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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의 탄생은 천지개벽의 기적이자 축복입니다.(눅2:11-14)
2024, 12/25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눅2:11-14절 말씀으로“주님의 탄생은 천지개벽의 기적이자 축복입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오늘이 주께서 이 땅에 오신 2028년 째 되는 날입니다. 물론 이단들은 그리스도가 12월 25일에 태어난 게 맞느냐며 이의를 제기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태어난 날짜가 아니라 주께서 우리의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날짜가 뭐 그리 중요합니까? 12월 25일이면 어떻고 6월 25일이면 어떻습니까? 마치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면서 손가락이 좋니 나쁘니, 길니 짧으니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된 우리의 구원과 축복이 얼마나 기적이고 감사한 일인지를 바로 알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누가복음은 사도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했던 의사출신 누가가 주전 58-63년경 쯤 유대 땅 가이사랴에서 이방인인 총독 데오빌로에게 썼던 내용으로 예수님의 행적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록한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 그리스도의 성탄에 관한 내용은 하나님이 인류역사에 실제 개입한 사건으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의 시작이었음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성탄은 우리에게 천지개벽의 기적입니다.
둘째로, 성탄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표적입니다.
셋째로, 성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을 따라가면서 왜 주님의 탄생이 우리에게 천지개벽의 사건이고 감당키 어려운 축복인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성탄은 우리에게 천지개벽의 기적입니다.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이 역사를 크게 두 시대로 구분하는데, A.D와 B.C입니다. B.C는 Before Christ로 주님이 오시기 전 시대 즉‘주전’이라 말하고, 또 하나는 A.D로 라틴어인 Anno Domini로 주님의 해, 즉‘주후’의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인류역사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과 후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로마인들도 로마의 역사를 A.D와 B.C로 기록하고,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도 그들의 역사를 A.D와 B.C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는 A.D와 B.C를 기준으로 역사를 구분합니다. 오늘이 2024년 12월 25일인데 이 날짜의 표기도 바로 주후 즉 그리스도의 탄생이후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싫든 좋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빌리그레함 목사님은‘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은 인간이 달나라에 발을 디딘 때가 아니라, 그리스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그 역사적 순간이다.’이라고 말했는데, 참으로 의미 있는 말이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인류역사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전과 후로 나뉠 정도로 그리스도의 탄생은 인류역사에서 너무도 중요하고 큰 영향을 미친 이적의 사건이었습니다.
여러분!!!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은 기적이 아니고 자연과학입니다. 그러나 해가 움직이지 않고 머물고 있다면 이건 기적이고 이적입니다.
출애굽기 10장에서 여호수아가 기브온과 전쟁을 할 때 거의 하루 종일 태양이 기브온골짜기 멈춘 적이 있었는데 이게 바로 이적입니다.
또‘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셨다.’‘처녀가 아이를 낳았다.’‘예수님이 죽으신 후 다시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이런 것들이 바로 기적이고 이적입니다.
기적이나‘이적’은 거의 같은 말로 상식과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초이성적인 비상한 사건, 초월적인 일을 말하는데, 사도바울도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초월적사건을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고전1:21)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는 것은 이적이 아닌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처녀가 아이를 낳으면 이적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타이틀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실 수가 있겠습니까? 이 이적은 천지가 개벽하는 것보다, 기브온 골짜기에서 태양이 움직이지 않고 멈춘 것보다 더 큰 기적이고 이적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는 설명이 안 되는 것입니다.
천지창조에서부터 시작된 성경의 역사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임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셨지만 다시 오신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이적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그 자체가 기적이고 이적이라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엡2:8절에는 그"...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신화라서 싫고,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것만 받아들인다는 세상 사람들도 사실은 과학을 받아들이는데도 믿음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가설을 세우고 그걸 증명할 때 반복을 해도 똑같은 값이 나올 때 우리는 과학적이다고 말하는데, 지구나이가 몇 살이고 어떻게 생겨났으며, 지질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공룡들이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 또 지구의 생물체가 어떻게 진화했는가? 이런 것들은 전부 가설로써 아직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이걸 과학적라고 받아들인다면 모순이고, 그걸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과학과 신앙은 똑같이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이 훨씬 더 과학입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역사 속에 일어날 일들이 아주 디테일하게 예언되어 있는데, 그 예언들이 모조리 성취되었기 때문에 그걸 볼 때 앞으로도 기록된 성경이 계속 이루어질 거라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치로 볼 때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태양이 서에서 떠 동으로 진다는 걸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경험치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때어나서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 경험으로 그걸 안 믿는 겁니다. 이걸 볼 때 차라리 입증되지 않는 과학보다 성경이 훨씬 더 과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럼에도 우리가 종종 믿음에서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그 이적을 이성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한정된 내 생각과 의지가 작동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믿지 못하고 믿음에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인은 믿음에서 실패하면 다 실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고, 이 믿음이 하나님과 나를 연결하는 동아줄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없다면 주님의 성탄도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됩니다. 오늘 주께서 이 땅에 처녀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히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고 천지가 개벽할 일입니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은혜이고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탄의 의미를 알고 오늘 성탄이 여러분의 성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성탄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표적입니다.
