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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로마서 5장 12~21절은 로마서의 심장부입니다. 이 대목은 앞에 진술된 모든 것의 요약입니다. 이 대목은 또한 8장 끝까지 계속되는 진술의 시작이요 서론입니다.1)
우리는 아담에게 있었던 일과 아담과의 관계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모든 것이 아담과 인류와의 관계와 크리스트와의 관계에 있습니다. 파울이 파헤치고 강조하고 싶어 하는 바는 크리스트와 연합입니다.2)
1.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로마서 5장 12~14절에 “이것 때문에 마치 한 사람을 통하여 그 죄가 그 세상 안으로 들어왔고 그 죄를 통하여 그 죽음이 그러하고 모든 사람 안으로 죽음이 퍼졌노라 모든 자가 죄를 범하였으니. 이는 율법까지(until the law) 죄가 세상 안에 있었으나 율법의 있지 아니하는 때는 죄가 계산에 넣음을 받지 아니함이나. 아담에서 모세까지 죄를 범하지 아니한 자들 위에 죽음이 지배하였노라, 그는 올 예정인(who was to) 자의 유형(type)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 때문에 마치 한 사람을 통하여 그 죄가 그 세상 안으로 들어왔고 그 죄를 통하여 그 죽음이 그러하였습니다(롬 5:12).
“한 사람”은 아담을 가리킵니다.3)
모든 사람 안으로 죽음이 퍼졌으며 모든 자가 죄를 범하였습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죄를 범한 죄인이라는 확실한 증거인데 죽음은 죄를 범한 죄인에게 선고된 형벌이기 때문입니다(창 2:17, 5:5).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도 죽습니다. 그 사람이 죽는 것은 그 사람이 바로 죄인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죄가 모두에게 해당하기 때문에 죽음도 모두에게 해당합니다.4)
“죄를 범하였다”라는 말은 과거시제로, 과거에 단번에 된 일입니다.5) 인류가 각각 서로 다른 시간에 죄를 범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자가 과거에 같은 시간에 단번에 죄를 범하였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태어난 때도 다른데, 어떻게 같은 시간에 죄를 범한 것입니까? 아담이 죄를 범하던 때 모든 자는 아담 안에 단번에 죄를 범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아담만 죽은 것이 아니라 모든 자가 죽는 것으로 증명되며, 모든 자가 아담 안에 단번에 죄를 범한 까닭에 모든 자가 죽는 것입니다.
죽음의 보편성은 모두가 죄를 범하였다는 사실의 결과인 것입니다.6) 과거시제기 때문에 모든 자가 과거에 이미 죄를 범하였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과거의 역사 가운데에서 단번에 죄를 범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죽었던 것처럼 모든 사람도 그러합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죄가 모든 자의 죄라는 사실입니다.7)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의 조상인 아담은 모든 사람의 대표자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율법까지 죄가 세상 안에 있었으나 율법의 없는 때는 죄가 계산에 넣어지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롬 5:13).
“율법까지”는 창세기에 기록된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를 뜻하는 말로 그때는 “율법이 없는 때”였으나 그때도 죄가 세상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없는 때는 죄가 계산 장부에 기록되지 아니하였습니다.
죄가 계산되지 아니한다고 죄의 결과인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죄의 결과인 죽음이 모든 인류 위에 지배하였습니다(롬 5:14).
아담의 죄와 그 죄의 결과는 모든 사람에게 전가되었습니다.8)
“유형(type)”(튀포스)은 “원형”, “모형”, “타입”(type)을 뜻하며 영어 단어 “Typology”[taipɔ́lədʒi]는 “예표론”을 뜻합니다.
아담은 올 예정인(who was to) 자의 “전형”, “모범”, “표본”이었는데, 타입(type)을 치면 활자로 찍은 자국이 똑같이 프린트되고 인쇄됩니다. 활자(type)와 활자에 의해 찍혀 나오는 인쇄물이 같은 형상을 가집니다. 이것을 “figure”로 번역한 번역본을 취한다면 아담은 초상(肖像)입니다. 초상화를 보면 초상화가 누구를 그렸는지를 원래의 인물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pattern”으로 번역한 번역본을 취하는 때에 아담은 모형입니다. 실물과 모형은 공통 형상을 지니므로 모형을 볼 때 실물을 알게 됩니다. 어떤 번역을 취하든지 공통점은 실물과 비슷한 점을 가진다는 점입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유형이다.’라는 문구는 이어지는 단락의 논제입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모범”(type), “표본”, “예징”, “예표”였습니다.
