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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호(2015.08.22)
* <8월에 꿈꾸는 사랑> -이채-
사는 일이
너무 바빠
봄이 간 후에야
봄이 온 줄 알았네
청춘도 이와 같아
꽃만 꽃이 아니고
나 또한
꽃이었음을
젊음이 지난 후에야 젊음인 줄 알았네
인생이 길다 한들 천년만년 살 것이며 인생이 짧다 한들
가는 세월
어찌 막으리
봄은 지나고
한여름인
8월 같은 사람들아
피고 지는 이치가
어디 꽃뿐이라 할까
* <며느리와 시어머니> -수기공모 大賞-
내 나이 11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아래론 여동생이 하나 있다.
전업 주부였던 엄마는 그때부터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다.
못먹고, 못입었던 것은 아니였지만 여유롭진 않았다.
대학졸업 후, 입사 2년만에 결혼을 하였다.
처음부터 시어머니가 좋았다.
시어머님도 처음부터 날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다.
10년 전 결혼, 만 1년 만에 친정엄마가 암 선고를 받으셨다.
난 엄마 건강도 걱정이었지만, 수술비와 입원비 걱정부터 해야 했다.
남편에게 얘기했다.
남편은 걱정 말라고
내일 돈을 융통해 볼 터이니 오늘은 푹 자라고 얘기해주었다.
다음 날,
친정엄마 입원을 시키려 친정에 갔지만,
엄마도 선뜻 나서질 못하셨다.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몇 개 있으니 4일 후에 입원 하자 하셨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 때 시어머님께서 전화가 왔다.
"지은아. 너 울어? 울지 말고 .....
내일 3시간만 시간 내 다오"
다음 날, 시어머님과의 약속 장소에 나갔다.
시어머님이 무작정 한의원으로 날 데려가셨다.
미리 전화 예약 하셨는지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다.
"간병하셔야 한다고요.."
맥 짚어보시고 몸에 좋은 약을 한 재 지어주셨다.
백화점에 데려가셨다.
솔직히 속으론 좀 답답했다.
죄송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트레이닝 복과 간편복 4벌을 사주셨다.
선식도 사주셨다.
함께 집으로 왔다.
어머니께서 그제서야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환자보다 간병하는 사람이 더 힘들어.
병원에만 있다고 아무렇게나 먹지 말고,
아무렇게나 입고 있지 말고.."
말씀하시며 봉투를 내미셨다.
"엄마 병원비 보태써라~.
네가 시집온 지 얼마나 됐다고 돈이 있겠어...
그리고, 이건 죽을 때까지
너랑 나랑 비밀로 하자.
네 남편이 병원비 구해오면 그것도 보태써...
내 아들이지만, 남자들 유치하고
애 같은 구석이 있어서
부부싸움 할 때
꼭 친정으로 돈 들어간 거
한 번씩은 얘기하게 돼있어.
그니까 우리 둘만 알자."
마다했지만 끝끝내 내 손에 꼭 쥐어주셨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시어머님께 기대어 엉엉 울고 있었다.
2천만원이였다......
친정엄마는 그 도움으로 수술하시고 치료 받으셨지만,
이듬 해 봄..
엄마는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오늘이 고비라고 하였다.
눈물이 났다.
남편에게 전화했고, 갑자기 시어머님 생각이 났다.
나도 모르게 울면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시어머님은 한 걸음에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남편보다 더 빨리 병원에 도착하셨다.
엄마는 의식이 없으셨다.
엄마 귀에 대고 말씀드렸다.
"엄마... 우리 어머니 오셨어요... 엄마..
작년에 엄마 수술비 어머님이 해주셨어..
엄마 얼굴 하루라도 더 볼 수 있으라고..."
엄마는 미동도 없으셨다.
당연한 결과였다.
시어머님께서 지갑에서 주섬주섬 무얼 꺼내서 엄마 손에 쥐어주셨다.
우리의 결혼 사진이었다.
"사부인... 저예요..
지은이 걱정 말고.
사돈처녀 정은이도 걱정 말아요.
지은이는 이미 제 딸이고요....
사돈처녀도 내가 혼수 잘해서
시집 보내 줄께요..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그때 거짓말처럼
친정엄마가 의식 없는 채로 눈물을 흘리셨다.
엄마는 듣고 계신 거였다.
가족들이 다 왔고 엄마는 2시간을 넘기지 못하신 채
그대로 눈을 감으셨다.
망연자실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날 붙잡고 시어머니께서 함께 울어주셨다.
시어머님은 가시라는 데도
3일 내내 빈소를 함께 지켜주셨다.
우린 친척도 없다.
사는 게 벅차서 엄마도 따로 연락 주고받는 친구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빈소는 시어머님 덕분에 3일 내내 시끄러웠다.
"빈소가 썰렁하면 가시는 길이 외로워........"
친정 엄마가 돌아가시고 시어머님는 내 동생까지
잘 챙겨주셨다.
가족끼리 외식하거나, 여행 갈 땐
꼭~ 내 동생을 챙겨주셨다.
