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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지리산의 연푸른 산빛을 보노라면 눈이 맑아지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더불어 지리산 햇녹차라도 한 잔 마시고 눈을 감으면 몸속의 피마저 마치 신록으로 흐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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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픔과 분노의 진도 산자락에 홀로 핀 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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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눈 밝은 선배에게 호를 받은 적이 있다. ‘청람(靑嵐)’이었다. 청람의 뜻은 ‘오월에 이는 푸른 산 기운’이다. 말하자면 지금 이 순간 신록의 산빛을 낳는 미완의 바람으로, 결과가 아니라 연초록에서 초록으로 넘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산 기운이다.
그래서 5월이면 날마다 첫 마음,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뜻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처님 오신 날 등이 연푸른 산색과 함께하니 이 얼마나 좋은가. 남원시 운봉읍의 바래봉과 하동군 화개면과 악양면 경계의 형제봉, 그리고 세석평전의 붉은 철쭉꽃들이 신록의 산색에 슬프디슬프고, 아프디아픈 화룡점정을 찍으니 비로소 지리산은 지리산다워지는 것이다.
몇 해 전에 실상사 수월암의 연관 스님이 운서 주굉의 <죽창수필>을 다시 선역해 펴냈는데, 그 제목이 또한 ‘산색’이다. 이 책을 읽다가 단 두 문장에 무릎을 치고 말았다.
‘날쌘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고도 달린다. 송곳이 살갗에 꽂혀서야 알아채는 것은 둔한 말이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경구인지요. 신록의 산색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무엇을 보고 살아 있음의 묘미를 알아채겠는가.
지난 한 달 동안 ‘세월호 참사’가 나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어렵게 잠깐 잠이 들어도 악몽을 꾸고, 푸른 산빛을 보아도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은 다만, 잠시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저 산색이 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우리네 삶의 지난한 과정이 바로 신록처럼 푸르되 그 푸름을 강요하지 않고, 철쭉꽃처럼 붉되 그 붉음을 무리하게 강요하지 않는 마음 또한 소중할 것이다.
스스로 그러한 산색이 주는 자기 최면과 말씀을 경청하며 5월의 지리산을 바라보았다. 굳이 송곳에 깊이 찔려야 알겠는가. 피를 토하는 철쭉꽃을 연초록의 산색이 슬그머니 감싸고 있다. 그러하니 철쭉꽃 또한 붉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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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멸종위기식물 1급인 광릉요강꽃. 이 야생화를 만나러 오토바이를 타고 강원도까지 1,500km를 달렸다. 2 지리산 동북부에 자생지가 있는 멸종위기식물 2급인 복주머니란. 3 앵초가 넓게 군락을 이뤄 분홍색 꽃을 피웠다. 4 지리산 빗점골의 산철쭉이 계곡 옆에 아름답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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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 이슬도 속눈썹에 맺히면 눈물이 된다. 문득 궁금해졌다. 한 마리 개미가 하루 종일 걸은 만큼 저의 다리로 걷는 사람은 몇이나 될지, 벌 나비가 수많은 꽃을 찾아다니는 만큼 열렬히 사람들을 만난 이는 또 몇이나 될지, 나뭇잎 하나가 바람에 나부낀 만큼 마음 아프게 흔들려본 이는 또 몇이나 될지 도대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참회와 반성은 쓰디쓰지만 이 계절에 꼭 복용해야 할 상비약이다.
지난 한 달 동안 ‘세월호 참사’의 공범으로서의 참회와 반성으로 숲속을 기어 다녔다.
멸종위기식물 1급인 광릉요강꽃을 보기 위해 강원도 비무장지대 바로 아래 그 먼 곳까지 다녀왔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장장 1,500km를 달렸다. 전국에 겨우 800포기 정도밖에 남지 않아 철저히 보호를 받고 있다. 야생 광릉요강꽃의 자생지는 강원도와 경기도 일부지역, 그리고 충북 영동과 전북 덕유산, 전남 백운산에서 발견됐다. 나는 충북 영동과 전북의 덕유산을 헤매다 못다 핀 한 송이를 겨우 만나고는 결국 강원도까지 달려간 것이다.
