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교육청 남산도서관[ 서울特別市敎育廳 南山圖書館 ]
정의
서울특별시 용산구 소월로 109(후암동 30-84)에 있는 공공도서관.
내용
1922년 7월 1일 경성부 고시(告示) 제19호로 「경성부립도서관 규정」을 제정하고, 같은 해 10월 5일 명동2가 소재 구한성병원을 개수하여 경성부립도서관으로 설립하였는데, 이 도서관이 오늘날 서울특별시립남산도서관의 전신이다. 그 뒤 1926년 5월 이 도서관은 소공동의 대관정(大觀亭) 건물로 이전하였으며, 이듬해 6월 3층 건물로서 열람석 500석의 신관을 건축하였다. 일제의 위장된 문화정책의 산물로 태어난 경성부립도서관은 식민지의 교화(敎化)라는 통치목적을 위한 도구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우리의 손으로 만든 우리 민족을 위한 공공도서관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1946년 9월 28일 군정법령(軍政法令) 제106호에 의거, 경성부를 서울시로 개칭함과 동시에 이 도서관도 서울시립남대문도서관으로 개칭하였으며, 1949년 8월 15일 서울특별시 승격에 따라 서울특별시립남대문도서관으로 개칭되었다. 또한 1963년 11월 24일 서울특별시의 이전계획에 따라 용산구 후암동 남산공원 내에 대지 1만3292㎡, 건평 9,362㎡의 신건물을 건립하고, 1964년 1월 1일 교육자치제 부활로 서울특별시교육위원회로 이관되어 1965년 1월 27일 개관, 1965년 2월 13일 서울특별시립남산도서관으로 개칭되었다. 「서울특별시교육청 행정기구 설치 조례」가 개정되어 2017년 2월 서울특별시립남산도서관은 서울특별시교육청남산도서관으로 개칭되었다.
1979년부터 자료이용의 극대화와 독서인구 저변확대를 위하여 폐가제로 운영하던 자료이용방법을 완전개가제로 전환하였고, 1995년부터 전 장서의 관외대출, 1997년 자료 검색 및 대출의 전산화 과정을 거쳐 현재 3실의 주제별 열람실(인문사회과학실, 어문학실, 자연과학·교원자료실)과 전자정보실, 정기간행물실, 취업정보·장애인자료실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전자정보실은 국가통신망을 통한 인터넷, PC통신 등의 서비스와 각종 멀티미디어자료, 주문형자료의 제공, 위성방송 제공 등으로 빠르게 변하는 정보사회에서 정보제공자로서의 도서관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또한 시간적·공간적 제약으로 인하여 도서관 이용이 어려운 지역주민, 직장인, 군인들을 위하여 자동차에 책을 싣고 직접 찾아가 대출하여주는 이동도서관을 운영함으로써 시민의 교양함양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독서회와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교실을 통하여 독서의 생활화와 도서관이용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또한 백일장과 독후감상문쓰기 행사 등을 통해 독서인구의 저변확대 및 범시민 독서생활화를 위해 진력하고 있다. 학교도서실 운영을 지원함으로써 학교교육과 연계한 독서지도에도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사회교육 및 문화기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하여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정기적인 강좌를 개설하고, 독서자료를 개발하여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배포하여 주고 있으며, 경제적인 사정으로 작품발표의 기회를 가질 수 없는 무명작가들에게 무료로 전시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다.
지역주민들의 자연스러운 문화접근과 정서순화를 위하여 상설문화전시실을 마련하여 사진전·미술전·서예전·시화전 등 각종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들의 여가선용과 정서순화를 위하여 교양강좌 등의 각종 문화행사와 영화·슬라이드·비디오 상영 및 음악감상의 기회도 부여하고 있다. 주요 시설로는 각 자료실과 1,120석의 열람석, 서고, 99석의 시청각실, 식당·매점·휴게실·지정흡연실 등이 있다. 1976년 4월 한국도서관협회의 도서관상을 수상하였고, 1986년 12월 창의적 행정풍토확립시범기관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남산도서관60년사』(서울특별시립남산도서관 편, 1982)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후암동
굴곡의 역사를 걸어온 골목
요약 후암동은 용산구에 속한 마을로 남산 서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 지역으로, 한성부 남부 둔지방 전생서 내계와 외계에 속하였다. 남산의 지리적 위치와 상징성 때문일까.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신궁이 위치했다가, 해방 후에는 이승만 동상이 세워졌고, 지금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들어서는 등 후암동은 굴곡의 역사를 그렇게 견뎌내야 했다. 한양도성 내사산(內四山)의 하나인 남산자락에 위치해 서울의 역사와 함께해온 후암동. 그 위치 때문에 일제강점기를 시작으로 이승만, 박정희 정부를 거치면서 다사다난했던 역사를 품고 있다. 서울의 중심에서 근현대 굴곡의 역사를 걸어온 골목, 후암동으로 가보자.
1. 후암동 변천과정
두텁바위 마을을 뜻하는 후암동은 조선후기 남부 둔지방 전생서 내계와 외계에 속하였다가, 마을이 커지며 후암동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며 조선신궁이 세워진 후, 일본인 마을이 되기도 했던 이 마을은 1945년 광복이 되어서야 옛이름을 되찾는다.
