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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극소수?(사람을 죽이는 순한맛, 사람을 살리는 매운맛)
민 14:1-11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될 자가 극소수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우선 거부감부터 품습니다.
“우리 담임목사님이 말씀하시길 우리 교회 모든 교인들이 구원 받을 거라고 했어.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해. 구원은 믿음만 있으면 다 받는 거야. 행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이미 구원은 확정된 거고, 그 뒤로는 행위로서 상급을 받느냐
못 받느냐의 미미한 차이일 뿐이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건 천국에서 개털 모자를 쓰지 않고
면류관을 쓰기 위해서일뿐 구원은 이미 다 받은 거니까 괜히 사람 불안하게 만들지 마.
사랑의 하나님이 그러실 리가 없어.“ 이런 종류의 말을 하며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구원을 확정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입니다.
성경말씀에 비추어보아 자신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과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다는 사실을
자신의 삶이 증명하고 있기에 솔직히 지옥에 갈까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것들, 돈과 출세와 쾌락과 죄와 불순종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은 채 가장 사랑하는 세상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
여전히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않은) 모습, 십자가를 지기 싫어하는 모습,
예수님과 함께 고난 받는 것도 극히 싫어하여
오로지 육신적인 평온을 위한, 눈앞의 안녕을 위한 문제해결에만 매달리는 모습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기를 싫어하며 그저 자기 좋을 뜻대로, 자기 욕심을 따라 살아가면서도
자신은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될 거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듯 되뇌며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사실상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입니다.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라는 어떤 이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는 말씀을
단호히 하심으로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적고,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다른 말을 하는 자가 바로 이단이며, 사이비입니다.
그렇기에 맹목적으로 목사의 설교만 듣지 말고,
스스로 말씀을 묵상해야 분별을 할 수 있게 되어 미혹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출애굽 이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는 여정 중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탈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민족 약 200만 명 중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람은
말 그대로 극소수인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유아들 중의 일부뿐이었습니다.
대다수는 모두 광야에서 고생스럽게 돌고 돌기만 하다가 죽어서 썩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수아와 갈렙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던 비결,
그리고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목적지에 당도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 자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우리는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현재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천국으로 향하는 여정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인 중 한 명으로서
10명의 부정적인 정탐꾼들과는 달리
갈렙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신뢰하는 태도를 보인 인물입니다.
정탐꾼들이 네피림의 후손인 아낙 자손 거인들을 보았을 때
부정적인 10인의 정탐꾼들은 ‘아휴, 저들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해.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허무맹랑한 얘기였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차라리 낫겠어.’
라는 생각을 하며 부정적인 결과보고를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래,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같이 작고 약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야. 따라서 어떤 조건이든 상관이 없지.
그래서 이길 수 있어.’라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승리의 확신에 찬 보고를 했습니다.
민 13:30-33
(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현재 어떤 상황에 처했든지 아무 상관없이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그 분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한 여호수아는
후일 하나님의 명하심에 따라 모세의 후계자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훌륭하게 점령을 이루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끝까지 하나님만을 섬기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라.”는
권고의 유언을 남기고 110세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여호수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 없이 믿으며 순종한 갈렙은
85세의 연로한 나이였지만 가나안 정복전의 선봉장으로 나서서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고,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 헤브론을 분깃으로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육신적인 불만족을 이유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시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으며 의심하는 모습으로 감히 하나님을 멸시할 때에도
여호수아와 갈렙은 군중심리에 조금도 사로잡히지 않은 채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보다, 심지어 객관적인 사실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적으로 신뢰하는
굳건한 모습으로 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한 인물들로서
하나님께로부터 인정과 택하심을 받아 가나안에 들어간 극소수에 속했습니다.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해도, 객관적인 조건이 어떻다 해도 아무 상관없이
이 두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신앙을 변함없이 지켰기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을 받기에 합당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며,
이러한 태도가 바로 ‘깨어 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사람의 믿음을 예쁘게 보시고 택하셔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해주신 겁니다.
