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뎌 낼 이군요..
결국은 일케 다가오고야 말았네요..
흥분된 맘 조심스럽게 다독거리고 있는 중입니다..
정말.. 낼 맞나요?>
잊을 수 없는 50편의 선율
한국 영화인들이 선정한 영화음악 베스트
2001.11.27 / Film2.0 편집부
영화음악은 옛 애인의 목소리처럼 오랫동안 귓가를 맴돈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얼굴마저 잊어버렸지만 나를 부르던 그 목소리는 잊혀지지 않듯이
영화에 흠뻑 빠져 있던 그 순간을 기억하게 해주는 것이다.
영화에 대사가 입혀지지 않던 무성영화 시절부터 영화의 정서를 끌어온
영화음악, 그중 한국 영화인들이 두고두고 기억하는 명반을 모아보기로 했다.
1>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 BMG
알프레드 히치콕과 버나드 헤르만, 페데리코 펠리니와 니노 로타 등과 함께
세르지오 레오네와 엔니오 모리코네는 영화역사상 가장 완벽한 이미지와
사운드 조합을 선보인 감독과 작곡자 콤비로 꼽힌다. 바람을 가르는 유명한
휘파람 가락으로 잘 알려진 64년작 <황야의 무법자>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다음 작품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트>에서는 모리코네의 음악에서 영감을
얻어 레오네가 편집을 할 만큼 이상적인 관계로 발전한다. 80년대 웨스턴 장르가
퇴조하고 세르지오 레오네도 힘이 다해갈 무렵 두 사람이 다시 한번 앙상블을
이뤄 완성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엔니오 모리코네에게도,
세르지오 레오네에게도 최고의 걸작이 됐다. 팬플룻 연주가 인상적인 메인 테마
'Once Upon a Time in America'를 필두로 'Poverty' 'Deborah's Theme'
'Childhood Memories' 'Friends' 'Childhood Poverty' 같은 서브 테마들은
아스라히 잊혀진 것들에 대한 억누를 수 없는 향수를 자극한다. 모리코네의
선율은 희뿌연 담배연기 속에서 인생의 황혼을 맞는 늙은 누들즈(로버트
드 니로)의 표정과 오버랩되면서 영원히 잊혀지지않을 잔상을 남겨놓는다.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세르지오 레오네는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했지만
엔니오 모리코네는 현재 칠십이 넘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정열적으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옛날 옛적 미국에는 레오네와 모리코네가 있었고,
그들은 음악과 영상의 궁극의 결합을 이뤄냈다.
2>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 1988 DRG/GOOD
엔니오 모리코네가 영화음악의 '인간문화재'로 대접받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인 선율을 창조하는 능력 때문이다. 그의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 고전작 역시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키스 신이
편집된 필름을 돌릴 때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애틋하고 감미로운 주제
선율의 애잔함은 기억과 향수라는 영화의 주제와 뜨겁게 조우하는 80년대의
명장면이다. 'Love Theme’의 관현악 오케스트레이션은 첫사랑 엘레나와 토토의
재회 장면의 잔상 효과를 일으키며, 바이올린과 플루트 등 관현악에 의해
변주되는 서정적 음악은 추억과 회상의 기억소 역할을 한다. ‘Childhood and
Manhood’ ‘ToTo and Alfredo’ 등의 경쾌한 선율도 빼놓을 수 없다.
3>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 1999 WEA
음악 프로듀서 라이 쿠더가 아바나 길거리를 헤매며 찾아낸 옛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멤버들이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나 연주한 '고색창연한' 신보.
라이 쿠더가 '일생에 단 한 번 볼 수 있는 쿠바의 냇 킹 콜'이라고 명명한
이브라힘 페레를 비롯하여 콤파이 세군도, 루벤 곤잘레스, 쿠바의 '에디트
피아프' 오마라 포르투온도의 연주와 노래가 가슴을 적신다. 구두닦이로
평생을 보낸 이브라힘 페레의 사연을 듣고나면 애잔한 그의 목소리가 더
절절하게 들린다. CD로 듣는 것보다 아바나의 뒷골목과 파도치는 해안도로의
영상이 꿈결같이 흐르는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듣는 것이 더 감동적이다.
4> 미션 The Mission 1986 EMD/VIRGIN
롤랑 조페 감독의 86년 작품. 예수교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과 인간
사냥꾼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하고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맡아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영화음악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Gabriel's Oboe'나 'The Mission, On Earth As It Is in Heaven'
외에 'Brothers' 같은 곡은 혼탁한 세파에 찌든 영혼을 맑게 해주는 음악들이다.
영화 내용을 전혀 축소시키지 않으면서도 오랫동안 영화음악 자체로도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는 앨범이다. 이제는 꽤 커버린 리암 니슨의 초창기 모습도 볼
수 있는 사소한 재미도 있다.
