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호를 뛰어나와 앞으로 내달린 수많은 병사들이 난사하는 기관총탄과 포격에 사라져 가기를 반복하였다. 불과 몇 백 미터를 전진하기 위해 수년 동안 몇 백만 명이 죽거나 다치는 일상이 반복되었지만 전쟁은 계속 제자리에 머물렀다. 이를 극복하려 전차 같은 새로운 무기가 등장하였지만 대세를 바꾸는데 소용이 없었고 그렇게 나폴레옹 전쟁 이후 계속되어온 공격 제일주의가 종언을 고하였다.
이제 프랑스의 군사 사상은 상대가 아무리 거세게 공격을 가해도 이를 막아낼 수 있으면 결국 승리한다는 방어 제일주의가 되었다. 이에 따라 전후 그들이 선택한 기본 국방 정책은 거대한 장벽으로 국경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아군을 최대한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방어막을 더욱 깊게 파고 이를 더욱 단단히 하면 차후에도 승리를 얻게 된다고 맹신하였다.
이런 구상을 처음 제안한 인물은 프랑스군 총사령관이었던 조프르였고 페탱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에 동조하였다. 반면 장차전은 기갑부대와 공군이 주역이 될 것이므로 고착화 된 구조물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 이들도 있었는데 드골과 이후 수상이 되는 레이노가 그랬다. 하지만 끔찍한 경험을 겪었던 프랑스에서 이들의 의견은 소수로 취급되었고 국방장관 마지노(Andre Maginot)의 주도로 1927년부터 건설이 시작되었다.
프랑스를 수호할 철벽
베르덩 전투 당시에 혈전의 무대였던 두오몽 요새처럼 국경 인근 주요 거점에 요새를 축성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이었지만 마지노선은 차원이 달랐다. 자급자족이 가능한 작은 도시처럼 외부와 단절되더라도 장기간 항전을 지속할 수 있는 거대한 요새를 주요 거점마다 만들고 이를 지하로 연결하는 것인데, 지형지물로 인해 일부 끊긴 부분도 있지만 스위스에서 북해까지 장장 750킬로미터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엄청난 건설비 때문에 많은 부담이 가는 엄청난 역사였지만 지난 전쟁에서 한 세대가 사라지다시피 한 고통을 겪었던 프랑스에서 그다지 반대는 없었다. 나치의 등장과 더불어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건설에 더욱 박차가 가해졌고, 1936년 프랑스와 독일이 직접 맞닿은 국경일대에 350킬로미터의 방어선이 먼저 완공이 되었다. 독립적으로 작전을 펼칠 수 있는 142개의 요새와 352개의 포대 그리고 5,000여 개가 넘는 벙커가 촘촘히 설치되었다.
암반을 뚫고 만들어진 요새는 이곳에 상주하고 있는 병력들이 안전하도록 어지간한 포격이나 폭격을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만큼 든든하게 축성되었고 대구경 포를 비롯한 다양한 무기가 곳곳에 배치되었다. 마지노선 전방의 독일이 대규모 기동로로 이용할 수 있는 곳곳에는 대전차 장애물을 비롯한 각종 방어 시설을 설치하여 원거리에서부터 적을 순차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독일에게 이 곳으로의 진격은 자살 행위와 다름없었다. 이후 사상 최대의 거포인 구스타프나 칼 자주 박격포 같은 괴물이 등장하게 된 이유도,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히틀러의 닦달에도 불구하고 독일 군부가 프랑스 침공전을 극도로 꺼렸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당연히 프랑스 국민들은 마지노선을 독일의 외침으로부터 안전하게 프랑스를 지켜 줄 것이라 생각하였다.
엄청난 반전
마지노선은 전투 공간뿐만 아니라 대규모 병력이 상주하여 생활할 수 있는 기반 시설이 완벽히 구비되어 있었다. 특히 전력, 급수, 배수, 공조, 통신 및 요새 간 이동 시설은 당대 최고의 기술이 집약되었다. 이를 위해 당시 화폐 기준으로 160억 프랑이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입되었는데 이 때문에 공군력을 비롯한 여타 전력의 확충에 실패하여 전쟁에 패하게 되었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원래 예정선의 중간이라 할 수 있는 룩셈부르크에서 마지노선은 단절되었다. 제1차 대전 당시에 같은 편이었던 프랑스와 벨기에 사이의 국경에 굳이 요새를 구축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비용이었다. 사실 당시는 정치적 혼란기에다가 대공황 여파로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아 축성에 내적 어려움이 많았던 시기였다. 결국 프랑스와 벨기에 사이는 진지 같은 비교적 단순한 방어선만 구축되었다.