2. 한 사람을 통하여 은혜가 많은 사람 안으로 풍성합니다.
로마서 5장 15~17절에 “범죄와 같지 아니하며 은사와 같지 아니하니 이는 만일 그 하나의 범죄에 그 많은 사람(the many)이 죽었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그 하나의 사람인 예수 크리스트의 은혜 안에 선사품이 더욱 많은 것에 그 많은 사람(the many) 안으로 풍부하였음이고. 그 선물은 또한 죄를 범한 하나를 통하여와 같지 아니하니, 확실히 그 심판은 하나에서 유죄판결(condemnation) 안으로나, 그 은사는 수많은 범죄에서 의롭다 칭함(justification) 안으로니. 이는 만일 그 하나의 범죄에 그 죽음이 그 하나를 통하여 지배하였으면, 더욱 많은 것에 그 은혜와 의로움의 선사품의 풍부함을 받는 자가 그 하나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생명 안에 지배할 것임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유죄판결(condemnation)”이라는 헬라어(카타크리마)는 “유죄판결을 내리다(condemn)”에서 나왔으며, “유죄판결”, “정죄”를 의미합니다.
5장 15절의 “그러나” 다음에 be 동사 “is”가 생략되었다고 추정됩니다. 파울은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무엇이 그 범죄와 같지 않은지 주어가 생략되었습니다. 영어 번역본들과 한글 성경은 뒤에 “은사”라는 말을 주어로 끌어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의 생각에 해석과 번역상의 실수로 보입니다.
저는 “~에 있어서”를 넣어서 번역하는 것이 더욱 좋다고 제안합니다. 아담과 크리스트의 비슷한 점을 말했고 그 범죄에서는 같지 아니합니다. 이처럼 또한 그 은사에 있어서도 같지 아니합니다.
다시 말해 이 구절은 “범죄”와 “은사”를 대조하고 있는 말씀이 아니라, 아담과 예수 크리스트를 대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의 사람 아담과 대비되는 하나의 사람 예수 크리스트가 나옵니다. 그러나 “같지 아니하다”라는 말은 단순한 대비가 아닌 사실을 뜻합니다. 둘이 비교는 되지만 둘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범죄”는 아담의 대표적인 행위를 묘사하기 위해 쓴 용어로 “그릇된 걸음”(false step)과 같은 뜻입니다.9)
만일 그 하나의 범죄에 의해(by) 그 많은 사람이 죽었으면 크리스트의 은혜에 의한(by) 선사품이 많은 사람 안으로 풍성합니다.
죽지 아니한 사람들이 있는데 에녹과 엘리야가 죽지 아니한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all men)이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은혜 안에 선사품이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닌 까닭에 선사품이 ‘모든 사람’ 안으로 풍성하였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 선물은 또 죄를 범한 하나를 통하여와 같지 아니하니, 확실히 그 심판은 하나에서 유죄판결(condemnation) 안으로나, 그 은사는 수많은 범죄에서 의롭다 칭함 안으로입니다(롬 5:16).
선물에서도 죄를 범한 하나를 통하여 주어지는 것과 같지 아니합니다. 확실히 그 심판은 단 하나의 죄로 유죄판결 안으로 되었습니다.
여기 “하나”를 “one”으로 번역하지 않고 “one sin”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원어에 “죄”라는 말은 없지만 이처럼 번역한 번역은 잘 번역하였습니다. 한국어 개역처럼 “한 사람”이라고 잘못 번역할 소지를 막기 때문입니다. 한국어 새 번역은 “한 범죄”라고 옳게 번역하였습니다.
아담이 범한 범죄의 결과로 그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으나 크리스트께서 순종하신 결과 “많은 범죄”에서 의롭다 인정됨이 됩니다.
