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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3초 만에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지요?” … 하 회장은 빙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주 간단합니다. 제가 희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하형록의 ‘페이버'중에서.
미국의 초대형 건축설계회사 팀하스 회장 하형록, 축복의 원리 담은 ‘페이버' 출간
“희생 없으면 착한 일에 불과, 희생 있어야 감동준다… 희생은 반드시 보답받아"
32세에 심실빈맥증으로 도속도로 한가운데서 의식 잃어… 죽음 앞두고 온 첫번째 심장, 이웃에게 양보
두번의 심장 이식 수술 거치며 사업가로 큰 성공… 삶 곳곳에 도움의 기적
이민자 최고 영예상 ‘엘리스 아일랜드 상' 수상... 기업가이자 동시에 목회자로 활동
심장을 양보한 사나이, 하형록. 팀하스는 그의 미국 이름이자 그가 ‘이웃 사랑'을 목표로 세운 건축설계회사의 이름이다. 그는 미국 주차 빌딩의 혁신가라고 불리는 글로벌 사업가이자 동시에 목사다.
사진=이태경 기자
기독교의 핵심은 간단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그런데 이 한 문장만큼 어려운 명령도 없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네 이웃을 사랑하라'. 단순 병렬에서 필연적 증명으로 바뀐 이 문장은 기독교도라면 존재를 뒤흔들 만큼 무서운 명령이며,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크리스천의 위선을 조롱하기에 딱 좋은 가정이다.
전도유망한 한 남자가 있었다. 명문 펜실베이니아 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한 청년은 유명 건축설계회사의 중역이었으며, 아내와 어린 두 딸도 있었다. 1991년 가을, 뉴욕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그 남자는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뛰다 호흡곤란으로 쓰러지는 심실빈맥증이었다. 필라델피아 한인사회의 자랑이었던 서른두 살의 사내는 그 날 이후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2년 뒤. 심장 이식을 기다리던 그에게 꼭 맞는 심장이 나타났다. 이제 다시 천국으로 사뿐히 발을 옮기면 될 터였다. 그런데 그 순간 그는 자기 몫으로 온 심장을 옆방의 죽어가던 여성에게 양보했다. 미국 동부의 메이저 건축설계회사 팀하스(TimHaahs)의 대표인 하형록 회장의 이야기다.
그는 성공한 기업인인 동시에 목사다. 이익을 좇는 기업가와 은혜를 좇는 목회자가 어떻게 한 사람 안에 양립할 수 있을까?
그는 그 원리를 ‘페이버(favor)'로 설명했다.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한 이웃사랑이 ‘페이버'의 핵심이었다.
내가 페이버를 행하면 신이 그 희생을 기억하고 축복을 부어준다는 것.
“희생이 없으면 착한 일에 불과해요. 그냥 착한 일은 보통 사람이 다 하는 거예요. 희생이 있어야 감동을 줘요. 착한 일은 눈물이 안 나요. 희생해야 눈물이 나는 거예요”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이웃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는 경영철학으로 20년 만에 미국 동부 최고의 건축설계회사로 성장한 팀하스의 하형록 회장을 만났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으로 딱딱한 기업인보다는 멋쟁이 배우처럼 보였다.
-지금 심장은 어떻습니까?
“심장에 연결된 두 개의 혈관이 막혔어요, 한 개는 완전히 막혀서 어쩔 수 없고 다른 하나는 스텐트를 넣어서 확장해보려고 하는 중이에요. 더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어요. 지금의 내 삶은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인터뷰 자리에는 하형록의 아내가 동행했다. 얼마 전 출간된 책 ‘페이버'에서 그는 아내를 자신이 사랑해야 할 첫 번째 이웃이라고 표현했다. 심장병으로 사경을 헤맬 때도 아내에게 닥칠 불행을 생각하면 미안해서 딱 죽고만 싶었다던 그였다. 문득 남편이 심장을 1시간만에 다른 여성에게 양보했을 때, 아내의 마음은 어땠을까 궁금했다.
“서운하지 않으셨어요?” 흐르는 개울물처럼 훌훌한 말투로 아내 제니스가 말했다.
