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안역에 흐르는 茶香을 따라>
충청북도 증평군 도안면 화성리 180번지, 그 곳에 나뭇잎 빛깔을 입힌 목재로 정갈하게 울타리를 친 단출한 집 한 채가 서 있다.
문 위에 현판(懸板)은 따로 걸려 있지 않으나, 그 집은 茶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익히 매설당(梅雪堂)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그네(필자)를 맞이하는 주인장의 얼굴에선 마치 깊은 산중에서나 마주칠 법한 수도승의 일면이 보인다.
매설당의 주인인 동효(東曉) 이 진우 님은 두 해 전 이 곳으로 거처를 옮겨 그의 본업(本業)인 나무를 가지고 작업하는 일과 더불어 茶를 나누며 생활하고 계신다.
찻물을 불에 올리고 찻잎을 넣은 다관(茶罐)에 끓인 물을 옮겨 담고 차를 우려 낸 물을 찻잔에 따르는 그의 유연한 손놀림이 예사롭지가 않다.
다인(茶人)이라 칭함을 받기보다 다만 “茶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간소하게 불려 지기를 바라는 그의 꾸밈없는 눈빛이, 그가 앉아 있는 등 뒤로 바라다 보이는 도자기 茶통위에 그려져 있는 달마대사의 눈빛을 닮은 것도 같았다.
나무를 다듬어 다탁(茶卓)을 만들고 차반(茶盤)을 만들어 인사동까지 납품도 하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그가 자기 집 문 위에 걸 현판 하나 만들기가 무어 그리 어려울까만, 그가 구태여 현판을 내걸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매설당은 저잣거리에 있는 일반 커피숍이나 찻집과 같이 차를 마시고 값을 지불하는 곳이 아니므로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큰 까닭이다.
오래 묵어 구멍이 숭숭 뚫린 헤어진 바지를 입고도, 마주 앉은 고위 간부직 인사나 동네 촌옹(村翁)에게나 같은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茶 한 잔을 건넬 줄 아는 그는 영혼이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 아는 듯 보였다.
“부족한 듯 보이게 가는 것이 지혜로움이야. 꽉 채워서 가려는 건 어리석음이지.”
나그네가 매설당에 들른 날, 때마침 서울에서 방문한 두 젊은이에게 내어 주신 동효님의 말씀이었다.
정성으로 달여 주신 茶를 귀하게 대접 받고 돌아오는 길에, 송광사 16국사 중에서 다시(茶詩)를 가장 많이 남기신 원감국사(圓鑑國師) 충지 스님(沖止:1226~1292)의 다시 한 수가 떠올랐다.
새벽에는 미음 한 국자로 요기하고(寅漿飫一杓)
점심은 밥 한 그릇(午飫飽一盂)
목마르면 차 석 잔뿐인데(渴來茶三椀)
알든 모르든 아무 상관없다네.(不管會有無)
매설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안역 저 너머에서 茶香을 실은 저녁 기차가 붉게 물든 노을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알든 모르든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