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10. 불날. 날씨: 쌀쌀하지는 않은데 가을 겉옷을 입어야 한다. 해가 일찍 떨어져서 금세 어두워지는 걸 보니 입동이
지났구나 싶다.
아침열기-수학-마을신문 만들기-점심-청소-5,6학년 영어-그림그리기-마침회-교사회의-대안교육 우리말 글 연수
[휙 지나간다]
날씨가 조금 쌀쌀해지니 민주가 아침산책 안 가면 안되냐고 그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간다는 말에 '으앙' 하고 따라 나서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정겹게 어깨를 두른다. 아침 마을 산책을 마치고 누리샘 모둠 텃밭 정리를 했다. 토란도 캐고 줄기는 자르고, 돼지감자를 캐는데 자색
뚱단지가 곱다. 잠깐 동안 한바구니 가득 담긴다.숲 속 놀이터 나무에 타고 오르는 담쟁이 잎이 예술이다.
아침 나절 수학은 분수와 소수 사칙연산을 한 뒤 마을 신문 만들기를 위해 취재를 나갔다. 통장 아저씨 이야기를 마을 신문에 싣기
위해서다. 낮에는 5, 6학년 영어 시간에 고구마튀김을 했다. cooking class 인데 부엌에서 쓰는 영어와 도구 표현을 익히고
나머지는 따듯한 고구마튀김 먹는 재미다. 씻고 썰고 지지고 튀기는 몫까지 잘 마쳤다. 그런데 영어 수업 진도를 생각하면 수업 시간을 더
잡아내야겠다.
저녁에는 우리 학교에서 달마다 여는 대안교육 우리말 글 교사 연수가 있다. 멀리서 와서 함께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속에 가을 밤이 깊어간다. 하루가 길게 또 휙 지나간다.
2015. 11. 11. 물날. 날씨: 해가 나다 구름 속으로 들어가 흐리다.
아침열기-손끝활동(나무곤충 만들기, 한지조각보 만들기, 천연비누 만들기)-점심-청소- 맑은샘회의 (낮은샘, 높은샘)-마침회
[집중력]
아침 산책길 텃밭에 들려서 올해 진짜 마지막 호박 두 개를 땄다. 찬 이슬에도 살아남은 녀석들이다. 토종 배추는 쑥쑥 자라는데 알이
차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해보이는데 성범이가 텃밭을 둘러보더니 한 마디 한다.
"고구마를 캔 텃밭이 황량하구만."
황량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인지 속담도 곧잘 쓰곤 하는데 이번에도 텃밭 풍경에 어울리는 한자말을 써먹는다. 그러네. 죽어가는 식물과
쑥쑥 자라는 모습이 대비가 되는 것도 있겠지만 고구마 캔 자국과 호박잎이 누렇게 죽어가는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가을 텃밭 콩과 팥 농사는
망쳤는데 고구마와 호박 농사는 풍년이고, 가을 김장 농사도 괜찮다. 이 텃밭도 올해가 마지막이 된다. 주인이 땅을 팔아서 다음 해는 다른 텃밭을
또 찾아내야 한다. 도시 속에서 줄곡 길게 농사를 지을 땅이 늘 아쉽다. 시골에는 농사 지을 사람이 없어 땅이 남아도는데.
아침 공부는 아이들 모두 모여서 손끝 활동을 한다. 모둠에서 많이 하는 손끝활동도 있지만 자주 안 하는 활동을 하는 날을 잡아 해마다
해왔다. 이번에는 나무곤충, 천연비누, 한지조각보 세 모둠으로 나눠 했는데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미리 선택해서 하니 나무곤충 만들기에 남자
아이들이 많이 쏠렸다. 송순옥 선생이 맡은 한지조각보는 6학년과 서민주, 남민주까지 모두 여학생이고, 조한별 선생이 맡은 천연비누만들기도 주로
여자 아이들인데 그 틈에 규태가 있다. 그래서 나무 곤충 만들기에 네 선생이 달라붙어 아이들을 돕는다. 버려진 나무와 가지치기된 나뭇가지를
잘라서 곤충을 만들며 곤충의 특징을 살려보는데 톱, 똑가위를 써야 해서 안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침 나절 누리샘 아이들과 산책길에
나뭇가지를 모두 주워온 덕분에 나뭇가지는 충분하다. 동생들과 짝을 지어 나무곤충을 만들라고 하니 금세 모둠이나 짝을 이루어 나뭇가지를 잘라내는
모습이 예쁘다. 미리 복사 해 놓은 나무곤충 종류들 가운데 선택해서 자기가 만들고 싶은 곤충을 만든다. 선생은 조금 쉬운 달팽이나 나비,
잠자리를 하길 바라나 아이들은 역시 위풍당당한 사슴벌레와 풍뎅이를 고른다. 정우는 영호와 은호를 데리고 천천히 헤라클레스장수풍뎅이를 만드는데
1, 2학년 때 해본 솜씨가 있어 동생들을 잘 이끈다. 성범이는 인웅이을 도와주다가 자신이 만들고 싶은 곤충을 포기하고 인웅이와 같이 만들
수밖에 없어 아쉬워 한다. 한주가 톱을 들고 영호와 우철이, 윤태에게 나뭇가지를 잡게 하는 모습을 보니 형 노릇을 제대로 한다 싶다. 곳곳에서
톱과 똑가위를 들고 나뭇가지를 잘라 나무곤충을 만들어가는 모습에 숲속 놀이터와 잘 어울린다.
아이들 집중력이 대단하다. 한 시간 반 넘게 힘을
합쳐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아이들이 판으로 쓸 큰 통나무를 아이들 갯수에 맞게 열여덟 개가 필요한데 예전에 잘라놓은 여덟개와 판자 세 개가 있어
일곱개만 더 자르면 돼서 땀이 나도록 톱질을 했다. 다섯 개쯤 자르고 나서 아이들에게 저마다 하나씩 판을 챙기라고 하는데 공동작품을 만드는
아이들이 있어 판이 남는다. 종이 그림을 보고 곤충에게 필요한 머리, 가슴 배, 다리와 더듬이까지 나뭇가지를 찾아내서 자르고 붙이는 과정에서
아이들 손끝이 단단해져 간다. 연장이나 도구 쓰는 걸 좋아하는 남자 아이들에게 아주 즐거운 활동이다. 톱과 똑가위를 쓰는 일이라 안전에 대해
여러 번 강조하고 선생들이 곳곳에서 살피고 장갑을 확인하니 아무 탈 없다. 늘 사고는 방심하는 순간에 나니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다 만든
작품들을 죽 늘어놓고 보니 다들 곤충들 특징을 잘 잡아내서 멋있다. 세워야 되는 걸 눕혀서 붙인 경우도 있지만, 사슴벌레와 풍뎅에, 게아재비,
공벌레, 나비가 나무 판에 잘 어울리게 붙어있다.
낮 공부는 맑은샘회의 시간인데 낮은 학년과 높은 학년이 나눠서 회의를 하는 날이다. 바깥일이 있어 나갔다 들어오니 높은 학년은 서로에게
하지 말라는 부탁말을 큰 이야기로 삼아 마음껏 할 말을 서로에게 한다.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 어린이회의 시간은 언제나 지루하지
않다. 회의는 역시 작은 수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 더 재미나게 할 수 있음을 아이들이 보여준다. 퍼실리테이터란 회의
도움이쯤 되는 교육을 받은 적 있는데 아이들 모습에서 가끔은 자연스레 볼 때가 있어 좋다.
모둠살이 아이들만 남아있는 저녁에 졸업생 수빈이가 놀러와서 한참을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간다. 아이들은 정말 금세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