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년 만의 만남. 인천교대 6회 동창 모임(1969.3~2015.9)
* 일시 : 2015. 9. 14(월) 장소 : 화성 순례
수원역에서 10시 30분에 만나 경기도청, 효원의 종, 서장대, 화서문, 장안문, 화혼문, 연무대 화성 박물관을 본 다음 궁전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행궁을 거쳐 다시 수원역으로 진행되는 일정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답게 볼펜으로 A4 용지에 시간과 함께 화살표가 표시되어 있는 그림이 카페에 떴다. 가리방과 철필로 교직을 시작했는데 그림을 보며 그 시대가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순일이가 작성하고 인천 동기들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경진이가 올린 것이다.
유건수, 김양옥 등 반가운 이름들이 보이기에 이날은 열일 제쳐두고 수원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황인택은 정동길을, 우의규는 권순일을 만나야 된다고 했다. 모처럼 행사라 유성근에게도 알리고 경기도 친구들을 잘 아는 진호에게도 얘기를 했더니 쾌히 승낙을 한다. 이명근 인천 회장에게 알아봤더니 17명이 가니 오이도에서 만나자며 교통편을 자세히 알려 준다.
원인재역으로 가니 홍사술이 먼저 와 있다. 나도 여유있게 간다며 일찍 나갔는데 나보다 더 부지런하다. 실버 합창단 일정 관계로 못 가게 되었다고 통탄을 하던 백충기가 합창단 일정을 비틀고 나왔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열정이 대단하다. 아직 오지 않은 친구들을 기다리는 사이에 기욱에게서 동규의 소식을 들었다. 이런 일에 누구보다도 먼저 나설텐데 하며 그의 없음에 마음이 무겁다.
원인재역에서 인천 친구들을 만나 오이도역에 하차하니 오범이와 순래가 없어져 회장이 후끈 달아 여기저기 찾아보는데 앞서 갔단다. 나머지 일행이 4호선을 타고 금정역에서 환승하여 수원에 도착하니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들 반갑게 악수를 하며 이름을 부른다. 서울에서 오는 진호가 약간 늦어 20여분 기다렸다. 얼굴과 이름을 아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전혀 모르는 친구들도 몇 보인다.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인가. 오늘 모임에 나왔으면 전부 친구가 아닌가! 배구 선수였던 김지선, 공작반 정동길 등은 세월이 흘렀어도 금방 알아볼 수가 있었는데 장기열, 이한응, 강봉구 등은 낯설었다.
오늘은 유건수를 보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다닐 때 건수와 순일이가 함께 자취를 했는데 그 집에 자주 놀러 갔었다. 나중에 들으니 키 큰 이진무도 자주 다녔다 한다. 2년 전 진호 딸 결혼식에서 순일이를 만났지만 건수는 오늘 처음이다. 인천에 근무하는 친구인 구본장 교장에게서 가끔 건수 소식을 듣곤 했었다. 까무잡잡한 옛 모습이 그대로였다.
그러다 옆에 있는 낯선 친구가 인사를 하는데 누군지 모르겠다. 한참 망설이니 자기가 박한석이라고 한다. 아! 수원에 오면 꼭 소식을 들어야 할 사람인데 오는 도중에 이름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갑자기 박한석이라고 바람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다. 그와는 한동안 소식을 주고받았다.
교직을 떠나 서울 신문사로 옮겼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연말에는 카드를 주고받기도 했다. 이런 박한석을 여기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녀들 얘기, 뇌수술 받은 일로 그간의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세상 풍파를 많이 겪었구나 하며 그의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
정만구는 수원농고를 나와 여기 사정이 밝았다. 화성에 가는 동안 동탄 등 신도시에 밀려 이제는 구시가지가 된 도청 주변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마치 동인천 지구가 연수 지구에 밀려난 것과 같다. 말로만 듣던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에 올랐다. 효원의 종을 사술이와 타종해보기도 하면서 화성을 거닐었다.
여기서 광한이를 만나고 친구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옛일 더듬기에 분주하다. 모두 즐거운 표정이다. 여학생에게 점수를 후하게 주고 우리는 일만 시켰다고 너스레를 떠는 정동길. 언제 어디서나 인증 샷은 기본. 군사를 지휘하던 지휘 본부인 화성장대에 모두 모여 기념 사진을 찍으며 저마다 함박 웃음이다.
산행 중 권순일은 작년에 세상을 떠난 홍사철의 얘기를 한다. 퇴임 후의 생활을 방송국에서 인터뷰했는데 그 방송을 못 보고 세상을 떠났다며, 방송에 나왔던 화면을 친구들이 장례식장에서 보고 그를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 1주기를 맞아 그의 묘소에도 다녀왔단다. 가수보다 한 단계 위인 지선이의 노래 실력, 섹스폰 얘기도 곁들인다. 백충기는 홍영란의 얘기를 하다가 정구민, 정구혁 형제의 근황을 이진호에게 알려 준다. 화성을 내려와 화성 행궁으로 향했다.
