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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루카 6,23ㄱㄴ)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큰 날씨이기는 하지만 낮에는 봄의 기운을 완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포근해진 2월의 셋째 주일인 오늘은 전례력으로 연중 제 6 주일입니다. 이 같은 오늘 이 미사 안에서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삶의 참된 행복은 무엇이며 그 행복을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얻어 누릴 수 있는지, 삶의 참된 행복에 관하여 오늘 말씀은 이야기합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말씀은 예레미야 예언서의 말씀으로서, 예언자는 우리 삶의 행복과 멸망은 우리가 어디에 희망을 두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됨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예레 17,5-8)
예레미야 예언자는 우리 삶의 행복과 멸망을 결정짓는 가늠좌가 주님께 신뢰를 두는지의 여부에 달려있음을 비유를 통해 강렬하게 이야기합니다. 예언자는 주님이신 하느님께 신뢰를 두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도 같은 사람에 의지하는 자들과 언젠가는 썩어 없어질 제 한 몸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이들은 저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 냉정하고 사늘하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런 이들의 삶은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보기 힘든 사막의 덤불, 메마르고 그 어떤 생명력도 지니지 못한 소금 땅과 같은 불행과 멸망의 삶이 될 것임을 매우 단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반면, 주님께 신뢰를 두는 이들은 마치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언제나 푸르름을 유지하며 제아무리 심한 무더위와 가뭄이 몰아쳐도 그 어떤 위협도 없이 항상 푸른 생명력을 유지하며 줄곧 열매를 맺는 축복받은 삶, 행복의 삶을 영위하게 될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이 같은 오늘 제 1 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서의 말씀은 오늘 화답송의 시편의 말씀으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오늘 화답송은 시편의 첫 번째 노래로서, 시편 1편은 오늘 제 1 독서와 동일한 주제, 곧 인간 삶의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 노래 모음집인 시편, 모두 150편의 찬미가를 모아놓은 책인 시편의 첫 번째 찬미가가 인간 삶의 참된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아울러 시편 1편은 주제와 그 내용 모두 예레미야 예언서의 말씀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데, 일부 성경학자는 시편 1편의 기원이 오늘 독서의 예레미야서의 말씀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 같은 시편 1편은 예레미야 예언서의 말씀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하느님께 신뢰를 두는 이, 하느님 말씀과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이들의 삶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시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1-3)
우리가 한번쯤은 들어 알고 있는 유명 신부님의 유명 베스트셀러 책의 제목, ‘무지개 원리-하는 일마다 잘되리라’가 바로 이 시편의 한 구절 말씀입니다. 누구나 바라고 희망하는 바, 내가 하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나의 뜻대로 아니 나의 뜻과 희망보다 더 잘 이루어지기를, 정말 책 제목처럼 내가 하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그 모든 일이 하는 족족 모두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에게 공통적인 강렬한 희망이자 열망입니다. 그래서인지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이들이 그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그러나 무지개는 우리 눈에 분명히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찾아 내 손으로 직접 쥘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것, 책은 마치 신기루 같은 무지개 원리 7가지만 깨우치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될 것처럼, 흡사 인생 성공의 놀라운 비법과 해법이 그 안에 담겨 있는 듯 말하지만, 사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 신묘한 비법이나 해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가 오고 난 후 잠시 우리 눈에 보일 뿐인 무지개를 찾아 길을 떠난 이는 결국 빈손으로 허망하게 돌아오게 되는 것처럼, 행복의 7가지 원리 같은 것은 본래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집중하고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라는 시편의 구절 앞에 언급된 5가지 전제 조건으로서 하는 일마다 잘 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것을 먼저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그것은 첫 번째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것, 두 번째 죄인들의 길을 걷지 않으며, 세 번째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네 번째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마지막 다섯 번째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이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고 삶 안에서 그 모두를 실천하는 이들만이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라고 시편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다섯 가지를 다 지키고 실천하는 이라면 하는 일마다 안 되면 그게 더 이상하다고 할 정도의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편이 말하는 이 다섯 가지 조건을 오늘 제 1 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서의 말씀과 함께 이해해보면 하나의 조건, 곧 하느님께 신뢰를 두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신뢰하고 하느님께 신뢰를 두는 것. 이 주제를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음성으로 네 개의 행복선언과 네 개의 불행선언으로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의 말씀으로서 참된 행복을 이야기하는 마태오 복음 5장의 말씀과 병행되는 루카복음의 말씀입니다. 루카복음사가는 참된 행복에 관한 아홉 개의 선언을 말하는 마태오 복음과는 달리 네 개의 행복 선언과 내 개의 불행 선언을 통해 우리 삶의 참된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복음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는 사람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을 것이다. [...]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루카 6,20ㄴ-21.24-25)
