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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록으로 읽는 믿음과 삶] (7) 에페소에 보내는 편지(묵시 2,1-7)
처음에 사랑이 있었고 불행히도 그 사랑은 추락하고 말았다. 에페소에 보낸 편지는 ‘추락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역사적 관점으로 이해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추락한 사랑을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와 여러 신들을 모시는 신전들 탓으로 돌린다. 그도 그럴 것이 에페소에는 기원전 29년부터 아우구스토 황제의 명에 따라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위한 신전이 있었고, 수렵과 궁술, 그리고 자연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아르테미스 신전 역시 존재했었다. 그래서 이방 문화와 종교들 틈바구니에 흔들리는 신앙인의 모습을 두고 첫사랑을 잃어버렸다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에페소 교회에 말하는 이는 ‘오른손에 일곱 별을 쥐고 있는 이’다. ‘쥐다’(κρατέω)라는 말은 ‘가지다’라는 말보다 강력하다. 흔히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에 방점이 찍혀 해석된다. 예수님이 교회의 근본이자 목적이라는 것. 쥐어진 일곱 별은 일곱 교회를 대표하는 천사를 가리키는데, 예수님께서 일곱 교회를 꼭 붙들고 챙겨주고 보듬어 주는 신적 보호로 ‘쥐다’라는 동사를 읽어낼 수도 있겠다. 일곱 등잔대는 일곱 교회를 가리키는데 그 한 가운데를 거니는 분 역시 예수님이다. 우리말 번역은 일곱 교회 ‘사이’로 되어 있지만, 부정확한 번역이다. ‘사이’로 번역된 ‘엔 메쏘’(ἐν μέσῳ)는 공간적 일치를 가리킨다. 일곱 교회와 함께 하나 되어 머무시는 예수님을 ‘엔 메쏘’라는 말마디가 암시한다.
일곱 교회와의 일치는 이 말마디 하나로 더욱 강조된다. “나는 … 안다.”(묵시 2,2) 예수님은 에페소 교회가 행하는 일과 노고와 인내를 알고 계신다. 일, 노고, 인내라는 단어들은 모두 현실 속에 살아가는 신앙인의 ‘수고’(受苦)를 가리키는 것으로, 요한묵시록은 행복과 안식을 향한 신앙인의 자세라고 가르친다.(묵시 11,13) 예수님은 이미 우리의 삶이 슬프고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알아주신다는 이유만으로 그 힘든 삶은 살아지는 것이다.
에페소는 여러모로 훌륭하고 모범적이다. 그럼에도 부족한 것이 있으니 그건 노력이나 희생, 혹은 성실함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딱 하나가 부족한 것이었고, 그 하나가 편지를 쓰게 된 동기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묵시 2,4) 에페소 교회의 ‘첫사랑’을 두고 요한계 문헌, 그러니까 요한복음, 요한의 편지들을 근거로 해석하곤 한다. 이를테면,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으로 믿는 이들은 구원의 자리에 머문다는 것.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하느님이 인간으로 오셨고, 그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인간은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첫사랑’은 그리하여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를 이루는 신앙의 본질을 가리키는 단어가 된다. 많은 신앙인이 행하는 일과 노고와 인내는 어쩌면 부수적인 것일지 모른다. 우리가 신앙에 대해 본질적으로 질문해야 하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나는 누구를 향해 있는가’라는, ‘타자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어야 하지 않을까. 한 사람의 노력이 아무리 성실하고 완벽하다 할지라도 상대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라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숱한 삶의 경험들 안에 ‘타자’가 잊혀진 채 이루어지는 ‘선한 폭행’을 경험하고 있지 않나.
사람의 아들인 예수님은 에페소 교회에 채근한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라’고.(묵시 2,5) 그 ‘어디’는 추락의 공간이다. ‘그러므로 더 사랑하라’가 아니라 어디서 추락했는지, 어디서 벗어났는지, 그리하여 어디서 사랑을 잃고 헤매는지 살펴보라는 말이다. 에페소 교회의 본디 자리는 ‘사랑’이었으나 그 ‘사랑’을 잃어버린 곳이 어딘 지에 대한 질문은 태초의 인간을 향해 던져진다. 아담과 하와가 있었고, 그 둘은 하느님과 결별하여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 인간은 본디 하느님과 조화로운 관계 안에 있었으나, 그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지혜서 7장 3절은 이렇게 노래한다. “나도 태어나서는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같은 땅에 떨어졌으며 첫 소리도 다른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우는 것이었고….” 화려했던 솔로몬 역시 한계 지워진 인간의 처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는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인간 삶에 대한 부정적 해석은 하느님과의 조화로운 세상을 향한 갈망의 긍정적 해석이다.