히 11:4-6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눈에 보이는 상황과 처해진 환경, 객관적인 조건, 현재 나의 기분,
지극히 옳다고 느껴지는 내 생각,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 등 이런 것들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오로지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기 때문에 그 분의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
믿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믿음이며,
이 믿음을 품고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얻게 된다는 진리의 교훈입니다.
민 14:21-38
(21)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24)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주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1)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32)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33)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35)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36)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37)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38)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이처럼 우리가 성경말씀을 통하여 확인 한 바
20세 이상 성인 중에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두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채 광야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 애굽에서의 드라마틱한 탈출을 경험하며
기쁘게 하나님을 찬양한 적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은 적이 있어도
결국 애굽 탈출의 목적이자 종착지인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이 대부분으로서
약 200만 명 중 극소수만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과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막 6:19-20
(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헤롯(안디바)은 세례 요한의 목을 베고, 예수님을 조롱한 후 빌라도에게 넘긴 자로서
하나님을 대적한 악인으로 기록된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놀랍게도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았기에 그를 두려워하여 보호했으며,
또한 요한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었던 사람입니다.
요한이 자신의 죄를 지적해주는 말을 들으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번민을 하는 동시에
달갑게 들었으면서도 결국 그런 모습의 인생을 살았다는 것은
그에게 회개할 기회,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로지 자신의 권력과 육신적인 안위를 추구하여
알고 있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른 모습이 되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끝까지 악인으로서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회개의 기회는 세례 요한을 죽인 후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불안감에 휩싸였을 때에도 주어졌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도 않고, 돌이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도 않은 채
스스로 지옥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거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통해 주신 설교를 읽을 때에
그 내용을 이해하고,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달갑게 들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과 행위가 여전히 육신적이고,
또한 일시적으로 회개를 했다 할지라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다면
헤롯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즉 교회에 열심히 다니며 “주여! 주여!”, “아멘. 아멘.”을 하고 있는 거룩해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그에게 구원이 주어진다는 보장은 전혀 없으며,
자신이 주도하는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복종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결국 헤롯의 길을 따라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진리에 대해 알고만 있는 것과 아는 것을 용기 있게 실행하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인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많아도,
한 때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회개기도를 한 적이 있어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들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도
신앙생활의 종착지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자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무리에 놀랍게도 모세와 아론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민 20:7-12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자신들을 원망하는 것을 보면서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아론과 함께 회중 앞에서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어 회중과 짐승들에게 마시게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모세는 하나님의 명하심과는 달리 자기 마음대로 지팡이를 들어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단지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고
분노에 사로잡혀 혈기를 부린 부분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이 결정은 그 누구도 반박을 할 수가 없는 사실입니다.
이 일로 모세와 아론은 지도자의 자격을 상실하여 이스라엘 회중을 끝까지 인도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징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모세는 120세에 멀리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만 하고는
결국 모압 땅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모세의 형인 아론도 이 일에 동참하거나 방조했기 때문에
함께 징벌을 받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당부이자 명령인 ‘자기를 부인함’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이나 자존심이나 욕심이 우선되고,
상황에 따라 원망이나 불평이나 분노의 모습을 보이며,
순간적인 기분에 따라 쉽게 죄를 범하는 이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전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않는) 불신앙,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멸시하는 교만함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온전히 부인하지 못한 사람은 구원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오는 모습으로 구원의 길을 걸으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기에, 부인하려는 생각조차 없기에,
광야의 회중들처럼 상황과 환경과 욕심을 따라
쉽게 원망과 불평을 하며 여전히 하나님을 시험하기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생각을 더 우선하기에,
화가 나면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자기 기분대로 혈기를 부리면서 살아가고 있기에,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을 들어가고 싶은 마음만 갖고 있을 뿐 못하는 자가 많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대로 ‘구원을 받게 될 자는 극소수’인 것입니다.
