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영화를 누리며 잘나가던 상권이 텅텅 비어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진단은 주로 이렇다. 부쩍 오른 임대료, 원 점포상인의 퇴거, 상권특색의 변질, 유동인구의 감소, 공실률의 증가 순이다. 결국 건물주인의 과도한 욕심으로 인한 임대료 상승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중요한 원인은 ‘강력한 경쟁상권의 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새롭게 채운 점포가 모두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고만은 볼 수 없다. 새로운 라이벌 상권의 등장은 필히 유동인구의 분산도 불러일으킨다.
과거 가로수길이나 경리단길이 유행했듯, 요즘은 연남동이나 송리단길이 유행한다.
거주인구의 변화가 아니라 유동인구의 집중과 함께 상권의 성장세가 나타난 것이다. 국내 상권 중에 순위를 다투는 홍대(서교동)와 신촌(신촌동) 같은 대형 상권들도 연남동이 성장함에 따라 성장률이 주춤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전국 행정단위 읍/면/동 단위 인구 수/매출액/점포 수
2017~2019 성장률을 바탕으로 각 상권의 시장규모 증가/감소지역 비교분석
동탄·세종 상권 뜨고, 거제는 지고
거주민보다 유동인구수가 더 중요
상권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구매력을 갖춘 사람이다. 보다 세분화하면 기본적인 인구수와 상권의 유동인구다. 상권이 정체기에 접어들거나 축소되기 시작하는 이유는 상권이 성장하는 이유를 거꾸로 생각해 보면 쉽다.
지금 국내에서 상권이 성장하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기본적으로 신도시들이 먼저 떠오른다. 신도시는 인구가 유입되면서 수요가 늘고, 이에 따라 점포들이 입점하면서 상권이 성장하게 된다. 2017년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상권이 성장한 지역들을 살펴보면, 거주인구 수의 증가와 함께 상권이 성장한 경우가 가장 많다. 동탄, 하남, 세종, 시흥, 송도, 평택, 위례 등이 대표적으로 인구수가 증가하는 신도시들이다.
거주인구와 배후수요가 늘어나며 성장하고 있는 동탄의 엔터식스 동탄메타폴리스
▶인구 감소가 상권의 쇠퇴로 이어지는 상권
반대로 인구수가 감소하는 지역은 시장도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외부에서 유입되는 고객보다 지역 거주민의 소비가 많은 지역상권의 경우, 인구수가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상권도 축소된다. 지역 재개발 문제로 한시적인 인구의 감소가 있는 경우라면 다시 회복되거나 오히려 상권이 확장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특별한 원인 없이 지속적으로 인구가 빠져나가는 지역은 지역상권의 쇠퇴가 이어질 수 있으므로 인구정책부터 고려해야 한다.
▶인구 증가보다 배후수요 갖춘 이후 상권성장
거주 인구수가 상권의 확장과 축소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소이기는 하지만 거주인구가 증가하는 시기에 반드시 상권도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배후지역의 수요를 갖추고 있는 것이 검증되면, 사후에 입점하는 상업시설도 많기 때문에 상권이 성장하는 시기가 거주인구의 모든 입주가 끝나고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2017~2019년까지 큰 인구의 증가는 없었지만, 그 이전에 인구가 늘었던 동탄, 파주, 나주, 광교 등의 지역은 한발 늦게 상권이 성장한 지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경리단길·연남동의 몰락
임대료 급등 신흥상권에 밀려
신도시와 다르게 거주 인구수의 변화가 크지 않은 도심의 경우는 다른 요소들이 상권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끼친다.
고객의 선호도가 이동함에 따라 트렌드의 변화가 일어나는 상권들이다. 일례로 예전 가로수길이나 경리단길이 유행했듯, 요즘은 연남동이나 송리단길이 유행하면 거주 인구의 변화가 아니라 유동인구의 집중과 함께 상권의 성장세가 나타나는 형태다.
상권성장이 정체된 연남동 상권
거주 인구의 감소 때문이 아님에도 상권이 축소되는 지역을 뽑아보면, 가장 큰 원인은 경쟁관계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한 지역에서 소비가 증가했다는 것은 다른 어떤 지역에서는 소비가 감소했다는 뜻이 되므로 주변지역과 함께 이를 분석해보면, 상권 축소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
▶라이벌 상권의 등장으로
기존 상권은 성장위협
유행처럼 성장한 ‘석촌호수-송리단길’과 잠실, 가락동까지 상권을 확장하여 지역별 성장률을 비교해보면, 송파2동의 상권이 축소된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아울러 신천먹자골목이나 방이먹자골목 같은 대형 상권들도 큰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고, 유지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상권의 감소까지는 아니지만 뜨고 있는 연남동 주변지역도 상권의 성장세가 둔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상권 중에 순위를 다투는 홍대(서교동)와 신촌(신촌동) 같은 대형 상권들도 연남동이 성장함에 따라 성장률이 주춤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최근 유동인구가 줄고 공실이 늘어난 경리단길 상권
마지막으로 상권의 증감에 따른 명암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판교와 정자동 일대를 살펴보면, 뜨고 있는 모습이 확실히 눈에 띄는 판교 일대와 정체 혹은 감소세까지 나타나고 있는 서현-수내-정자역 상권이 대비되어 나타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성남의 최대 상권이자, 트렌디한 상권은 서현역을 필두로 한 서현-수내-정자역 라인이었는데, 상권의 유행이 판교로 옮겨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체기에 들어선 모양새다.