5> 트레인스포팅 Trainspotting 1996 EMI
영국 팝과 테크노의 올스타 컬렉션. 대니 보일 감독이 그린 에든버러 약쟁이들의
범상치 않은 일상이 스타 뮤지션들의 향연으로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심장
박동에 리듬감을 더하는 오프닝곡 이기 팝의 ‘Lust for Life’를 듣는 순간엔
무작정 달려야만 할 것 같고, 헤로인에 취해 '완벽한 하루'를 보내는 렌턴의
환각 속에서 흐르는 루 리드의 ‘Perfect Day’를 들으면 주인공이 땅으로
꺼지듯 음악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충동이 든다. 블러, 펄프 등 영국 팝
진영과 레프트필드, 프라이멀 스크림, 언더월드 등 테크노 진영은 펑크의 대부
이기 팝, 루 리드와 록시 뮤직 출신의 브라이언 이노를 거점으로 영화 속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6> 접속 1997 POLYGRAM
<접속>은 편집된 영화를 보고 속칭 '콩나물을 뿌리던’ 기존 작업 방법에서
벗어나 기획 단계부터 음악감독이 참여하는 선구적인 음악 프로듀서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영화음악. 당시만 해도 음악애호가에 불과하던 조영욱은 올드 팝을
중심으로 한 절묘한 선곡으로 영화의 서울 관객수와 맞먹는 70만 장이라는 놀라운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이는 OST 사상 가장 많은 판매고이자 OST가 음반 판매
순위 1위를 기록한 최초의 사례. 1997년 가을 전국의 ‘구루마’를 울렸던
'Pale Blue Eyes'나 'A Lover Concerto'는 인기 영화음악 이상의
‘희대의 유행가’였다.
7> 물랑루즈 Moulin Rouge 2001 UNIVERSAL
바즈 루어만 감독이 20세기 대중문화의 후손들에게 걸맞는 호사스런 팝오페라
한편을 선사하려 했다면 화살은 정확하게 과녁을 꿰뚫었다. 마릴린 먼로의
'Diamonds are a Girls's Best Friend'와 마돈나의 'Material Girl'을 뒤죽박죽
섞어놓은 'Sparkling Diamonds', 비틀스의 'All You Need Is Love'에서 엘튼 존의
'Your Song' 까지 시대와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재기발랄한 음악은 지난
세기를 풍미했던 사랑노래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1900년 프랑스 파리 물랑루즈에
서 벌어지는 희대의 러브스토리, 그러나 음악과 안무가 섞이는 순간 영화는
시간의 경계가 무너진 코믹한(?) 비극이 된다.
8>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 1995 PANGEA/POLYDOR
스팅이 부르는 메인 테마 'Angel Eyes'는 역시 그가 부른 <레옹>의 주제가
'Shape of My Heart'와 함께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화음악 중 하나다.
무엇보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매력은 절망적인 사랑을 나누는 두 인물의
대사가 음악과 섞여들면서 영화의 맥을 쫓아간다는데 있다. 또 25곡의 제목들은
마치 영화의 내용을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놓은 것 같다. 마이크 피기스 감독은
원래 이 영화에 아스라한 희망을 담고 싶어했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가 거리의
창녀와 나누는 사랑에 결코 희망은 없다. 스팅은 그런 '희망 없음'조차
매력적으로 느껴지게끔 만든다.
9> 러브 레터 Love Letter 1995 IKPOP
감성파 영상인 이와이 슈운지 열풍의 주역.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산자락에서
‘오겡키 데스카’를 읖조리던 나카야마 미호의 숨결을 따라 차분히 흐르던
현악기 선율에 어찌 매료당하지 않을 수 있으랴! 베일에 가려진 뮤지션
레미디오스의 애틋하지만 오버하지 않는 음악이 없더라면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감성도 이처럼 빛을 발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영상과
너무도 자연스럽게 조화되어 지나치게 되는 <러브 레터>의 사운드트랙은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장면 하나하나를 떠올리게 하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10>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2000 ROCK RECORDS
"저예요. 저와... 함께 가실래요?" 사랑은 이렇듯 수줍게, 그리고 은밀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중경삼림> <해피 투게더>에서 이미 걸출한 음악 감각을
발휘한 왕가위는 모완과 리챈 두 사람의 빛나는 한때를 냇 킹 콜의 스페인어
음반 '칸타 에스파뇰'에 실어보낸다. 'Aquellos Ojos Verdes ', 'Te Quiero,
Dijiste', 'Quizas, Quizas, Quizas' 등 낮고 부드러운 냇 킹 콜의 스페인어
재즈와 중국 경극의 이국적인 리듬, 낮은 첼로 연주가 가슴을 때리는
'Yumeji's Theme'까지. 지난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은 사운드 믹싱도 제대로
안 된 러시 필름으로 시사를 해야 했다니, 안타까웠겠군.
선곡 하나는 기가 막힌다. 술에 절어 연말을 보내는 브리짓(르네 젤웨거)이
'All by Myself'를 립싱크하는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브리짓이 인권변호사
마크를 처음 만날 때 흐르는 다이아나 캐롤의 'Someone Like You'는 로맨틱
코미디라면 예외없이 등장하는 약방의 감초니 만큼 C+. 하지만 바람둥이
다니엘에게 버림받은 브리짓이 샤카 칸의 'I'm Every Woman'을 틀어대는
장면에서는 영화와 음반의 절묘한 공생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하지만 어떠랴.
