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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가 탄핵정국으로 인해 혼란스럽고 그 와중에 국회에서 각 정당별로 현 시국에 대해 내놓은 대책들을 보면 정말 한심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들을 보면서 더 대책이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저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위정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정말 대책없고 불쌍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들은 어느 누구할 것 없이 자신들만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포장하고 경쟁상대는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극악무도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선거전략을 쓰며 자리를 차지했던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선거를 할 때면 항상 ‘깨끗한 후보 대 더러운 후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자신을 의로운 사람으로 포장하고 타인을 악한 사람으로 매도하면서 편가르기를 했습니다. 그 선거전략을 효과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일명 네거티브선거를 실시하면서 상대방 비방에 집중했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어떤 대선, 어떤 총선, 어떤 지자체선거를 통해서도 상대방을 인정해 주거나 상대방의 장점을 추켜세워주면서 선거운동을 했던 사람은 한 명도 본 적이 없습니다. 현 시국 TV에 등장하는 국회의원들도 한 번 자세히 살펴보세요. 결국 자기 자랑하고 자기만이 대안이라고 이야기할 뿐이지 상대 정당이나 다른 정파의 국회의원들을 칭찬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볼 수 없습니다. 만약 경쟁 상대를 지칭하며 “저 분은 진짜 괜찮은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투표하셔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도 저에게 투표 좀 해달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인격적으로 좋아보일까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정치인들, 이렇게 상대방을 세워주면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대선, 총선, 지방선거 후보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이게 우리나라 정치 현실, 아니 인간의 악한 본성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현실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항상 이런 프레임을 만들어서 ‘자신은 의로운 사람’, ‘타인은 더러운 사람’으로 만들어야 자기가 부각되고 자신이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또한 오늘 본문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나는 의롭고, 깨끗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더럽고 악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더러움의 본질이 무엇인지, 인간을 정말 더럽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에서 가르쳐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정말 깨끗한 인생을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더러운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며 정말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깨끗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고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아름다운 인생, 깨끗하고 정직한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첫째는 몸에서 나오는 물질들입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입에서 나오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입에서 나오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몸 밖으로 나오는 모든 것이 사실 더러운 것이 대부분입니다. 우리 몸에서 나오는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배설물, 땀,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말 등이 있죠. 사실 이런 것이 모두 더러운 것으로 느껴집니다. 속에서 나쁜 것을 만들어 나쁜 성분이 된 몸속의 것을 몸 밖으로 내보는 것이 인간의 활동입니다. 오늘 본문과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7장에서는 이렇게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 19, 20절입니다.
“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우리를 더럽게 만드는 것으로 우리 예수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뒤로 나오는 배변을 더러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배설물은 원래 너무나 맛있었던 음식이고 괜찮은 비주얼을 가진 입맛 당기는 모습을 가진 음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잘 차려진 음식... 맛보니 괜찮은 맛을 내는 음식으로 식사합니다. 보기에도 좋고 입맛에 좋게 느껴지는 음식을 먹습니다. 시작적으로나 미각적으로 좋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 음식이 하루, 이틀 지나면 변이 되어 나옵니다. 보기 좋고 맛도 좋던 음식이 이젠 보기도 짜증나고 맛이나 냄새로는 도무지 근처에 가고 싶지 않게 되어 몸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똥은 더럽습니다. 물론 ‘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말하는 말처럼 똥 자체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똥의 필요성, 유용성을 뒤로하고 보편적으로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똥은 더럽다’고 생각합니다.
신명기 23장 13절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네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볼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려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
성경 구절 중에 배변과 변처리문제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배설물 처리방법을 통해 거룩과 더러움에 대한 율법적 기준을 가르쳐 주십니다. 변처리를 통해 거룩이 뭔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우리 몸에서 나오는 배설물이 더러움의 가장 상징적인 물질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배변뿐 아니라 우리 몸 밖으로 나오는 것은 모두 좋지 못한 것, 더러운 것이 대부분입니다. 땀구멍에서 나오는 노폐물, 항문에서 나오는 배설물, 피도 몸속에서 밖으로 나올 때는 좋지 못한 것이 피를 통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배설물이 우리를 더럽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5장 17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우리 입으로 들어간 것은 배설물로 나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버려지는 것은 더러운 것이라는 생각을 어느 사람들이나 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우리 몸에서 나오는 여러 더러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피부병 중에 ‘아토피’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주로 아이들에게만 생겼는데 요즘은 성인이 돼서도 안 없어지고 약을 먹어야 하는 성인 아토피를 가진 분들이 꽤 있습니다. 아토피가 왜 생길까요?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피부과 전문의들도 이 질병에 대한 공통된 의견으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 몸속에서 여러 가지 찌꺼기가 생기는데 이 찌꺼기를 배출시키는 작용을 하는 기관 중 피부로 배출하는 양에 문제가 생겨서 아토피가 생긴다”라고 말입니다. 