내 동생이 결혼을 한다고 했다.
동생과 시어머님은 고맙게도 정말 나 이상으로 잘 지내주었다..
시어머님이 또 다시 나에게 봉투를 내미신다.
"어머님. 남편이랑 따로
정은이 결혼 자금 마련해놨어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께요"
도망치듯 돈을 받지 않고 나왔다.
버스정류장에 다달았을 때 문자가 왔다.
내 통장으로 3천만원이 입금되었다.
그 길로 다시 시어머님께 달려갔다.
어머니께 너무 죄송해서 울면서 짜증도 부렸다. 안받겠다고.
시어머님께서 함께 우시면서 말씀하셨다.
"지은아... 너 기억안나?
친정 엄마 돌아가실 때
내가 약속 드렸잖아.
혼수해서 시집 잘 보내주겠다고...
나 이거 안 하면 나중에
네 엄마를 무슨 낯으로 뵙겠어"
시어머님은 친정엄마에게
혼자 하신 약속을 지켜주셨다.
난 그 날도 또 엉엉 울었다.
시어머님께서 말씀하신다.
"순둥이 착해 빠져가지고
어디에 쓸꼬....
젤 불쌍한 사람이 도움을 주지도,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야...
그리고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고 울고 싶을 땐 목놓아 울어버려"
제부될 사람이 우리 시어머님께
따로 인사 드리고 싶다 해서 자리를 마련했다.
시부모님, 우리부부, 동생네.
그 때 시어머님이
시아버님께 사인을 보내셨다.
그 때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초면에 이런 얘기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사돈처녀 혼주 자리에 우리가 앉았음 좋겠는데... "
혼주자리엔 사실 우리 부부가 앉으려 했었다.
"다 알고 결혼하는 것이지만,
그 쪽도 모든 사람들에게 다
친정 부모님 안 계시다고
말씀 안 드렸을 텐데...
다른 사람들 보는 눈도 있고..."
그랬다. 난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었다.
내 동생네 부부는 너무도 감사하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내 동생은 우리 시아버지 손을 잡고 신부입장을 하였다.
내 동생 부부는 우리 부부 이상으로
우리 시댁에 잘 해주었다.
오늘은 우리 시어머님의 49제 였다.
가족들과 동생네 부부와 함께 다녀왔다.
오는 길에 동생도 나도 많이 울었다.
오늘 10년 전
어머니와 했던 비밀 약속을 남편에게 털어 놓았다.
그 때, 병원비 어머니께서 해주셨다고...
남편과 난 부등켜 안고 시어머님 그리움에
엉엉 울어버렸다.........
난 지금 아들이 둘이다.
난 지금도 내 생활비를 쪼개서
따로 적금을 들고 있다.
내 시어머님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나중에
내 며느리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내 휴대폰 단축번호 1번은 아직도 우리 시어머님이다.
항상 나에게 한없는 사랑 베풀어 주신 우리 어머님이다.
어머님....
우리 어머님...
너무 감사합니다.
어머니 가르침 덕분에
제가 바로 설 수 있었어요.
힘들 시간 잘 이겨낼 수 있었고요..
어머님...
넘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
제가 꼭 어머니께 받은 은혜,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랑하고 나누며 살겠습니다....
너무 보고 싶어요...
* <정신과 의사의 소임>
의사 : 당신은 대인관계가 원만치 못한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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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 이 양반아, 그걸 당신이 알아내야 할 것 아냐!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아라공의 시구를 좋아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신영복, 감옥으로...)”
날이 많이 선선해졌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 시실리아노 – 바흐(하동 방아섬에서 본 일출)
* 사진이나 음악이 안 나오면, daum에서 카페로 들어가셔서
. 국악성가 & 하늘나라
. + 하늘 정원
. 부산 가톨릭 신학원
가운데 한 군데를 검색하셔서 보시면 됩니다.
첫댓글 며느리 입장에서 얼마나 감사하고 또 송구한지 모르겠습니다.
죽음을 바라보면서 저도 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가족간에 사위 며느리 관계에서 더 더욱 너그러우며 사랑을 나누는 삶이 되어야겠다고요.
인생은 긴듯 한데 지나고 나면 순간이듯 앞으로의 삶도 순간이겠지요.
더 이해하며 용서하며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신부님 좋은글 감사 합니다....
"공감"에 화해와 협력의 열쇠가 있었군요. 같은 곳을 보고 같이 걷기...
오늘도 감사합니다. ^*^
젊음이 지난 후에야 젊음인 줄 알았네....맞느느 말씀이예요..저도 이제사 알게 되었거등요...ㅎㅎㅎ 주말 행복하세요..신부님...!
돕는다는 것은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것
가슴에 담아갑니다
신부님 오늘도 고맙습니다
인생이 길다 산들 천년만년 살 것이며 인생이 짧다 한들 가는 세월 어찌 막으리 ......... 잘 살아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든 것은 나의 주위에서 시작됨을 또 한 번 생각합니다.
마음을 열고 사랑하고 싶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
신부님, 감사합니다. 많이 생각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