“가장 갈급한 사람이 이인데… 본인이 마음을 딱 정했는데, 내가 뭐라고 말을 더 보태요.”
그 아내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얻으며 하형록이 말을 이었다.
“만약 아내가 그런 결정을 했으면 나도 말렸을 거예요. 그래서 내 가족이 그런 번민에 빠지지 않도록 3초 만에 결정하고 심장을 보내버린 거예요.”
똑딱 똑딱 똑딱. 그 3초 사이에 대체 이 우주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동 대학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그 후 최고의 주차빌딩 건축 설계 회사인 워커사에 입사해 스물아홉의 나이에 중역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사진=이태경 기자
-왜 3초였죠?
“의사가 병실 문을 열고 나가는 사이가 딱 그 시간이었어요. 그 전에 의사가 나름 제 행운을 축하해주려고 안 해도 될 말을 한 거예요. “옆방에 있는 여자는 이틀이면 죽어요. 그녀가 기다리는 심장이 당신 것과 똑같아요.”
내가 크게 놀라자 당황해서 그러더군요.
“팀! 이 심장은 당신 거예요. 당신 차례가 맞아요. 우리가 안 뺏어가요. 당장 수술합시다! 어서 가족에게 전화해요. 황급히 나가던 그를 제가 ‘선생님!'하고 불렀어요.”
23년 전 그날도 병동의 환자들은 심장을 받지 못해 일주일에 한 명꼴로 죽어 나갔다. 함께 식사할 때면 다들 ‘우리 가운데 누가 살아남을까’하는 눈빛이었다. 내게 맞는 심장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협이자 장애물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겁니까?
“어떤 결정을 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그 여자가 확실히 죽나요? 나는 며칠을 더 살 수 있나요?'라고 물었어요. 여자는 곧 죽고 나는 일주일, 길면 3주 정도를 더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말했습니다. '이 심장을 그 여자에게 주세요.'”
-맙소사! 의사가 동의했나요?
“아니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그 결정은 당신이 아닌 아내가 해야 한다고.”
-어떤 마음에서 그랬나요?
“하나님이 나를 시험한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혹시 마귀가 나를 시험하나? 그런데 내가 심장을 기다리며 5개월 동안 한 기도가 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시면 내 남은 생을 이웃을 위해 살 거라는 거였어요. 아내와도 그렇게 약속을 하고 사업 준비도 했고요.”
결국 의사는 하형록을 이기지 못했고 심장은 1시간 만에 교통사고로 입원한 옆방의 여인에게 갔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나요?
“6개월이 지나도 적합한 심장을 받지 못하면 95%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정확히 일주일 뒤, 하형록은 호흡곤란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팀은 아직 살아있어?” 의사들은 출근하면 가장 먼저 그의 생사를 확인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한 환자가 심장을 양보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불평과 큰소리가 들끓던 응급 병동의 직원과 환자들이 서로를 배려하기 시작했다.
한 달쯤 되었을 때, 기적적으로 그에게 맞는 또 하나의 심장이 나타났다. 하형록은 건강한 몸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의 인생은 새롭게 시작되었다. 하형록은 그 삶을 ‘페이버(favor)’의 삶이라고 정의했다.
하형록 회장의 자전적 에세이 ‘페이버’. 페이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을 때'에 우리에게 오는 선물이라고.
-페이버가 무엇인가요?
“기독교에서는 페이버(favor)를 '은혜' '자비' 등과 혼용해서 써요. 그런데 은혜(grace)는 우리가 받을 수 없는 은총을 받는 것이고, 자비(mercy)는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지 않는 것이에요. 페이버는 달라요. 우리 말의 정이나 호의와 비슷한데, 정확히는 자기를 희생해서 이웃을 돕는 거예요.”
-각박한 세상을 살다 보면 이웃사랑만큼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빙그레 웃으며)나도 그랬어요. 이웃을 해치지만 않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죠.”
-다소 속물적이지만 희생한 만큼 보답받는다, 는 보장이 있나요? 계속 희생만 해야만 한다면 기운 빠지는 일인데요.