눅 17:26-30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예수님께선 ‘인자의 때는 노아의 때, 롯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당일까지 노아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죄 가운데서 회개하지 않은 채 먹고, 마시고, 결혼하면서 당연하다는 듯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물의 심판에서 구원을 받은 사람은 모든 인류 중 노아와 그 가족들, 8명뿐이었습니다.
전 인류 중 8명, 누가 봐도 극소수입니다.
롯의 때에도 마찬가지로 롯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사위들도 멸망에 포함)
죄를 죄로 여기지도 않는 타락한 모습으로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지으면서
아무런 위기의식 없이 사치와 향락과 불의, 그리고 동성애로 가득한
죄와 육신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 성을 향해 쏟아지는 불과 유황의 심판을 피하여 구원을 받은 사람은
롯과 두 명의 딸들, 3명뿐이었습니다. 대도시의 모든 사람들 중 3명, 역시 극소수입니다.
[롯의 아내는 욕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씀에 불순종하여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무려 31.5%의 높은 염도로 인하여 물고기가 살 수 없게 된
죽은 호수로서 오늘날 사해(Dead Sea, 死海)라고 불리고 있는 장소입니다.
참고로 사해의 면적은 서울시와 비슷합니다.]
예수님을 가장 사랑하기에 복음을 기뻐하고, 순종하여
이제는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좁은 문과 협착한 길도 마다하지 않은 채
고난 중에도 순종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
다시 말해 인생의 최종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으로 삼은
극소수의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을 향한 욕심, 육신적 생활, 편하고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하며 즐기려는 인생,
순종하기를 차일피일 미루는 불순종, 불평과 원망과 염려, 자신의 육신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시험하는 모습, 육신적인 만족이 있을 때에만 비로소 감사를 할 수 있는 기복주의,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자기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 된 교만한 모습에 머물러 있다가
택하심을 받지 못한 상태로 결국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정하심과 택하심과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될 구별된 자들은 확실히 극소수가 맞습니다.
마지막 날에 그 수를 보면 예상치 못했던 극소수 때문에 모두가 놀라게 될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 이 설교를 읽는 자들 중에도 ‘설마 내가 구원을 못 받진 않겠지...’하며
마치 헤롯처럼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 살아가다가 지옥에 떨어지는 자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구원이 이미 확정되어 있는 예외의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 왕이 되었고, 성령을 받아 예언까지 했던 사울왕도
불순종과 핑계, 교만 등의 죄로 인하여 나중에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아
처참한 결말을 맞이했던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언제든지 변질되어 죄로 타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신이시며, 거룩하신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정말로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매일 자신의 하루를 겸손히 점검하며 날로 성장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가장 사랑하는 모습으로, 철저한 복종의 모습으로,
변치 않는 믿음을 품은 채 우리는 날마다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교회를 다닌다면서, 하나님을 섬긴다면서 아직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그리고 동물과도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먹으면 기분 좋고, 많이 자고나면 만족스럽고,
가족끼리 화목하면 신앙에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여 느끼며,
누군가 조금이라도 자기를 기분 나쁘게 하면 마음은 분노로 들끓고 혈기를 부리면서 증오하고,
뒤에서 수군수군 거리고, 그러면서도 자신은 의인이라고 착각하며,
돈과 세상과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육신적인 만족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 같으면)
광야의 회중들과 다를 바 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시험하는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확실하게 지옥에 갑니다.
눅 23:39-43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범죄자로서 처형을 당했지만 마지막에 구원을 받은 십자가 위의 행악자를 보십시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던 두 명의 범죄자 중 한 명은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면서 예수님을 비방했지만
다른 한 명은 그 비방한 자를 꾸짖으면서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나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라며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했고,
결국 그는 예수님께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었다는 점, 뒤늦게라도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점,
그리고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는 그 사실이 바로 자기를 부인했다는 증거 중의 하나로서
구원의 요건에 합했기에 예수님께서 그를 구원해주신 겁니다.