신풍루를 거쳐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은 봉수당, 정조대왕이 잠시 머물며 신하를 접견하던 유여택을 보고 낙남헌 외곽으로 한 바퀴 돌면서 정조 대왕의 행차를 그린 벽화를 보았다. 정동길은 행궁의 내용을 문화 해설사 못지않게 자세히 일러 준다. 점심 시간이 되어 여자 동창들이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35명의 친구들이 한자리에 앉았다. 이명근 인천회장이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인천 친구들을 소개하고 이어 권순일 회장이 수원 친구들을 소개한다. 이명근 회장의 건배사. 차형도의 늙어 구박받는 백수들의 얘기, 인생을 재건축을 하자는 이덕진의 열정 등이 어우러져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되었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식당 앞에서 아쉬움을 달랜다. 이진호는 학교 시절 박영만 선배의 집이 있는 강릉으로 봉사활동 갔던 얘기를 김양옥과 주고받는데 난 기억이 희미하다.
이상서와 이한응의 주선으로 정말 귀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두 친구와 이명근, 권순일 두 회장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강산이 네 번 변한다는 시간이 흘러서 만난 우리들.
머리에 서리가 내렸지만 그래도 옛 모습은 간직하고 있어 다행이다. 다음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인천 친구들 :
김기욱, 김흥길, 백충기, 안효천, 우의규, 유성근, 이명근, 이상서, 이순래, 이오범, 이정훈, 장준기, 전표건,
정만구, 차형도, 황인택, 홍사술
수원 친구들 :
강봉구, 권순일, 김광한, 김지선, 박한석, 유건수, 이덕진, 이진무, 이한응, 장경진, 장기열, 정동길, 이진호
(여) 김양옥, 김호분, 박옥분, 이윤복, 홍영란
첫댓글 하이구.... 깨알처럼 조목조목 빠트리지두 않고 쓰셨네... ㅎ
그날의 감격이 새로워집니다.
역시 작가님 다운 섬세한 글을 잘 읽었습니다.정훈 친구와 그당시 동인천에서 배다리, 참외전 거리, 도원동고개를 거쳐서 숭의동 까지 48년전 자주 만나서 등교했떤 추억이 있습니다. 같은 1반 이었고 현재는 인천의 진산 문헉산을 매일 바라보고 이웃 단지에서 거주하며 자주 만난답니다. 어제 저녁 승학회 (1985년 문학초 모임)에서 류성근,윤용익을 만나서 식사를 했어요. 윤용익은 얼마전 동 유럽 여행을하고
돌아왔답니다 .옆의 모임에서 건강한 모습의 유지영도 만났지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9.21 15:58
역시 문학가의 필체는 감동적이다. 산행하면서 한 이야기를 하나도 빠치지 않고 서술한 내용이 감탄스럽다.
정말 보고 싶었던 얼굴을 보니 옛날 학창시절 순수했던 마음이 살아나느듯 했다 인천교대에서의 추억과
현장와서도 인쳔교대 졸업을 자랑스러워 하며 타교대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교직을 42년간 했었지
박한석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야 지금은 건강하여 산행도 4년째 같이 하고 있지만 강원도 인제군 남편 산골을 찾아갔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몰라 그 때의 만남을 글로 써서 문학 동인지에 발표했었지 홍사철 이야기도 수필로 써서 수원의 동창들 전화번호와 같이 보내 주었어
영원한 동심을 일깨우는 인천교대 6회
20대 초반의 팔팔한 청년들이 고희가 다 돼서 만났으니 어찌 그동안에 사연이 없겠소, 조용현의 소설 "보리 언어"에 보면 60전후인데도 몸이 건강한 사람은 그 자체로 성공한 인생이다. 갖가지 삶의 풍파를 겪다 보면 병들게 되어있다. 어떻게 보면 병들어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환갑의 나이가 넘도록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도를 제대로 닦은 성공한 인생에 틀림없다라고 했습니다. 이번 만남에서 박한석과 홍사철이 유독 그리운 것은 이 때문인가 봅니다. 요즘 일교차가 장난이 아닙니다. 건강챙기는 일에 우선 순위를 두면 어떨까요?
대학 졸업후 처음 만난 반가운 일정을 상세히 그려준 님에게 감사합니다. 참 반가운 얼굴들이었고 새로운 기억을 살려주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은 홍사철 친구가 먼저 저세상으로 간 것이었습니다. 좋은 생각들을 올려줘서 잘 읽고 있습니다만 누가 쓴 글인지 아는 별명은 알겠는데 본명을 쓰면 좀 더 알기 쉬울 것 같아 감히 의견을 제시합니다. 글을 쓴 다음 끝에 그이름도 거룩한 본명을 써 주심 좋을 것 같혀 정만구
본명을 쓰면 좀 더 알기 쉬울 것 같다는 정 망치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글을 다 읽지도 않고 정 망치가 정동길인줄 알았습니다. 실명을 쓰니까 이런 오해가 없어 좋습니다. 당진농부나 여행의 낭만은 익히 아는 인물이라 친근감이 있는데 가끔 댓글을 다는 친구들을 보면 '이 사람은 누굴까?' 할 때가 있습니다. 다음부터는 글을 다 쓴 다음 끝에 금융실명제처럼 실명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이정훈.
@오늘도 문학산 정훈씨 내 생각을 이해해 줘서 고마워유 오늘도 문학산이 당신인줄 이제 알았소이다.
망치님!! ^^^^^.^.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