그러므로, 첫사랑의 회복은 인간의 근본적 삶에 대해 또 다시 질문하는 일로 시작한다. 우리는 본디 ‘관계 안의 존재’였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서로에게 ‘알맞은 협력자’로 창조된 것이 인간이었다.(창세 2,18 참조) 인간이 진정으로 제 존재 양식을 구현하는 일은 무엇일까. 에페소에 보내는 편지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너에게 좋은 점도 있다. 네가 니콜라오스파의 소행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것을 싫어한다.”(묵시 2,6) 니콜라오스를 두고 역사의 한 인물로 규정하는 노력은 많았다.
예컨대, 사도행전의 ‘니콜라오스’는 초대교회의 일곱 부제 중 한 분이셨다.(사도 6,6 참조)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니콜라오스였다. 혹자는 니콜라오스를 따르는 신앙인의 무리가 교회 내부에 있었고, 니콜라오스의 모범을 추종했던 그 무리가 엄격주의로 빠져들면서 신앙의 게으름을 탓하는 배타적 무리가 되었다는 점을 언급한다. 굳이 역사의 한 인물로 시작한 이런 해석을 절대화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신앙 공동체에서도 이런 정황은 발견되니까. 제 신앙의 가치를 절대화해서 다른 이의 신앙을 폄훼하거나 무시하는 일, 제 노력을 정당화해서 다른 이의 노력을 게으름이나 일탈로 규정하는 일, 모두가 니콜라오스파의 소행과 유사한 것들이다.
기억하자. 우리는 ‘승리하는 사람’이다. 단절과 소외, 비난과 무시에 승리하여 인간 본연의 자리를 다시 질문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낙원에서 생명 나무의 열매를 ‘함께’ 먹을 사람들이다.(묵시 2,7 참조)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인색한 오늘, 경쟁과 노력에 흠뻑 젖어 인간다움을 한낱 행동 방식의 문제로 격하시킨 오늘, 우리는 첫사랑이 그립다. 사랑은 다른 이가 그 다른 이로 존재할 수 있도록 알맞게, 세심히 어루만져주는 것이 아닐까.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59) 예수님의 여정에 끝까지 함께 여성 제자들
여자대장부로 불리는 복자 강완숙(골룸바)는 한국천주교회사에서 그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역할이 컸다. 강완숙은 결혼 후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고 책을 얻어 읽는 가운데 그리스도교 신앙에 이끌렸다. 강완숙은 신앙에 대한 열정으로 교리를 실천해 나갔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국교회의 초석을 세우는데 노력했다. 1791년 신해박해 때는 신자들의 옥바라지를 하다 자신도 옥에 갇히기도 했다.
1794년 말 주문모(야고보)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은 강완숙은 모든 교회의 대표인 ‘여회장’으로 임명됐다. 당시의 양반사회에서는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강완숙은 전교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고 1801년 신유박해 때 강완숙은 같은 신자의 고발로 관가에 잡혀갔다. 관리들은 주문모 신부의 행방을 알아내려고 그녀에게 여섯 차례나 혹독한 형벌을 가했지만 강완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포졸들은 그의 어린 아들을 끌고 와 거적을 씌우고 매질을 하기도 했다. 강완숙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배교하지 않았다. 회유를 포기한 관리는 1801년 7월 2일 서소문 형장에서 강완숙을 참수했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여성 사도, 여성 제자라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신약성경에는 여성 제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의 초기 복음 선포부터 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이름도 언급되는 분들도 있고 대부분은 익명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열두 사도 못지않게 예수님의 선교사업을 지지하고 도와준 여성들은 실제 여성 제자라 할 수 있다. 그 중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도 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초기 몇 년 동안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성경에 기록되지는 않았다. 당대에 여성의 역할이 경시되었던 측면도 있다고 본다. 성모님은 예수님과 늘 함께 계셨고 예수님께서 임종하실 때 마리아를 제자들에게 교회의 어머니로 내주셨다.(요한 19,25-27 참조).