최종적 대조점은 “유죄판결”의 반대인 “칭의”라는 말로 소개됩니다.1) 우리의 상태나 조건과 상관없이 법정에서 무죄로 판결되었기 때문에, 더는 우리를 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만일 그 하나의 범죄에 그 죽음이 그 하나를 통해 지배하였으면, 더욱 많은 것에 그 은혜(恩惠)와 의로움의 선사품의 풍부함을 받는 자가 그 하나 예수 크리스트를 통해 생명 안에 지배할 것임입니다(롬 5:17).
구원은 칭의에서만 끝나지 아니하고 생명 안에 지배할 것입니다.11)
3. 한 행동을 통하여 모든 사람 안으로 결과가 도달합니다.
로마서 5장 18~19절에 “한 범죄를 통해 모든 사람 안으로 정죄처럼, 이렇게 한 의로운 행동을 통해 모든 사람 안으로 생명에 의롭다 함이니. 이는 한 사람의 불순종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죄인들로 만들어진 것처럼 한 명의 순종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의인들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율법의 행하는 자들(doers)이 의롭다 칭함을 받을 것입니다(롬 2:13). 문제는 사람이 모든 율법을 행할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들에서 모든 육체가 그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지 아니하니 이유는 율법을 통하여 죄의 인식이기 때문입니다(롬 3:20).
크리스트 예수 안에 있는 그 되찾음(the redemption)을 통하여 그의 은혜에 무료로 의롭다 칭함을 받습니다(롬 3:24).
사람이 모세의 율법 안에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지 않은 모든 것들에 그 안에(by Him) 믿는 자들이 의롭다 칭함을 받습니다(행 13:39). 율법의 행위들 없이 사람을 믿음에 의롭다 칭함을 받습니다(롬 3:28).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향해 평화를 가지게 됩니다(롬 5:1). 그의 피 안에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는 구원함을 받을 것입니다(롬 5:9). 한 의로운 행동으로 모든 사람으로 생명에 의롭다 칭함입니다(롬 5:18).
하나의 범죄를 통하여 모든 사람 안으로 유죄판결처럼, 하나의 의로운 행동을 통하여 모든 사람 안으로 칭의입니다(롬 5:18).
“하나의 범죄”는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모든 사람 안으로 유죄판결 안으로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의로운 행동”은 예수님의 행동을 뜻하며 그것을 통한 결과는, 모든 사람 안으로 생명의 칭의 안으로입니다.
여기 “모든 사람”은 무조건으로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12)
앞에 3장 21절에 “믿음을 통하여 믿는 모든 자 안으로”라고 하였는데, 5장 18절에서는 앞에서 말하였던 “믿는”이라는 조건을 생략한 것입니다. 조건이 생략되었다고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의롭다 하신다고 하는 보편구원론은 잘못된 것입니다.13) “믿는”이라는 말이 없다고 모든 사람이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고 말하면, 파울이 앞에 3장 4장에서 “믿음”을 강조하던 문맥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류를 구원받은 자와 버려진 자의 둘로 나누는 구분이 있는데 사람들을 이렇게 둘로 나누는 구분은 성경의 어디에서나 발견됩니다.14) 이러한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는 보편구원론은 잘못이며, 마태복음 25장에서 분명히 양과 염소의 구별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의 “모든 사람”은 크리스트와 관련되는 “모든 사람”입니다.15) 그와 관련되지 아니한 사람은 누구든지 “칭의”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의인을 의롭다고 하고, 악인을 사악하다고 하여야만 합니다(신 25:1). 그 반대로 하는 자는 하나님께 혐오가 됩니다(잠 17:15).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의 공의를 빼앗지 않아야만 합니다(사 5:23).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 크리스트 안에 있는 자들을 의롭다 칭하십니다.
“칭의”와 “유죄판결”은 서로 반대되는 사법적인 선언을 의미합니다.16) 이 용어들은 법정용어들로 과거에 죄를 범한 것과 상관없는 판결입니다.
“칭의”는 ‘의의 전가’라는 용어로 명백히 묘사되었습니다. “칭의”는 ‘화목(화해)’이라는 용어와 같은 뜻의 표현입니다. “칭의”는 사법적인 용어입니다.17)
“칭의”는 의롭다고 칭함을 받고 의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칭의”는 사법적인 선언입니다. “칭의”는 법적으로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18) 죄인이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 크리스트의 한 의로운 행동을 통해 모든 사람 안으로 생명에 의롭다 합니다. 칭의는 크리스트의 의로운 행동을 통한 것입니다.
