군이 천안함보다 침몰 잠수함에 대한 구조업무에 집중한 이유
우리 군이 사대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어서, 혹은 우호국의 함선이 우리 해역에서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국가간 예우로 그에 대한 구조를 더 우선시 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지 않습니다.
충돌사고로 인해 두 집단의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천안함과 잠수함, 모두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면 어느 쪽을 더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경우 현실적으로 인명구조의 가능성이 높은 쪽을 우선하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저는 분석합니다.
첫째, 천안함 함수의 경우, 생존자 56명은 함수 갑판위에서 모두 구조되었고 더 이상 함수에 남아있는 생존자가 없다는 함장의 보고로 인해 군당국 입장에서는 함수에 대한 수색은 당분간 시급을 요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순찰 당직근무자인 박성균 하사가 함수에 낙오되어 있었으며 이후 함수 인양시 시신으로 발견됨)
둘째, 천안함 함미의 경우, 순식간에 47미터 수심의 해저에 가라앉았으며, 생존자가 있다면 해군이므로 당연히 헤엄쳐서 탈출하였을 터인데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아 침몰 후 불과 수분 내지 수십분 내에 이미 전원 익사하였을 것으로 군당국에서는 결론을 내렸지 않았을까 저는 분석합니다. 따라서 함미 역시 우리 군당국 입장에서는 시급을 요하는 사안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셋째, 천안함과 충돌한 잠수함의 경우, 가라앉은 곳은 수심이 불과 25미터에 불과하여 접근이 어렵지 않으며 잠수함은 반파된 것이 아니라 상부 코닝타워 부분이 파손되어 침수가 발생하였고 수밀격벽이 양호한 잠수함의 특성상 내부 생존자들이 다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침몰한 잠수함 쪽이 인명구조의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하였을 것으로 저는 분석합니다.
따라서 천안함 사고 직후 미국 군당국과 우리 군 당국은 모두 천안함 함수 함미 보다는 침몰 잠수함 인근에서 구조업무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만, 문제는 정부와 군 당국이 그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국민들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4. 천안함이 충돌로 침몰하였다는 보도
최초 좌초를 겪어 선체하부에 손상을 입고 침수가 유발된 천안함은 기동력에 상당한 문제가 발생한 상황에서 인근을 항행하던 잠수함과 충돌하여 반파 침몰에 이르게 된 <천안함 침몰 사고>는 <좌초 그리고 충돌>이라는 전형적인 해난사고인 것입니다.
이렇게 복합적으로 발생한 해난 사고의 경우 <좌초>에 조명하면 <좌초사고>가 되고 <충돌>에 주목하면 <충돌사고>가 됩니다. 정확하게는 <좌초후 충돌>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천안함 사고와 관련하여 최초의 언론보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침수되면서 5km 표류 후 두 동강. <침수>는 좌초로 인해 발생한 현상입니다. 5km를 표류하려면 최소한 4~50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두 동강>은 충돌로 인해 발생한 현상입니다.
<충돌>을 보도한 언론은 YTN과 이투데이 두 매체가 있습니다. 그 기사를 쓴 기자들은 분명 군관계자와의 접촉을 통해 그 사실을 취재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천안함 사고가 발생한 직후 불과 한 시간 20분이 지난 10:42분에 YTN은 천안함이 <뭔가에 충돌한 뒤에 침몰중인 것으로 알고있다>며 군 관계자들이 전하고 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투데이는 사고 후 4시간이 지난 시각인 새벽 1:30분경 <군 소식통에 의하면 <무언가에 충돌한 뒤 침몰하기 시작했다>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사실관계 역시 항소심에서 반드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형사고의 경우 최초의 상황을 전하는 내용이 진실에 가깝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상황만을 다급하게 전하는 초기에는 거짓과 왜곡이 덧씌워질 여지가 비교적 적기 때문입니다.
15. 2010. 4. 4일자 문제의 글을 쓸 당시 ;
앞에 분석한 내용들은 천안함 사고 이후 몇 개월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몇 년에 걸쳐 피고인인 제가 파악하고 분석한 총체적인 내용입니다.
따라서 사건 초기에 해당하는 2010년 4월 4일 그 당시에는 도대체 왜? 군당국이 천안함 함수, 함미에 대한 구조업무에 그토록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구조지연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선박과 바다에 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피고인으로서는 정부와 군 당국에 대한 원망과 실망으로인해 극도의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형 해난사고의 경우, 우리 정부와 해군 그리고 해경등 관계기관들이 과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지 여부는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대형 해난사고인 세월호 침몰사고의 경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육지가 빤히 보이는 연안에서 여객선이 물 속으로 들어간 후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하지 못하고 304명의 희생자를 발생시킨 ‘세월호 사건’에서 과연 국가는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을 뼈저리게 겪었던 정부가 무려 4년이 흐른 뒤에도 대처능력이 그 정도 수준이었다면, 거슬러 올라가 천안함이 물 속으로 사라진 후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하지 못했던 2010년의 상황은 어떠한 수준이었을지 충분히 유추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함미와 함수가 발견되었거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있었음에도 비밀에 붙이며 이틀이라는 시간을 보낸 정부와 군 당국의 처신에 대해, 그 내용을 제대로 안다면 분노하지 않을 국민이 누가 있겠습니까.
선박, 항해, 운항, 해군, 조선 등 천안함 사고와 관련 지식과 경험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밀한 분석을 한 피고인은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을 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2010. 4. 4일자 글을 통해 표출되었고, 이후 4월 15일경 제가 국회추천 합조단 조사위원으로 위촉됨으로써 저는 천안함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천안함을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면서 사고의 원인을 조사할 수 있었으며 그런 과정에서 2010. 6. 11일 국방부장관을 고발하였던 것입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으로서 정부의 무능하고 부실한 대처능력에 대해 얼마든지 질타하고 원망할 수 있는 것 - 그것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이며 민주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라 생각합니다.
피고인 신상철
덧글 :
1, 다음 글은 '유죄 판결항목 < ➁증거인멸 > 부분에 대하여'가 될 것입니다.
2. 오는 4월 21일 목요일 오전 11시 서관 312호에서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