2016년 6월 3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령 「사도들의 사도」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열두 사도와 같은 반열에 올리며 ‘사도들을 위한 사도’라 말했다. 교황은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마지막까지 따랐고 ‘죽음의 장소인 묘지에서 생명을 선포했다’고 강조했다. 그밖에도 익명의 많은 여성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하면서 초기부터 교회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남성 제자들이 도망친 상황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까지 가서 함께했다.
“백인대장과 또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이들이 지진과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며,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하고 말하였다. 거기에는 많은 여자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들이다.”(마태 27,54-55) 현대의 교회도 여성의 활동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반박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여성의 역할이 기대된다.
[성경 이야기] 이스라엘은 땅의 나라
작년 가을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공습해 많은 이들을 살해하고 인질들을 억류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해 이 잡듯이 정찰하고 하마스를 완전히 무력화 하기 위해 엄청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과 같은 역사를 가진 나라는 세계 또 없을 것이다. 사실 A.D 70년경 로마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은 세계지도에서 사라진 국가였다. 천연의 요새인 “마사다”에서 마지막 항전을 이어갔으나 73년 로마군에 항거하던 유다인 저항군이 로마군의 공격에 패배가 임박하자 전원 자살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마사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이며 이스라엘인들에게는 불굴의 정신을 드러내는 성지이자 관광지가 되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인들은 2차 세계대전 때 끔찍한 홀로코스트를 겪어내야 했다. 전쟁이 끝나자 많은 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팔레스티나 지역에는 이미 2천년 가까이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1947년 11월 29일, 유엔에서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의 강제적인 분할 계획을 채택하고 실행했다. 이미 이곳에 거주하던 아랍인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현재까지 분쟁의 씨앗으로 남아있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에 영국의 위임 통치에서 독립되어 이스라엘의 국가 수립을 선포한다. 국가가 사라진지 2천여년 만에 다시 세계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유일한 사례였다. 그리고 영국군이 철수하자마자 근처의 아랍 군대는 팔레스타인을 침공하고, 이스라엘 군대와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여러 번의 중동 전쟁을 승리하면서 요르단강 서안 지구, 시나이반도, 남레바논, 가자 지구와 골란 고원을 점령하면서 영토를 넓혀나갔다.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쳐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감옥처럼 되어버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여전히 이 지역의 갈등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사람들은 한마디로 땅의 사람들이다. 이스라엘의 땅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도착한 땅이며 이스라엘인들이 치열하게 살고 싸우다가 죽어간 땅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가 없던 시대, 바빌론 유배시절, 로마의 공격 등으로 수천년 디아스포라에서 떠돌며 고통을 겪었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팔레스티나 땅은 단순한 지리적, 정치적 차원을 넘어서 신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내가 장차 보여줄 땅’(창세 12,1 참조)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이 세겜에 이르러 그 땅에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았을 때(창세 12,6)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따라서 구원사적인 입장에서 보면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해 준 것은 하느님의 구원 행위 가운데 하나라고 이스라엘은 주장한다. 즉 이스라엘이 땅을 차지한 것은 하느님의 선물이고 은총이며 선조들의 신앙의 결과로 주어진 특권이라는 것이다(창세 22,17-18 참조).
이스라엘과 땅과의 관계에서 특징적인 요소는 그 땅을 영원히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종교적 성격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땅에서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땅을 주신 하느님의 뜻을 실현해야 한다. 이스라엘에게는 땅은 살고 있는 지역을 넘어서 백성들의 종교적 행동을 반영하는 일종의 증거이다. 땅의 거주가 하느님의 명령을 성실하게 지킴과 관련되어 있다.
‘내가 장차 보여줄 땅’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이 본래적으로 자신들의 것이 아닌 땅을 하느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땅에 대한 처리 권한은 전적으로 하느님에게만 있다. 따라서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땅은 후손들에게 계속 이어지는 유산으로 다른 사람에게 양도될 수 없다(민수 36,7 참조). 바빌론 유배시절에 유다 땅에 남아있는 예루살렘 사람들은 바빌론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유다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에제 11,15 참조). 즉 예루살렘 거주민들이 바빌론 포로들에게 약속의 땅에서 떠난 것 자체가 그 땅에 대한 소유권 상실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땅이 남아있는 자신들에게 새롭게 주어졌음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바빌론 포로들은 예루살렘 거주민들을 향하여 오히려 너희는 그 땅과 상관없다고 비난하면서, 그 땅에서 멀리 떠나라고 경고한다.