처음 만난 야생화에 기뻐할 수 없는 삶의 무게
내 생애 처음 만난 야생화니 더없이 기쁘지만, 차마 기쁘다 말하기에도 세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광릉요강꽃의 꽃말은 ‘숲속의 인어’다. 마치 춤추는 무희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하수상한 시절, 깊이 마음 다친 이들께 이 꽃을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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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임실 구봉 저수지의 봄날. 벚꽃이 저수지에 떨어져 운치를 더하고, 벚꽃이 널리 퍼진 모습이 마치 산 전체를 희끗희끗하게 물들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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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의 전생에서 고체의 이승으로, 그리고 기체의 저승으로 가는 길에 문득 이렇게 숲속의 인어를 만났다. 우리가 사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마지막이라고 결심하는 순간 오히려 마지막은 사라지고, 늘 한결같으리라 마음을 놓는 순간 마지막은 불시의 기습공격을 감행한다.
그러니 언제나 마지막은 없고 다만 마지막처럼 사는 것만 있을 뿐이다. 과거에 얽매여 사는 것도 문제지만 내일을 위해 산다는 것 또한 불행한 변명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마치 종말론자처럼 지금, 바로,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필요하다. 전생과 현생과 내생의 삼생(三生)이 바로 이 순간, 한 호흡이 아닌가.
광릉요강꽃과 더불어 지리산의 복주머니란을 만났다. 개불알꽃, 요강꽃이라 부르던 멸종위기 2급식물이다. 이름이 거시기하다는 핑계로 복주머니란으로 바뀌었다. 물론 복주머니를 닮기도 했지만 보면 볼수록 옛 이름이 훨씬 더 정겹고 사실에 가깝다.
꽃말은 ‘튀는 아름다움’, ‘숲속의 요정’, ‘기쁜 소식’, ‘희망’ 등이다. 하지만 이 꽃말이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으니 처음 만난 복주머니란 앞에서도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쉴 수밖에. 그래도 때마침 어린이날에 만났으니 이 땅의 모든 아이들, 미래 세대들에게 이 복주머니란 한 송이씩을 선물하고 싶었다.
애써 눈물을 감추며 강원도와 지리산 숲속을 기어 다니다 마침내 진도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왠지 꼭 가보아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진도의 팽목항에 막상 도착하니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박2일 진도에 머무는 동안 진도대교와 팽목항이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카메라마저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진도의 산속으로 다시 무릎을 꿇고 기어 다녔다.
그곳에서 막 피어나는 자란(紫蘭)을 만났다. 하필이면 꽃말마저 ‘서로 잊지 말자’다.
그래,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자란의 눈빛이 아닌 자들을 어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연분홍 꽃잎을 바라보는 동안 “기다리라”는 어른들의 말만 믿다가 수중고혼이 된 아이들이 떠올랐다.
이 환한 봄날에 피는 모든 야생화들이 상중(喪中)의 꽃이었다. 순천대 문창과 수업을 마치고 비 내리는 향림숲에 들렀더니 흰매발톱꽃도 상중이다. 더불어 보랏빛 매말톱과 벌깨덩굴도 빗속에 울고 있다. 흰남바람꽃도, 졸방제비꽃도 더불어 처연하다.
슬픔과 분노도 사뭇 추상적일 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 이제는 슬픔도 구체적이어야 하고, 분노도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심판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요즘 내내 오래 전에 쓴 나의 졸시 ‘저승새’를 중얼거렸다.
벽오동 푸른 문수골의 밤
누가 자꾸 돌을 던지나
날아도 꼭 변화무쌍한
유인구처럼 날아와
아주 가까이 호랑지빠귀가 운다
봉창 아래
죽은 첫사랑을 부르듯
휘이이 퓌이이
겨드랑이 속을 파고드는데
속지 마라 홀리지 마라
저 소리는 이승의 소리가 아니다
온몸의 솜털이 자꾸 한쪽으로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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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선 안 될 세월호 의인들에 금낭화 바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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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습지등불버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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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지리산 빗점골에 갔다가 폭포수 아래 산철쭉 꽃에 머물다 계곡을 건너는 산제비나비를 보았다. 마치 혼령처럼 보였다. 계곡 바로 위에는 화산 선생이 돌아가신 곳이고, 이 물길을 따라 아주 많이 내려가면 남해다.
