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22일 온고을교회 주일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너는 내 아들이라 》
시 2:7~12
〈 아버지와 아들 서사 〉
엊그제 장례식이 있어서 갔습니다. 마침 고인의 장남과 길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아들, 저는 그의 긴 이야기에 귀를 내주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슬픔이 아닌, 아버지에 대한 회한을 저에게 풀어냈습니다.
속으로 놀랐지만 귀를 기울였습니다.
장남에게 아버지는 어머니를 고생시키신 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한량이었습니다.
땡볕아래 고생하는 어머니와 달리 신선놀음으로 생을 사셨습니다.
밭에서 함께 일하다가 어디를 갔었냐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밤이면 부부싸움을 했답니다.
아들 눈에 아버지는 사회성도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도회지로 나가지 않고 산골에 틀어박혀 사신 것도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장남이 저에게 하소연하는 그 시간, 돌아가신 아버지는 화장장 화구 안에 계셨습니다.
아들의 이마와 눈가에 맺힌 땀방울을 보면서 참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 아들도 이미 예순을 넘겼습니다.
60평생 주름진 맏 상주의 얼굴을 저는 경이롭게 쳐다보았습니다.
듣는 제가 알기로, 고인과 장남이 생전에 부딪혔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
평범한 아버지와 아들이었는데, 뜻밖에도 장례식에서 장남의 속내를 보았습니다.
☞ 며칠 지나 이야기를 나눴던 장남의 두 살 아래 동생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동생이 보는 형의 모습을 들려주는데,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동생이 보는 형의 살아가는 모습, 제가 들은, 장남이 말했던 아버지 모습 ‘판박이’였습니다.
굼뜨고 게을러 형수가 고생을 많이 한답니다.
장남으로서 부모에 대한 효도도 부족하고, 집안 애경사도 잘 챙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맏이로서 아우들을 아우르지도 않고, 리더십도 사회성도 부족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잠시 소름이 돋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 장남은 자기의 모습이 싫었는지 모릅니다.
발이 빠르지도, 적극적이지도, 잘 챙기지도 못하는 자신, 거기에 아버지를 투사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무기력한 것은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이라는 ‘기저심리’가 있었나 봅니다.
아버지를 떠나 보내면서 아버지의 삶과 장남인 자기의 삶이, 겹쳐드러나고 있었습니다.
☞ 아버지와 아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거리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입니다.
〈 질문하는 성도 〉
설교를 시작하면서 남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아버지와 나”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사춘기 시절에 아버지에게 반항했었습니다.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후유증은 길었습니다.
아들로서 아버지의 권위에 반기를 들게 되면, 그 후유증은 평생을 갑니다.
자녀에게 부모는 ‘권위’의 원천이면서 상징입니다.
부모에 맞서는 것은 권위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권위를 인정치 않는 반발, 이후로는 그 어떤 권위도 인정을 잘 못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중에 ‘권위’ 앞에 고개를 숙이는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있습니다. ‘어르신의 권위’입니다.
직장에서는 직책이 자기보다 높은 상사가 있습니다. ‘상사의 권위’입니다.
‘스승의 권위’도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의 권위도 있습니다.
우리가 순종하고 따라야 하는 권위는 수두룩합니다.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겸손’이고 거스르는 것이 ‘교만’입니다.
저는 아버지 권위에 반기를 들었다가, ‘권위 앞의 겸손’을 잃고 숱한 고충을 겪었습니다.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이 점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나는 권위에 순종하는 사람인가?”
권위, 그 맨 꼭대기에 어떤 권위가 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권위”입니다. 할렐루야~
권위에 잘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 아버지 권위에 순종으로 길들여진 사람이, 하나님의 권위에도 순종을 잘합니다.
제가 박사과정 시절, 함께 공부하는 목사님들로부터 자주 들은 질문이 있습니다.
“황 목사님은 왜 그렇게 하나님께 치받으세요?”
난처한 저의 입장을 교수님이 두둔해 주셨습니다.