성탄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표적이라고 12절에서 말씀하셨는데, 사실 이적과 기사와 표적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쓰입니다. 그러나 조금 구분하자면 이적(異蹟 miracle)은 상식과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이거나 초이성적인 일이고, 기사(奇事 wonder)는 놀라운 일을 경험한 자의 입장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그 사건의 신비성에 강조점을 둡니다. 표적(sign)은 이적을 실현하는 분의 신분과 그 이적의 뜻을 밝히는데 주로 쓰입니다.(막16:20; 행14:3)
그러니까 이적에서 무슨 의미, 즉 싸인을 발견할 때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매로 훈계하면 보통은 우선 아픔에서 벗어나는 것만 생각한답니다. 그러나 조금 영악한 아이는 "한번 때려 보라지 지 애 아프지 내가 아프냐." 이런 아이도 있고, 더 못된 애는 "가출하겠죠." 그러나 철이 들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나 사람 되라고 때리셨구나." 이러면서 매의 참 의미를 알게 되는데, 이 의미를 알려면 결혼해서 애를 낳아봐야 될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매를 때리거나 맞는 것도 일종의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병 고침을 받는 것만 표적이 아니라, 병드는 것도 표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면 이런 것 속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병이 들거나, 실패하거나, 고난당하는 것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우리의 표적으로 삼아야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주시고, 직분도, 건강도, 형통케 하심도 다 이유가 있는데, 그 의미를 깨닫고 겸손히 순종할 때 우리는 표적을 본 것입니다.
여러분!!! 성탄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이 되어 우리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찾아오신 하나님입니다.
요1: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고, 요14:9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사역기간 내내 당신이 하나님이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메시야가 적어도 궁궐에서 영웅으로 오실 줄 알고 저렇게 볼품없이 오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메시야는 물론이고 하나님으로는 더더욱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성탄의 표적은 보이지 않은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신 것입니다.
저는 성탄의 표적이 우주의 빅뱅이론보다, 진화론보다 훨씬 더 믿어집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자연과학자나 의학자 천체 우주물리학 등 과학자들 중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창조론을 받아들인답니다. 미국 나사의 많은 과학자들도 하나님이 우주를 만드셨다는 창조론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사람이나 온 세상이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가 없다는 걸 깨닫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온 세상과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 몸을 입고 오시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고 믿지 못할 일도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입니다. 우리의 제한된 이성으로 재단하려다보니 불가능하게 보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 오심이 우리에게 표적임을 믿으시고, 그 표적을 간직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셋째로, 성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왕으로 이 땅에 오셨기에 때어나실 때도 당시 세계 최강인 로마왕궁 같은 곳에서 가장 화려하고 폼나게 오셨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는 유대의 촌 동네 베들레헴에서, 그것도 냄새나는 더럽고 추한 마굿간에서 태어나 말구유에 누여졌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적으로 보면 너무나 초라하고 가장 낮고 천하게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왜 이렇게 가장 낮고 천하게 오셨을까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대접받고 잘 먹고 잘살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사탄의 종이 되어 고통 속에 살다 지옥으로 끌려가는 인생을 구하시려 오셨습니다. 그러려면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도 주님께 나아오는데 제약이 없어야합니다. 그러기위해 세상에서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셔서 그들의 비참한 삶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웅장하고 화려한 왕으로 오셨다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이나, 세리와 죄인들, 들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이나 과부나 가난한 사람들이 주님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에 갈급하지 않는 교만한 유대인들보다 복음에 갈급하고 더 많이 하나님나라를 사모하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아픈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려면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세상에서 상처받고 소외되고 아프고 가난한 자들이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낮고 천한 종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 모습을 700년 전에 이사야는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사53:2-3)
만약 여러분에게 문제가 생겼거나 힘들고 외로울 때 누구를 찾습니까? 마음이 편하고 부담 없는 사람을 찾듯이, 주님이 낮고 천한 종으로 오셨기 때문에 부담 없이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히4:15절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주님이 우리의 형편과 처지와 상관없이 항상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마1:23절에 천사가 요셉에게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고 작명까지 해주셨는데, 이 임마누엘이란 뜻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라고 해석까지 친절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성탄은 이제부터 영원까지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걸 볼 때 우리는 진짜 횡재한 천하에 행운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께서 성탄하신 이후로 지금까지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하셨고,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진리가 믿어지시는지요?
이 믿음 끝까지 붙드시고, 기쁘고 즐거운 성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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