전직 스파이스 걸스 게리 할리웰의 'It's Raining Men'이나 영국 최고의
가수 로비 윌리엄스가 부른 'Have You Met Miss Jones'과 'Not of This Earth'
만으로도 이 사운드트랙은 '에브리 뮤직'인 것을.
12> 바그다드 카페 Out of Rosenheim 1988 UNIVERSAL
영화의 히트는 종종 극장이 아닌 카페에서 이뤄진다. <베티 블루>나 <천국보다
낯선>은 영화 포스터로, <바그다드 카페>는 영화음악 수록곡 ‘Calling You’
로 영화보다 더 유명해진 작품. 자베타 스틸의 소울 풀한 가창력이 심금을
울리는 ‘Calling You’는 그 카페를 사막 같은 현실에서 쉬어갈 수 있는 공간
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러니 ‘바그다드 카페’지. 윌리엄 갈리슨의 경쾌한
하모니카 연주곡 ‘Blues Harp’, 관악기들의 쿵짝거림이 흥겨운 ‘Brenda,
Brenda ', 작곡가 밥 텔슨이 직접 부르는 구수한 ‘Calling You’ 같은 음악이
이 음반을 한 번 더 돌리게 한다.
13> 해피 투게더 春光乍洩 1997 ROCK RECORDS
수많은 젊은이들이 불법행위도 서슴지 않으며 돌려 보았던, 불법 비디오의
무한한 배급력(?)을 증명한 바로 그 영화다. 음악선곡에 남다른 자질을 보여
왔던 왕가위 감독은 <해피 투게더>에서도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지구 반대
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장국영과 양조위의 거칠지만 애절한 사랑이야기에 흑백
과 컬러를 넘나드는 현란한 영상과 피아졸라의 탱고 선율이 더해져 마음 한구석
을 저며온다. 함께 있어 행복했던 두 남자의 사랑과 이별을 따라가다보면 청명한
가을 하늘을 연상시키는 대니 청의 ‘Happy Together’조차 가슴 아프게 들린다.
14> 코요테 어글리 Coyote Ugly 2000 WARNER MUSIC
작곡가를 꿈꾸는 여자가 주인공인 음악영화. 주인공 바이올렛이 여성 바텐더들이
일하는 바 ‘코요테 어글리’에 취직하면서 무대 공포증을 이겨내고 꿈에 그리던
작곡가가 되는 진부한 이야기지만 음악만은 사정이 다르다. 이 음반은 두 번의
그래미상과 200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기록을 세운 리앤 라임스가 노래를
불렀고 다이앤 워렌이 작곡을 맡아 더욱 유명해졌다. 특히 주인공 바이올렛이
정식으로 무대에 올라 무대공포증을 극복하면서 'Can't Fight the Moonlight'를
부르는 장면은 이앤 라임스의 열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신나고 활기찬 음악으로 가득찬 젊은 음반.
15> 대부 1 Godfather Part 1 1992 UNI/MCA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33세의 나이에 만든 <대부 1>은 니노 로타의 유명한
트럼펫 테마가 영화 내용보다 먼저 떠오르는 영화음악의 기념비적인 고전.
코폴라의 아버지이자 유명한 영화음악 작곡자로 <대부 트릴로지> <지옥의 묵시록>
등을 아들과 함께 작업한 카마인 코폴라와 파트너 니노 로타는 75년 <대부 2>로
아카데미 음악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금 들으면 고전 시기의 정갈함이 지나쳐
지루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대부> 시리즈의 유명한 결혼식 장면에 살포시 깔리는
이탈리안 민요와 어두운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는 마피아 대부 비토 콜레오네를
휘감는 듯한 트럼펫 선율에는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향수 같은 게 있다.
16> 파니 핑크 Keiner Liebt Mich 1994 EMI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쩌지?’라고 항상 자문하는 주인공 파니 핑크.
그녀에게 샹송의 여신 에디트 피아프가 대답이라도 해주듯 흐르는 노래가 바로
‘Non, Je Ne Regrette Rien(아니야, 나는 아무 미련도 없어요)’다. 한 곡의
노래로 이처럼 확실하게 주제를 전달할 수 있는 영화음악도 드물다. 흥겨운
아프리카 리듬의 ‘Orfeo’s Dance’와 ‘Carneval’은 파니 핑크의 친구 오르페오
의 낙천적인 성격을 두드러지게 한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오르페오가 연인을
잃은 슬픔을 대변해 주는 빌리 홀리데이의 'Love Man’도 놓칠 수 없는 곡 중 하나.
17> 사운드 오브 뮤직 The Sound of Music 1965 RCA/BMG
할리우드 뮤지컬의 영원한 고전. 줄리 앤드루스가 가르쳐주는 ‘Do-Re-Mi ’나
트랩 대령의 일곱 아이들이 개인기를 뽑내며 부르는 ‘Sixteen Going on Seventeen
’ ‘So Long, Farewell’ 등을 따라하다보면 영어 공부까지 될 정도로 곡과 가사의 아름다운 간결미가 압권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남태평양> <왕과 나> 등의
뮤지컬을 발표한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와 작사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콤비의
마지막 작품으로 영화의 배경이 된 잘츠부르크시는 도레미송이 흘러나오는
아침으로 시작되는 '사운드 오브 뮤직 버스 투어'라는 관광상품도 있다고 한다.
