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들머리인 덕산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부산에서 진주까지 남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수평으로 달리다가 진주에서 단성 나들목까지 수직으로 줄달음치는 고속도로와 의령 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자굴산 재를 넘어 합천을 휘둘러 단성으로 흘러가는 국도의 길이 있다.
덕산과 인연을 맺고 그를 찾아다니는 처음 몇 년 동안은 당연히 그러려니 고속도로로 다녔지만 요 근래 직삼각형의 빗변처럼 가로 질러가는 국도의 맛을 알고 부터는 여유롭게 이 길을 이용하고 있다.
국도가 좋은 것은 우선 거리가 단축되어 기름값이 절약되고 과속을 하지 않아도 결코 고속도로보다 늦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당한 굽이와 고비가 있어 길이 단조롭지가 않다.
뿐만 아니라 지정속도로 달리다 보면 시야가 넓어진다.
주마간산처럼 달리며 이 산 저 산을 휘둘러 볼 수도 있고 정겨운 곳이면 어디서라도 쉴 수도 있다. 앞만 보며 질주하는 고속도로와는 달리 옆도 뒤도 관망하며 갈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인생도 그러하지 않겠는가.
고속도로처럼 바쁘게 사는 삶이 있는가 하면 국도나 지방도처럼 여유롭게 사는 삶도 있다.
인생은 무대에 올려진 한 편의 연극. 온 세상은 무대이고, 온 사람은 배우일 뿐, 인생은 한 편의 짧은 단막극에 불과한데 무엇 때문에 세상이 그리 바빠야만 할까?
보름 전, 청암으로 귀농한 동천님한테서 덕산에 심을 관상수 묘목 몇 그루를 얻어 왔다.
청단풍 홍단풍은 마당 들머리와 동창을 비켜난 바위등 너머 심었고, 보리수와 석류는 뒤 언덕빼기에 심었다. 기관지염에 좋다는 개복숭아는 장독대가 들어설 뒤안에 심었고 그 옆엔 산초와 배롱나무를 심었다.
오늘은 서울 종묘상에서 주문 배달된 유실수를 심었다.
계란만한 개량 대추와 요강이 날라간다는 슈퍼 복분자, 어른 주먹만한 대봉 감나무와 신고 배와 홍도 사과, 거봉과 조생 캠벨의 포도나무와 백매화와 홍매화, 개량 모과와 개량 살구와 자두를 심었다. 당뇨에 좋다는 무화과도 언덕바지 구릉에 심었다.
계절 따라 색색이 열려 내 생명의 에네지원이 되어 줄 이 열매나무들은 이제 나와 한 식구가 되었다. 내가 그들을 보살펴주는 만큼 그들은 내게 풍성한 열매를 제공해 주겠지.
이마의 땀을 안경 너머 닦고 덕산을 떠나 장수로 향한다.
입석을 지나 산청으로 가는 적멸의 지방도에 봄은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있다.
만개한 매화꽃 내리받이엔 쑥을 캐는 봄여인이 한가하고 여울 건너 산수유는 봄바람에 노란 머리를 흔들고 있다.
함양을 거쳐 해발 500미터의 장계면에 도착한 것은 해가 서산에 빠져들 무렵.
작년 장수군에서 의욕적으로 마련한 귀농인의 마을 하늘소를 찾았다.
인간 중심적 삶의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과 어우러진 공존공생의 삶을 선택하고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12가구의 자연인들이 이 곳에 장수하늘소라는 마을을 만들었다.
장계면의 잘 다듬어진 분지 형태의 고도가 한 눈에 들어오는 높다란 구릉지대의 어느 흙집에 부산귀농학교의 한 후배 동문이 살고 있다.
붉게 그을린 그의 얼굴은 집과 마을과 생계의 터전인 농토를 만드느라 일년을 넘게 받친 그의 열정의 소산물이리라.
편하고 안정된 도회지의 화이트생활을 포기한 대가로 그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건 지금은 무엇이며 미래는 무엇일까?