“질문이 있다면 하나님께 묻고 끝까지 대답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질문하지 않고 순종하는 길은, 치받고 대답을 들어야 순종하는 삶에 비하여 순탄합니다.
저는 그런 분들이 참 부러워요. 하나님 말씀이라면 즉각 “아멘!”이 되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 하나님은 그러나 저처럼 ‘질문하는 목사’도 사랑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아멘!
〈 다윗 스타일 〉
시편 1~2편은 다윗이 썼습니다. 다윗은 시에도 탁월합니다.
다윗은 육신의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가졌을까요?
다윗은 막둥이로 태어나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았습니다.
아마 아버지 이새와의 관계, 썩 좋지많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질문보다는 이것저것 요청을 많이 합니다.
“이렇게 해 주세요, 저렇게 해 주세요!” 여기에 원수를 갚아달라는 기도도 있습닏.
“하나님 내 원수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그 자식은 고아 되게 해 주세요!”(시 109:9)
하나님께 저는 질문은 많이 합니다마는, 다윗처럼 그런 요구는 절대 하지않습니다.☻
하나님께 저는 궁금증이 많아요! 궁금증이 해소되면 저는 만족입니다.
성경 읽는 중에 아리송한 대목이 나오면 저는 바로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저의 질문에 대답해 주시면, “알겠습니다!” 하고는 바로 엎드립니다.
☞ 오늘 본문 7절에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7절) “~ 너는 내 아들이라 ~”
설교를 시작하면서 아버지 장례를 치른 형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형제의 아버지, 지금은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싶을까요?
① 자기를 닮아 나태하고 굼뜬 장남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을까요?
② 사춘기 때 반항했던 저에게, 아버님은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③ 막둥이 다윗을 천덕꾸러기 취급했던 아버지 ‘이새’는 어떻게 말씀할까요?
④ 그리고 아버지가 된 우리는 자식에게 어떤 말을 남겨야 할까요?
자식으로서 아버지에게 들어야 하는 딱 한 마디가 있다면?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남기고 싶은 딱 한 마디가 있다면?
하나님은 피조물인 우리에게 딱 한 마디를 하신다면, 그 한마디는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아버지가 화구에서 한 줌의 재가 되어가는 중에 장남은 아버지에 대한 회한을 토로했습니다.
맏 상주와 저와의 대화, 그 아버지가 듣지 않았겠습니까?
그때 이미 영혼이 되셨지만, 아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면, 아버지는 어떤 말을 하실까요?
☞ 잘 듣거라 이눔아,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너를 낳았다! 이 말씀을 하시지 않을까요?
〈 너는 내 아들이라 〉
(7절)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① 화구 안에서 한 줌 재로 돌아가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 한 마디!
② 사춘기 때 반항했던 아들에게 아버지가 꼭 하시려는 말씀 한 마디!
③ 아버지 이새가 다윗에게 짧고 강하게 하시는 한 마디!
☞ 여기에 또 있습니다.
④ 부모가 된 우리가 장차 자식에게 꼭 남겨야 할 한 마디!
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강렬하게 하시는 말씀 한 마디가 이 말씀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합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그래서 이 말씀이 오늘 설교 제목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 하실 때, 하나님은 어떤 심정이셨을까요?
☞ 오늘은 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려야 할 것 같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하나님의 이 한 마디 속에는 온갖 회한이 다 서려 있습니다.
_화장장 화구 안에서 재가 되어가면서 아들에게 하시는 아버지의 한 마디입니다.
_사춘기때 반항했던 아들에게 하시는 아버지의 한 마디입니다.
_막둥이라 늘 천덕꾸러기로 취급했던 아버지의 한 마디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주재이십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닌 것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하나님을 등졌습니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아버지를 원망하는 소리, 하늘을 찌릅니다.
“하나님 있으면, 나와 보세요!”
“하나님이 있다면 세상이 왜 이렇습니까?”