18>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WEA
'미래주의+포스트모던' SF영화의 대명사로 군림한 이 영화의 명성은 프로그레시브
아티스트 반젤리스의 음악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차갑고 무감각한 신시사이저
의 기계음이 발산하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은 이 영화의 주제를 나타내는
부분이지만 이와 동시에 주인공들의 미묘한 심리를 그리는 서정의 선율을 만들기도
한다. 진한 색소폰 선율의 ‘Love Theme', 장중하게 돌진하는 아르페지오의
'Blade Runner(End Title)'가 바로 그렇다. 트럼펫에 보컬이 담긴 1930년대풍
발라드 'One More Kiss, Dear'는 영화의 묵시록적 흐름을 방해하는 측면도 있다.
디렉터스 버전의 영화처럼 사운드트랙 역시 10년 후 보완된 버전으로 발표.
19> 피아노 The Piano 1993 VIRGIN RECORDS/EMI
미니멀리즘 계열의 현대 음악가 마이클 니만을 대중적으로 알린 작품이자 가장
많이 팔린 음반. “영화음악은 고전음악의 텃밭”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하지만
마이클 니만은 피터 그러너웨이의 <차례로 익사시키기>를 비롯해 40여 편의
영화에 참여하면서 현대 음악의 실험적인 음악 언어를 현대 영화의 그림 속에
심어놓은 선구자다. 이 영화에서 '피아노'는 벙어리 아다의 분신이자 그녀가
세상과 조우하는 커뮤니테이션 통로다. ‘The Heart Asks Pleasure First’
‘The Sacrifice’ ‘Deep into the Forest’등의 피아노 독주곡은 음악 그
자체로도 완성도를 인정받는 현대 영화음악의 대표작.
20> 위노나 라이더의 청춘스케치 Reality Bites 1994 BGM
편의점 계산대에서 갑자기 몸을 흔들어대던 위노나 라이더가 ‘정신나간 여자’
처럼 보이지 않는 것은 위노나의 미모 못지않게 넥의 파워풀한 록 넘버
‘My Sharona’가 큰 역할을 한다. 재주 많은 코미디언 벤 스틸러가 감독한
<위노나 라이더의 청춘스케치>는 90년 초 미국 X세대의 감성이 한껏 묻어나도록
얼터너티브 록을 중심으로 선곡됐다. U2의 ‘All I Want Is You’, 빅 마운트의
‘Baby I Love Your Way' 등 OST에 수록된 14곡 모두 빅 히트 싱글이다.
21> 러브 어페어 Love Affair 1994 WARNER MUSIC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도 꽤 괜찮다. 하지만 <러브 어페어>는? 투 섬스 업!
고급스런 30년대 스윙 재즈와 유쾌한 루이 암스트롱의 허스키 보이스, 감미로운
피아노 솔로에 잔잔한 오케스트레이션까지 두루두루 갖출 건 다 갖춘 <러브
어페어> 사운드트랙은 분명 엔니오 모리코네의 대가다운 솜씨다. 아네트 베닝과
워렌 베이티의 키스 장면에 삽입된 피아노 솔로는 모든 영화음악 작곡자를
자괴감에 빠뜨렸다는(?) 영화음악의 명장면. 'For Annette & Warren'은 실제
부부인 아네트와 워렌의 언약식과도 같은 영화 <러브 어페어>를 위해 엔니오
모리코네가 특별히 만들어준 곡.
22> 아웃 오브 아프리카 Out of Africa 1985 한양레코드
시드니 폴락 감독이 아카데미상 시상식장에서 메릴 스트립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를만들지 못했을 거라고 말해 그녀를 감격시켰던 영화. 더불어 클래식의
단순한 선율로 세계의 수많은 영화팬과 음악팬을 감격시켰던 영화. 광활한
아프리카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목가적인 사랑이야기를 오케스트라 연주기법
으로 풀어낸 웅장하고도 섬세한 음악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모차르트의 ‘Concerto for Clarinet'을 축음기로 듣는 장면에 삽입해 음악의
격을 한층 끌어올린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존 배리에게 네번째 아카데미
작곡상을 안겨주었다.
23> 파리, 텍사스 Paris, Texas 1984 WEA/WARNER MUSIC
기타를 치는 사람만 고독하게 보였지 기타, 그것도 전기기타 소리가 이토록
고독하게 들릴 줄이야. 슬라이드 기타의 명인 라이 쿠더가 들려주는 전기기타
솔로 'Paris, Texas'는 텍사스 사막의 모래 바람을 실어오는 듯 황량하다.
<파리, 텍사스>는 빔 벤더스가 아니라 라이 쿠더가 연출한 영화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그의 음악은 카메라보다 더 큰 역할을 한다. 등이 패인 앙고라
스웨터를 입은 나스타샤 킨스키조차, 보이지 않는 라이 쿠더의 손놀림에
무릎을 꿇었다. 만돌린, 밴조가 빚는 가스펠, 포크와 컨트리, 블루스 스코어도
연주자가 아닌 작곡가로서의 라이 쿠더의 역량을 보여준다.