투여된 고된 노동만큼 소득은 기대되지 않고 누적되는 건 가족에 대한 그리움뿐이라는데 그래도 그가 이 땅을 밟고 살아가는 이유는 땅과 물을 살리고 오염된 먹거리를 되살려 지속가능한 농법으로 건강한 생활터전을 길이 후손들에게 물려주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아궁이에 장작을 밀어 넣으며 그와 잔을 기울이는데 때늦은 봄눈이 온 밤을 하얗게 수놓고 있다.
잘 뎁혀진 흙방에서 늦은 잠을 자고 다음날은 함양을 거쳐 남도의 봄을 찾아 나섰다.
때아닌 눈보라가 차창을 흔들던 고지의 장수와는 달리 진주를 지나 순천 승주로 달리는 남도의 길은 마을 자락자락에 핀 매화가 연록의 풀들과 함께 무척이나 유화스럽다.
낙안읍성의 역방향으로 난 길로 물을 건너고 꼬불 산길을 따라 올라보면 조계산이 눈높이에서 보이는 8부 능선의 고산에 초자연인, 한원식 선생이 살고 있다.
3살 연배인 선생을 알게 된 것은 귀농학교 후배 동문 결혼식의 주례사를 경청할 때였다.
사람이 참답게 사는 길인 참살이에 대한 강연 같은 주례사를 경청하고는 선생의 삶의 방식에 많은 부분 공감하게 되었고 언젠가 그의 삶터를 방문하고 싶었는데 오늘 예고 없이 불쑥 그를 찾아보러 온 것이다.
도제가 되는 귀농학교 후배의 안내로 방문한 선생의 집은 화전민이 쓰다 버리고 간 산호(山戶)를 수리한 전기도 전화도 없는 다 쓰러져 가는 외딴 토굴이었다.
그가 개간하여 짓는 비탈진 천여 평의 옥전도 경운 없이 씨앗만 뿌려 놓은 뒤 잘 부숙된 거름을 덮어 줄뿐인데 온갖 미생물과 지렁이들이 꿈틀거려 그것들이 거의 농사를 다 지어준다. 뿐만 아니라 그가 짓는 농사의 종자는 지금은 국내에서 거의 멸종된 토종씨앗들뿐이다.
생산량이나 맛은 개량종에 다소 뒤질지 모르지만 우리 땅에는 우리 씨앗이 가장 자연스럽게 잘 자란다고 한다.
그가 주창하는 참살이의 삶은 초자연적인 삶이었다.
집은 비바람만 막으면 족하는 존재고 옷은 추우면 입고 더우면 벗는다.
한 여름을 그는 그 고지의 밭에서 발가벗은 채 동물처럼 살고 있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그것은 경쟁과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리라.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을 떠나 자연 속에서 자연을 헤치지 않으며 자연이 주는 열매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살아가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아주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물질은 때론 인간을 만족시키며 행복하게 해 주지만 물질로 얻은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물질이 사라지면 그 행복 또한 같이 사라진다.
인간의 행복은 마음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것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서 그것을 얻기 위해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간섭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물질이 주는 행복에만 안주해 온 것이 아닐까?
한 선생의 참살이 강연을 한 차례 더 듣고 늦은 밤의 방문을 열어보니 2월 보름달이 눈 쌓인 고산 위를 푸르게 밝히고 있다. 마을로 내려왔다.
두 동문이 살고 있는 이 마을의 절반은 빈집인데 무상임대로 사는 한 동문의 흙방에서 일박하기로 했다. 3칸 짜리 일자형 한옥인데 지붕만 스레이트로 개조되었을 뿐 벽체나 마루나 부엌 등은 모두 초가 한옥의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문풍지가 달린 작은 방문을 열고 허리를 굽혀 들어간 두어 평되는 부엌방이 너무도 낯이 익다.
벽면의 기둥과 보는 육송의 구불퉁한 원형대로 이어져 자연미가 특출하고 서까래는 사선으로 가지런히 뻗어 안정성을 보이는데 도배지 없는 흙벽의 속살과 함께 보는 이의 마음을 참으로 편안하게 해주고 있다.
