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871〉
■ 바람에게 (유치환, 1908~1967)
바람아, 나는 알겠다
네 말을 나는 알겠다
한사코 풀잎을 흔들고
또 나의 얼굴을 스쳐 가
하늘 끝에 우는
네 말을 나는 알겠다
눈 감고 이렇게 등성이에 누우면
나의 영혼의 깊은 데까지 닿은 너.
이 호호(浩浩)한 천지를 배경하고
나의 모나리자
어디에 어찌 안아 볼 길 없는 너
바람아, 나는 알겠다
한 오리 풀잎마다 부여잡고 흐느끼는
네 말을 나는 정녕 알겠다.
- 1939년 시집 <청마시초> (청색지사)
*평소의 영상 기온으로 회복되기 시작한 어제 오후부터는 날씨가 한결 부드럽고 포근해졌더군요. 그런데 바람이 제법 불면서 하늘도 뿌옇고 다소 썰렁한 가운데도 봄빛이 가득 찬 느낌이었습니다.
유난히 길고 추웠던 올 2월도, 그래서 여느 해 보다 현저히 늦은 듯 보이던 봄이 이제야 시작된 모양입니다 그려.
이 詩는 바람이라는 자연 현상을 의인화하여 인간 내면의 허무와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내용으로, 생명파 시인이라는 청마 유치환의 작품세계를 잘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따라서 이 詩가 어렵기 때문에 전문가의 해설을 참조해서 해석해 보겠습니다.
이 詩에서는 먼저, 대화의 상대인 바람을 단순한 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깨달음을 주는 존재로 교감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정처 없이 떠도는 바람의 속성을 애정의 대상이자 허무와 고독으로 가득한 자신의 감정과 동일시하는 모습입니다.
그렇지만 시인은 ‘풀잎마다 부여잡고 흐느끼는’ 바람을 통해, 더 이상 단순한 슬픔의 대상이 아닌 삶을 이해하고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주는 존재로 인식합니다. 그리하여 허무와 고독 속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처절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