24> 브룩크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Last Exit to Brooklyn 1989 WARNER MUSIC
쓸쓸한 바이올린 선율이 듣는 이를 금세 우울증에 빠뜨리는 마력의 음반. 메인
테마 'A Love Idea'는 홀로 브루클린 거리를 걸어가던 제니퍼 제이슨 리의
마지막 모습과 함께 관객들에게 비상구 없는 삶의 갑갑함을 전해준다. 발매된
지 10년이 지났어도 우울증 환자(?)들의 열화와 같은 사랑을 받고 있는 <브룩크린
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사운드가 이미지를 위해 존재한다는 영화음악의 대원칙
을 철저히 지킨 수작이다. 프로듀서 마크 노플러는 아직 테크노나 펑크 따위의
장르가 출현하기 이전 전통의 오케스트레이션과 재즈 선율로 사운드트랙을 꾸려
놓았다. <시네마 천국> 이전까지만 해도 가장 구슬픈 음악으로 손꼽혔던 명반.
25> 로미오와 줄리엣 Romeo+Juliet 1996 CAPITOL/EMI
권총을 차고 페라리를 모는 로미오? 셰익스피어를 MTV적으로 그린 영화답게 화려
한 영상을 뛰어넘는 음악의 성찬이 펼쳐지는 인상적인 음반. 두 커플이 무도회장
에서 처음 만날 때 흐르는 데즈레의 'Kissing You’는 누구든지 키스하고 싶게
만드는 끈적한 감성의 음악. 콩깍지가 씌어가는 과정에 등장하는 카디건스의
‘Lovefool’과 시대를 초월한 비극적 러브스토리를 가슴 한구석에 깊이 새겨놓는
워너디스의 ‘You and Me Song'도 이 음반의 명곡들. 여기에 라디오헤드가
‘Talk Show Host’로 깔끔한 마무리를 짓는다. 두 가지로 출시된 CD 가격이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절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다.
26> 8월의 크리스마스 1998 삼성뮤직
피아노의 단선율, 서정의 멜로디, 그림과 함께 놓여 있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말 그대로 백그라운드적인 음악... 영화음악가 조성우의 음악을 설명하는 개념은
<8월의 크리스마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산울림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를 리메이크한 노래가 영상 위에 겹쳐지면 죽음을 앞둔 주인공
(한석규)의 애잔한 속내가 느껴지는 것 같다. 한석규가 서툴게 부르는 주제가
또한 수채화같이 맑은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98년 당시
영화와 함께 꽤 인기를 끌었지만 현재는 절판된 상태.
27> 로스트 하이웨이 Lost Highway 1997 UNIVERSAL/INTERSCOPE
데이비드 린치란 이름만 들어도 왠지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다고? <로스트
하이웨이>의 사운드트랙은 그런 당신의 머릿속을 폭파시켜버릴 수도, 시원하게
씻어낼 수도 있다. 데이비드 보위의 음울한 목소리에 실려 흐르는 ‘I’m Deranged
’를 따라 시작되는 쟁쟁한 스코어들은 이해하기 힘든 영화와는 또다른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시종일관 고막을 강타하는 테크노 사운드와 메탈의 날카로운
기타 선율은 일순간 당신의 감각을 진공상태로 만들지도 모른다. 나인 인치 네일스,
스매싱 펌킨스, 루 리드, 마릴린 맨슨 등 '한'개성 하는 뮤지션들이 총출동한
사운드트랙의 스코어는 모두 23곡.
28> 노팅 힐 Notting Hill 1999 UNIVERSAL
은근히 사랑받은 사운드트랙. 인기 최정상의 여배우(줄리아 로버츠)와 평범한
서점 주인(휴 그랜트)의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니만큼 음악도 달콤
하고 상큼하다. 샤니아 트웨인의 ‘You've Got Away'와 앨 그린의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 등의 곡은 영국 노팅 힐에서 이루어지는 러브스토리를 더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장식한다. 특히 <귀여운 여인> 이후 미국의 연인 줄리아
로버츠를 세계의 연인으로 자리매김해준 이 영화의 백미는 엘비스 코스텔로가
부르는 ‘She'가 흐르는 순간. 어떤 순간인지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29>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The Double Life of Veronique 1991 EMI
곱디곱던 이렌 야콥의 청순함도 사색의 거장 키에슬롭스키도 간데 없지만 그들의
작품만은 고스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화언어의 화술에 집착했던 키에슬롭스키
는 영화음악 또한 영상언어의 한 부분이라 굳게 믿었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은 그의 작품 <블루>와 함께 음악이 감독의 또다른 표현수단이 되어준 분명한
사례다.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살아가는 베로니크와 베로니카를 이어주는 끈은
교교히 흐르는 플루트의 가녀린 연주다. 끊임없이 귓가와 와닿았다 멀어지는
플루트와 첼로의 선율은 듣는 이에게 어떠한 감정도 억지로 자아내려 들지
않는다. 감정은 그냥 서서히 차오르는 밀물처럼 밀려온다.
30> 이웃집 토토로 となりのトトロ 1988 STUDIO GHIBLI RECORDS
한번 입에 붙으면 하루종일 떨어지지 않는 <이웃집 토토로>의 주제곡 ‘토토로’.
