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시대·영락궁 铁器时代 · 永乐宫
출처: 고고학 중국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영락궁 몽골과 원나라 도교 전진파의 중요한 궁관입니다. 주소는 산시성 융지현 융러진에 있습니다. 원나라 때 대순양 만수궁이라 불렸으며, 원나라 때 건축, 회화, 조각 등의 예술을 집약한 중요한 고대 건축물입니다.
1953년에 발견되었으며 1959년에 싼먼샤 저수지의 건설로 인해 산시성 루이청현 북쪽 교외로 이전되어 원래 상태로 재건되었습니다. 1961년 국무원은 국가 중점 문화재 보호 단위로 발표했습니다.
▲ 영락궁 평면도 궁지는 원래 당려동빈사당(唐吕洞宾祠堂)이었습니다. 김원에 즈음하여 여동빈은 도교 전진파(全眞派)로부터 조사(祖師)로 추앙받고 도관을 개축하기 시작했습니다. 몽골 내마진 후 2년(1243년), 전진(全眞)은 유명한 거장 판더충(潘德冲)을 이곳에 파견하여 황제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대순양 만수궁을 세울 계획을 세웠습니다. 몽골 중통 3년(1262)에 삼청·순양·중양 3전과 낭·무·고·주방 등을 지어 전진파의 '동조정(東祖亭)'이라 불렸습니다.
지원 31년(1294)에 정문인 무극문을 건립하였고, 태정 2년(1325년)에 삼청전 벽화를 완성하였습니다. 원 중기 이후 구처기는 구조로 추존되었고, 또 구조전이 증축되었습니다.
각 전각의 인테리어와 도형이 완성되었을 때, 이미 원나라 말기에 이르렀고, 프로젝트는 100년이 걸렸습니다. 명청 이후에 영락궁으로 개칭했습니다. 궁내에 현존하는 원비 8통은 전진파와 영락궁 연구에 중요한 사료입니다.
▲ 원영락궁 벽화는 조원도영락궁의 깊이가 230m이고, 주요 건물은 모두 중심축에 위치하고 있으며, 거리에 면한 궁문이 청나라 건축물인 것 외에 무극문, 삼청전, 순양전, 중양전 순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몽골 또는 원나라 건축물입니다.
각 전 앞에는 넓은 월대가 있고 전간은 높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중양전 쪽에는 동서도전의 유적도 있습니다. 이전한 후 그대로입니다.
▲ 영락궁(永樂宮) 무극문(無極門) 현판인 무극문(無極門)은 지원(至元) 31년에 건립된 것으로, 넓이 5칸, 길이 20.68m, 깊이 2칸, 폭 9.6m의 벽돌로 쌓은 축대 위에 홑처마무전 지붕을 얹은 형태입니다. 그 구조는 송식 전당형의 '분심조'에 가깝습니다.
버킷 栱모두 2층을 선택하고 암술머리의 상층은 가짜로 깔고 보간은 진짜로 깔고 각 칸에 1송이씩 사용합니다. 중앙 3칸은 기둥 사이에 3개의 부판문을 설치하고 동서 끝과 산면은 벽으로 막고 벽 안쪽에 벽화를 그렸습니다. 현판은 건년기 외에도 소부재장(少府梓將) 주보(朱寶) 등이 만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영락궁 삼청전 삼청전은 몽골 중통 3년 전에 건립된 것으로, 폭 7칸, 길이 28.44m, 깊이 4칸, 폭 15.28m의 벽돌을 쌓고 높이 2.38m의 홑처마무전 지붕을 덮었으며 경내에는 원래 삼청상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소실되었습니다.
그 틀은 송식 전당형의 '금상두저홈'에 가깝지만, 내홈은 폭 3칸 깊이 1칸의 신단간으로 축소되고, 외홈의 앞부분과 양쪽은 2칸 깊이로 확대되며, 들보틀도 栿와 풀 栿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용된 버킷 栱를 3겹으로 선택하고 암술머리를 후미에 깔고 栱 위에 명청작의 대체와 유사한 지지 부재를 놓고 '압력 점프'라고 합니다.
사이사이에 1송이를 깔고 나머지 2송이를 사용합니다. 몸체의 앞처마 중앙 5칸과 뒷처마 명칸에는 모두 격자문을 달았고 나머지는 벽으로 만들었습니다. 투栱, 맹장, 栱 눈 벽, 바둑에 모두 원나라 때 그린 채색 그림이 있습니다.
▲ 영락궁의 궁전인 조정의 기둥은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고 맹장방의 중심에는 조각된 곶화룡과 진흙으로 만든 행룡, 조정의 중심에는 목각으로 조각된 번룡, 지붕 처마와 능선에는 녹색 유리를, 치키스에는 공작청색 유리를 사용합니다.
