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인생 희색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희색 구름이 희색 머리카락과 자석의 극(極)같아 밀어내는 힘겨루기를 하느라 몸살을 앓는다. 희색머리카락을 머리에 쓰고 사는 것이 십 년도 넘었다. 더 오래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머리카락이 흰색으로 변한다는 것은 늙어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백발은 나에게는 면류관이 될 수 없다. 행실이 옳지 못했던 자는 결코 의로운 길을 걷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희색 머리카락이 가시관이 되어 희색구름이 하늘을 덮으면 온몸을 찌르는 듯 무게와 통증이 동반한다. 백색 쪽으로 더 많이 기울어진 희색머리카락이 되었지만 오늘도 어제나 다름없이 수많은 사물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했다. 새벽을 만나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평화롭게 퍼지는 봄 안개에 촉촉이 젖어드는 풀잎을 만나기도 했다. 새벽바람을 만났을 때는 아직도 ‘겨울이구나.’했는데. 깨어진 시멘트 벽 틈을 비집고 올라온 민들레의 갈색 풀 망울을 보고 " 봄이 여기까지 왔구나." 했다. 주위 사람들도 봄은 만나고 있다. 그러나 봄을 나 혼자 만난 것처럼 흥분하고 있다. 하루라는 것이 짧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러나 결코 짧지는 않은것 같다. 오늘 만난 사물과 옷깃을 스친 무수한 입자들은 천년이 지나가는 세월동안 처음 만난 것들이다. 병실에서 영안실에서 병원셔틀버스에서 전차에서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이 잠을 청하려는 침대위로 회색빛이 되어 다가온다. 백발의 영광을 위해 잠자리까지 왔지만 아직까지 희색 빛 꿈을 꾼다. 오랫동안다른 사람보다 강하다는 우월함의 교만에 사로잡혀 있었다. 숯같이 새까만 검은색이 아니면 진한 붉은색과 청색을 좋아했다. 어깨를 펴고 당당한 자세로 걸었다. 앞에 강풍이 불어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결코 피하려 하지 않았다. 육체에 어떠한강한 통증이 올 때마다 잘 견디었다. 정의를 모르듯이 무지도 몰랐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먼저 뛰어들었다. 십 킬로 군장을 메고 구보를 하다가 쓰러져도 다시일어나 뛰었다. 한 가닥 생명줄을 잡고 절벽을 뛰어 오르내리고. 활차를 타고 활차에서 물에 뛰어들 때도 두려운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반대로 쾌감을 느꼈다. 소낙비가 내리면 전쟁을 잊고 샤워를 즐겼다. 사워를 하며 참을 수 없는 열정으로 맹수같이 표요하며 젊음을 발산했다. 어떤 상황 어떤 역경에도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지와 자신감으로 살았다. 지금 같이 검정과 흰색의 중간색은 아니었다. 부러졌으면 부러졌지 휘어지기는 싫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젊은 교만은 풍선 안에서 사그라질 줄 몰랐다. 머리카락이 희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갈대도 움직이지 않는 바람 소리가 강풍으로 들렸다. 전자시계 초침 소리에 잠을 깨기도 한다. 젊은이들의 말다툼이 있는 곳은 피한다. 목욕탕에서 문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않는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은어를 사용하며 말하는 젊은이들의 입이 거칠어 보인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면 눈꺼풀을 아래로 내려간다. 흐르는 물소리와 잔잔한 바다도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자동차의 경적과 브레이크 소리에 놀란다. 팔십이 넘어 덤으로 산다던 하얀 머리카락의 노인 같이 나도 하얀색으로 근접해가는 회색이 되었다. 꿈을 꾼다. 회색인간이 된 나를 본다. 나의 교만한 검은 자존심은 희색의 겁쟁이로 변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사인을 하고 외상술을 마실 때가 있었다. 호기 있게 손가락으로 사인을보냈다. 어김없이 외상 술값을 봉급날이면 지불하는 신용을 주모는 알고 있었다. 어떤 때는 동료가 마신 술값까지 내 장부에 기입해 놓기도 했다. 술을 마시고 희미한 정신으로 약속은 해도 나는 꼭 지켰다. 부도를 내고 신용불량자가 되어있는 조카가 있었다. 술에 취한 그는 희망이 없다 했다. 그를 살리기 위해 나는 빚쟁이가 되었다. 나를 아는 절친한 사람이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당하지 못한 행위를 하면서 자기 쪽에 서주기를 바랐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너는 누구의 편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너와는 친구지만 정당하지 못한 너의 편에는 설 수 없다는 말로 답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기도 했다. 