지금도 일본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소풍을 가서 ‘토나리노~ 토토로~ 토토로~’를
부른다는 소문이 있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
며 손가락에 수지침까지 놓아가며 <이웃집 토토로>를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린이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가사까지 직접 지었다. 히사이시
조의 신시사이저가 그림에 숨결을 불어넣는 ‘바람이 지나가는 길’도 영화팬
들이 사랑하는 스코어. 이번 조사에서 애니메이션으로는 유일하게 50권에 들었다.
31> 사랑의 행로 The Fabulous Baker Boys 1989 UNI/GRP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도 모르는 사람은 또 모르는 야릇한 사운드트랙. 재즈
뮤지션 데이브 그루신의 피아노는 아주 '깔끔하게' 이 영화의 쓸쓸한 정서를
이끌어간다.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나 베니 굿맨 쿼텟의 스윙감 넘치는 재즈
넘버도 든든히 뒤를 받쳐주며 'Makin' Whoopee' 'My Funny Valentine' 등
미셸 파이퍼가 직접 부른 스코어도 들을 수 있다. 피아노 위에 누워 나른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그녀는 아주 축축하게(?)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초보 재즈 애호가들의 첫번째 사냥감으로 적당한 '이지 리스닝' 계열의 음악
이라 할 만하다. 그건 그렇고 캣우먼이 이렇게나 섹시했었는지.
32> 사무라이 픽션 Samurai Fiction 1998 EMI
시대극과 로큰롤을 조화시킨 건 <기사 윌리엄>? 하지만 그전에 호테이 토모야스와
사무라이의 만남을 기억하시라. X-JAPAN도 한수 배워갔다는 일본의 전설적인
록밴드 BOΦWY의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가 작곡, 프로듀서, 연주를 도맡은
음반. 호테이 특유의 기타 연주로 선율을 리드하면서 드럼 베이스 대신 와타이코우
(일본의 전통 북) 베이스를 사용해 흑백영화이지만 단조롭다는 느낌은커녕 역동감이
넘치는 정서를 만들어냈다. 잘나가는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나카노 히로유키와
거장 반열에 오른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의 만남. 사운드트랙이 안 좋을
이유가 없다.
33>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2000 EMI
발레 영화라면 필경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연상하겠지만 그 짐작은
틀렸다. 다행스럽게도(?) 빌리는 클래식 선율 대신 시끌벅적한 영국 펑크록
음악에 맞춰 춤을 배운다. 빌리를 사로잡은 건 7,80년대 영국 청년들을 열광
시켰던 글램록의 전설 T-렉스. 녀석이 침대에서 점프를 해대는 첫 장면에서부터
T-렉스의 리더 마크 볼란의 섹시한 음성이 관객을 매료시킨다. 이 사운드트랙
에는 몰락해가는 탄광촌의 젊은 영혼들을 감미롭게 유혹하는 그들의 노래가 다섯
곡이나 실려 있다. 그뿐인가. 볼란은 빌리의 형이 아끼는 레코드 표지로 영화
속에 잠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34> 고양이를 부탁해 2001 M&F/DREAM BEAT
<고양이를 부탁해>는 주목할 만한 두 명의 신인을 배출했다. 그 주인공은
탄탄하면서도 섬세한 연출력을 보여준 정재은 감독과 이 영화 한 편으로 한국
영화음악계의 군계일학이 될 자질을 보여준 작곡가 별. 테마곡 ‘진정한 후렌치
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를 필두로 강렬하진 않지만 깊이 파고드는 선율은
스무 살의 고민과 희망을 그리는 연출을 더욱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영화를
위해 만든 곡은 아니라지만 별의 참신한 음악은 한국 영화음악의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하는 것 같다. 많은 후일담을 낳고 있는 <고양이를 부탁해>.
음악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35> 더티 댄싱 Dirty Dancing 1987 BMG
패트릭 스웨이지와 제니퍼 그레이가 함께 한 87년 영화로 너무나 많은 팝 히트곡을
담고 있는 앨범. 빌 메들리와 제니퍼 존스가 함께 한 'The Time of My Life'는
그해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곡이다. 패트릭 스웨이지가 직접 작곡에도
참여하고 노래까지 부른 'She's Like the Wind', 로네트의 63년 히트곡
'Be My Baby', 88년 빌보드 4위까지 올랐던 에릭 칼멘의 'Hungry Eyes', 훗날
보이즈투멘이 리메이크해서 사랑을 받았던 파이브 새틴스의 56년작
'In the Still of the Night' 등은 늘 우리를 위로해주는 시간을 초월한 명곡들.
36> 중경삼림 重慶森林 1994 UNIVERSAL
<열혈남아> <아비정전> 등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무관심했던 한국에 왕가위 열풍을
몰고 온 작품. 페이(왕정문)가 샐러드 가게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에서 일할 때마다
크게 틀어놓고 고개를 까딱거리던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g’
은 개봉 이후 가는 곳마다 울려퍼져 환청이 들릴 정도였다. 또한 크랜베리스와
콕토 트윈스의 ‘왕정문식’ 번안곡 ‘몽중인’과 ‘호사난상’은 "잘 건진 올드
팝송 하나, 열 작곡 안 부럽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단 'California Dreaming'
때문에 이 음반을 사면 안 된다. 이 곡이 음반에는 없다.