노폐물을 배출하는 다른 배출 기관과 배출 양의 균형이 깨어지니 질병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잘 깨닫지 못하고 넘어가는 분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모든 사람이 아기 때에는 약하게라도 아토피를 겪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기때에 독소를 해결하는 유일한 기관으로 피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독소를 해결하는 해독기관으로 간, 장, 콩팥, 폐등이 있는데 아기 때에는 이런 기관들이 발달하지 못했기에 거의 전적으로 몸속 노폐물을 해독하는 기능을 피부가 도맡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피부에서 해결해야하는 노폐물의 양이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니 아토피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은 약하게나마 아토피증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무튼 우리 몸에서 나오는 모든 물질은 더러운 것이 맞습니다. 보통 정상적인 사람들은 더러운 것을 보면 더러운 것을 씻는 것이 기본입니다. 우리는 우리 몸 밖에 나오는 더러운 것을 치우거나 씻어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을 모른 척하며 살아가면 정상적인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잠언 30장 1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도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더러운 것을 알면 더러운 것을 치워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깨끗한 척, 문제가 없는 척 살아가는 사람은 제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몸 밖으로 나오는 물질 대부분은 더럽습니다. 성분을 따져보면 우리 몸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물질은 우리 몸안에 있던 독소와 노폐물인 것을 의학적 지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몸 밖으로 나오는 모든 배출물은 우리 몸에 좋지 못한 것이라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 악한 것을 빨리 내보내야 하고 빨리 없애야 합니다. 이 더러운 것, 이 위험한 것, 이 악한 것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중병에 걸릴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 몸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을 잘 처리하고 이 더러운 것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몸 속 악한 것, 몸 속 독소를 잘 해결해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둘째는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들입니다.
마태복음 15장 18~20절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바로 우리 내면의 깨끗함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있어 가장 큰 더러움은 몸에서 나오는 물질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 마음에서 나오는 말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내면이 악하고 그로 인해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오렌지를 짜면 오렌지 과즙이 나옵니다. 왜 오렌지 과즙이 나올까요? 오렌지니까 오렌지 과즙이 나오죠. 오렌지를 짰는데 포도즙이나 배즙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렌지즙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오렌지즙을 짤 때 믹서기, 과즙기, 물기를 짜내는 압축기 등에 오렌지를 넣으면 어떤 도구로 짰던 오렌지과즙이 나옵니다. 도구에 따라서 다른 과즙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과일이 뭔가에 따라 그 과즙이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어떤 환경이든 오렌지가 속에 있으면 오렌지즙이 나오고 포도가 그 속에 있으면 포도즙이 나오고 배가 있으면 배즙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 속에 놓였든지 우리를 짜내면 우리 속에 있는 것이 나옵니다. 우리 속에 있는 것이 뭔가요?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인간의 감정, 인간의 기분이 나오는 것입니다. 나에게 닥친 환경, 분위기의 압박 속에 우리 속 마음이 그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였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내면이 문제입니다. 내면에 있지 않은 것은 절대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무의식이라도 내 속에 있는 것은 어느 순간이 되면 그냥 밖으로 다 나오는 것입니다. 특별히 모든 인간이 가진 마음 속 악한 본성에 대해 오늘 본문과 함께 오늘 본문의 병행구절인 마가복음에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 21~23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여러분은 깨끗하십니까? 더러우십니까? 겉으로는 정직하고 깨끗하고 깔끔하고 예의 바르고 성실하고 정말 빈틈없는 완전한 사람으로 보여주려고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 인간은 절대 완전한 깨끗함, 완전히 의로운 상태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 인간의 마음은 원초적으로 더러운 존재이고 우리는 이미 더러운 상태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 손을 30초 동안 비누로 깨끗하게 씻으면 치명적 영향을 끼치며 우리 생명을 공격하는 바이러스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내면의 죄악이라는 바이러스는 어떤가요? 우리가 잠시 깨끗함으로 덧입고 은혜받은 예배, 은혜체험한 말씀으로 이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지던가요? 인간의 내면에 방금 읽은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이라는 바이러스는 항상 우리를 공격하며 사람들의 관계속에서 작용하고 내 내면에서 항상 나를 흔들어 놓지 않습니까?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에 대해 비방하고 누군가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누군가에 대해 음란한 마음을 품고 누군가에 대해 질투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지고 싶은 교만함이 우리 속에서 항상 일어나지 않습니까? 오늘 말씀은 보면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악한 것이 결국 우리를 더럽게 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2장 33, 34절입니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고대 중국의 현명한 사상가 중 한 명인 양자가 여행 중 어느 여관에 묵게 되었습니다. 그 여관 주인에게는 첩이 두 명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엄청나게 예쁜 외모를 가진 여인이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외모로는 그닥 별로인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외모를 가진 여인이 남편 사랑을 독차지하고 예쁜 외모를 가진 여인은 천대받는 것을 현자가 보게 되었습니다. 양자가 여관 주인에게 이유를 물으니 여관 주인은 “예쁜 여자는 날마다 자기를 예쁘다고 말하면서 예쁘게 봐주지 않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외모 치장에만 신경쓰며 남편인 자신에게 귀찮을 정도로 자꾸 ‘예쁘지 않냐?’고 물으니 저는 이제 그녀가 예쁜 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닥 별로 예쁘지 않은 여자는 스스로 자꾸 추하다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못 생겨서 미안하다 얘기하고 남편인 자신에게도 ‘자신이 너무 부족하여 남편을 욕되게 만드는 것 같아 정말 죄송하다’고 말하는데 제가 어느 순간부터 이 여인을 보니 정말 아름다워 보이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양자는 제자에게 “마음이 미우면 얼굴이 예뻐도 미워 보이고, 마음이 이쁘면 얼굴이 미워도 예뻐 보인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또한 “현명한 행동을 하되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기만 한다면 어디를 가나 사랑을 받게 되지 않겠는가”라는 말도 했습니다. 결국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우리 말과 행동으로 우리 삶이 평가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외형적으로 뭔가를 보여주려고 해도 결국 우리 내면을 통해 우리 외형까지 평가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6장 45절입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더럽게 만드는 것이 재력이나 외모나 학벌, 지식같은 외형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를 더럽게 만드는 것은 우리 내면이라고 예수님께서도 가르쳐 주십니다. 