바빌론에 끌려간 포로들은 하느님의 성전이 없는 상황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과거의 종교 제도를 강조하며(안식일, 할례, 금식, 정결법 등) 새로운 종교 제도(회당의 등장과 족보의 강조 등)를 만든다. 국가와 왕이 없는 바빌론의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큰 관심을 가진다. 포로들이 이방인과 구별짓게 하는 가장 주된 것이 할례와 안식일 준수였다. 팔레스티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바빌론 포로들에게 ‘거룩한 시간’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어 안식일의 준수는 이방인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회개의 행동이 되었다. 바빌론의 포로들이 이스라엘로 귀환하는 것을 모든 것을 이전의 자리로 ‘되돌리다’라는 의미의 동사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예레 16,14-15 참조). 바빌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은 하느님에 의해 자신들이 떠나왔던 땅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유배 이전에 자신들의 살았던 땅을 회복하는 것이고 하느님에 의해 조상에게 주어진 땅을 상속받아 이전의 영화로운 삶을 회복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땅은 단순히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체이고 하느님께서 역사하시는 현장이다.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을 하느님이 계시한 구원과 약속의 땅으로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본래 이곳에 살던 소수민족들에게도 팔레스타인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터전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영토분쟁이 끝나고 서로 공존하며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찾는 날은 언제쯤 오게 될까.
[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사도행전
사도행전은 예수님 승천 이후 사도들이 어떻게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지, 즉 교회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약 성경의 역사서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사도행전은 머리말과 맺음말을 제외하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의 선교 활동을 다루는 전반부와 사도 바오로의 활동을 바탕으로 한 이방인 지역에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회의 선교 활동을 다루는 후반부로 나눠집니다. 먼저 머리말인 1장에서는 테오필로스에게 사도행전의 목적 및 의도에 대해서 말한 뒤 예수님의 승천 기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유다 이스카리옷의 배반과 자살로 인해 결원이 생긴 사도단에 마티아를 더함으로써 다시금 충만한 하느님의 백성을 예표하는 열두 사도로서 교회의 활동을 시작합니다.
전반부인 2장부터 11장 18절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해 교회가 탄생한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한데 모여서 기도하고 있던 사도들에게 성령이 내림으로써 이들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각기 다른 언어들로 말을 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지방의 말로 이를 듣게 됩니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이 언어와 문화와 종교가 다른 모든 사람에게 전파됨을 뜻합니다. 뒤이어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이분이야말로 주님이시며 메시아라고 이야기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듣고 많은 유다인은 회개하여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으며, 그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고 가진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면서 신자 공동체의 생활을 이어갑니다. 이처럼 사도들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교는 급성장하게 되었지만 유다교 지도자들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불러다가 신문하였고, 감옥에 붙잡아 가두고 매질하는 등의 박해를 가했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교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선포하였습니다. 급성장하는 교회 공동체에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게 되자 사도들은 부제직에 해당하는 일곱 명의 봉사자를 뽑아 교회의 식탁 봉사를 전담하게 하고 자신들은 복음 선포에 전념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일곱 봉사자 가운데 하나인 스테파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거짓된 선동으로 인해 최고 의회에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스테파노는 담대하게 최고 의회 앞에서 설교한 뒤 순교하게 됩니다. 이를 기점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가 시작되자 사도들을 제외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지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이방인들을 향한 복음 선포가 시작됩니다. 