음식업 → 편의시설 주축 바뀌면
상권 전성기 지나 정체·퇴조 신호
상권변화와 관련된 지표들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뜨는 상권이라면 검색량이 늘고 SNS나 방송에도 더 많이 등장할 것이다. 반대로 그런 노출이 적어질수록 상권이 감소하는 추세라고 봐도 될 것이다. 또 대형 상업시설이 입점한다거나, 테마거리가 조성되는 지역은 뜰 상권으로 예상할 수 있고, 그 지역 주변으로 경쟁관계에 있는 지역은 감소가 예상된다. 그런데 이런 지표만으로 상권의 흥망성쇠를 파악하기에 부족함이 느껴진다면, 확실한 방법은 상권이 구성되고 있는 업종 구성비를 살펴보면 된다.
전국 3500여 개 행정 읍/면/동 중에 단위 지역당 점포가 100개 이상인 2546개 지역을 추출하여 성장률 등급별 업종구성비를 분석한 결과, 성장 상권에서는 ‘음식업’ 비중이, 쇠퇴 상권에서는 ‘소매업’과 ‘생활서비스업’ 비중이 높았다.
이 같은 현상은 상권의 초기 ‘유인력’을 담당하는 음식업이 상권의 성장을 이끌고, 점차 상권이 안정화되면서 생활편의 기능이 갖추어지기 때문이다. 생활 편의시설이 입점하기 시작하면 반대로 유인력은 떨어지면서 성장보다는 안정화 쪽으로 기울게 된다.(맛집이 많았던 유행 상권에 점차 쇼핑시설이나 편의시설이 들어오는 모습을 그려보면 된다.) 지금 상권의 구성이 어떤 모습을 보이고 있고, 향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추적해보면, 상권의 정체나 쇠퇴시기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또 이를 바탕으로 상권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할지도 유추해 볼 수 있다.
▶특정 업종은 외부고객 유인 적어
상권 매력 떨어뜨리기도
분석 결과에서 한 가지 유의할 사항은 ‘학문교육서비스업(=학원)’ 업종인데, 이 업종이 성장률이 높은 지역에서 보다 높은 비중을 보이기 때문에 ‘성장을 이끄는 업종’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학원은 외부고객의 유인을 담당하는 업종이 아니므로 오히려 상권범위를 좁히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요즘 신도시들은 ‘교육’기능을 강조하면서 학원들이 먼저 입점하기 때문에 구성비가 높게 나타나고 있으나, 실상은 학원들만 입점하여 오히려 상권 매력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유의하여 해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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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의 상권성장은 제로섬게임
잘되는 가게가 있으면 그만큼 안 되는 가게도 있고, 뜨는 상권이 있으면 지는 상권도 있고, 온라인 소비가 증가하면, 그만큼 오프라인 소비가 감소하듯이 결국 소비는 제로섬게임이므로 명암이 갈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그 중에서 ‘밝은 쪽을 조명하느냐, 어두운 쪽을 조명하느냐’의 차이는 그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2015~2016년도에는 각 지역자치단체가 집중하는 대상이 ‘지역경제 성장’ 분야였다면, 요즘은 성장의 이면에 있었던 ‘낙후된 지역의 복구’이거나, ‘균형 있는 지역발전’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원래 성장전략은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키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러다 보면 부족한 다른 분야의 문제들이 발생하면서 이를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지금이 그 조율의 시기라고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도시 개발이 진행되면 먼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늘어나는데, 그 이후에 교육, 문화, 쇼핑, 공원이나 편의시설들이 뒷받침되어야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고, 지금 시기가 그런 부족한 기능들을 찾아내서 보완해 주는 단계인 것이다.
오프라인 로드숍을 운영하는 기업들도 ‘출점 위주의 성장 전략’에서 ‘기존 가맹점 관리와 부진 점포 회복’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온라인 시장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면서 오프라인 시장의 성장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소비와 무관해 보이는 품목을 다루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이런 환경에서는 다시 한번 성장전략을 재점검하고 어느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할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 과도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외형의 확장보다는 내실을 튼튼하게 하려는 분위기로 전환됐다. 또 한 가지 기업들이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하는 이유는 고객의 요구와 소비패턴이 다양해지는 환경에서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브랜드 콘셉트의 재정의가 필요한 시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에는 ‘획일적인 콘셉트의 확장’보다는 ‘다양한 라인업을 준비’하고, 그 다음 성장기를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한편, 상권 데이터를 활용하는 목적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 맞게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좋은 자리를 찾거나, 뜨는 업종을 찾거나, 신도시나 대형 상업시설이 어떤 식으로 더 확장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 찾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요즘은 부진한 점포, 부진한 상권, 지고 있는 업종을 어떻게 다시 회복시킬 것인가에 초점이 있다.
그런데 언뜻 다른 것처럼 보이는 주제지만, 사실 그 분석방법이나 결론은 같다고도 볼 수 있다. 뜨는 상권의 원인을 분석하면, 반대로 지는 상권은 그 원인이 반대로 나타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지는 상권을 살리기 위한 방법이 반대로 뜨는 상권이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자료원:매일경제 2019. 8. 28