37> 타이타닉 Titanic 1997 SONY
집이 크면 TV도 크고 소파도 커야 볼품이 나는 법. 2억 달러짜리 블록버스터
<타이타닉>에는 초대형 스타들만 탑승했다(케이트 윈슬렛이 초대형 스타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촬영 당시 그녀의 사이즈는 할리우드 여배우
치고는 초대형이었다). <타이타닉>의 음악은 <브레이브 하트> <퍼펙트 스톰> 등
주로 대작 영화를 위한 스코어를 작곡했던 제임스 호너가 맡았으며 그가 작곡한
주제가 ‘My Heart Will Go On’은 옥타브를 넘나드는 성량의 셀린 디온이 불렀다.
98년 아카데미 음악상과 주제가상을 수상했으며 음반도 엄청나게 팔렸다.
38> 벨벳 골드마인 Velvet Goldmine 1998 UNI/MERCURY
이 영화는 토드 헤인즈 감독이 섹스와 마약, 글램록이 풍미하던 70년대에 바치는
헌사라고 할 만하다. 영화의 제목은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인 ‘Velvet Goldmine’
에서 따왔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은 접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실망하진 마시길. 브라이언 이노, 록시 뮤직,
루 리드, T-렉스 등의 70년대를 주름잡던 전설들을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커트 코베인과 흡사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완 맥그리거가 직접 부른 ‘T.V. Eye’
는 이 음반의 보너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글램록만큼이나 화려한 영상과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39> 매트릭스 The Matrix 1999 WARNER MUSIC
발매된 지 2년이 지났지만 <매트릭스> 사운드트랙에는 금방 홍대 앞 테크노 바에서
건져올린 듯한 요사스런 환각의 기운이 넘쳐난다. 온 세상이 인터넷 물결로 뒤덥히
던 99년, 신세대를 위한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며 전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킨 영화
<매트릭스>를 위해 연출자 워쇼스키 형제는 매릴린 맨슨, 레이지 어겐스트 머신,
프로디지 같은 테크노와 펑크를 넘나드는 하드코어 뮤지션들을 총출동시켰다.
'Rock Is Dead' 'Mindfields' 'My Own Summer' 'Wake Up' 등 대부분의 스코어가
이미 영화 개봉 전에 발표되었지만 사운드는 이미지를 만나 하늘로 날아오른다.
40>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A Space Odyssey 1968 EMI
99년 세상을 달리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68년 작품. 이 영화에 삽입된 음악은
이 영화를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스코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 놀랍다. 타이틀 곡으로 쓰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든지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같은 곡은 큐브릭의 작품을
더없이 빛나게 한다. 오스카에선 아쉽게도 특수 시각효과 부문에서만 수상했다.
41> 록키 호러 픽쳐 쇼 The Rocky Horror Picture Show 1975 ODE
전세계 수많은 영화 마니아들로부터 사랑받은 컬트영화로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
젊은이들의 환호 속에 상영되고 있을 것이다. 짐 셔먼 감독의 작품으로 팀 커리와
수전 서랜든, 그리고 팝스타 미트 로프가 출연한다. 각본을 쓰고 출연도 한
리처드 오브라이언이 음악 전반에도 관여했다. 72년 영국에서 뮤지컬로 올려져
다음해 영국 드라마 비평가상을 수상했던 작품이라 영화음악의 느낌도 다분히
뮤지컬적이다. 기존 문화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지닌 영화의 주제와 어울리는
사이키델릭한 로큰롤이 인상적이다.
42> 블루 벨벳 Blue Velvet 1986 UNI/VARESE SARABANDE
<광란의 사랑>과 <로스트 하이웨이>에서 데이비드 린치와 호흡을 맞췄던 영화음악가
안젤로 바달라멘티는 린치풍 컬트영화를 만든 일등공신. 그는 로이 오비슨의
‘In Dreams’나 캐티 레스터의 ‘Love Letters’ 등 멀쩡한 올드 팝을 <블루 벨벳>
의 음침하고 비밀스런 영상에 녹여냄으로써 영화와 음악 모두에 색다른 해석을
내리도록 만든다. 제프리의 아버지가 쓰러지는 충격적인 첫 장면에서 뻔뻔하도록
부드럽게 흐르는 바비 빈튼의 ‘Blue Velvet’도 역설적이긴 마찬가지다.
43>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1999 CREAM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출현하면서 학교는 아수라장이 된다. 그 공포의 순간에
장중하게 울리는 합창곡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를 기억하는지.
엔딩 타이틀이 올라간 뒤에도 한동안 긴 여운을 남기는 이 영화의 모든 음악은
할리우드식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연주한 오리지널 스코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한국에선 매우 보기 드문 시도이기 때문이다. <접속> <약속> 등의 사운드트랙에서
적절한 삽입곡을 앞세워 잇단 히트 음반을 만들었던 영화음악가 조성우는 이
음반을 계기로 순수 창작 영화음악을 고집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44> 필라델피아 Philadelphia 1993 SONY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껄렁한 걸음걸이로 거리를 배회하는 동명의 뮤직비디오
클립은 정작 톰 행크스를 대배우의 반열에 올린 영화 <필라델피아>보다 더 선명
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직 아카데미 트로피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지만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의 음악 프로듀싱을 맡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하워드
쇼가 매만진 오리지널 스코어도 귀에 익숙하다. 영화 속 톰 행크스가 즐겨 듣는
마리아 카라스의 아리아만큼 멋진 선곡이 또 있을까. 발매된 지 벌써 6년이 지났
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은 필라델피아 어디쯤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값진 음반.