한편 스테파노의 순교의 순간에 함께 하고 있던 사울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중에 주님을 만나는 환시를 체험한 뒤 회심하여 세례를 받고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방인이며 백인대장인 코르넬리우스는 환시를 본 뒤 베드로를 만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이방인들과 더불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베드로 사도가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과 식사 자리를 함께 한 것이 문제가 되었지만 베드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주셨으며, 이방인과 유다인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이방인들에게도 그리스도교 교회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후반부인 11장 19절에서 28장 29절까지는 예루살렘을 벗어나서 이방인 지역으로 무대가 옮겨집니다. 그리고 선교의 중심인물 또한 베드로에서 바오로로 전환됩니다. 먼저 11장 19절에서 21장 16절은 3차례에 걸친 바오로 사도의 선교 여행에 대해서 전해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협력자들과 함께 키프로스, 안티오키아, 이코니온, 리스트라 등 여러 이방 지역을 다니면서 교회를 설립하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유다에서 몇몇 사람들이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쳤고, 이로 인해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그들 사이에서 분쟁과 논란이 발생하였습니다. 사도들과 원로들은 예루살렘에 함께 모여 이 문제를 상의하기로 하는데, 이것이 첫 번째 공의회에 해당하는 예루살렘 사도회의입니다. 회의 결과 사도들과 원로들은 이방인들에게는 우상 숭배에 바쳐진 음식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는 먹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규정만을 제시한 뒤 할례를 비롯한 나머지 규정들은 면제해주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제 바오로 사도는 아무런 부담 없이 이방인을 향한 복음 선포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테살로니카, 베로이아, 아테네, 코린토 등에서 복음을 선포하던 중 반대를 받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바오로는 유다교의 율법을 어겼다는 명목으로 유다인들로부터 고발을 당해 체포되었습니다. 바오로는 로마의 시민권을 앞세워 로마의 황제에게 상소하였고, 최고 의회 앞에서 그리스도교의 정당성을 설교하였습니다. 그 후 로마로 이송된 뒤 로마에서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28장 30-31절은 사도행전의 맺음말로써 바오로가 로마에서 이 년 동안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묵시록으로 읽는 믿음과 삶] (6) 일곱 개의 편지
요한묵시록이 묵시문학적 작품이라는 것에 이론은 없다. 그러나 2장과 3장의 일곱 개 편지는 묵시문학과 그 형식에 있어 달라도 너무 다르다. 편지는 모호하지 않고 뚜렷하다. 온갖 상징들로 신비스럽게 꾸며가는 묵시문학과 달리 편지는 말하는 이와 말을 듣는 이가 대체로 명확하며 편지 속에 담아내는 메시지 또한 시의적(時宜的)이고 현실적이다. 그런 이유로, 요한묵시록 2장과 3장의 일곱 개 편지들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요한묵시록의 모호한 상징들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하나의 구체적인 지렛대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곤 한다.
편지를 쓰는 이유 중 하나는 ‘말하고픈 게’ 있어서다. 그래서 편지는 말하고픈 이와 그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을 품고 있다. 요한묵시록에서 말하는 이는 ‘사람의 아들’(묵시 1,13)이다.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묵시문학의 대표적 인물이 ‘사람의 아들’(다니 7,13-14)인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데 사용해 왔다. ‘사람의 아들’은 천상의 신비를 지상의 현실 속에 밝히고 드러낸 종말의 대표적 인물이다. 예수께서 육화하셔서 하늘을 땅의 역사 안에 온전히, 그리고 굳건히 드러내셨기에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의 삶 자체와 비견될 만했다.
요한묵시록 역시 일곱 개의 편지를 소개하기 전, 일곱 별과 일곱 등장대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의 아들’을 먼저 소개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아들’이 편지를 쓰도록 요한을 재촉했다. 요컨대,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일곱 교회에 ‘말하고픈 게’ 있어서 일곱 편지는 쓰여졌다.
‘사람의 아들’이 누군지 종말론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노력은 많다. 마지막 시대, 하느님의 결정적 개입을 알리는 묵시문학적 인물로 정리되는 그러한 노력들은 사실, 모호하다. 구름에 싸인 듯 현실 세상과의 괴리감이 사람의 아들이라는 형상 위에 여전히 맴돌기 때문이다. 요한묵시록이 소개하는 사람의 아들은 다르다.
이유인즉, 요한묵시록의 일곱 개 편지의 시작은 사람의 아들을 교회의 구체적 현실과 접목하여 묘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른 손에 일곱 별을 쥐고 일곱 황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는 이”(묵시 2,1)라고 소개된 ‘사람의 아들’은 교회 공동체의 주권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음을 가리킨다.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죽었다가 살아난 이”(묵시 2,8)는 스미르나 교회의 몰락과 재생의 역사를 사람의 아들에 투사하여 교회의 운명이 사람의 아들의 그것과 같은 것이라고 암시한다.
