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쯤 되었을 것이다. 산문을 쓰지 않겠다고 말을 했던 시간이, 경제적으로 힘에 부칠지라도 조금 부족하게 살아보려 결정했다고 공개적으로 말은 했으나 사실은 능력이 모자라 시와 산문을 병행할 수가 없어서 시에 매진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시가 더 잘 나오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어찌어찌 겨우 버티고 있었다. 산문을 쓰지 않는 대신 강연 요청을 거의 거절하지 않았고 때때로 시 낭송을 하러 다니며 살아왔다. 한달에 100만 원을 벌기도 하고 200만 원을 벌 때도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쓴다고 해도 내게 과한 돈이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기부를 시작했다. 한 달에 대략 30만 원쯤이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예정되었던 강연이나 행사가 예외 없이 모두 취소되거나 기약 없이 연기되었다.
한 푼 벌이도 없는데 매달 CMS는 내 주머니 사정이나 통장 잔고는 살펴보지도 않고 술술 잘도 빠져나갔다. 어라 은행 창구에 가서 당분간 CMS를 정지시켜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큰일이네. 그런 생각을 하며 사람들에게 코로나로 인해 답답한 여름 잘 건너시라고 부채를 그리고 있는데 날벼락 같은 연락을 받았다. 내가 사는 경남 하동군의 못된 군수가 <하동 알프스프로젝트>라는 해괴한 계획을 내세워 지리산을 팔아먹으려 앞장을 서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대단히 신선한 발상처럼 하동 알프스프로젝트라니, 그렇지 않아도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에 서구사대주의적인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인 알프스라니, 몇십 년 전에 이미 밀양 가지산 일대를 가리켜 영남알프스라고 불러왔다는 초등학생도 알만한 국민적 상식도 모르는 무식한 군수의 생각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기후변화로 인해 심각한 증거들이 눈앞에 아니 코로나처럼 우리의 삶 속에 들어와 뒤죽박죽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데 이명박은 4대 강을 팔아먹더니 문재인 정부는 지리산에 산악열차를 달리게 하겠다고요? 기가 막힌다.
산의 경사가 높아서 산악열차를 운행할 수 없으니까 모노레일을 놓아 산의 정상 능선까지 간 다음 능선을 따라서 산악열차를 운행하려는 지리산 형제봉은 국립공원과 바로 인접된 지역으로 국토법상 농림지역, 자연환경보전법상 보호해야 할 1, 2등급지 혼재 지역이며 대부분 산림청 소유의 국유지다.
만약 이 계획이 실행되어 지리산에 삽질이 시작된다면 어디 지리산뿐이겠는가. 우후죽순 때를 만났다고 망나니 같은 전국의 지자체장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들 것이 뻔하다. 4대 강을 온 나라의 산으로 올려 망치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노레일과 케이블카와 산악열차라니, 이제야 반달곰도 지리산의 자연에 적응하며 살만해졌는데 또 어디로 내몰림을 당해야 하는가. 내가 사는 형제봉 산 위에 호텔을 짓고 미술관을 짓겠다니 그 많은 지자체의 휴양림과 시설로도 부족하다는 말인가.
어디서 이런 쓰레기 같은 발상이 나왔을까.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력이면 이제 삶의 질에 대해 고민을 하며 미래지향적이며 지속 가능한 경제를 화두에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환경을 대량으로 파괴하는 난개발을 성장동력으로 삼으려 하다니.
