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의 신앙이 주는 교훈
240302낮 (창19:1~11)
<1)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2)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3)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4)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9)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아멘
금년 신년 첫 주일 설교에서 창13장의 말씀으로 조카 롯을 떠나보내고 고개를 떨구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눈을 들어라’고 말씀하시고,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은 너와 네 후손에게 다 네게 주리라’... 이 약속의 말씀대로 이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됩니다.
반면, 조카 롯은 당시 육적인 안목에 좋은 요단 들을 다 차지하고, 이어 점점 소돔과 고모라에 정착하며 살다가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심판하실 때, 간신히 건짐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롯이 거주하던 소돔성이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내용을 정리해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성에 찾아온 하나님의 천사를 집으로 모셔 들이어 대접하는 장면부터 시작 됩니다. 롯은 아브라함과 헤어져 소돔성에 와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은 죄악이 가득한 땅이고 음란한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먼저 찾아오셔서 그 의도를 아브라함에게 알려줍니다. 그래서 그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이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중보기도를 합니다. 그 모습이 창세기 18장의 기록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에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때에 롯을 건져주시는 장면이 19장의 내용입니다.
많은 이들이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소돔과 고모라 같이 타락한 시대라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벧후2:6~7절 이하를 보면.
<6)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하나님은 롯을 “의로운 롯”이라 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 덕에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그 하나님을 믿고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롯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돔을 심판하실 때, 그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구원 받는 믿음과 성숙한 믿음은 다른 것입니다.
고전3장10-15절은 하나님이 불로 공적을 시험하실 때, 불 가운데서 건짐 받은 것과 같은 부끄러운 구원과 상급이 있는 구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롯은 비록 불로 심판하시는 소돔에서 구원 받았지만,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롯은 성숙한 신앙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성숙치 못한 성도는 남에게 영향력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에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엄청 욕을 먹고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신뢰도가 천주고, 불교 다음입니다. 좋은 일은 제일 많이 하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신뢰도는 많이 떨어집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롯의 신앙이 좋아서 제목을 <롯의 신앙이 주는 교훈>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그 것을 본 받으면 되고,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사람을 보면, 그것을 보고 ‘나는 저렇게 신앙생활하지 말아야지’하면서 교훈을 삼으면 지혜로운 자가 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성장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면 롯의 신앙이 주는 교훈을 알아봅시다.
1. 롯의 신앙은 말씀보다는 물질적 가치를 쫓아 사는 신앙이었습니다.
창13:10-13절입니다.
<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아브라함과 롯의 소유가 점점 많아지니 땅이 좁아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서로 다투자 이브라함이 우리가 골육지친인데.. 서로 다투지 말자...더구나 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도 함께 사는 땅인데 우리가 다투는 것이 옳지 않다. 그러니 네가 먼저 선택하라. 네가 우(右)하면 나는 좌(左)하고, 네가 좌(左)하면 나는 우(右)하리라... 이때 롯이 눈에 보이는 요단지역을 보며 물이 넉넉하고 푸른 초지가 펼쳐진 땅을 다 차지합니다. 그리고 그 지역 소돔에 장막을 옮겨 삽니다. 소돔 사람들이 여호와 앞에 크게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곳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는 죄악의 도시임에도 물이 넉넉하고 초지가 풍부하고 육적으로 만족을 주는 곳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는 조건인지.... 자녀들이 믿음으로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인지... 도시가 죄 짓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경건한 도시인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도 말씀을 쫒지 않고, 기근을 피해 환경을 따라 갔을 때에는 크게 어려움을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죠...
*룻기의 나오미의 가정도 그랬죠...
중간에 한 번 하나님께서 롯에게 깨닫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깨닫지를 못하고 소돔에 계속 거주하게 되죠?
창14장 1절 이하에 보면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전쟁을 하게 되는데...소돔과 고모라왕이 크게 패하여 재물과 양식을 모두 빼앗기게 되는데... 이때 소돔에 사는 롯도 사로 잡혀가고 재물을 다 빼앗기는 사건이 생깁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이 집에서 기르고 훈련시킨 군사 318명을 이끌고 그야말로 죽을 각오하고 전쟁터에 뛰어듭니다. 그래서 롯과 가족들과 재산을 모두 건져 냅니다. 구사일생으로 살게 됩니다. 아브라함 신세를 톡톡히 집니다. 그랬으면 그 소돔성에서 벗어나서 아브라함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러지 않고 계속 소돔성에 살아갑니다. 왜요? 거기가 사람 사는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 깨닫고 소돔에서 나왔다면 롯의 가정사(家庭史)에 큰 비극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깨닫고 돌이키라고 주신 시련이요 기회를 롯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백성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삶고, 말씀을 쫒아 살아야지 물질적 가치를 기준 삼고 환경 따라 살면 안 된다는 것을 꼭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롯의 신앙은 전혀 영향력이 없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리더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이 맛을 잃었다는 것은 영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롯의 신앙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살았는지는 몰라도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에게는 전혀 영향력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롯과 롯의 가정으로 인하여 소돔이 전혀 변화 되거나 선한 영향력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롯을 우습게 여깁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소돔 사람들이 롯의 집을 포위하고 롯이 자기 집에 머무는 천사를 내 놓으라 우리가 상관하겠다고 했을 때, 롯이 만류합니다.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7절)> <이 사람들에게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8절)>고 말 할 때에 소돔 사람들이 한 말이 9절입니다.
<9)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전혀 롯의 말이 먹히지 않습니다. 이자가 우리 땅에 들어와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하느냐.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고 하며 롯의 집 문을 부수며 난리를 칩니다.