이는 한 사람의 불순종을 통하여 많은 자가 죄인들로 만들어진 것처럼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하여 많은 자가 의인들로 만들어짐입니다(롬 5:19).
한 사람의 “불순종”은 한 “범죄”에 병행됩니다. 하나의 “순종”은 하나의 “의로운 행동”에 병행됩니다. “범죄”와 “의로운 행동”은 “불순종”과 “순종”에 의해 대체되고 있습니다. “유죄판결”과 “생명의 칭의”는 “죄인들”과 “의인들”에 의해 바뀝니다.19) 아담은 그의 불순종을 통하여 많은 사람을 죄인들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크리스트께서는 그의 순종을 통하여 많은 사람을 의인들로 만드십니다. 아담의 불순종을 통한 결과들이 크리스트의 순종을 통하여 반전됩니다.
아담의 “범죄”는 “불순종”으로 묘사되며 아담의 불순종이 범죄입니다. 우리의 칭의는 우리의 순종이 아닌 예수 크리스트의 순종과 관련됩니다. 새 관점 학자들은 최종 칭의가 우리의 순종에 달린 것처럼 주장합니다.
크리스트께서 순종하셔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게 됩니다(롬 5:19).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의롭다 함을 받게 됩니다(롬 2:12). 그러나 율법의 행위들에서 아무도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합니다(롬 3:20). 예수 안에 되찾음을 통해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롬 3:24).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믿음에서인 자를 의롭다 하십니다(롬 3:26).
4. 죄의 지배와 은혜의 지배가 생명의 유무로 대비됩니다.
로마서 5장 20~21절에 “율법이 개입하니 범죄가 증가하기 위해서나, 죄가 증가한 곳에(where) 은혜가 더 넘쳤으니. 죄가 죽음 안에 지배한 것과 마찬가지로(just as), 이런 방식에 은혜도 의로움을 통하여 우리의 주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 안으로 지배하기(reign) 위해서라.”라고 하였습니다.
죄가 세상으로 들어왔으며(롬 5:12), 율법은 죄를 따라 들어왔습니다. 율법의 기능들에서 하나는 죄를 깨닫게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롬 3:20).
우리에게 죄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가져다주는 것은 율법뿐입니다.20) 율법이 개입하여 죄와 범죄에 대한 이해력을 증가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려고 죄를 따라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깨달으라고 들어온 율법이 오히려 범죄를 증가하게 합니다. 율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의 가공할만한 힘 때문입니다.
율법이 하게 되는 첫 번째 일은 죄 지식을 증가하게 하는 것입니다.21)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었어도 거울을 보지 아니하면 그 사실을 모르듯이 율법이 없을 때는 죄가 죄임을 모르고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고 살았는데 율법에 비추어서 바라보니 그러한 삶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이 죄인의 삶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란 어렵지 않은데, 하나님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만족에 빠진 사람은 큰 죄인입니다.22)
율법은 사람에 죄를 범하게 하고 사람을 죄 속에 밀어 넣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조기 성교육을 시킨다면 성적 범죄를 막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적 관심과 호기심을 유발하여 성적 범죄를 저지르게 충동질합니다.23)
유대인에게 율법의 기능과 목적의 문제는 아주 중대한 문제인 까닭에, 파울이 율법의 문제를 거론한 것입니다.24)
죄가 증가한 곳에는 은혜가 더 많이 넘칩니다. 은혜를 알기 위해서는 율법으로 죄가 폭로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사람만이 은혜를 향하여 나아올 수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죄인임을 가르쳐서 깨달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교인이 아니라 신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죄가 증가한다고 해도 은혜는 그보다 더욱더 넘쳤다고 말씀합니다.25) 은혜의 특징은 부족하지 않고 넘친다는 것입니다.
죄가 죽음 안에서 지배한 것과 똑같이(just as), 이런 방식에 은혜도 의로움을 통하여 우리의 주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 안으로 지배하기(reign) 위해서입니다(롬 5:21).
