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네이비, 레드, 그레이의 스타일 시놉시스

[TOMMY]

엄격한 네이비, 강렬한 레드, 모던한 그레이. <보그>가 이번 가을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세 가지 컬러로 짧은 스타일 시놉시스를 완성했다.

크지쉬토프 키에슬롭스키라는 이름을 기억하는가? 당장 머릿속에 종이 울리지 않는다면, 90년대 중반 전국의 카페를 장식했던 줄리엣 비노쉬의 말간 얼굴을 떠올려보시라. 이제 좀 감이 잡히지 않나? 딩동댕! <블루> <화이트> <레드>로 이어지는 3색 시리즈로 유명한 영화 감독의 이름. 한때 씨네 키드들이 열광했던 키에슬롭스키가 2010년 가을, 환생해 새로운 3색 시리즈를 연출한다면 어떤 색을 고르게 될까? 이번 시즌 잇 컬러로 등극한 카멜? 지나치게 트렌디하다. 스테디셀러인 블랙? 그만큼 뻔한 선택. 그렇다면 화려한 광택의 황금색? 철학적인 폴란드 출신 감독과 궁정의 색상은 상극. 그렇다면 남은 건 카멜을 제외하고 이번 가을의 컬러 삼총사인 네이비, 레드, 그레이! 90년대 미니멀리즘이라는 필터에 정화된 이 세 가지 컬러는 그 어느 때보다 현대적이고 매력적이다. 세상을 떠난 키에슬롭스키를 대신해, 〈보그〉가 세 가지 컬러의 스타일 시놉시스를 준비했다.

COLD HEART
올 가을의 네이비, 즉 감색은 지극히 세련되거나 엄격한 모습이다. 피비 파일로가 그린 셀린의 네이비 여인을 보자. 목을 완전히 감싸는 하이넥 코트에 검정 스타킹,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차려입은 그 여인에겐 일말의 허점도 느껴지지 않는다. 검정과 감색이란 뜻밖의 컬러 매치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는 감색스커트 아래로는 살짝 속살이 비치는 검정 스타킹을 매치하거나 두툼한 감색 코트는 검정 팬츠로 마무리한다. 보테가 베네타의 여인은 또 어떤가. 칼로 자른 듯 냉랭한 라인의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는 왠지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인 패트릭 베이트먼이 여자였다면 당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고 싶을 듯. 해군 제복을 떠올리게 하는 짙은 네이비 블루 코트를 입은 버버리 프로섬의 여인 역시 시크함과 엄격함이라는 두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섬섬옥수 꽃 자수가 놓인 감청색 니트를 입은 크리스토퍼 케인의 소녀는 에드가 앨런 포 소설 속에서 그대로 걸어 나온 모습. 이렇게 엄격한 네이비를 부드럽게 표현하고 싶다면? 네이비 코트에 둥근 라인을 만들어 사랑스럽게 완성한 마크 제이콥스, 장난스러운 시선으로 네이비를 해석한 요지 야마모토, 프레피한 매력의 네이비 소녀를 제안한 타미 힐피거에서 해답을 찾을 것!

TWO FACES
레드의 제왕 발렌티노가 패션계에서 물러난 후, 이번 가을만큼 레드가 다채롭게 등장한 시즌이 또 있었을까? 이번 시즌의 레드는 대표적으로 파리의 여인과 밀라노의 여인으로 나뉜다. 파리의 빨간 여인이 오묘하고 미스터리한 매력을 담고 있다면, 밀라노의 빨간 여인은 잘 빠진 레드 페라리처럼 도발적이다. 헝클어진 머리로 얼굴의 오른쪽을 살짝 가린 후, 입술과 눈두덩이를 모두 붉게 바르고, 레드 컬러의 레이스 드레스를 입고 홍등 아래로 걸어 나오는 지방시의 모델이야말로 이번 시즌 파리의 빨강을 대표할 만하다. 한눈에 봐도 위험하게 느껴지는 아슬아슬한 빨간색의 매력! 앤 드멀미스터의 깃털 장식 여인도 비슷한 모습이다. 반면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빨강은 좀더 사색적이면서도 도회적이다. 그런가 하면, 검정 아이라인을 눈썹 너머까지 올리고 붉은 드레스에 풍성한 여우 모피 코트를 입은 밀라노 출신 디스퀘어드의 아가씨는 속이 훤히 보여 오히려 순박하게 느껴진다. 열정적이고 뜨거운 빨강이란 고정 이미지에 충실한 밀라노 여인들은 아마 베르사체의 풍성한 모피 코트, 푸치의 절개가 들어간 롱 드레스, 그리고 돌체 앤 가바나의 검정 레이스 장식 새틴 드레스에 숨이 가빠질 듯.하지만 이 모든 빨간 여인들을 아우르는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옷만큼이나 새빨간 핏빛 립스틱!

NO FUSS
미니멀리즘과 가장 잘 어울리는 컬러는 역시 모노톤이다. 자질구레한 것을 모두 걷어낸 디자인에는 모든 것을 배제한 색상이 어울리게 마련! 그렇기에 이번 시즌 그레이를 입은 여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쿨하고 매력적이다. 스텔라 맥카트니가 제안한 여성상은 이 지극히 모던한 그레이 룩의 완벽한 롤 모델. 코트의 라펠도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반반하게 펼쳐낸 A라인 코트는 올가을 커리어우먼을 위한 완벽한 유니폼이 될 듯. 아마도 그녀의 친구는 클로에의 복고풍 오버 코트를 입을 것만 같다. 또, 짙은 회색 재킷에 블랙 풀스커트를 매치한 드리스 반 노튼은 단번에 쿨한 레지스탕스 스파이 룩을 완성했다. 지극히 부유한 회색의 여인도 있다. 마이클 코어스의 여인들은 100%캐시미어 소재의 롱 스커트가 바닥 청소를 대신 한다 해도 눈 한번 깜박 하지 않을 듯. 카멜과 어울린다면 더욱 세련된 여인이 될 것이다. 만약 이런 ‘클린한’ 회색이 심심하다면, 텍스처가 회색을 좀 더 흥미롭게 해줄 듯. 알렉산더 왕, 발렌시아가, 루이 비통, 마리오 슈왑 등이 트위드, 네오프린, 니트, 모피 등의 다양한 소재를 준비했다. 물론 하이더 아커만의 여인처럼 리듬감이 느껴지는 라인만으로 완성한 완벽한 카리스마는 따라잡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에디터	손기호
포토그래퍼	JAMES COCHRANE, KIM WESTERN ARN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