“성경의 시편에 보면 페이버에 대한 구절이 자주 등장합니다. 핵심은 예전에 내가 한 희생을 낱낱이 아뢰고 내 희생이 주님 보시기에 좋았으면, 이제는 나를 불쌍히 여겨 나에게도 당신의 ‘페이버'를 보여달라고 요청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예수의 공식이 있어요. 희생이 있어야 부활이 있는 것처럼, 반드시 나의 마음, 노력, 시간, 돈 등의 분명한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희생이 꼭 있어야 한다?
“희생이 없으면 착한 일에 불과해요. 그냥 착한 일은 보통 사람이 다 하는 거예요. 희생이 있어야 감동을 줘요. 착한 일은 눈물이 안 나요. 희생해야 눈물이 나는 거예요.”
‘이웃을 사랑한다는 건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라고 그가 자상하게 부연했다. 사소한 착한 일도 힘에 겨운 나로서는, 너무나 아득한 이야기였다. 할 수만 있다면 페이버의 대가로 분명한 차용증이라도 받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희생의 대가로 선생은 어떤 페이버를 되받았습니까?
“퇴원한 지 얼마 안돼서였어요. 2년여의 투병으로 돈이 바닥났어요. 4인 가족 생활비도 없어서 딸아이는 밑창이 구멍 뚫린 운동화를 신고 다녔죠. 가장 큰 문제는 약값이었어요.”
한 달 약값만 무려 170만 원. 돈이 없는 그는 다른 심장병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약을 구걸해서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린다와 데이비드 부부가 찾아왔다. 그리고 그들이 내민 봉투 안에는 2만 달러의 돈이 들어 있었다.
“약을 사서 먹으라더군요. 직장에서 받는 보너스라고 하면서요. 그런데 데이비드는 작은 엔지니어링 회사의 사원이고 린다도 부잣집 청소부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 돈은 그들이 집 고치려고 한푼 두푼 모아둔 전 재산이었어요. 그 돈을 우리가 단지 이웃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준 거죠. 더 놀라운 건 그 부부는 나중에 우리가 돈을 갚으러 찾아갔을 때도 받지 않았어요.”
-왜죠?
“데이비드의 아내 린다가 그러더군요. '우리는 당신의 은행이 아니라 당신의 친구'라고. 린다는 여전히 청소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그 돈을 갚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도와달라더군요.”
이웃 린다는 영어로 정확히 "We want to be a part of your suffering"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당신 가족의 고통에 동참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돈을 받을 수 없어요"라고. 그들은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하형록의 이웃으로 지금도 평범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산다.
그의 아내 사랑은 특별하다. ‘이웃 사랑'의 대상이 되는 가장 첫번째 이웃이 아내라고 했다.
사진=이태경 기자 .
심장 이식 수술을 한 후 하형록은 아내와 함께 약속대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비록 차고에 차린 회사지만 아침 8시면 깨끗한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했다. 그리고 몇 달 만에 아는 사람의 소개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신용카드 회사인 MBNA의 신축 사옥 공사 감리를 의뢰받았다.
클라이언트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는 솔직하게 상태를 털어놓았다.
“사실 나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심장 이식 환자이니 만일을 대비해 실무는 내가 아닌 직원이 맡게 될 것”이라고.
MBNA는 그 사실을 알고도 첫 번째 건물을 그에게 맡겼고 이어서 진행될 네 개의 본사 건물 설계 프로젝트도 팀하스에 의뢰했다. 알고 보니 그 뒤에는 로저 크로지어라는 부사장이 있었다. 그는 왜 엄청난 리스크를 감당하고 하형록에게 이런 페이버를 베풀었을까?
“나중에 크로지어 부사장의 비서를 통해 전해 들었어요. 나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암으로 2년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였어요.”
훗날 부고 소식과 함께 전해진 그의 유언은 더욱 하형록의 가슴을 울렸다.
“내가 죽은 뒤에도 그 사람을 통해서 살고 싶어(I want live through him). 그러니 내가 죽은 후에도 그가 성공하도록 꼭 도와주세요."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난 당신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대기업의 부사장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로군요.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라마틱합니다.
