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충북‧경북을 돌고 도는
중부내륙권 관광전용열차
여행이라는 열쇠로만 열 수 있는 문이 있다. 그 문을 열면 세상은 좀더 화사해지고, 시간은 빨리 흐르며, 음식은 더욱 맛있어진다. 이번에 소개할 문은 특이하게도 열차 출입구다. ‘중부내륙권 관광전용열차’에 여행열쇠를 끼워보자.
중부내륙권 관광전용열차
열차, 여행이 되다
시속 165㎞로 달리는 누리로 열차가 관광전용열차로 재탄생했다. 이 열차는 중앙선, 영동선, 태백선 등의 일부 구간으로 구성된 ‘중부내륙권 순환로’를 달린다. 중부내륙권 순환로는 강원도(영월군, 정선군, 평창군, 태백시, 삼척시 인근), 충청북도(제천시, 단양군 인근), 경상북도(영주시, 봉화군, 울진군, 영덕군 인근) 등을 지난다. 정차하는 곳은 제천, 영월, 민둥산, 고한, 추전, 태백, 철암, 승부, 분천, 춘양, 봉화, 영주, 풍기, 단양 등 14개 역이다. 순환선과 연계된 여행지로 중앙선의 단양, 영동선의 백두대간 협곡열차, 태백선의 정선을 소개한다.
중부내륙권은 넓다. 둘러볼 곳도 많다. 관광전용열차를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까? 이럴 때 ‘여행패스’ 티켓이 좋은 대안이다. 여행패스는 1일 단위로 1일권(5만 4,700원)부터 7일권(12만 3,100원)까지 기간별로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관광전용열차 외에 영동선, 태백선, 충북선, 경북선 등 중부내륙권과 연결되는 일반 열차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정차역과 배차시간 정도만 숙지하면 계획 없이 훌쩍 떠나 며칠 동안 여행하기 좋다. 계획을 잘 짜면 비교적 저렴한 교통비로 다양한 여행지를 돌아볼 수 있다. 역에서 가까운 명소와 가고 싶은 관광지의 순위를 정하고 동선을 짜보면서 계획을 세우는 재미는 덤이다. 덕분에 여행 중 느끼는 감흥은 더욱 클 것이다.
[왼쪽/가운데/오른쪽]타면 여행이 시작되는 탑승문 / 커플룸, 패밀리룸 등 다양한 주제의 객석이 여행의 맛을 돋운다. / 창가에 일렬로 배치된 객석
“편안하고 행복한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관광전용열차는 내·외부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외부는 화사한 색감을 더했고, 내부는 목조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예쁜 무늬를 낸 칸과 칸 사이의 문도 멋스럽다. 객석 위 짐칸에는 우리나라의 사계절과 토속적인 내용이 담긴 시가 적혀 있다. 이외에도 유아놀이방, 카페, 매점, 전망석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다.
창문 너머로는 풍경과 세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창을 통해 자연을 보는 것이 ‘구경’보다 ‘관람’이 적합하겠다 싶을 만큼 아름답고, 실내의 분위기도 여정에 감성을 더한다. 그러나 좋은 음식도 많이 먹으면 질리는 법. 이럴 땐 휴식, 여유, 감상 등 여러 자세를 취하며 내릴 때까지 편안함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즐겨 듣는 음악이나 읽고 싶은 책, 보다 만 영화가 있다면 휴대용 기기에 담아 가져가보자. 좌석 가까이에 콘센트가 있으니 충전 케이블을 준비하면 편리하다.
안락하고 편안한 관광전용열차로 변신하기까지의 철도 이야기도 흥미롭다. 백두대간 가까이 조성된 태백선, 중앙선, 영동선은 대한민국 근대화와 산업화의 대동맥이라 불렸을 만큼 광물, 화물 수송으로 국가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1990년대 들어 철로를 통한 화물, 광물, 이용객 수송량이 줄어들면서 침체기에 빠졌지만, 그 시간을 통해 중부내륙권 청정자연이 관광자원으로 부상했다. 중부내륙권과 도시인을 이어주는 중부내륙권 관광전용열차가 등장하게 된 계기이다.
중앙선에서 단양을 만나다
도담삼봉관광지 등산로에서 보이는 풍경
청량리에서 경주까지 이어지는 중앙선 중 제천~단양~풍기~영주 구간이 중부내륙권 순환선에 포함돼 있다. 충청북도에서 비교적 산세가 높은 단양과 소백산맥에 기댄 고장이기에 풍경이 곱다. 자연스레 단양8경 중 제1경인 ‘도담삼봉’으로 발길이 끌린다.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됐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왼쪽/오른쪽]도담삼봉 / 석문
당시 정선에서 단양까지 흘러들어온 삼봉에 대한 세금을 부당하게 요구했다. 이에 한 소년이 “우리가 삼봉을 떠내려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소.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도로 가져가시오”라고 주장했다. 이 당찬 소년이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이다.