지난 4월에 계획되었던 일정이 한번 연기되었던 익산시에서 연락이 왔다. 문학인들과 함께 익산지역의 백제 역사문화를 탐방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탐방 여행을 시켜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1박 2일 동안의 탐방 결과물을 써서 발표하면 원고료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시인에게 시를 쓰게 할 동기를 유발하려는 익산시와 같은 지자체가 있는 반면 하동군에서는 시인을 산 아래 사는 마을 사람들이 그 산에 흐르는 계곡물을 마실 수 없도록 생태계를 파괴하고 오염시키며 반달가슴곰을 내모는 포크레인의 삽날 아래 서게 만들려는 것이다. 고마운 익산시의 답사 여행을 다녀와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천년도 훨씬 넘은 일이야
그때 백제의 석공들 왕도로, 미륵사로 모여들었지
쩡쩡 정소리가 미륵산을 채우던 날들
돌 속에 누운 탑을 깨워 한층 탑신을 세울 때마다
미륵이 오기를 기다렸지
너무 오래 서 있었을까
흥망성쇠의 비바람에 물길도 바뀌며
날마다 얼굴을 씻던 연못은 메워지고 말았어
홀로 지키며 단단히 다져온 땅바닥이 내려앉고
버림받은 몸은 기울며 금이 가고 있었지
쓰러지기 시작했어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어
누구누구네는 집을 짓는데 쓰겠다고
슬픔으로 무너져내린 초석을
석재들을 들고 가버렸어
그리고는 자꾸 주저앉는 날
덕지덕지 시멘트를 발라 뭉겨놓기까지 했지
얼마나 고통스럽고 답답했던가
내 몸이 아닌 것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동안 말이야
사람들이 찾아와 바뀐 얼굴을 보고 가며
혀를 쯔쯧 거렸지만
거울이 없어서 내가 내 모습을 알 수 없었어
다시 천년 만에 미륵산 아래 사람들이 모였어
바뀐 물길을 잡아 돌려 땅을 다지고
석공들의 정소리는 지게목발노래에 실려 퍼져나갔지
막무가네로 내 몸에 우겨넣은 것들 벗겨내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한땀한땀
부러지고 금이 간 몸을 붙이며 새살을 채워주었지
메워진 연못도 파내서 물을 담고 그러니까
단장한 얼굴을 비춰보라고 거울연못을 만들어주었어
시멘트와 묵은 때를 벗은 후
다시 일어선 몸이 수줍도록 눈 부시네
이렇게나마 서 있을 수 있다니
욕심부리지 않아 세상의 곳곳으로 떠나간
미륵을 소원하며 구층탑을 이루던 탑신들
그 자리 깃들어 사람의 집에 기둥을 받쳐주는
주춧돌이며 당신이 내게 건너오는
디딤돌이 되는 것도 괜찮아
언젠가는 나도 모래알로, 한 줌으로 돌아가겠지
이제 미륵을 기다리지는 않아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꿈을 탑돌이 하는
바로 지금이 미륵 세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야
고마워, 내 몸을 다시 일으켜준 이들이여
그 살뜰한 마음 씀이여
- <미륵사지탑이 말했다> 전문

- 천년만에 묵은 때를 벗고 목욕단장을 마친 그녀의 알몸자태-

그린벨트를 해제해서 졸속 적인 부동산 대책을 세우려던 정부가 온 나라가 술렁이며 문제가 되자 곧바로 총리와 대통령까지 나서서 환경문제와 미래세대를 언급하며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한 정부라면 환경부도 아니고 산림청도 아닌 기획재정부에서 다른 부서도 동의를 해주지 않는 <한걸음 모델>이라는 사업단을 꾸려 왜 자꾸 터무니없는 일을 벌이려고 하는지, 어떤 정치인이, 어떤 개발지상주의자가 이 문재인 정권에 도사리고 있는지. 하동군수는 어떻게 주식회사 삼호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결탁해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 일을 파헤치고 밝혀주는 언론은 어디 없을까.
태산 같다. 하동군은 갈사만이라는 대규모 갯벌을 매립하고 조선소를 유치하려다 무산되어 파산한 빚을 잔뜩 떠안고 있으며 배후공단인 허울뿐인 대송산단을 조성하며 민자사업에서 생긴 빚만 2,260억, 하동군이 지불해야 할 이자만도 하루 3천 16만원이다. 이토록 천문학적인 빚덩이에 올라앉은 하동군이 경제성도 의심스러운 사업에 또다시 군비 150억과 1,500억이라는 민간자본을 유치해서 환경을 파괴하는 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대책위원회>가 출범하며 상임대표를 맡았다. 지리산에 들어와 살며 평화로웠다. 17년이 되었다. 산을 오르며 기대고 깃들어 산 지리산의 품 안에서 시를 쓰며 탐욕에 물들지 않으려 살아온 날들이 행복했다.