“(미소 지으며)희생이 없으면 드라마도 없어요. 컴퓨터 한 대 놓고 차고에서 시작한 제 회사는 그 이후로 업계의 신임을 얻었어요. 플로리다 디즈니 스프링스 등 수많은 프로젝트를 맡아서 글로벌 주차빌딩 기업으로 성장했지요. 저는 제가 살면서 받은 페이버를 잊지 않으려고 회사 복도에 은인들의 프로젝트를 붙여놓았어요.”
그의 이름을 딴 건축설계회사 팀하스(TimHaahs)는 미국 건축계의 권위 있는 상을 휩쓸며 얼마 전 청년들이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그를 미국 국립건축과학원의 종신직 이사로 임명했다.
‘우리는 이웃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는 기업 정신과 도시 재생에 앞장선 주차설계의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였다.
그는 ‘이민자 최고의 영예'인 엘리스 아일랜드 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 상은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등 유명 정치가와 사회 공헌가들이 받은 상이다.
-그런데 성공한 기업인이면서 동시에 목사라는 포지션이 한국 정서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 장로교 마인드로는 이해가 안 될 거예요. 한국에선 ‘모든 것을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는 성경 구절대로 현직을 버리고 신학교 가서 목회자가 되는 게 관례지요. 미국에선 달라요. 침례교 목사는 신학교 졸업장에 대한 욕심도 의무도 없어요. 중요한 건 ‘성령'이 임재하는냐죠. 목사는 리더고 그래서 성도가 투표로 목사를 세워요. 흑인 침례교회는 13세 14세도 설교를 하고 흑인 목사는 자연스럽게 사회 지도자가 되죠.”
-요즘 한국 사회에선 개신교회와 목사를 보는 눈초리가 차가워요. 불의한 사건들로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많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됐다고 보십니까?
“글쎄요… 대형 교회 목사님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고 있는지 겸허하게 돌아봐야겠지요.”
-목사들도 ‘페이버'가 쉽지 않다는 거네요.
“한국 사회가 아무래도 ‘페이버'에 아직 익숙지 않은 것 같아요.”
은혜와 자비를 유행어처럼 달고 사는 종교인뿐이랴. 사실 스스로를 지키는 것도 버거워 온몸이 굳어진 ‘생존 사회'에 그가 말하는 조건 없는 호의는 신문 사회면에서나 찾아볼 만큼 희귀해졌다. 페이버를 ‘give & take’의 관점에서 예로 들어달라고 했다. 호의를 베풀면 받는다는 막연한 믿음보다 수학적인 가늠이 필요했다.
-우문이지만 페이버는 수학입니까? 신학입니까?
“(빙그레 웃으며)페이버를 주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하나님 마음이에요. 다행히도 그 마음을 우리가 헤아려 볼 수가 있어요. 아이가 둘 있다고 쳐요. 첫째는 마음이 착하고 둘째는 매사 비뚤게 행동해요. 부모는 누굴 더 사랑할까요?(둘 다죠) 맞아요. 사랑받는 건 자식의 특권, 그러니까 그레이스(grace)에요. 그럼 누굴 더 페이버할까요? 그건 부모 마음이에요. 둘 다 페이버를 줄 수도 있고, 한사람에게만 줄 수도 있어요.”
심장을 양보한 대가로 그가 삶에서 받은 페이버는 끝이 없었다. 약값이 없어 빌어먹는 그에게 선뜻 큰 돈을 내어준 것도 넉넉치않게 사는 그의 이웃이었다. 사업 시작 후 첫번째 받은 프로젝트도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대기업 간부의 유언에서 비롯된 은혜였다.
사진=이태경 기자
그는 유산상속을 예로 들었다.
“외국에서는 자식이 부모 재산 물려받는 게 한국처럼 당연하지 않아요. 자녀들도 그걸 알아요. 가령 가족 중에 암 수술을 받은 환자가 있다면 부모는 재산을 암 환자 재단에 기부해요. 그중 얼마라도 나에게 오겠지, 라고 기대한다면 그건 내가 부모에게 잘한 게 있을 때죠. 부모의 ‘페이버’를 받기 위해 잘 보이려고, 기쁘게 해드리려고 노력한 증거가 있을 때예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페이버의 원리가 그거예요. 페이버는 당연히 받는 게 아니라, 나의 노력이 있어야 해요. 설사 유산을 받기 위해 부모에게 순종한다 해도 그런 과정을 통해 사회의 질서가 잡혀가는 거죠. 그래서 미국에서는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추수감사절에는 자식이 부모 집을 찾아와요. 잘 보여야 하니까요(웃음).”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인간사회에도 적용된다는 것. 신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이 곧 ‘이웃사랑’이라는 논리였다.
