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 모터스] 레오 까락스 감독의 내한 취재기
# [홀리 모터스]는 어떤 영화?
홀리 모터스 (Holy Motors, 2012)
감독ㅣ레오 까락스
출연ㅣ드니 라방, 카일리 미노그, 에바 멘데스, 에디뜨 스꼽
'홀리 모터스'라는 리무진을 타고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며 하루 동안 아홉 번의 변신을 하는 오스카씨의 하루를 그린 작품. 프랑스 천재감독 레오 까락스의 작품 세계를 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으로 그의 페르소나 드니 라방이 아홉 번의 인생을 완벽하게 연기해 관객들에게 마법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홀리 모터스]는 칸 영화제 젊은 영화상 수상을 시작으로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총 2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17개 부문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특히 2012년 카이에 뒤 시네마를 비롯한 뉴요커, 뉴욕타임즈, 가디언, 인디와이어 등 40여개 매체 '올해의 영화 TOP.1 & TOP.10'에 선정되며 13년만에 돌아온 거장의 화려한 귀환을 다시 한 번 알렸다.
13년만의 장편 신작을 선보인 감독에게 영화에 대한 의미를 묻자 "나는 영화의 원초적인 힘을 믿는다. 영화가 초창기에 가지고 있던 그 힘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점점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이 기술이 아닌 다른 것을 통해 영화시대 초창기의 원초적인 힘을 찾아야 한다. 무성영화 시대 무르나오란 감독의 영화 속 배우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모습에서 신의 눈길이 느껴진다. 요즘엔 유튜브 등에 누구나 영상을 찍어서 올릴 수 있다. 그 속에서 신의 눈길은 느낄 수 없다. 나에겐 신의 눈길을 다시 찾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밝혀 그가 이번에 내놓은 [홀리 모터스]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성찰 속에서 탄생한 작품인지 다시 한 번 느끼게 했다.
더불어 그의 페르소나 드니 라방에 대해서는 "영화를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시키는 관계다. 드니 라방의 경우 이제는 그 어떤 역할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라 생각한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관객이 영화 [홀리 모터스] 속 실험적인 장면 구성에 대한 의도를 묻자 "실험적인 요소란 언제나 모든 영화에 늘상 존재해 왔다. 영화는 항상 재창조될 필요가 있다. 짧은 영화의 역사 속, 가령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등 그 변화의 시기마다 영화가 갖는 창조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관객들은 앞으로 달리는 기차가 스크린 밖으로 튀어 나올까 겁을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그런 공포를 갖지 않는다. 나는 영화가 갖는 본연의 힘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혀 기자간담회에 이어 다시 한 번 '영화 본연의 힘'에 대해 강조했다.
또한 영화 제목 [홀리 모터스]의 의미에 대해 "'신성한 모터(Holy motors)'는 바로 우리의 움직이는 몸, 우리 자신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영화 [홀리 모터스]는 인간-동물-기계 이 모든 것들이 단합하여 우리를 지배하려는 디지털 세상에 맞서는 이야기"라고 답했다.
▷ 레오 까락스 감독의 스페셜 인터뷰
한국 관객을 만난 소감은?
대부분이 젊은 관객이라 놀랐다.
완성된 편집본을 봤을 때 느낌은?
객관적인 시선을 위해선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봐야 하는데, 난 한 번도 내 영화를 다시 본 적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영화를 본 후 외로움을 느끼는 관객들에게 한 마디
그 외로움에 슬픔이 곁들여 있는지 궁금하다. 외로움도 그 자체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꼭 슬픈 영화를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다. 영화를 만들 땐 여러 감정들의 균형을 생각하는데, [홀리 모터스]의 경우 신나는 느낌을 아코디언 연주가의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영화 마지막 노래의 의미는?
"다시 살고 싶다." 재창조란 의미에 가깝다.
.'레오 까락스'로 살아간다는 의미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른 삶을 살아 보지 못했기 때문에. 12, 13살 때 나는 내 삶이 완전치 못하다고 생각했다. 내 자신을 재창조하고 싶어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모든 청소년들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 난 이름을 바꾼 후 영화를 찍게 되었다. 이외의 삶은 살아 보지 않아서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뿐이다.