계곡물과 남해와 서해는 이렇게 한 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한 몸인데 절대로 한 몸이 아니라고, 한 몸이 될 수 없다고 발버둥 치며 우기는 사람들도 있다. 모두 아픈데 아픈 척 다른 정치적 걱정을 하고, 모두 슬픈데 슬픈 척 궁지에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게 도대체 믿기지 않고 용서할 수 없다.
지리산 계곡 여기저기에 금낭화꽃들이 피고 있다. 금낭화의 꽃말 ‘당신을 따르겠습니다’가 가슴을 친다. 심장을 닮은 꽃으로 비단주머니꽃, 며느리주머니꽃으로도 불린다.
며느리밥풀꽃과 똑같은 슬픈 전설이 서린 꽃이다.
그러나 ‘당신을 따르겠습니다’가 단순히 복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의가 아니라면 불복종마저 당연지사가 아닌가. 따라야 할 만한 사람들을 따르고, 따라야 할 만한 것들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는 도대체 본받고 따라야 할 만한 큰 어른들이 잘 안 보인다. 각 종교계, 정계, 학계에도 없는 것 같다. 이것이 원통하고 아플 뿐이다.
하지만 반드시 ‘잊어선 안 될 5인의 세월호 의인들’이 있다. 단원고 정차웅 군, 남윤철 선생, 최혜정 선생, 그리고 세월호의 박지영 승무원, 양대홍 사무장 등이다.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금낭화 꽃다발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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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한 봄날에 내가 겨우 할 수 있는 일은 꽃을 바치는 것뿐이다.
행운의 열쇠를 언제 찾을 수 있을까?
앵초꽃 환한 전북의 어느 숲속에서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란 책 제목을 떠올렸다. 앵초의 꽃말은 ‘행운(행복)의 열쇠’다. 수많은 앵초꽃들 중 딱 한 포기가 뿌리에 품고 있다는 행운의 열쇠를 우리는 언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지리산 북부지역의 계곡에서 습지등불버섯도 처음 만났다. 한때는 ‘슬픔도 힘이 된다’,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이런 시와 시집에 마음이 끌리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도통 그럴 수 없다. 국민 패닉, 한반도 멘붕 상태가 아닌가.
24시 뉴스를 끄고 깊은 산 숲속에 숨어들어 그 환한 분홍빛 앵초를 만나도 자꾸 서럽고, 그 귀한 야생화를 찾아도 자꾸 슬프다. 야생화 앞에 오체투지의 자세로 엎드려도 왠지 모를 분노가 치민다. 그나마 처음 만난 습지등불버섯을 보며 위안을 삼았다.
캄캄하고 습한 이 세상의 한 모서리, 성냥개비만 한 습지의 버섯들이 등불을 켜고 있다. 상가나 영안실의 조등이 아니라 기적의 등대이기를 그 얼마나 기원했던가. ‘아직 어린 영혼들이시여, 훠이 훠이, 삼도천 건너가시라’ 기도하고 또 기원했다.
뒷산 솔숲의 무덤가에 누워 따스한 봄 햇살, 살랑살랑 봄바람을 온몸으로 받는다. 솔향기를 맡으며 돌이켜보면 입산 17년이 아득하고, 도시의 기억들 또한 아득하다. 그때, 수꿩이 울었다. 춘정을 주체할 수 없는 장끼들이 산중의 망중한을 시기라도 하는 듯 느닷없이 ‘꿔엉~ 꿩’ 울며 푸드득 날아올랐다. 마치 누군가 꿩을 보고 새가 아니라고 우기기라도 하는 듯, 아니 마치 제 이름이라도 잊은 듯이 울어도 꼭 ‘꿔엉~ 꿩’ 이렇게 우는 것이다.
봄날의 춘정을 이기지 못한 수꿩들이 운다. 꿔엉 꿩- 제 이름을 부르듯이, 마치 주문을 외듯이 ‘나는 꿩이야, 나는 꿩!’ 수꿩이 운다.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온통 생의 비만인 우리도 시시로 자기 자신의 이름을 불러보아야 하리라. 과잉 섭취의 비만, 정보 홍수의 비만, 속도의 비만, 천민자본주의식 욕망의 비만, 비인간화의 비만을 반성하며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누구인가 되물어야 하리라.