-그래도 섭섭할 때가 있지 않나요?
“인간인지라... 당연히 그렇죠.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보답이 온다고 믿어요. 다만 그 시기가 문제인데요. 예수는 3일 만에 왔죠(3일 만의 부활을 의미한다). 그런데 3일이 30년이 될 때도 있어요. 저는 23년 만에도 왔는걸요. 일례로 제가 첫 번째 심장을 양보하고 받은 심장은 알코올 중독자의 심장이었어요. 이식용으로 적합하지 않은 심장이었지만, 저는 그것을 받아 6년을 살았어요. 6년 후 다시 발작을 일으켰을 때 다행히 십 대 소년의 튼튼한 심장을 받을 수 있었어요. 당시에 의사가 그러더군요. 두 번의 이식 기회를 다 썼기 때문에 앞으로 또 문제가 생기면 끝이라고.
그런데 최근에 심장에 연결된 혈관 두 개가 막힌 거예요. 마땅히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 의외의 소식이 전해졌어요. 그 사이에 의료법이 바뀐 거예요. 내가 받은 첫 번째 심장이 알코올 중독자의 것이라 부적격으로 카운트에서 제외되었고, 결과적으로 한 개의 심장이 더 남았다는 거죠.”
-기적이군요.
“기적이지요. 그리고 저는 인생을 통틀어 어마어마한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팀하스의 사훈은 ‘우리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존재한다'이다. 그가 짓는 주차빌딩도 도시에 온기와 활기를 넣는 심장이 되고 있다.
사진=이태경 기자
하형록은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어린 시절을 부산 용호동에서 보냈다. 그의 부모는 그곳에서 세상에서 버림받은 한센병 환자를 섬기며 14년간 목회를 꾸렸다. 그와 형은 매일 먼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녀야 했다. 오가는 길에 마을을 지날 때면 아이들은 ‘문둥이 대장’이라고 놀리며 하형록 형제에게 돌을 던지곤 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인생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미소지으며)1990년도에 첫 아이 낳고 그곳에 다시 한번 가봤어요. 그 동네에서 바라보면 오륙도가 다 보여요. 12살에 떠나 32살에 돌아왔는데 저를 알아본 한 어른이 “형록아, 니 왔나?”하면서 반겨주셨어요. 미국 떠나기 전 아버지가 동네 어른들께 인사드리고 오라고 해서 갔을 때도, 그분들이 손으로 직접 무쳐주신 밥과 나물을 다 먹었어요. 한센병은 피와 고름으로 접촉하기 전엔 옮지 않거든요.
어릴 때부터 코와 입이 뭉개지고 얼굴이 찌그러진 사람을 보통 사람처럼 보고 자라서 그런지, 저는 부자들을 만날 때보다 어려운 사람들과 있는 게 훨씬 편했어요. 가진 사람들은 대화하면서 자꾸만 자기 위치를 확인하려고 들거든요. (웃음).
신기한 건 어릴 때 아이들이 제게 던진 돌이 훗날 제게 좋은 거름이 됐다는 거예요. 그 돌은 그냥 작은 돌멩이가 아니라 엄청나게 큰 돌이었어요. 그 아이들도 무서워서 잡히는 대로 돌을 던지고 저는 저대로 살려고 머리를 감싸고 전력 질주를 했죠. 그런데 그 경험으로 맷집이 생겼고, 누가 나를 공격해도 웬만하면 다 감당이 됐어요.”
-미국에선 좀 나아졌나요?