다누리아쿠아리움 전경 [왼쪽/오른쪽]아마존의 민물어류 수족관 / 좌‧우‧위로 수족관 관람이 가능하다.
도담삼봉에서 강 상류 쪽으로 작은 고개 하나를 넘듯이 산책하면 기묘한 존재감으로 눈과 마음을 빼앗는 ‘석문’이 있다. 이와 연계된 등산로는 트레킹하기 좋다.
이어서 단양의 자랑인 다누리아쿠아리움으로 향한다. 국내 민물어류와 아마존강, 메콩강 등에 서식하는 해외 민물어류 145종 1만 5,000여 마리(국내 83종 1만 3,000마리, 해외 62종 2,000마리)를 보유해 민물어류의 생태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영동선에서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타다
협곡열차(왼쪽)와 관광전용열차(뒤쪽)
중앙선에서 경북 영주와 강원 강릉을 잇는 영동선으로 넘어가면 독특한 열차가 있다. 분천~양원~승부~철암에 이르는 27.7km 구간을 하루 세 번 왕복하는 ‘백두대간 협곡열차’가 그것. 시속 30km로 천천히 이동하는데 마치 열차가 걷는 듯한 느낌이다. 덕분에 백두대간의 속살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
협곡열차에서 볼 수 있는 백두대간의 여러 계곡들 아름다운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밀폐된 열차와 달리 이 협곡열차는 창문을 열어 개방이 가능하다. 창을 열면 상쾌하고 진한 숲 향기가 훅 끼친다. 창문 사이로 초록빛 산 공기가 들어오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싶을 정도로 상쾌하다. 풍경이 좋기로 유명한 양원역과 승부역으로 가려면 꽤나 많은 품이 들었지만 이 협곡열차 덕분에 쉽게 둘러볼 수 있게 됐다.
태백선에서 정선을 만나다
백두대간 진한 향기에 심신을 맡기고 영동선에서 태백선으로 넘어간다. 태백선은 충북 제천에서 강원 태백에 이르는 철도로, 태백에서 생산되는 무연탄 수송을 위해 산업용으로 건설됐다. 마침 오일장이 열리는 정선으로 향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골이 깊으면 물이 맑고, 물이 맑으면 사람 마음이 순수하다” 했다. 그런 정선 사람의 마음이 장터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푸근한 인심과 정선에서 난 농산물이 어우러져 매년 40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재래시장의 활기가 꽤나 오랜만이다.
[왼쪽/오른쪽]얼마 남지 않은 찹쌀이 동나기 전 사람들이 몰렸다. / 정선 오일장의 대표적인 주전부리인 배추전 정선 산지에서 자란 나물과 약재도 흔히 볼 수 있다.
“정선 읍내 물레방아는 물살을 안고 도는데
우리집의 저 멍텅구리는 날 안고 돌 줄 왜 몰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정선아리랑>의 한 구절이다. 아리랑에 ‘한’도 담겨 있지만 그 가락에 선조의 여러 감정이 담겼음을 알 수 있는 공연이 장날 오후 4시 30분부터 정선문화예술회관(정선장터에서 도보 5분 거리)에서 무료로 열린다.
<정선아리랑> 공연 [왼쪽/오른쪽]병방치 스카이워크 / 짚와이어
정선의 시티투어버스를 이용하면 화암동굴, 병방치 스카이워크 등 또 다른 명소들을 쉽게 둘러볼 수 있다. 병방치 스카이워크에 들어서면 유리바닥 너머 낭떠러지와 거센 산바람에 심장이 콩알만 해진다. 어렵게 열 걸음 정도를 내딛자 동강이 빚어낸 풍경이 강원도 산세를 배경으로 바닥에 누워 있다. 스카이워크 근방에서 짚와이어도 체험할 수 있다. 해발 350m 고지에서 줄 하나에 매달려 1분 30초 만에 급하강하는 코스다. 풍경을 사진과 눈에만 담기 아쉬운 이들을 위한 레포츠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가는 관광전용열차 여행은 걸음과 비슷한 리듬이 있다. 가고 싶은 곳으로 발길을 돌리고, 좋은 풍경이 있으면 잠시 걸음을 늦추는 것처럼. 우리나라 철도 역사의 시작엔 일제강점기의 애환이 서렸지만 지금은 행복한 여행으로 이어주는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좋은 코스와 좋은 열차가 생겼으니 누가 안 반기겠는가. 순환선에 많은 사람의 행복이 돌고 돌길 기대한다.
글, 사진 : 안정수(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