우리가 위안을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고통을 겪고 난 뒤 일입니다.26) 21절에 “죄가 죽음 안에 지배하였다”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구절에 “지배하다(reign)”라고 번역한 헬라어(바실류오)는 “왕(king)”이라는 뜻의 명사(바실류스)에서 나온 동사입니다. 왕으로서 지배한 것을 뜻합니다.
아담이 타락하고서 죄가 죽음 안에서 모든 인류를 지배하였습니다.27) 인류는 태어날 때부터 죄가 왕으로 지배하는 영역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인류는 죄의 지배 아래 있고, 죄의 종으로 살고 있습니다(요 8:34).28) 사람들은 죄의 왕국에서 죄의 지배를 받으며 노예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의 노예로 살고 있으면서도 인정하지 아니합니다.29) 자기들이 바라는 대로 자유의 왕국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죄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것입니다.30) 말씀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없이 살기를 꿈꿉니다. 영적인 일에는 무관심하고 육에 속한 일들을 좋아하고 추구하며 삽니다. 그렇게 사는 일을 죄의 노예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god)을 만들고 그것을 하나님으로 생각합니다.31)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영적 사망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32) 카인처럼 하나님의 앞에서 나가서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에 보면, 지배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죽음입니다. 죽음이 사람들 위에 왕으로 지배하여 사람들을 죽게 만듭니다(롬 5:14).
둘째는 신자들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생명 안에 지배합니다(롬 5:17). 생명이 신자 안에 지배하지 않고, 신자가 생명 안에 지배합니다.
셋째는 죄인데, 죄가 왕이 되어 죽음 안에 왕으로 죄인을 지배합니다. 죄인은 죄의 지배를 받습니다(롬 5:21).
넷째는 은혜인데, 은혜가 왕으로서 영생 안으로 지배합니다(롬 5:21). 죽음과 죄가 서로 통하고 신자들과 은혜가 서로 통합니다.
두 지배자가 있는데 죄가 지배하기도 하고 은혜가 지배하기도 합니다. 죄 아래 지배를 받는 자가 있으며 은혜 아래 지배를 받는 자가 있습니다.
사람은 죄 아래 있든가 “은혜” 아래 있든가 둘 중 하나에 속합니다.33) 죄의 지배력은 매우 크기에 사람이 원하지 아니하여도 죄에 지배됩니다.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들은 죄에 지배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도 이러한 방식으로 은혜 아래 있는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은혜는 우리의 주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영생 안으로 지배합니다.
의로움이 있는 곳은 영생도 있으며 영생은 의로움을 통해 주어집니다. 의로움과 생명은 아담 때문에 상실되었으나 크리스트 안에 회복되었고, 죄와 사망은 아담을 통해 기어들었으나 크리스트를 통해 폐지됩니다.34)
구원의 문제가 사람에 달렸다면 모든 사람에게 실패밖에 없습니다.35) 그러나 은혜가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구원영생 안으로 지배합니다.
1)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223.
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225-227.
3) Douglas J. Moo, 『NICNT 로마서』, 손주철 역 (서울: 솔로몬, 2012), 444.
4) Moo, 『NICNT 로마서』, 447.
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250.
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251.
7) Moo, 『NICNT 로마서』, 454.
8) Michael Horton, 『언약적 관점에서 본 개혁주의 조직신학』, 이용중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2), 634.
9)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W. B. Eerdmans, 1996), 335.
1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18.
1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19.
1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00.
1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01.
1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02.
1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05.
16) James Buchanan, 『칭의 교리의 진수』, 신호섭 옮김 (서울: 지평 서원, 2002), 254.
17) Buchanan, 『칭의 교리의 진수』, 255-257.
18) Buchanan, 『칭의 교리의 진수』, 258-260.
19) Don Β. Garlington, Faith, Obedience and Perseverance (Tübingen: J. C. B. Mohr, 1994), 103.
2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57.
2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59.
2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62.
2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63.
2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67.
2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69.
2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76.
2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77.
2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78.
2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79.
3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80.
3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81.
3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82.
3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88.
34) Calvin, Institutes, Ⅱ. 1. 6.
3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2』,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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