“미국에 갔을 때가 1969년인데, 1968년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됐어요. 아버지가 다닌 신학교가 필라델피아의 백인들 사는 곳에 있어, 저는 백인들만 있는 중학교에 갔어요. 인종차별이 얼마나 심했던지, 저는 한 번도 제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어요. ‘back to china’가 이름이었어요. 그런데 그 놀림이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한국에서 이미 다 훈련이 됐던 거죠(웃음). 그 뒤로 더 담대하게 나갈 수 있었어요.”
-회사를 경영하면서 부딪히는 현실적 어려움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까?
“한번은 2009년경에 마이애미 구장 주차빌딩 공사에서 문제가 발생했어요. 주차 기둥에 금이 가는 하자가 생긴 거예요. 고객의 무리한 설계 변경으로 생긴 문제였지만, 어쨌든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심장이 멎을 만큼 힘든 순간이었어요. 그때 저는 고객과 여러 파트너 회사들의 잘못을 들춰내지 않기로 했어요. 각 회사의 보험사와 변호사가 법정 공방을 벌이면 모두가 고통받고 원수가 될 상황이었어요.”
책임을 묻기 위해 관련자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모두 살기 위해선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보험사에서 깜짝 놀랐겠군요.
“네. 하지만 보험사는 우리 회사의 경영 철학을 존중했어요. 믿기 어렵겠지만 모든 공사비를 부담하겠다고 나왔어요.”
보수 공사가 끝난 후 메이저리그 첫 경기가 야구장에서 열렸을 때, 하형록은 이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초청해서 함께 경기를 관람했다. 결론적으로 이것을 계기로 팀하스는 건축업계에서 더 많은 파트너와 고객을 얻었고 동시에 명성도 얻었다.
-그런 당신의 호의가 모두에게 적용될 수는 없을 텐데요. 직원들은 어떻습니까?
“해고당할만큼 큰 실수를 한 직원은 직접 찾아가서 성경구절을 읽어줬어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야고보서 1:12)
그 친구는 나중에 두 배 넘는 연봉으로 스카우트돼서 다른 회사로 갔다가도 다시 팀하스로 돌아왔어요.”
-번민이 올 때 그런 지혜로운 결정은 어떻게 내립니까?
“기도를 해요. 대부분 오래 걸리지 않아요. 더 희생하는 쪽을 선택하면 됩니다. 당장은 손해지만 1천 불을 잃어도 5천 불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경험으로 알죠.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내가 크게 희생하는 순간, 저 살겠다고 아등바등하던 사람들이 변해요.”
-고통스러울 때는 없나요?
“(크게 웃으며)자녀가 말을 잘 안 들을 때는 저도 고통스러워요.”
이웃의 고통에 주저 없이 자신을 헌신해온 그도 ‘자녀 앞에서는 고통을 느낀다’니, 그 보통 사람의 마음에 친근함이 느껴졌다.
하형록은 지금도 미국에서 사람을 모이게 하고 도시를 살아나게 하는 주차빌딩을 건설 중이다. 더 높아지기를 원하는 화려한 빌딩은 그의 소명이 아니라고 했다.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팀하스의 주차 설계 프로젝트는 서울과 경주에서도 진행 중이다.
-이 모든 일이 심장을 양보한 그 순간에서 시작된 거지요?
“그렇지요. 내가 양보한 심장을 받은 그 여성분은 두 번째 수술 없이 지금도 잘살고 있어요. 그 여성의 초청을 받아 집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30명 정도 가족이 모여있었는데,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예뻤어요. 감사로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살면서 그 눈빛이 종종 기억이 납니다.”
십대 소년의 심장으로 살고 있는 하형록. 그에겐 아직 한번의 이식 기회가 더 있다.
사진=이태경 기자
-당신에게 심장은 무엇인가요?
“좋은 행함의 증거죠. 이웃 사랑의 증거. 사람들에게 ‘사랑'을 되새김질하는 하트 펌프.”
더불어 이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그에게, 이웃의 심장이 없이는 한 번의 숨도 편히 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한 신의 담보물.
-지금 페이버가 가장 절실한 사람은 누구라고 보세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우리 다죠. (웃으며)작은 페이버라도 경험하면 심장이 뛰고 기쁨이 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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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어찌 그리 하실 수 있을까요...
페이버~자기를 희생해서 이웃을 돕는 것..
진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계신분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