(만약 그 사람이 처형을 당하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었다면
아마도 평생 하나님을 섬기면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분으로서 당신의 선택은 언제나 의롭고 옳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모든 일에 이유와 핑계를 다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억울한 건 절대로 못 참고, 화가 나면 혈기를 부리거나 복수를 하거나
그것도 못하면 욕설이라도 내뱉어야만 속이 조금이라도 풀리며,
내가 옳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계속해서 핑계를 대고, 심지어 거짓말까지도 서슴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아직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않은) 증거 중의 하나입니다.
나는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도 그게 사실입니다.
아직은 이 세상에 속하여 육신을 입은 채 살고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여 힘쓰고,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고백하면서 그 분의 긍휼을 구하는,
이제는 구별되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모습, 하나님께 속한 모습이 되어
예수님과 관계있는 자로서, 다시 말해 예수님을 죽인 자로서, 죄인으로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한다 해도 그것이 마땅하다고 인정할 수 있게 된 자가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있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입니다.
화가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고, 복수를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반드시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며,
또한 여전히 이 세상의 것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면 아직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자가 맞습니다.
교회는 평생 다녔지만 결국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게 될 가장 안타까운 자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이에 해당될 것이고,
현재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반드시 따라가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려고 모든 노력을 하고 있으며, 고난 중에도 하나님만은 결코 원망하지 않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심 없이 믿는 참 믿음을 가진 모습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극소수의 그리스도인들만이 하나님께로부터 인정과 택함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 때처럼, 노아의 때처럼, 롯의 때처럼 당연히 그 수는 극소수일 것입니다.
마 26:51-56
(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예수님께선 어떻게 본을 보이셨는지 생각해보십시다.
예수님을 잡기 위해 칼과 몽둥이를 들고 찾아온 그들을
예수님께선 그저 말씀 한 마디로 간단하게 모두 죽이실 수 있었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위해,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을 살려주시기 위해
일부러 잡혀주시어 그 모든 더럽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묵묵히 당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겁니다.
바로 그 분과 같이 된 자들만, 즉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 발버둥을 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자들만 하나님의 인정과 택하심과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모습들이 바로 욕심이 없는(욕심을 버린) 모습,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의 모습,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억울해하지 않는 모습(하나님께서만 알아주시면 되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 생명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모습,
말씀에 순종하여 맺고 있는 열매들이 있는 모습, 모두를 용서하는 모습,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부족함을 겸손히 인정하는 모습,
사람 앞에서도 핑계나 교활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솔직히 인정하고 사죄하는 모습,
어떤 일에도 요동하지 않고, 원망과 불평 없이 감사하면서 예수님을 점점 닮아가는 모습,
성경말씀과 설교를 통해 알고 있는 것과 자신의 행함이 일치하는 모습 등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살지? 인생 꽤나 피곤하게 산다. 엄청 답답하네.’
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어딘가 특별한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볼 때 종종 ‘달관했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예수님과만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과는 사뭇 다른 내용입니다.
고후 6:4-10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구원의 기준이 그렇게까지 까다로울 리가 없다.
전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그러실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경말씀이 그렇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성경말씀과 다른 주장이 어떤 근거로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듣기가 편해서? 수 십 년을 그렇게 잘못 알고 지냈기에?
세상 사람들처럼 적당히 죄도 범하고, 세상 쾌락을 즐기며 살고 싶어서?
지금의 삶이 꽤나 만족스러운데 변화를 주기가 싫어서?
괜히 변화를 주었다가는 힘든 일, 싫은 일에 순종해야 할까봐서?
그동안 열심히 주일성수도 했고, 하나님께 헌금도 하고, 교회 봉사도 하고, 전도도 하고,
죄를 실컷 범하고 싶은 것도 꾹 참는 등 하나님께 해드린 게 꽤나 많은 것 같은 공로의식에?
자신이 천국에 못 들어가고, 지옥에 갈 거라는 상상은 아예 하기도 싫어서?
자신이 지옥에 갈 수도 있다는 현실을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어서?