그런데 마지노선에 의한 프랑스-독일 국경의 단절과 프랑스-벨기에 국경 사이의 공간은 전쟁이 재발된다면 독일이 진격할 루트가 이미 정하여져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독일은 제1차 대전 당시처럼 독불국경을 피해 북부의 벨기에를 통과하여 프랑스로 진격하여야 했다. 따라서 프랑스는 주력을 벨기에 앞에 집중 배치하고 있다가 독일의 공격이 개시되면 벨기에로 진격하여 막아낼 전략을 수립하여 놓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독일은 1940년 5월 10일 전혀 예상도 못한 마지노선의 북쪽 끝인 아르덴 고원 지대로 대규모 기갑부대를 통과시켜 연합군 주력을 일거에 포위하는 엄청난 기동전을 선보였다. 100만의 연합군 주력이 꼼짝 없이 녹아 내릴 때, 포위망 밖의 마지노선에 주둔하던 80만의 프랑스 제2집단군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였다. 고정 된 진지다 보니 이곳을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 쓰러져 가던 아군을 도울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는 단어의 상징
마지노선 정면에 위치한 독일 C집단군은 간헐적인 위협을 가하는 행동 이외에 계속 제자리에 머물고 있었기에 프랑스 제2집단군도 이를 의식하여 계속 그대로 있어야 했다. 약 한달 후인 1940년 6월 11일에 후방의 파리가 함락되던 그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앞 쪽의 독일 C집단군의 동태만 바라보고 있다가 결국 뒤에서 나타난 독일 A집단군에게 프랑스 제2집단군은 그저 그런 무의미한 저항을 해보다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악몽 같은 참호전이 재발되더라도 완벽하게 자국의 병사들을 보호 할 수 있다면 최종 승자가 된다는 고루한 교리에 집착하여 나타난 어이없는 결과였고 이 때문에 마지노선은 지상 최대의 삽질로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마지노선 자체가 뚫린 것은 아니었지만, 이를 회피하여 승부수를 띄운 독일의 전략 때문에 순식간 무용지물이 되면서 이처럼 정작 중요한 순간에 정작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국제유가가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배럴당 OO달러를 넘어 섰습니다.', '여야는 올해 말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원내 통과를 완료하기로 합의 하였습니다.'하는 예처럼 더 이상 양보하기 힘든, 또는 최후의 보루로 반드시 고수하여야 할 목표임을 의미하는 단어로 마지노선이 많이 쓰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언급한 마지노선의 황당한 역사를 반추한다면 이는 참으로 잘못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마지노선은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적을 가장 앞에서 방어하는 최전선의 요새였다. 그러나 뚫릴 수 없다는, 또는 뚫려서는 곤란하다는 의미로 종종 사용되는 단어와는 달리 막상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나라를 구하지 못하고 너무나 허무하게 종말을 맞이하였다. 때문에 마지노선은 정작 필요할 때 자기 역할 못한 경우를 의미하는 단어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글 남도현 / 군사저술가,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히틀러의 장군들》 등 군사 관련 서적 저술 http://blog.naver.com/xqon1.do
자료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http://bemil.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5/21/2014052101857.html
첫댓글 대충의 피난처라는 것이 시골친척집이고, 그이상을 마련할수있는 능력되시는 분들은 국외에 방향성을 두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마지노선이라고 보아야 할듯.
잘 보았습니다.^^추천하고 갑니다.^^
흠.. 마지노선의 유래와 세부적인설명 잘보았읍니다
마지노선이 이런 뜻인 줄은..아무리 입구에 캐논과 탱크를 박아놓아도 우회해서 들어오면 자원이 없어서 우왕좌왕하다 박살났던 스타크래프트가 생각 나네요^^
프리퍼들은 좀더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로 이해됩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코난님 덕분에 귀중한 토막상식 얻어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