[골목,이야기] 굴곡의 역사를 걸어온 후암동…①변천과정
일본에게 빼앗긴 마을, 광복과 함께 돌아오다
일제에 의해 이름과 마을 모두를 빼앗겼지만 사람들은 옛기억을 잊지 않았고, 그 덕에 두텁바위, '후암'이란 이름은 역사 앞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비록 바위는 이제 사라졌지만, '두텁바위'라는 이름은 길과 마을의 이름으로 계속 전해지고 있다.
후암동 전경 @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제공
후암동 변천과정
1751년 한성부 남부 둔지방(성외) 전생서내계 · 외계
1886년 한성부 용산방 후암동 ( 한성근방도 표기)
1911년 경성부 한지면 전생동 · 갈월리
1914년 경성부 한지면 삼판통( 三 坂 通 )
1943년 경성부 용산구 삼판통
1946년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厚岩洞 )
1985년 도동2가 통합,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2. 남산자락의 역사
마을의 언덕을 지나 남산 자락에 오르면 극적인 사건들을 지나온 후암동의 근현대사를 만나볼 수 있다 . 한양도성이 지나는 자리이기도 했던 남산자락은 일제강점기 조선신궁으로 훼손 된 후, 역사의 중심에 선다. 해방 후엔 이승만 동상이 세워졌고, 박정희 정부 시기엔 안중근의사기념관이 건립되는 등 굴곡의 근현대사를 견뎌내야 했다.
[골목,이야기] 굴곡의 역사를 걸어온 후암동…②남산자락의 역사
남산자락은 매 시대마다 권력에 의해 이용되어온 안타까운 공간이지만, 그 변화들을 모두 받아들인 덕분에 극적인 근현대사를 모두 기억하는 역사 공간으로 거듭났다. 그래서 남산에서의 역사는 긍정과 부정을 모두 담은, 역사의 큰 물줄기로서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상량식(1970년) @국가기록원 제공
남산자락,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에 서다(후암동 부근) 변화과정
1925년 일제 신사 '조선신궁' 건립
1945년 해방 후, 조신신궁 해체
1956년 이승만 대통령 동상 건립
1959년 안중근의사 동상 건립
1960년 이승만 동상 철거
1965년 남산도서관 준공(남대문도서관 이전)
1967년 안중근 의사 동상 이전(이승만 동상 자리)
1968년 남산식물원 개원
1970년 안중근의사기념관 건립
1970년 위인 동상 건립(이황, 정약용, 방정환)
1974년 안중근 의사 동상 새로 조성
1971년 어린이회관 건립
2009년 남산 회현자락 정비사업 시작
2010년 안중근의사기념관 재개관
2013년 한양도성 발굴 및 조선신궁터 발굴
3. 골목이 품은 문화주택
극적인 근현대사의 역사는 후암동 골목을 지켜온 문화주택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서양 건축양식을 따라 만든 주택이지만 해방 후 70년간 우리가 살아온 주택으로, 많은 역사적 의미를 품고 있다.
[골목,이야기] 굴곡의 역사를 걸어온 후암동…③골목이 품은 문화주택
일제가 만든 집에서 우리의 삶과 역사를 기록하다
문화주택은 일본인들이 살았고, 미군정이 관리하기도 했으며, 정부 수립 이후엔 한국인들이 거주한 독특한 역사를 갖고 있다. 주거사 측면에서 후암동은 그러한 역사의 큰 흐름 속의 한 장면을 형성하는 중요한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주택 역사과정
1925년 조선신궁 건립 전후로 문화주택 건축
1945년 일제 항복 후 미군정 적의 재산으로 관리
1949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귀속재산법 제장
1950년 시행령 공포, 불하시작
2015년 후암동 일대 지역 조사(서울역사박물관, 안창모 교수)
2016년 후암동 주택 실측 및 조사 시작(후암가록)
2018년 서울특별시 용산도서관 '후암가록' 전시
남산에서 바라본 후암동 골목 @용산구청 제공
치욕과 치유의 시간 모두를 걸어가는 골목
굴곡의 역사를 지나왔지만 , 서울의 중심 후암동 남산자락은 언제나 같은 자리를 지켰다 . 치욕의 시간을 지나 아픔과 영광 모두를 품어온 덕에 이 마을은 이제 역사라는 이름으로 치유의 길을 걷고 있다 . 어둠의 기억은 사람과 시간을 만나면 역사라는 의미를 갖는 법 . 사람과 시간이 이어지는 한 후암동은 앞으로도 역사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
자료제공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특별시 항공사진 서비스
서울연구원데이터서비스
용산구청 후암동주민센터
도시공감협동조합 건축사사무소
안중근의사기념관
한양도성박물관
국가기록원
촬영협조
안중근의사기념관
서울시교육청 용산도서관
도움주신분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이주화 안중근의사기념관 학예팀장
염길환 前후암동 주민자치위원장
변보원 후암동 주민
문인자 후암동 주민센터 주무관
김홍렬 서울시 도시계획과 주무관
박승희 와글와글 후암인 간사
참고문헌
· 안창모 (2017년) 『 두텁바위가 품은 역사, 문화주택에 담긴 삶 』 , 서울역사박물관
· 한양도성연구소(2014년) 『 남산에서 찾은 한양도성 』 , 한양도성박물관
출처:(골목이야기)
2026-04-18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