결국 우리를 나쁜 존재로 드러내고, 더러운 존재로 보여지고, 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우리 속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저와 여러분이 아름답게 변하고 쓸모있는 존재로 변하고 예쁘게 보여지려면 우리 마음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내면이 아름다워지고 그 아름다운 내면으로 외형도 아름다워지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보면서 우리를 더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가 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하고 더럽다’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시편 14편 3절입니다.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인간이라는 존재라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더럽고 근본적으로 선을 행할 수 없는 존재를 발견해야 합니다. 나의 내면은 더러워서 내가 하는 생각, 내가 하는 말속에는 근본적으로 악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항상 우리 모습을 회개하며 우리 악한 부분을 고백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몸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모든 더러운 것들이고 악한 것들이고 독소뿐입니다. 온갖 찌꺼기, 온갖 쓰레기가 인간의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인간 밖으로 나오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5장 11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의 병행구절 마가복음 7장 15, 16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7장 15,16절입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특히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입을 통해서 인간을 더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구나, 그러면 내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나를 깨끗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여러분,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달은 것을 이렇게 정리해 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 또한 우리가 깨끗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씀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속을 깨끗하게 만들어서 나오는 말과 행동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인간 힘으로, 인간 능력으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주님,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은 ‘인간들은 본성이 악하고 인간은 죄악의 습성이 있어 마음에서부터 항상 악한 것만 나온다’라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은 스스로 깨끗하다 말하며 거룩한 척, 고상한 척, 온갖 거룩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이 거룩해 보여도 실제로 그들의 내면, 그리고 그 내면에서 나오는 그들의 생활은 절대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거룩한 척 살아가지만 모든 삶 가운데 악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책망하셨습니다. 분명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그리고 대부분 유대인들은 거룩한 삶을 위해 인간으로써 고행과 혹독한 훈련을 시행했고 그런 고행과 윤리적인 몸부림, 고된 훈련으로 자신들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절대 그들을 바꿔놓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내가 내 힘으로 나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은혜로 인간 본성이 바뀌고 하나님 은혜로 우리의 말과 행동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바꾸려는 노력으로 바꿔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변화시키시며 변화된 우리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말과 행동을 바꿔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노력해서 내가 깨끗한 존재로 변화되게 했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능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인간이 세상을 변화시킬 주도권을 가진 인간절대성을 강조하는 교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이 만큼 노력해서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면 내가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 되겠죠. 그런데, 하나님 은혜로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바꾸셨다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정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나를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나를 이렇게 예쁘게, 아름답게, 거룩하게, 정직하게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새롭게 만드셨기에 저 사람도 하나님께서 만져주시기를 기대하며 하나님께 그 사람을 의탁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내가 타인의 잘못을 지적해서 내가 그들을 잘 지도해서 타인을 고쳐줄 능력이 나에게 탁월하고 나의 능력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자리를 본인이 차지한 교만임을 자각하시기 바랍니다. 내 능력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내 능력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하는 사실은 이단의 괴수같은 교만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사람과 세상을 긍휼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져주시고 고쳐주실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그들을 맡기며 기도하는 것이 바른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빌립보서 4장 6, 7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 말씀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우리 마음과 생각마저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 우리 하나님, 우리 성령님께서 만져주신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바른 신앙생활을 하자라고 생각하며 부던히 우리가 신앙적 훈련을 할 수 있고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노력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노력마저도 내가 이뤄낸 것이 아닌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내 삶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거나 마음과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우리 하나님의 평강과 우리 주님의 은혜로 우리 마음과 생각이 바른 신앙으로 나아가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같은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의로워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진정 의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역사를 경험하고 하나님 은혜로 깨끗하게 만들어질 때 거룩한 삶, 의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면이나 외면이나 안팎 모두 전적으로 더러운 존재인 우리가 내면도 외면도 하나님의 은혜로 덧입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