3월의 꽃샘추위로 바깥은 시베리아인데 방은 아침에 넣은 군불로 절절 끓는다.
흙집이 건강에 좋다는 말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생기력과 해독력, 습도 및 온도조절력과 통풍력에 열 효율성 또한 높고 항균력과 원적외선의 방출로 인한 건강성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신비로운 효력을 가진 황토를 소재로 지은 집은 그 효능뿐만 아니라 외적인 모양 또한 서정적이라 우리의 마음까지도 편안하게 해준다.
그러한 집을 짓고 싶고 그러한 집에서 살고 싶다. 사라져 가는 우리 것들의 아름다움을 되찾아 그의 풍미를 맛깔스럽게 느끼며 살고 싶다.
흙벽돌로 모가 난 집에 서구식 인테리어의 마감은 흙의 기능과 생활의 편리함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하여 요즘 유행처럼 지어지고 있지만 넉넉한 것은 풍요를 주지만 때론 소중함을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다.
전통 흙집이 주는 자연미와 곡선미, 자연과의 조화는 때론 불편하고 누추하지만 작고 아름다움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스스로 일깨워주기도 한다.
후배 동문의 끓는 황토방에서 한 밤을 보내고 늦은 기상을 하니 만신이 개운하다.
어제와는 달리 날씨가 잠잠하다. 침묵의 고산 마을을 벗어나 승주로 나왔다.
'봄눈 녹 듯'이란 말처럼 엊그제의 눈은 흔적이 없다. 돋을 양지 둔덕에 선 버드나무가 파란 물을 뿜고 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귀착지, 선암사로 향했다.
송광사가 우리 불교계의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근본 사찰이라면 선암사는 조계종 다음으로 큰 교세를 가진 태고종의 총본산이다. 산 하나 사이를 두고 이웃한 송광사의 화엄한 기세에 눌려 세인의 주목을 오랫동안 받아오지 못한 것이 오히려 적막한 산골 속에 자리한 엄숙한 예배처로서 그 이름값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에 통곡하라.
정호승의 선암사 시를 생각하며 붙잡고 울어야 할 등 굽은 소나무를 생각하며 걷는, 부드러운 흙길로 연결된 선암사로 가는 공적한 길은 마음 속 먼지까지 씻어 줄 듯 맑은 계류를 따라 구부렁이 이어져 있다.
부도밭을 지나고 목장승을 만나고 승선교를 건너고 강선루를 돌아 일주문에 고개 숙여 대웅전에 엎드릴 때, 낭랑한 목탁소리로 이어진 스님들의 사시예불이 귓전을 파고든다.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지심귀명례...'
노스님의 목탁에 목청 높여 예불하는 젊은 학승들...
가족과 연인과 친지와 지우를 버리고 고난한 수행의 길을 자처한 저들의 의연한 모습을 보면 삶이란 때로 엄숙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적적한 산골 속 절이요,
쓸쓸한 숲 아래의 중일세.
마음속 티끌은 온통 씻어 떨어뜨렸고,
지혜의 물은 맑고 용하기도 하네.'
이 스님들이 사는 선암사를 고려의 시인 김극기는 이렇게 읊었다.
적멸의 산골에서 마음의 때를 씻어 지혜를 얻으려는 본연의 삶이 어찌 예나 지금에 다름이 있으리오. .내 안의 세계에서 생성되는 번뇌의 원인을 직시하고 이를 파악함으로써, 존재론적으로 부과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게 인간의 소망이다.
그러나 마음이 부처(卽心是佛)인데 무엇을 그리 소망하여야 하는가.
시방삼세(十方三世) 제망찰해(帝網刹海) 상주일체(常主一切)가 모두 부처라 하지 않았던가.
벽의 아랫부분에 창살이 나 있어 환기와 숲 속 경관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선암사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공허(空虛)한 마음을 배설하여 본다.
첫댓글 남도의 여행길 언제나 좋습니다 자연과 사람과 눈물과 느낌을 동시에 다 읽도록 해 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