☆ 형제봉 아래 사는 사람들은 이제 지리산 맑은 계곡물을 식수로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성숙한 시민 의식이 없는 관광객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와 배설물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 형제봉 산 위에 위치할 시설물들에 밝혀두는 허황한 불빛으로 이제 하동지역에서는 밤하늘에 별빛을 볼 수 없을 것이다.
☆ 별을 보며 꿈을 키우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동심이 사라질 것이다.
☆ 별빛의 나침반으로 꿈길을 가던 시인은 시름 거리며 죽거나 떠나갈 것이다.
조금 가난하게 삽시다. 야 야 이런 젠장 풍족하게 누리고 사는 풍요를 눈곱만큼이나마 줄이는 삶을 미덕과 가치로 여기며 살 수는 없는가.
시인이 시를 쓰는 시인의 자리를 지키고 살아야 하듯이 이제 나도 지리산이 지리산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도록 지켜주어야 할 때,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온갖 식구와 온갖 친구와/ 온갖 적들과 함께/ 적들의 적들과 함께/, 김수영의 시처럼, 이광웅의 시구처럼 /목숨을 걸고/, 지리산을 그대로, 지리산에 산악열차 계획을 백지화할 때까지.
첫댓글 위 내용은 월간 전라도닷컴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의 제목 "지리산을 그대로"를 "***을 **로"으로 하셨을까?......
궁금하면 ㅇㅇㅇ ^^
500원 드릴께요~ㅋㅋ
2013년 7월 문규현신부님, 박남준 시인님 그리고 안도현시인님과 전주아름다운순례길을 걸을 때 나바위성당에서 미륵사지까지 걷는 구간이 있었다.
23.6km였으니 그것도 서울에서 출발하여 전주 집결지에 오전 6시에 모여 오후 3시가 다 되어 미륵사지에 도착하였으니
주위를 둘러볼 여력이 없었는가?......
그때 눈에 든 것은 미륵사지석탑의 동탑이었다.
익산근대역사관에서 알았다.
글 속에 올리신 미륵사지석탑의 서탑이 있다는 것을
동탑의 왼쪽으로 사진을 잘 땡겨보니 해체보수정비된 지금의 모습과 다른 서탑으로 추정되는 탑이 보입니다^^
해체보수 하기 위해 거푸집을 지어놓은 곳에 일종의 조감도를 그려 실사해놓은 것임
지리산은
우리 얼과 혼이 깃든 산이다
민족의 마음이고 역사의 얼굴이다
지리산에서
우리 얼을 빼내려는 짓은 얼빠진 짓이다
지리산에서
우리 혼을 내치려는 짓은 혼낼 짓이다
지리산은
지리산일 때 지리산이다
지리산을 그대로
전라도 닷컴 8월호
더불어 생각 -
58P 지리산을 그대로 두라
글을 읽고 눈물이 났습니다.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시인님이 계셔서 많은 위로가 되네요. 힘든 길 함께 헤쳐나가야죠. 이광웅시집이 어딘가에 있을건데 ...
섬진강과 지리산은 자연 그대로 놔 두어야 마땅하거늘 이곳 조차 훼손하려는 무리들은 천벌을 받을 지어다.
지리산에 탯줄을 묻은 고향 친구들의 설문과 난상 토론에도 6대 4로 찬성이 앞서네요
결국 지금 대한민국의 사회적 화두인 땅값 집값이 지리산 개발의 논리와 똑같아 씁쓸하기만 하네요
결국 땅값이 오르면 고향을 버린다는 것인지?
어떤 놈의 말처럼 장남이 아니라 반대한다는 악다구니인지...
지게를 지고 산악 열차를 탈것도 아닌데 ...
배낭을 메고 산악 열차를 타는 자도 제정신이 아닐 터이고...
이래저래 결국 지역 주민의 민심만 반으로 나뉘게 생겼네요
지리산 문제가 잘 해결돼서 신 님이 글 쓰고 강연하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에 신경 쓸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래봅니다.
.....
고마운 글 잘 읽었습니다.
내안에 쌓였던 찌꺼기들 잠재우기에 충분한 글
그래도 마음의 울퉁불퉁함이 남아있어...
부디 지금여기의 바람이 더욱 맑아지길...두손모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