내부 벽면은 높이 4.3m, 총면적 402제곱미터의 벽화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신단벽 안쪽에는 원태정 2년 낙양화공 마군상(馬君祥)의 제자가 그렸던 운기(雲氣)가 그려져 있고, 신단벽 바깥쪽과 네 벽에는 '조원도(朝元圖)'가 그려져 있으며, 8개의 주상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신기(神氣) 286신(神氣)이 그려져 있습니다.
각 상은 높이가 약 2m에 이르며 형태와 표정이 각기 다르고 선이 유려하여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원대 벽화 중 하나입니다.
▲ 영락궁 순양전(永樂宮 純陽殿)은 중통(中統) 3년 전에 건립된 것으로, 넓이 5칸, 길이 20.35m, 깊이 3칸, 폭 14.35m의 벽돌을 쌓아 높이 2.44m의 벽돌을 쌓고 홑처마로 된 녹지마루지붕을 얹은 여순양의 전각으로 오늘날 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전각의 건물 구조도 송식 전당형 틀에 가깝고, 안홈은 1칸 4주의 신단칸으로 축소되어 있으며, 앞뒷처마와 산면의 대들보를 이 4개의 안주 위에 얹고, 네 귀퉁이를 평기 위에 각량승도리(角梁承檩)를 덧바른 것이 삼청전과 비슷한 구조입니다.
몸체의 앞처마 명차칸과 뒷처마 명칸에는 격자문을 달았고 나머지는 벽이었습니다. 경내 벽면에는 여순양의 화전인 '순양제군선유현화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은 높이 3.6m, 면적 203㎡, 총 52문항으로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으며 폭 사이를 나무와 돌로 구름처럼 연결하여 화면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합니다. 원 지정 18년(1358) 산서(山西)의 명화사 주호(朱好) 고문인 장준례(張遵禮), 이홍이(李弘宜) 등이 그린 그림입니다.
▲ 영락궁(永樂宮) 중양전(重陽殿)은 중통(中統) 3년 전에 지은 것으로, 넓이 5칸, 17.46m, 깊이 4칸, 폭 10.86m로 1.53m의 벽돌로 쌓은 축대 위에 홑처마와 겹처마를 얹은 지붕입니다. 경내에는 원래 왕중양과 그의 일곱 제자의 소상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 전각의 가구는 송식 대청형으로 바둑판식이 없고 4도량가(道梁家)가 노출되어 있습니다. 명간의 두 대들보는 긴 다섯 서까래 사이의 다섯 서까래 栿와 긴 서까래 사이의 栿를 교차시켜 각각 하나의 내부 기둥을 사용하고, 두 대들보의 앞뒤 처마에는 긴 네 서까래 사이의 네 서까래 栿를 교차시켜 각각 두 개의 내부 기둥을 사용하고, 통계전에는 6개의 내부 기둥만 있으며, 뒷부분 4개는 신단 뒤 부채면 벽에 포개져 있고, 앞쪽 칸의 바깥쪽 2개의 기둥만 노출되어 실내 공간이 비교적 넓습니다.
이러한 여러 경로의 깊이(서까래 수)는 같지만 기둥 수가 다른 보틀을 사용하여 실내 배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해 실내 기둥 수와 위치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홀 구조의 특징입니다. 전신의 앞처마 명차칸과 뒤처마 명칸에는 격자문을 달았고, 나머지 벽면에는 왕중양화전을 그렸습니다.
화폭은 높이 약 3.2m, 연면적 150㎡, 총 49점이며, 화법은 순양전 벽화와 약간 동일합니다. 대략 원말이나 명초에 그려졌습니다.
▲ 영락궁 삼청전 구영건축의 특징인 전진파는 몽골과 원나라에서 공식적인 존신을 받고 있으며, 이 궁은 원제의 명목으로 건립되었으며, 창건 당시 관장(官章)의 지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삼청·순양·중양 3전은 원나라 건국 전 송 이종(理宗) 경정(景定) 연간에 건립되었습니다.
당시 원나라 대도궁은 아직 건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건축적 특징은 기본적으로 금나라 궁궐 양식의 영향이었을 것입니다. 4개 건물의 골격은 기본적으로 송 양식을 답습하는데, 큰 변화는 전당 지반의 배치에서 안홈을 신단칸으로 축소하고 송 양식 골격에서 회랑만 있는 바깥홈을 확대한 것이며, 들보틀은 栿와 풀 栿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송식의 재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축의 크기는 대부분 송식에 명시된 최대값에 가깝지만 재료는 송식에 비해 2~3등 낮기 때문에 컬럼이 높고 빔이 가늘어 보입니다. 두栱작은요. 이것들은 모두 목조건축이 송식에서 명·청 관식으로 변모한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입니다. 건축 장식과 벽화도 원나라의 대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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