그것도 아니면 아무 근거 없이 그냥 다 모르겠고, 그냥 마음 평안한 것이 좋아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 구원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는 말 그대로 진리이며, 만물의 기준입니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의 수, 노아의 때에 방주에 들어간 사람의 수,
롯의 때에 불 심판을 피한 사람의 수,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늘날 예수님의 가르침과 거리감이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도 도무지 깨닫질 못한다면,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자신만은 예외라며 ‘가나안에 당도하지 못한 채 광야에서 죽어 썩은 대부분의 사람에
결코 자신은 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근거 없이 확신만 한다면,
그러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다를 바가 없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도 없으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긍휼을 간구하는 겸손함도, 순종함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도 없이
그저 세상의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서 움켜쥐어
오직 자신의 육신적 만족을 최우선하여 살아가며,
온갖 음란과 육신적인 쾌락이 마음속에 가득하고, 하나님 앞에서 나태하고 게으르며,
자기 기분에 따라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혈기를 부리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증오하면서 용서하지 않고,
뒤에서 수군거리며 다른 사람들의 흉을 보고, 사람의 등급을 나누어 멸시하며,
부모를 공경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어리석음과 악함을 숨기거나 변명하기 위해서라면
핑계나 거짓말도 서슴지 않으며, 남의 소유를 탐내다가 결국 훔치거나 속여 빼앗고,
육신적인 것들을 자랑하거나 질투하는 교만한 모습으로
이제는 더 이상 죄를 죄로도 여기지 않는 굳어버린 양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교회에 오래 다니고 있으니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매우 큰 착각에 빠진 채 영원한 멸망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여 걷고 있는 자들이 맞습니다.
살전 5:1-18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다면, 물의 심판에서 구원받아 방주에 탑승하고 싶다면,
불의 심판을 피해 안전지대에 들어가고 싶다면, 예수님과 관계있는 자,
즉 예수님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 중의 한 명이 되어 택하심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고 싶다면
당장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착각에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이런 내용의 설교를 하고 있는 목회자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그저 전달만하고 있는 메신저일 뿐
모두가 완전하지 못하며, 언제든 버림을 당할 수 있는 위치
(스스로 하나님을 저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고전 9:27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멀리서 보면 거룩해 보이는 목사들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고백한 후 회개하여 돌이킬 것들이 있습니다. 많습니다.
자신은 완전하여 예수님과 같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심각한 영적 교만에 빠진 자로서
다른 사람까지 덩달아 미혹하여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죄를 범하고,
결국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될 자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각자의 인생에서 맡게 된 사명만 다를 뿐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신앙생활을 짧게 했든 오래 했든, 목회를 막 시작했든 30년을 넘게 했든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죄인이며,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행위로서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있는 의인은 한 명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현실은 현재 각성하여 매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리고,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 애쓰며,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울면서 억지로가 아닌 기쁘게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날로 예수님을 닮아 성장하고 있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옥의 길로 향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마지막 때, 부디 저와 여러분들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십시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장단상교)는 말이 있습니다.
길다고 생각한 것도 더 긴 것 앞에서는 짧고,
짧다고 생각한 것도 더 짧은 것 앞에서는 길다는 뜻입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이제 온전하며, 자기를 이미 완벽히 부인했고,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며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고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닌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선 바로 그 부분을 우리에게 미리 알려주시기 위해서 성경을 주신 것입니다.
‘구원은 이미 확정’이라는 이 교활한 거짓말은 세상에 속한 성공과 쾌락에 집중하고,
영적으로 나태하고 안일하게 하여 결국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한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뚜껑을 열어봐야만 그 안에 뭐가 들어있었는지 알게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영광의 그 날이 되어야
구원 받을 자, 받지 못할 자가 확연하게 가려질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는 그 날이 되면
모든 이를 대상으로 숨겨진 것 하나 없이 낱낱이 다 밝혀질 것이고,
하나님의 택하심과 구원을 받게 될 자격이 있는 자, 그렇지 못한 자가
모두의 앞에서 밝히 공포될 것입니다.
