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5월21일
냉장고가 꽃밭이다.
내가 새댁으로 불리던 30년 전의 추억이 식탁 위로 풍선이 되어 날아다닌다. 어제 유튜브에서 오이 물김치 담그는 것을 배웠다. 고급 한정식집에서 나오는 물김치라고 한다. 한식을 좋아해서 관심이 갔다. 오이 6개, 노랑 피망 빨강 피망, 홍고추 청양고추 쪽파 한 단 준비했다.
방법은 늘 해오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쉽게 할 수 있었다. 밀가루 풀 대신 밥 한 주걱을 믹서기로 갈아서 하니 간단했다. 비주얼이 너무 예뻐서 사진으로 남겼다. 노랗고 빨갛고 초록색에 색의 조합이 예술이었다. 예전에 은사님 모시고 자주 가던 유명한 한정식집에서 맛 본 물김치 맛이 났다. 얌전하고 보기에도 좋고 심심한 국물 맛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오이 물김치 담그기는 완전 한 성공이다.
새댁의 필수 덕목은 가계부와 요리책이었다. 여성 잡지를 사면 부록으로 따라오던 가계부를 두어 달은 꼼꼼하게 적다가 점점 빠트리고 지나가는 날이 많아지면서 나중에는 흐지부지 끝이 났다. 친절하게 가계부가 오늘의 요리를 알려주었다. 메모해서 냉장고에 붙여놓고 어설프지만, 열심히 진지하게 요리를 했다. 퇴근하는 남편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우왕좌왕 하면서 요리를 한 기억이 난다.
요리책이 닳아서 너덜해질 정도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 탓도 있고 무엇보다 남편 식성이 좋아서 무엇이든 투정 없이 먹어줘서 요리하는 것이 즐거웠다. 물론 한창 나이인 것도 있었지만 식성이 좋아서 국 대접을 냉면그릇으로 할 정도였다. 엄마가 처음에는 반상기 세트로 국그릇을 사주셨는데 나중에는 냉면그릇을 몇 개 사준 기억이 난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유식을 만들 때 요리책을 식탁에 놓고 함께 살았다. 애완견을 키우듯이 그때는 요리책과 가게부에서 배우고 익혔다. 철저하게 책에 적힌 그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량컵을 사용했던 재미있는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것이 행복했고 즐거웠고 지금도 열심히 살은 내 모습이 더없이 아름답다. 잘했다.
요즘 새댁들은 어떻게 하면서 살아갈까? 새댁들과 교류가 없어서 잘 모른다. 지금 내 모습에서 추측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검색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 원하는 요리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예전보다 더 간편하고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알려준다. 모르면 다시 보기로 검색해서 반복해서 볼 수 있다. 그저께는 마늘종으로 장아찌를 만들었다. 번거로운 생각이 들어서 포기하고 살았는데 알려주는 방식으로 따라해 보니 만족도 최고다. 만든 사람이 최고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친구에게 오이 물김치 담가보라고 레시피를 보내주었다. 요리하는 것 싫다고 해서 웃음이 빵 터졌다. “맞아 다 좋아하면 재미없지? 그냥 사 먹어 친구야!” 냉장고에 오이 물김치랑 나물장아찌 양파장아찌를 담은 유리병이 소품처럼 앉아 있다. 냉장고 문을 여니 꽃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