한국 관객들에게 한 마디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충분히 전달 되었기를 바란다. 이 영화는 무척 단순한 영화다. 파리에서 아이들에게도 보여 주었는데, '쉬운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 주인공보다 모자라거나 혹은 우월하다고 느끼는 성인들에겐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 초반의 20분만 잘 넘기면, 영화가 인도하는 길을 충분히 잘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홀리 모터스] 3D 캐릭터 아이디어 스케치. 2. 세이렌(Siren) 화석. 3. 비늘을 두른 채 파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세이렌 (The Siren, clothed in barbs, emerged from the waves)
극 중 오스카(드니 라방)가 모션캡쳐 전문배우일 때 연기 했던 3D 캐릭터는 반인반어 '세이렌'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세이렌(Sirene)은 나무와도 같은 말린 생선 피부로 된 꼬리와 장어와 유사한 치아, 미확인 동물의 발톱을 지니고 있다는 상상 속의 동물. 극동 지역에서 발견된 세이렌 화석은 17~18세기 유럽의 박람회에 전시되어 많은 인기를 끌었다. 파도가 심한 바닷가에서 아름다운 노래로 지나가던 뱃사람들을 유혹하던 신화 속의 아름다운 세이렌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바로 이 세이렌 신화에 모티프를 얻은 프랑스의 화가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1840-1916)의 작품이 [홀리 모터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오딜롱 르동은 독특하고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를 찾고자 한 상징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 받는 화가이다. 르동이 추구했던 작품 세계는 레오 까락스 감독이 [홀리 모터스]를 통해 보여 주고자 한 '현실과 가상, 그 경계의 무의미함'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홀리 모터스] 속 모션캡쳐 전문배우의 몸에 붙인 센서를 통해 3D 영상에서 위와 같은 캐릭터가 구현된다. 세이렌에서 영감을 받은 각각의 캐릭터들은 좀 더 SF 장르에 어울리게 현대적으로 디자인 되어 있다. 3D 캐릭터의 모습과 그 움직임은 기괴하면서도 그 자체로도 많은 영감을 불러 일으킨다.
보통의 상상을 뛰어 넘는, 관객들의 시선을 단숨에 압도하는 3D 영상 속 캐릭터의 기괴한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실제 두 배우는 상대 파트너와의 많은 리허설을 필요로 했다. 당시 연습 현장 사진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였을지 짐작이 간다. 대사 한 마디 없이 그저 몸의 움직임만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기에, 그 부담은 다른 역할보다 특히 더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무용수 출신이었던 드니 라방에게 이 역할 역시 생각만큼 그리 어려운 미션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에 레오 까락스는 "에띠 엔느 쥴 마레이(프랑스의 의사이자 과학자. '사진총'을 제작하여 연속사진을 촬영. 인간의 움직임을 연구해 현대 영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함.)가 그의 작품 [달리는 말]을 보면서 느꼈을 기쁨을, 나는 드니 라방의 연기를 통해 느꼈다."며 극찬하기도 했다.
2012년 칸 영화제 공개 당시, 영화 속 붉은 수트를 입은 여배우 즐라타가 포토월 행사에서 기념 공연을 펼쳐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즐라타는 러시아 태생 전직 체조선수로 현재는 몸을 뒤틀어 묘기를 펼치는 곡예사, 즉 컨토셔니스트로로 유명하다. 그녀는 드니 라방과 환상적인 호흡으로 [홀리 모터스]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 카일리 미노그의 뮤직비디오 'WHO WERE WE?'
다시 재회한 연인, 진(카일리 미노그)과 오스카(드니 라방)의 애틋한 연기가 인상적인 뮤직비디오. 영화의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는 곡으로, 이젠 폐허가 되어 버린 추억의 장소 사마리텐 백화점과도 그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 세계적인 팝 디바 카일리 미노그가 직접 [홀리 모터스]의 OST 'WHO WERE WE?'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