“불꽃 같은 눈과 놋쇠 같은 발을 가진 이”(묵시 2,18)는 신심 있는 티아티라 교회의 신자들을 더욱 격려하기 위해 다니엘서에서 말하는 신적 보호의 전통적 표상들을 사람의 아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요한묵시록이 말하는 ‘사람의 아들’은 믿은 이들의 현실적 삶 안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그야말로 하느님의 ‘육화’를 확연히 드러내는 형상이다. 더 이상 모호하고 감추어진 하느님의 개입은 없다. 사람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 역사 속, 사람들 안에 하느님은 구체적인 캐릭터로 다양하게 스며든다.
그럼, ‘말을 들어야 할 사람’, 편지를 전해 받는 사람은 누굴까. 요한묵시록의 일곱 편지를 받는 이는 ‘천사’다. 대개의 주석학자들은 요한묵시록의 ‘천사론’을 유다 전통과 다른 맥락에서 짚어내는데, 바로 이 구절 때문에 그렇다. “이러지 마라. 나도 너와 같은 종이다. 예수님의 증언을 간직하고 있는 너의 형제들과 같은 종일 따름이다.”(묵시 19,10)
요한묵시록의 천사는 천상의 구별된 존재가 아니라 지상의 형제적 관계 안에 배치된다. 천사를 인간의 처지에서 이해하는 요한묵시록의 천사론은 혁명에 가깝다. 천상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거룩하고 신비스런 메시지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요한묵시록의 천사는 절망스런 존재일 뿐이다. 더 이상 신비스럽거나 초월적인 메시지는 없다. 현실의 공동체가 겪는 일들을 정확히 직시하게 만드는 게 요한묵시록의 일곱 개 편지이고, 그 편지를 수령하는 이는 천사를 위시한 신앙 공동체다. 이미 천상의 천사는 지상의 인간들과 ‘형제’가 되었다. 사람의 아들, 예수님 덕택에 그리되었다.
일곱 개의 편지는 소아시아에 위치한 일곱 개의 신앙 공동체를 향해 쓰여졌다. 그렇다고 각각의 교회를 각각의 사건으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는 없는 듯 하다. 일곱 개 편지에서 공히 반복되는 구절이 발견된다는 이유에서 그렇다.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묵시 2,7.11.17.29; 3,6.13.22) ‘여러 교회’로 번역한 것은 적확하지 않다.
그리스말 본문은 ‘그 교회들에게’(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라고 되어 있고, 그런 이유로 ‘여러 교회’는 ‘일곱 교회’로 다시 번역되어야 한다. ‘일곱’을 완전 수, 혹은 가장 풍성한 수로 이해하는 묵시문학적 전제 하에, ‘그 교회들’은 시·공간을 초월한 모든 신앙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요한묵시록의 일곱 개 편지는 당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뿐만 아니라 사람의 아들을 우리의 주님이자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모든 신앙 공동체에 공히 전해진 편지가 된다.
더불어 일곱 개의 편지는 그 형식에 있어 대동소이하다. 대략 이렇다. 사람의 아들이 각각의 교회 공동체 현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각각의 교회는 믿음에 관하여 얼마간의 부조리와 모순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각각의 교회는 회개해야 하고, 회개한다는 조건 하에 여러 선물들이 주어질 것이다, 라는 식으로 일곱 개의 편지는 적혀졌다.
크게 보면, ‘회개하라’는 메시지가 또렷하게 드러나는 형식이다. 그래서일까. 일곱 개 편지의 시작마다 ‘~를 ~이가 말한다’고 반복하는데, 과거 예언자들의 상투적인 어투이기도 하다. 하느님께 돌아오라는 회개를 두고 요한묵시록의 편지들과 예언자들의 글들은 많이 닮았다.
일곱 개의 편지들을 읽어가다 보면 묵시문학을 모호함과 신비감으로 읽으려는 이들의 무모함을 상당부분 상쇄시킬 수 있겠다, 싶다. 회개하라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마주하며, 묵시문학적 상징 뒤에 숨은 채 현실을 회피할 수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차분히 우리 삶을 직시하려는 움직임이 회개의 시작이 아니겠는가. 화려한 상징들로 판타지와 같은 미래를 꿈꾸기보다 지금의 우리 삶을 섬세하게 읽어내는 일이 믿음의 일이 아니겠는가. 무엇을 회개하여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지, 요한묵시록의 일곱 개 편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