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첫째주 메시지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
요한복음 1장 강해 1부 문제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
말씀 요한복음 1장 1절-8절
요절 요한복음 1장 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저의 이름이 요한입니다. 아들도 요한입니다. 제가 대학 3학년 때 요한복음을 공부하고 죽음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4,25절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이 말씀이 자살을 생각하던 나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을 계속 공부하니 저자 요한의 성격이 나와 매우 비슷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나의 이름을 요한으로 바꾸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요한복음을 나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아마 나의 생애에 마지막 요한복음 강해가 될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고 나옵니다. 우리가 요한복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고귀합니다. 생명은 LIFE로서 인생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어둠이 있습니다. 어둠이 없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일시적이고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참 생명을 찾을 수 있을까요? 돈을 벌고 권력을 잡고 인기를 얻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어둠은 일시적으로 사라질 뿐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 안에 참 생명이 있다고 나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참 기쁨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 참 생명을 찾고 참 생명으로 우리의 인생이 밝아지기를 기도합니다.
(1)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일하십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태초는 과거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태초는 창세기의 태초와 달리 시공이 시작되기 전을 의미합니다. 천지를 만들기 전의 그 때를 말합니다. 그때는 시공간이 없는 때요,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는 때입니다. 예수님은 그때 말씀으로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시공을 초월하여 계시고 시공을 초월하여 일하십니다. 말씀은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습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이 예수님이 행하는 표적을 보고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표적을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신하는 표적을 보지 않아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믿음을 고백하며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신하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왕의 신하는 네 아들이 병이 나았다는 말씀을 믿고 집에 갔습니다. 집에 가니 아들은 병이 나아 있었습니다. 병이 나은 때를 알아보니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때에 나은 것을 알았습니다. 신하는 이를 통하여 말씀이 공간을 초월하여 일하시는 것을 믿고 그 온 집이 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 말씀이 담장을 넘어 로마에 전파되었습니다.
말씀은 공간을 초월하여 일하실 뿐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여 일하십니다. 사도바울이 전한 그 말씀이 시간을 넘어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2000년에 걸쳐서 많은 사람이 그 말씀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천년 전에 중동지방에서 쓴 요한복음 말씀이 지금 여기서 살아서 일하십니다. 말씀은 시간을 초월하여 일하십니다. 우리가 한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그 말씀이 이천 년이 지난 지금 한국 땅에서 일하십니다.
또한 말씀은 인격적입니다. 말씀은 사상과 감정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표적과 기적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병 고침을 통하여, 시험 합격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표적과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맺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표적과 기적보다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 관계성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영원합니다. 예수님은 지구는 없어져도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에 기초하여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의 신앙이 변하지 않습니다. 표적신앙은 그들의 믿음이 일시적입니다.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아도 쉽게 뜨거웠다가 쉽게 식어버립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보고 믿는 자들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기초하여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2) 말씀 안에 참 생명이 있습니다.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분명히 다른 분인데 예수님과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이것은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저는 창세기 2장 말씀을 통해서 삼위일체를 이해하였습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하나가 될지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두 명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하나가 됩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다른 분이지만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성령님은 사랑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삼위 하나님이 서로 사랑하며 함께 천지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요,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라면 우리는 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목자라면 우리는 양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생명으로 연결된 관계입니다.
부부가 하나가 될 때 생명이 태어나듯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이 하나가 되어 거기서 생명이 태어났습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오 생명의 뿌리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사람들의 빛입니다.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는 말은 사람들의 생명에는 어둠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인생에 어둠이 있습니다. 죽음의 그늘이 덮여 있습니다. 그 안에 죄가 있습니다. 슬픔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교만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거짓됩니다. 이런 죄로 서로 상처를 주고 받습니다. 문제없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왜 사람들의 삶에 어둠이 있습니까? 그들이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뿌리를 떠난 생명은 잠시 살아 있는 것 같지만 결국은 시들어버리고 나중에는 말라버립니다.
그들이 어떻게 어둠을 물리칠 수 있습니까? 생명의 빛이 비치면 어둠이 물러납니다. 어둠은 세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 생명이 참생명되신 예수님과 접붙일 때 우리 생명은 살아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연결되면 우리 안에 어둠이 물러갑니다. 기쁨과 평화와 사랑을 맛볼 수 있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진실하고 겸손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참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물론 완전하게 어둠이 물러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의 몸도 부활하여 우리는 완전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때 완전한 기쁨과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과 접붙이는 힘을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말씀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아기가 탯속에서 탯줄로 어머니와 연결되듯이 우리는 말씀으로 예수님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말씀으로 예수님의 생명을 내 안에 받아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에 어둠이 물러가고 우리는 밝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현재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부활하여 새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뮤지컬 배울 황바울씨는 어려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8살 쯤 되어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그 후에 집을 떠나서 잠을 자면 불안하여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병원을 갔는데 병원에서는 예민한 성격 때문에 그렇다 별 문제 없다고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청소년 수련회를 3박 4일로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은혜를 받아서 기뻐하는데 그는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는 밤에 예배당 십자가 앞에서 가서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울며 하나님께 하소연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어렸을 때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황바울씨는 무덤에서 할머니를 꺼내달라고 울고 있었습니다. 죽음은 사람 사이를 영원히 갈라놓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어둠의 영이 그를 감싸며 그의 속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후부터 집을 떠나서는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집을 떠나서 잠을 자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죽일 것 같은 불안이 무의식 가운데 들어 왔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두 가지 말씀을 주셨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그 말씀과 함께 빛이 그의 마음 속에 들어갔습니다. 황바울씨는 그 말씀을 받고 그때부터 어디서 자든지 숙면을 취한다고 하였습니다. kbs 아침 프로그램에 5년 정도 리포트를 하였는데 그러면 외지에서 잠을 자야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잠을 너무나 잘 잤다고 간증하였습니다. 아내는 지금 황바울씨가 그런 때가 있었다고 하면 믿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잠을 잘 잔다고 하였습니다.
(3) 빛을 증거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사람들은 스스로 빛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보아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아도 빛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은 무지합니다.
이디오피아 내시는 이사야 53장 십자가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빌립은 네가 읽는 말씀을 깨닫느냐고 물었습니다. 내시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말씀을 아느냐고 하였습니다. 빌립이 그 말씀으로 십자가의 예수님을 증거하자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의 빛이 비추었습니다. 그는 거듭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도요한과 안드레는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세례요한이 제자인 요한과 안드레에게 예수님을 보고 어린 양이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요한과 안드레가 세례요한의 증거를 듣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거한 안드레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알았습니다. 안드레가 형 베드로를 찾아가서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증거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증거하자 3천 명이 변화되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후 모인 무리에게 복음을 전하자 5천명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빛을 만난 우리는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빛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2024년 10명의 비신자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믿을 것입니다.
(생명의 빛을 증거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어둔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빛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안에 생명이 우리의 빛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그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빛을 얻었으면 우리는 어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빛을 증거해야 합니다.
황바울씨는 3살 연상의 아내 간미연씨와 결혼하였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간미연씨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황바울씨는 간미연씨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결혼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간미연씨는 그 후에 예수님을 믿고 결혼하였습니다. 간미연씨는 베이비복수 아이돌을 하며 인기는 얻었지만 마음에 어둠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침이 되면 눈을 뜨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황바울씨를 통하여 예수님의 빛을 만나고 어둠이 물러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의 빛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어둠을 물러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024년 1월 첫째주 메시지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
요한복음 1장 강해 1부 문제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
말씀 요한복음 1장 1절-8절
요절 요한복음 1장 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 1장 강해 일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