시시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침내 머리가 나빠지다 못해 단순해지도록 저 봄날의 수꿩처럼 제 이름을 주문처럼 부르고 또 불러보아야 하리라. 욕망과 무한질주의 산그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전깃줄에 어느 순간 목이 꺾이고 날개가 꺾이기 전에.
“날쌘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고도 달린다. 송곳이 살갗에 꽂혀서야 알아채는 것은 둔한 말이다.”
<한 편의 시>
평사리 연가
이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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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밤마다 섬진강의 동쪽 하동에서
해가 뜨고 달이 떠오릅니다
아침 햇살은 그대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희푸른 달빛은 내내 그대의 영혼을 비춥니다
맨 처음 그대를 만나던 날
평사리 청보리밭은 하루 종일 술렁이고
생각만 해도 입속에 침이 고이는
그대가 나의 신맛이었을 때
온 동네 청매 홍매 백매는 피고지고
눈빛 마주치는 가지마다 시큼한 매실이 익어갔지요
그러나 어인 일인지
흐린 날의 초저녁부터 휘이 퓌이~
마치 혼이 빠져나가듯 검은 숲에서 호랑지빠귀가 울고
귀를 막아도, 아무리 귀를 틀어막아도
그대가 나의 쓴맛이었을 때
형제봉 철쭉꽃밭은 붉은 상사병으로 더욱 번지고
신열의 이부자리엔 쓰디쓴 씀바귀만 자랐지요
아아, 그러다 그러다가
마침내 빨간 물앵두가 익어가던 날
그대가 나의 단맛, 나의 달콤한 맛이었을 때
내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열려
신록의 산바람 강바람이 불고
형제봉 활공장에선 패러글이더가 새떼처럼 날아올랐지요
그러나 다시 그대가 나의 매운맛이었을 때
자꾸 입술이 부르트고 혓바늘이 돋아
평사리 무딤이 들녘에선 까마귀 떼가 울고
그대가 나의 짠맛, 짜디짠 맛이었을 때
눈물의 수위는 자꾸 높아져
하동포구에서부터 바닷물이 역류했지요
그랬지요 이를 어쩌나 어쩌나
밤새 달빛 이슬 내리는 평사리 백사장을 걸으며
발자국으로 그대의 이름을 쓰고 또 쓰다 보니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대가 나의 단 한 가지 맛이었을 때
그것은 진정 사랑이 아니었으며
그대가 나의 단 한 가지 맛이기를 강요했을 때
열정과 고통과 절망마저 한갓 미몽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겠습니다
그대는 이미 나의 다섯 가지 맛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 모두였다는 것을!
그대는 나의 산(酸), 고(苦), 감(甘), 신(辛), 함(鹹)이요
그대는 나의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였다는 것을!
그대는 마침내 나의 지수화풍(地水火風)이요
우리 모두의 지리산 수제 작설차요, 하동 야생녹차였다는 것을!
밤마다 섬진강의 동쪽 하동군
악양고을의 칠성봉에서 달이 떠올라
섬진강을 비추고, 그대의 영혼을 비춥니다
오늘 지금 바로 여기 평사리 백사장에서
목욕재계하듯이 달빛 사우나를 하며
그대를 마십니다
그대 영혼의 맑고 푸른 피를 마십니다
오월 신록의 청람(靑嵐), 푸른 기운을 마십니다
그대를 마시며 기꺼이 사랑의 노예가 됩니다
그대를 마시며 기꺼이 절절한 그리움의 하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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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신록처럼 푸르되 그 푸름을 강요하지 않고,
철쭉꽃처럼 붉되 그 붉음을 무리하게 강요하지 않는 마음
요안나님, 올려줘서 고마워요. ㅎ 날마다 푸른 산기운처럼 좋은 날 되시길...
이번글은
왠지 시인님의 고뇌가 보입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좋은글
고맙습니다
읽고 또 읽고....이런글을 보면서 잠든다는것도 행복학교가 주는 즐거움중 하나입죠
세월호의 의인들에게 받치는 꽃에 경의를!
요안나님 고맙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그대를 마시며 기꺼이 사랑의 노예가 됩니다..."
좋은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새로이 숙연함이 가슴에 여미네요
"사랑의 노예가 되겠다"는 시어에
공감의 다리를 놓으며 함께하는 마음 올립니다...
감사히 마음을 열고갑니다.....
아름답고 슬프고 그러면서도 행복하고....
이 시인님이 저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