그런데 이 복음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큰 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도대체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으며, 굶주리며 우는 사람들,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이들이 행복하다 선언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더해 불행선언의 말씀은 우리 마음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뿐입니다. 하는 일마다 잘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우리들에게 우리 성공의 모델로 여겨지는 부유하고 배부른 이들, 웃고 행복한 이들이 불행하다고 선언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충격과 공포 혼란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의 이 예수님의 말씀은 과연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리의 상식과는 정반대를 이야기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과연 어떤 의미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오늘 제 2 독서의 말씀이 그 해답을 제시해줍니다. 오늘 제 2 독서는 지난 주일에 이어 계속되는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교회 공동체에 보낸 편지글로서 바오로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믿음도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1코린 15,12.16-17.19)
바오로는 분명 코린토 교회 공동체 모든 구성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와 인간 구원에 관하여 복음을 선포하였는데, 그리스식 문화적 조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일부 코린토 교회 구성원들이 부활에 관하여 육신의 부활이 아닌 순수 영적인 의미로만 부활을 이해하여 교회 내에 큰 혼란을 일으킵니다. 이에 바오로는 순수 영적인 차원에서의 부활을 넘어서는 육신의 부활, 모든 죽은 이들의 부활이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로 가능해졌으며 이 부활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임을 분명하게 설파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되어줍니다.
바오로 사도가 분명히 언급하고 있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 가운데에서도 죽음을 이긴 부활 신앙을 그리스도교의 핵심 믿음으로 삼아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을 믿고 따르는 이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이 같은 믿음은 현세만을 위한 믿음이 아닌,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에 관한 믿음이라는 사실. 그러기에 단순히 현세적 삶에서 누리는 부귀영화, 재물과 권세를 찾는 것이 아닌 죽음을 이겨내는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비록 현실에서는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불행의 삶이라 여겨지고 비쳐진다할지라도 우리의 마음과 영혼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을 가능케 하는 하느님께 두는 이들, 곧 하느님께 온전한 신뢰를 두고 하느님을 신뢰하는 이들이 참된 행복을 누리는 이들임을 예수님은 이야기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송동 교우 여러분, 우리의 주님이신 하느님,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필요로 할 때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이 풍성히 넘치도록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신뢰를 둘 수 있는 이들, 인간 삶의 절대 절망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을 이겨내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 삶의 부활의 길을 열어주시는 하느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이들, 바로 이들이 진정 참된 행복을 누리는 이들입니다. 세상이 주는 행복과 기쁨은 일시적이고 가변적이며 제한적인 기쁨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스러지고 없어지고 말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과 재물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의 몸에 의지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이 아니라, 주님만을 신뢰하고 우리의 신뢰를 하느님 그분께 둘 수 있는 사람이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이들에게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을 넘치도록 베풀어 주심으로서 그들에게 영원한 기쁨, 완전한 행복, 불변의 축복을 누리도록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하느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마치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이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이 않는 나무와 같이, 그들이 하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하느님 안에서 모두 다 잘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 여러분의 신뢰를 두도록 노력해 보십시오. 그러면 분명 좋으신 하느님, 넘치도록 은총을 충만히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언제나 함께 해 주시며 우리 모두의 삶을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 축복은 세상이 주는 그 어떤 행복과도 비할 수 없는 지고의 행복, 지상의 기쁨입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늘 화답송의 시편이 말하듯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 그리고 주님의 가르침이 적힌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좋아하며 그 말씀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이를 삶 안에서 실천함으로서 언제나 기쁨 넘치는 삶, 즐거움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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