전혀 롯이 소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이 없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어디 소돔사람들에게 만이겠습니까?
가족들에게도 영향력이 없었습니다.
사위들의 모습을 볼까요?
하나님의 천사들이 롯에게 말합니다. 12절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그러자 롯은 딸과 약혼한 사위들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는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말합니다. 그러나 “그의 사위들은 그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더라”고 했습니다.(14절)
장인어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어떻게 농담으로 여깁니까?
여러분도 사위를 보셨나요? 사위를 볼 때 무엇을 먼저 보았습니까? 앞으로 사위를 볼 때 무엇을 먼저 보시겠습니까? 며느리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롯은 사위를 선택할 때 뭘 보았을까요? 유감스럽게도 믿음을 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그 사위들이 장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농담으로 여긴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렇게 된 것은 롯의 신앙이 그 사위들에게 전혀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마지막 마지노선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영적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시대가 되었을 때고,
육적인 타락은 동성애가 만연되는 시대가 되었을 때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고, 지금 이시대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롯은 가장 가까운 아내에게도 영적인 영향력을 주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롯의 아내의 이름을 기록해 놓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곳곳에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녀도 이름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것에 대한 애착심이 있다 보니 뒤돌아보지 말라는 천사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소돔성에 두고 온 재산에 대한 미련이 있어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맙니다.
창19:26절입니다.
<26)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이것도 롯의 책임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내를 신앙으로 제대로 인도하지 못하면 그 책임이 남편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남편보다 신앙이 좋은 아내를 둔 남성분들은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보다 신앙이 좋은 남편을 둔 여자 성도님들은 대박의 복을 받은 줄 아셔야 합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믿음이 없다면 다 자기 책임입니다. 남편책임, 아내 책임이 아닙니다. 내가 그만큼 롯처럼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롯은 자녀에게도 영향력이 없었습니다.
롯은 두 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롯은 딸들에게도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소돔성의 심판을 피했던 롯과 두 딸은 소알 성에서 살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 성에서 나와 산위에 올라가 동굴 속에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그 딸들이 소돔성에서 보고 배운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런 사고방식으로 일을 저지릅니다.
창19:32절을 보세요.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아버지의 후대를 이어가자고 생각하여 아버지 롯에게 술을 먹여 만취하게 하고 딸들이 아버지와 동침을 하여 자식을 낳습니다. 두 딸이 다 그러는데도 아버지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게 그들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딸들도 세속화되어 타락한 인간의 방법으로 아버지 후손을 이을 생각을 합니다. 근친상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고 있습니다. 이게 다 소돔에 살면서 그 땅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배운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모압과 암몬입니다. 이들 두 족속,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은 두고두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민족이 됩니다.
지금 부모 된 여러분! 자녀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미칩니까? 자녀들에게 얼마만큼 신앙적이고, 영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얼마만큼이나 자녀들의 영적 생활에, 믿음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신경 쓰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자녀들이 조금이라도 어릴 때, 철저하게 예배생활하게 하고, 하나님 잘 섬기도록 해야 합니다.
롯의 딸들을 보십시오.
롯이 심령이 세속화되어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떠나 눈에 보기에 기름이 흐르는 소돔을 삶의 터전으로 삶고 이사한 롯이 결국 타락한 소돔에서 자녀들의 교육을 망친 것입니다. 세속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롯의 딸들이 성적으로 타락한 소돔에서 자라면서 배운 것이 그런 것 외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아버지를 술먹여놓고 두 딸이 아버지와 동침하여 자식을 낳으려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르지 않습니까?
롯은 구원은 받았으나 전혀 사회적으로나 가정에서 신앙인으로서(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영향력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세속의 가치를 쫒지 않고 말씀을 쫒아 사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 좇아 산 아브라함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기도하는 아브라함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볼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롯을 구원했는가요? 그가 하나님을 믿었음으로 구원 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가 구원받은 이유를 두 가지로 분명하게 말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창19:16절입니다.
<16)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 하심이었더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는 이유 하나로 일방적이고 한량없는 사랑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소돔 성을 엎으시는 중에 그를 그 속에서 구해 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요, 심판을 행하실 때 우리를 건져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 사랑을 더하여 주시는 은혜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둘째는, 아브라함의 기도 때문에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을 멸하실 것을 알려 주셨을 때, 아브라함이 창세기18장에서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창19:29절을 보세요.
<29)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하나님이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그와 그 가족을 내어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롯의 구원은 롯의 행위보다는 아브라함의 기도의 영향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눅22:31~32절을 보세요.
<31)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다시 말하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는데도 그가 사도가 되고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된 것은 주님께서 그를 위해 기도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하나님 보좌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님도 그렇습니다.
롬8:26절입니다.
<26)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가 구할 바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니라>
오늘도 주의 종의 기도덕분에, 오늘도 예수님 믿는 아내 덕분에, 오늘도 기도하는 남편 덕분에, 부모님 덕분에, 자녀 덕분에, 오늘도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손길 덕분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궁이라는 TV프로에서 북한의 지하교회가 부흥하고 있다는 소식, 그리고 그들이 남한의 성도와 교회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한국교회가 이정도 유지되고 우리 성도가 살 수 있는 것은 북한의 지하교회 교인들의 기도 덕분인줄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쫒아 살고,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이 겉으로 더디고, 화려하게 보이지 않더라도 그 영향력과 하나님의 선한 역사는 세속적인 가치와는 비교도 안되는 크고 위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가정, 그런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찬양//<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함께 합니다.(PPT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