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이는 번뇌를 끊고 열반을 얻으려 하지만
번뇌를 끊으려는 집착 때문에 오히려 열반을 얻지 못한다.
지혜로운 수행자는 번뇌가 실체가 아님을 알기에
번뇌를 끊겠다는 생각조차 놓아버려 항상 열반에 머문다.
만약 열반을 얻으려는 사람이 삶을 죽음과 다르다고 보고,
번뇌를 열반과 다르게 본다면 그는 분별에 빠지고 만다.
번뇌를 열반과 다르다고 보지 않아야 열반에 들 수 있다.
[달마대사 오성론(悟性論)]
참선 수행을 하다보면 끊임없이 올라오는 온갖 번뇌와 생각들 때문에 ‘나는 수행에 자질이 없는가 보구나’하고 미리부터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처럼 끊임없이 올라오는 번뇌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것을 문제 삼지 말라. 그것 때문에 수행을 포기하거나, 내 나약한 정진력을 탓할 것도 없다. 어리석은 수행자는 번뇌와 싸워 이기려 애쓰지만 지혜로운 수행자는 번뇌와의 모든 전쟁을 그만두고, 일체의 번뇌들을 그저 내버려두고 다만 지켜볼 뿐이다. 번뇌를 끊어 없애겠다는, 그래서 번뇌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려는 마음이야말로 얼마나 큰 욕망이며 투쟁인가. 그것이야말로 탐진치 삼독을 그대로 보여준다.
열반은 열반에 방해가 되는 모든 번뇌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다. 오히려 수행 중에 번뇌가 올라온다는 것을 수행이 되어가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이라. 번뇌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번뇌와 하나가 되고, 받아들이고, 사랑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어떻게 생겨나고 없어지는지를 자비롭지만 분명한 시선으로 비추어 보기만 하라. 번뇌와 다투지도 말고, 번뇌를 기다리지도 말라. 좋아하거나 싫어하지도 말고, 붙잡거나 버리려 애쓰지도 말며 다만 번뇌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관찰하라. 그것이면 족하다. 번뇌를 명징하게 살펴볼 때 그 모든 번뇌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번뇌는 수행을 방해하는 마장이 아니라 내 수행의 벗이었음을. 번뇌가 곧 열반과 다르지 않은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