각 사람마다 행한 대로 갚으시겠다고 공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지 말고,
두렵고 떨리는 경외의 마음을 품은 채 선한 믿음에 걸 맞는 삶, 진리를 깨달은 대로 행하는 삶,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모두는 참으로 연약하고, 불안정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없인 자기를 부인하기는커녕 하루도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먹고, 싸고, 놀고, 자는 것은 다들 어렵지 않게 잘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루를 온전히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쉽지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주신 말씀을 거부하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겸손히 받아들인 후
하나님 앞에 매일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간구 드리십시다.
부디 하나님께서 친히 저를 도와주시라고, 오늘을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인도해주시라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있으며,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겠다고 솔직히 인정하며,
전지전능하신 그 분의 능력을 믿고 경외하며, 복종으로서 하나님을 따르십시다.
아직 순종이 안 되면 순종의 모양이라도 내면서 하나님께 매달립시다.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으면서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구하는 자에게만 이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천국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예복을 꼭 마련하는 우리가 다 되십시다.
이런 내용의 설교는 읽기가 힘든 ‘매운맛 설교’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이 세상에서의 탐스러운 복만 강조하여 귀를 간질이는
‘순한맛 설교’만 듣다가 마지막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낫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성경말씀을 기준으로 한 팩트를 다룬
마음이 심히 찔리며, 따라서 일상까지 불편해지는 설교를 읽고,
거룩한 고민을 하는 각성으로 정신을 차려 매일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경외하고 복종하는
참 믿음을 가지고 구원의 길을 걷는 것이 낫겠습니까?
결정적으로, 성경말씀에 기록되어있는 예수님의 말씀은 ‘가장 매운맛’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우리 모두가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옥에 갈 자가 압도적으로 많고, 천국에 들어갈 자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극소수일 것이며,
우리 중 그 누구도 자신은 100% 구원을 받게 될 거라고 장담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민 14:39-45
(39) 모세가 이 말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알리매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40)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 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41) 모세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라
(42)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의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43)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44) 그들이 그래도 산 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5) 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
방금 읽은 말씀처럼 뒤늦게 돌이키려 해도 이미 늦은 시점이라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얻지 못한 채 그대로 멸망에 이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때, 오늘을 놓치지 말고,
나중으로 차일피일 미루지도 말고, 즉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겸손히 머리를 조아리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면서
오늘부터 심판의 그 날까지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된 모습으로
매일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는 것에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하십시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삶에 적용함으로서
과연 나는 여호수아와 갈렙과 노아와 롯과 에녹과 같은 부류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사실상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오히려 멸시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은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될 거라고 착각하면서 나태함과 매너리즘에 빠진 채
진리를 배운 대로 행하지 않고, 그저 마음 편안히 살고 있는 어리석은 자인지
최대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를 되돌아봄으로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자비의 때를 놓치지 않는 자가 되어
머지않은 그 날, 예수님을 공중에서 영접하게 되는 극소수 중의 한 명이 될
최고의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 16:24-27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4.04.14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422장 나그네와 같은 내가
1. 나그네와 같은 내가 힘이 부족하오니 전능하신 나의 주여 내손 잡고 가소서
하늘 양식 내게 먹여 주소서 하늘 양식 내게 먹여 주소서
2. 수정같은 생명수로 항상 대어 주시고 불과 구름 기둥으로 갈길 인도하소서
나의 주여 힘과 방패되소서 나의 주여 힘과 방패되소서
3. 요단강을 건널 때에 겁이 없게 하시고 저기 뵈는 가나안 땅 편히 닿게 하소서
나의 주께 항상 찬송드리리 나의 주께 항상 찬송드리리 아멘
첫댓글 아멘!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진리의성령교회에
와서 매운맛을 보고 넓은길을 가던것을 돌이켜 좁은길로
나아가길 소망 합니다.
아멘.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아져서
창조하신 보람을 드리는 진리의성령교회가 되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으로 확정되는 그 날까지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을 예수님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