“왜 보여주지는 않고 믿으라고만 하십니까?”
이렇게 철없는 자식들, 그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 가장 중요한 한 마디입니다.
“~ 너는 내 아들이라 ~”
☞ 지금 이 소리 들리십니까? 육신의 아버지 말씀으로 듣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습니다!
〈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알아야 〉
아직도 하나님으로부터 “~ 너는 내 아들이라 ~” 이 음성 듣지 못한 분들이 계십니다.
꼭 들으셔야 하는 줄 믿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음성이 내 귀에 들리겠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알아야 합니다.
_ 하나님이 전능하신 창조주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_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중에 나도 지으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배해야 합니다.
_ 아버지 때문에 내가 요모양 요꼴로 산다는 푸념, 좋습니다. 인간이니 그럴 수 있습니다.
_ 사춘기 시절 아버지가 못마땅하여 치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니 그럴 수 있습니다.
_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나를 낳아주신 분”입니다.
셋째, 아버지 됨, 부모 됨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_ 육신의 자녀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라고 말하게 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_ 자녀들, 차세대를 향하여 진정한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 저는 아들녀석을 먼저 보냈습니다. 어언 13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아들 녀석 무덤 앞에서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말했을 때, 두 갈래 음성이 들렸습니다.
육신의 아버지께서 저에게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겹쳐서 들렸습니다. “~ 너는 내 아들이라 ~”
3중주가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①저는 아들에게 ②아버지는 저에게 ③ 하나님도 저에게…
그때 아버지의 삶과 인생, 그리고 자식인 저와의 관계가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저의 신앙도 업그레이드 되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저와의 관계가 전혀 새로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 “~ 너는 내 아들이라 ~”
하나님이 이 말씀이 들리는 순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자식은 어버이를 기억해야 합니다. 공경해야 합니다. 효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를 점점 멀리합니다. 자꾸 멀어집니다.
가장 가까웠던 부모와 자식의 거리가 나중에는 가장 멀어집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그렇게 멀어졌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 그들과 가장 먼 거리에 누가 있습니까?
☞ 불신자와 가장 멀리 있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
본문 7절 뒷부분에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가 있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하시고는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태초에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으니 엄밀히 말하면 그때 우리를 낳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초 이전에 우리를 예비하셨습니다.(엡 1:4)
때가 이르매 우리를 이 땅에 내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우리를 낳으셨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하나님이 진짜 있어요?” 어린 손주들이 목사인 할아버지에게 하는 질문입니다.
이 녀석들이 잘 커서, “너는 내 아들이라”라는 음성을 듣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아이들이 그 음성을 듣게 되는 날, 그날을 “오늘”로 지칭하셨습니다.
시편을 쓴 시인도 “~ 너는 내 아들이라 ~”라는 음성을 듣는 그날을 “오늘”로 듣습니다.
하나님은 이 음성을 들려주시면서, “어제”는 묻지 않으십니다. “내일”도 따지지 않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오늘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오늘”이 내일이 되어야 합니다. 죽는 날까지 “오늘”이 되어야 합니다.
“아들” “아버지” 사는 것이 바쁘다 보니, 늘 잊어버립니다.
바쁘게 살다보면 내가 아버지 아들인 것을 망각합니다.
망각하고 살다보면 다시 멀어질 수가 있습니다.
신앙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멀어지지 않도록 꽉 잡아야 합니다.
“나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총”
어제도 내일도 아니고 “오늘” 듣고, 확인하고, 깨닫고, 누려야 합니다.
“남자는 부모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야 철이 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화장장 화구에 들어 계신데도 아버지에 대한 회한을 쏟아냅니다.
왜 이렇습니까?
“~ 너는 내 아들이라 ~” 그리고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 음성 들으라고! 이 음성 들어야 한다고!!
그때 비로소 아버지는 아버지가 되고 아들은 아들이 됩니다.
☞ 아버지가 아버지 되고, 아들이 아들 될 때, “오늘”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되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