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에는 매일 둥근 얼음 틀에 물을 얼렸다
얼음 공을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어느 틈에 고양이가 나타나 할짝거렸다
십오초 이상 들고 있기는 힘들었다
그해 여름에는 말하려는 것이 말해지지 않았다
혀를 움직일 때마다 무언가가 훼손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해 여름에는 나를 죽였거나 내가 죽였던 사람들이 매일 찾아왔다
그들은 한꺼번에 와서 내 잠의 마지막 한방울까지 흡수해 갔다
그해 여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왔고 수건에서 자주 냄새가 났으며 얼굴이 습기로 무거웠다
그해 여름에는 빛에 닳은 의자에 의지했다
허연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얼음을 흉내 내는 일이 좋았다
빛은 채도를 데려가 어디에 내려놓았을까 그래서 그곳은 더 선명해졌을까
얼음은 녹는 줄도 모르고 얼음처럼 굴었다
그해 여름에는 비명이 자주 들렸다
어떤 비명은 너무 아파서 입안에서 얼음 부서지는 소리로 덮기도 했다
그해 여룸에는 잃기 쉽고 생기기 쉽고 꺼지기 쉽고 솟기 쉬웠다
얼음을 물고 매일 사랑을 다짐해햐 했다
꽁꽁 언 얼음은 하얘서 속을 알 수 없었다
쩍, 선언 같은 금이 생기고 흰이 걷히면 얼음은 투명해졌다
투명해진 얼음은 빠르게 얼음에서 멀어졌다
(그해 여름)
얼음은 얼음에서
나는 나에게서
자주 멀어졌다
[반대편에서 만나],창비, 2025.
첫댓글 형벌처럼 내 잠을 앗아간 여름
나 자신이 유난히 낯설게 느껴지는 건 얼음이 십오초 전의 자신의 얼굴을 잊어버린 까닭과도 같은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