회의를 한다거나 모임의 약속된 시간에는 십분 전에 도착했다. 약속한 거리가 멀면 예비시간을 만들어 한 시간 전에 출발했다. 굽히지 않고 선명하고 뚜렷하게 나를 나타내려 노력했다. 검은색도 아니고 흰색도 아닌 중간색은 아니었다. 그리고 항상 손해를 맛보았다. 하나님은 세상을 모두 만드시고 사람이 모자람 없이 살도록 만물을 먼저 조성해 놓은 후에 사람을 만드셨다. 그리고 온 우주를 사람에게 인계해 주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은 세상을 인계받고 먼저 한 일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는 않는 것을 포함해 모든 것에 이름을 붙였다. 이름은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로 물체는 이름이 되었다. 해와 달, 별, 천체의 이름과 코끼리, 원숭이, 사자, 각종 동물과 모기나 파리 같은 곤충과 목련꽃. 벚꽃. 소나무도 사람이 부르는 데로 그 이름이 되었다. 바람과 산소나 질소 같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이름이 붙어졌지만 꿈까지 이름을 붙였다. 수만 종류의 이름이 숫자처럼 명확해야 바르게 알 수 있다. 비슷한 것은 있어도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은 희색뿐이다. 존재의 가치를 알려주는 이름이 변했다. 자녀들이 생기고부터 자녀들의 이름을 먼저 붙이고 아버지라고 부르고. 손자의 이름을 앞에 붙이고 할아버지를 뒤에 붙였다. 교회에서 성씨 뒤에 직책을 불러주는 사람은 있지만 이름만 부르는 사람은 없다. 회색이 되어가는 머리카락 같이 나의 이름도 희색으로 변했다. 흰색과 검은색을 적당히 배합하여 만든 것이 회색이다. 건물의 색감을 회색으로 선호 하는 것은 검은 자국이나 하얀 자국을 가리지 않고 무난히 밭아 주기 때문이다. 회색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희색의 머리를 염색 하지 않는다. 염색을 해서 새까만 머리카락이 되는 것 보다 흰머리와 검은머리가 지금은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회색이 없었다면 하얀 극과 검은 극의 대립으로 종말을 빨리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나는 회색머리니 젊은이도 늙은이도 아닌 중간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모든 것이 흐르는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희색에서 백색으로 백색에서 영원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얼굴이 참판 댁 마님같이 귀티가 나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는 팔순이 넘었는데 갈 곳이 없어 딸의 집에서 살았다. 몇 년을 치매로 고생하시더니 돌아가셨다. 그의 장례에 참석하려고 매표소 앞에 줄을 섰다. 한 사내가 매표원과 무슨 대화를 하는지 뒷사람은 생각지도 않고 매표원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그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뛰어올랐다. 절박한 상황이 벌어진 것 같았다. 계단을 올라갈 때도 마찬가지로 뛰었다. 홈에 도착하니 바쁘게 뛰어간 사람이 거기에서 전동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뛰어도 전동차가 도착해야 탈수 있다. 출발지점이라 좌석이 텅 비워있는 전차가 도착했다. 좌석이 비워있는데도 먼저 타려는 세치기가 있었다. 모두가 타고 빈자리가 남았는데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에 있는 장례예식장에 가니 상주들이 보이지 않았다. 곧 사라질 이름 위에 사진만 덩그러니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노모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있을 줄 알았던 아들내외와 딸이 입술을 닦으며 어색한 표정으로 손님을 맞이했다. 장례예식장을 나오는데 한 사람이 덤으로 산다며 자기수명을 덤으로 산다는 이야기를 했다. 팔십이 넘었다는 사람은 머리는 하얗지만 건강하게 보였다. 죽어야 할 사람이 죽지 않는 다며 자기의 생명을 덤이라 했다. 죽은 자도 아니고 살아있는 자도 아닌 회색 이야기를 그는 했다.* |
첫댓글 사람 늙어가는 일은 자연 섬리 세포가 죽어가니 어쩔수 없는 현상 그대로ㅈ받아들여봅니다
읽어 주시어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카페에 들어왔습니다.
글 올리는 것이 서툽니다.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昇男이 저도 그렇게 배우고 있습니다
승남이님의 고운 글에 잠시 머물다가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