하워드 쇼의 오리지널 스코어만을 따로 모은 수입 음반도 올해 새롭게 발매됐다.
45> 파리넬리 Farinelli 1994 신나라뮤직
1728년 나폴리의 한 광장, 카스트라토 파리넬리가 트럼펫 연주자와 대결을 벌인다.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의 고음이 하늘에라도 닿을 듯 끝간 데 없이 올라가 트럼펫
소리를 꺾자 관객들은 자지러진다. <파리넬리>는 미성을 유지하기 위해 거세해야
했던 가수 카스트라토의 불행한 개인사와 화려한 가수로서의 삶을 다룬 영화다.
거세의 비밀을 알게 된 파리넬리가 절망적인 심정으로 헨델이 작곡한 ‘날 울게
하소서!’를 부르는 장면은 컴퓨터로 합성된 목소리지만 그 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친다. 17, 18세기 유명 오페라곡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음반의 매력.
46> 펄프 픽션 Pulp Fiction 1994 MCA
싸구려 대중문화 코드에(제목처럼!) 피와 유머를 뒤섞은 타란티노 취향에 따라
‘옛’ 음악이 열거된다. 우마 서먼과 존 트라볼타의 트위스트 가위춤-‘명장면
명곡’에 인용된 척 베리의 ‘You Never Can Tell’을 비롯, 리키 넬슨의 감미
로운 ‘Lonesome Town’ 같은 5,60년대 로큰롤과, 앨 그린(‘Let's Stay Together’
), 더스티 스프링필드(‘Son of a Preacher Man’) 같은 소울을 호명한다.
‘현재적인’ 어지 오버킬의 ‘Girl, You'll Be a Woman Soon’마저
닐 다이아몬드의 커버.
47> 프리실라 The Adventures of Priscilla, Queen of the Desert 1994 UNIVERSAL
94년 호주산 영화 <프리실라>의 원제는 '사막의 여왕 프리실라의 모험'이다.
여러 영화에서 주로 의상상을 받은 작품. 그러나 사운드트랙 역시 가히 일품이
아닐 수 없다. 디스코의 정수들이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는데 샬린의 감미로운 곡
'I've Never been to Me', 빌리지 피플의 ' Go West', 알리샤 브리지스의 'I Love
the Nightlife', 글로리아 게이너의 ' I Will Survive', 아바의 'Mamma Mia',
미스 미국 출신 배우 겸 가수 바네사 윌리엄스의 'Save the Best for Last'가
모두 이 한 장의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잘 만든 컴필레이션 앨범.
48> 텔미썸딩 1999 COEN
왜냐고? [1] 세련된 선곡이 돋보인 <접속> 사운드트랙으로 국내에도 한국영화
음반시장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증명해보인 조영욱이 프로듀싱했으니까.
[2] 크롤의 'Placebo'나 쇼스타코비치의 Jazz Suit No.2는 지금 들어도 뒤끝이
꺼림칙할 만큼 섬뜩하거든. [3] 아직도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기다리는 한석규,
심은하라는 정든 님들이 출연한 작품이니까. [4]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고양이를 부탁해>까지 해봐도 한국영화 사운드트랙은 50위권에 4편밖에 없어서.
[5] 테크노부터 브리티시 팝, 테크노까지 넘나드는 버라이어티 앨범이니까.
49>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High Fidelity 2000 SONY/HOLLYWOOD
'시카고 선 타임스'의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는 팝송이
어떻게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어서 관객은 알듯 모를 듯한 행복에 젖어 극장 문을 나서게 된다"고 평했다.
국내 관객들은 이 영화가 극장 문턱에도 못 가보고 곧바로 비디오로 직행한 탓에
그런 행복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할 기회조차 없었지만 마니아를 중심으로 뒤늦게
발견된 사운드트랙은 앞으로 로저 에버트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고 싶을 만큼 '쿨'하다. 8,90년대 팝의 은신처 같은 음반. 그런데 황당한 영화
제목은 리콜이 안 되나?
50> 글루미 선데이 Gloomy Sunday 1999 WEA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다. 1935년 연인을 잃고 슬퍼하던 작곡가 레조 세레스는
‘글루미 선데이’란 곡을 발표하는데 이 노래를 듣고 헝가리에서만 187명이
자살한다. 이듬해 파리에서는 이 노래를 연주하던 레이벤추라 오케스트라 단원
전원이 연주 도중 권총과 칼을 꺼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믿거나 말거나. ‘자살의 송가’가 된 ‘글루미 선데이’를 비극적인 로맨스로
풀어낸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OST에는 헤더 노바, 엘비스 코스텔로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글루미 선데이’가 실려 있다. 절대, 몸 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